-
-
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평점 :
#도서협찬
김영사 출판사 @gimmyoung 💕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기억한다는 착각
📗 차란 란가나스
📙 김영사

우리는 종종 “왜 이렇게 자꾸 깜빡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중요한 약속을 잊거나 방금 무언가 하려던 행동을 잊어버릴 때,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걱정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기억을 곧잘 떠올리는 능력이 곧 능력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잊는다는 것은 무능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한다는 착각』은 그런 우리의 시선을 뒤집어, ‘잊는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뇌의 전략일 수 있음을 말한다.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공감된다. 냉장고 문을 열고 멍하니 서 있다가 “내가 뭐 하러 왔지?” 하고 머리를 긁적이는 순간, 우리 모두 당황하거나 나이 탓을 하곤 한다. 하지만 책은 이런 경험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며, 뇌가 정보를 ‘덩어리’로 처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된다.

이 책은 기억력 향상을 위한 꿀팁을 나열하는 식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현상의 본질부터 파고든다. 왜 우리는 기억하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하여 저자는 기억이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닌, 인간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핵심 도구라고 주장한다. 외운 것을 오래 유지하는 기술보다,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왜 변화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근본적인 접근임을 강조한다.

기억은 한 번 저장되면 변하지 않는 데이터가 아니라,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유동적인 이야기 구조라고 한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과거를 회상할 때와 상상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기억할 때 실제로 과거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보와 감정을 반영해 ‘재구성’하고 있다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따라서 기억은 언제든 변형되며, 그 자체가 생존에 유리한 방식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할 때 기억에 의존하고, 인간관계에서도 ‘누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반응한다. 이 책은 그런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가변적인지 알려주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돕는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던져준다.

책은 기억의 기본 원리부터 시작해, 도식과 사건의 경계선, 트라우마와 거짓기억, 실수 기반 학습과 수면의 효과 등 기억의 다양한 층위를 다룬다. 특히 반복 암기보다 ‘시험을 쳐보는 것’이 학습에 더 효과적이라는 실험 결과는 교육 현장이나 자기 공부에도 유용한 팁이 된다. 기억을 자극하는 방식과 이를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원리에 대한 설명이 명쾌하다.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억은 진실도 거짓도 아닌 ‘상상력과 현실이 결합된 재구성’이며,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점이다. 과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지금의 나에 의해 다시 써질 수 있으며, 그 유연함이야말로 회복과 적응, 창조적 사고의 근원이다. 기억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나와 마주하게 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기억한다는 착각』을 읽는 내내 위로와 놀라움이 교차한다. 기억이 흐릿해진다고 자책했던 순간들이 사실은 뇌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신호일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놓이게 만든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사람들, 특히 기억 때문에 힘들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이 건네는 따뜻한 시선과 과학적 통찰에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한다는착각 #차란란가나스 #김영사 #기억의재구성 #뇌과학책추천 #실수기반학습 #망각의과학 #기억은재창조다 #도식기억 #트라우마와기억 #기억과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