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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대하여 ㅣ 달달북다 8
백온유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평점 :
#도서협찬
북다 출판사(@vook_da)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떤 감정은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사라지고, 어떤 감정은 끝을 맞이할 때야 비로소 선명해진다. 『정원에 대하여』는 그런 이야기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조심스럽고, 우정이라 하기엔 한 걸음 더 다가간 감정. 말하지 못한 마음은 서늘한 공기 속에서 서서히 무르익는다. 그리고 이별 앞에서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우리는 늘 이런 감정들을 품고 살아가지만, 정작 당사자일 때는 알지 못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뒤, 문득 깨닫는다. "아, 그때 나는 그 사람을 좋아했구나."

주인공 은석과 정원의 관계는 묘하게 불완전하다. 같은 빌라에 살고 있지만, 은석은 4층, 정원은 반지하. 그 계단만큼이나 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가까워질 듯하면서도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는 두 사람. 특히 정원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눈썹을 뽑는 습관이 있다. 마치 스스로를 지우려는 듯한 행동. 그런 정원을 보며 은석은 서툴지만 다정한 방식으로 다가간다. 말 한마디 대신 작은 배려를 건네며.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 정원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거리 두기가 묘하게 얽혀 있다.

십대들의 사랑 이야기지만, 이 작품에서 어른들의 존재는 결코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은석과 정원의 엄마들은 과거의 인연으로 묶여 있고, 그 관계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호의와 부담 사이에서 어른들은 때때로 위선을 보이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조용히 눈치를 본다. 정원의 가족이 반지하로 들어오게 된 것도, 은석이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것도 결국 어른들의 선택 때문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단순한 하이틴 로맨스가 아니다. 오히려 십대들의 사랑이 어른들의 현실에 의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은석이 정원의 방에 작은 변화를 선물하는 순간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공간에 꽃과 나무가 그려진 패브릭 포스터를 걸어주는 은석. 어쩌면 그것은 작은 배려였을 수도 있고, 그 이상의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 정원은 은석의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단지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 정원은 떠난다. 하지만 이별이 곧 끝은 아니다. 떠난 자리에는 늘 흔적이 남는다. 은석의 방 한구석, 정원의 손끝,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도.

"내가 너 많이 좋아했으니까."
책의 마지막에서 은석이 던진 이 한마디는 그동안 말하지 못한 감정들의 총합이었다. 그런데도 어딘가 아쉽다. 왜 우리는 사랑을 이렇게 어렵게 고백해야 할까? 왜 사랑이 끝난 후에야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어른들의 시선, 현실적인 문제, 혹은 단순한 용기의 부족 때문일까? 이 작품은 그 답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을 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십대는 망한 사랑을 해도 된다. 그들에게는 만회할 시간이 충분하다.” 어쩌면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일지라도, 그것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지나온 시절을 돌아보며, ‘그때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는가? 아마 은석과 정원도 먼 훗날, 서로를 다시 떠올릴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성장하는 십대들의 이야기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그리고 결국은 남겨진 흔적들. 한 문장 한 문장이 섬세하고 조용히 스며든다. 백온유 작가는 과장된 감정 없이, 차분한 문체로 그 모든 순간을 담아낸다. 덕분에 독자는 어느새 정원이 되어보고, 은석이 되어보며, 자기만의 감정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 깨닫게 된다. 사랑은 비록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그 경험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것임을.

책을 덮고 난 뒤, 문득 나만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감정을 가꾸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울창한 숲처럼, 또 누군가는 작은 화분처럼.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의 작은 배려 하나가 내 정원을 더 푸르게 만들기도 한다. 『정원에 대하여』는 결국 그런 이야기다. 사랑이 자라고, 흔적이 남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피어나는 이야기. 당신의 정원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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