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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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이메일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자살한다. 이메일에 담겨 있는 동영상은 수신자 다음 차례에 죽게 될 사람의 끔찍한 자살 장면을 보여준다. 우연히 이 사실을 간파하고 조사하기 시작한 기자 도엽은 차례차례 죽음을 맞는 사람들을 추적하다 어떤 단체의 존재를 감지한다. 작가는 이메일을 통해 배달되는 죽음이라는 설정 속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채워 넣는다. 비만, 병, 스토킹, 금전적인 어려움, 빚, 가정 폭력, 학력 고민 등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앓고 있는 고민이 섬뜩한 공포를 부른다. 만약 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낯설지 않다. 가정 폭력을 일삼는 가장, 약혼자에게 에이즈를 옮겨 받고 절망한 여자, 짝사랑하는 사람을 스토킹하는 여자,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 등이 달콤한 유혹에 빠진다.

공포 소설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종호 씨의 그만 <이프>를 보고 반해버렸다. 이 작품은 스티븐 킹 못지 않게 무시무시한 필체과 작품 자체의 추리소설 같은 치밀함,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인간의 행복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수작이다. 더운 여름, 열대야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준 시원섬뜩한 작품이었다. 영화로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상당히 기대된다.

선우라는 한 인기 공포 소설가가 바다에 접한 호텔에 틀어 박혀 소설을 집필 중이다. 집필 도중 이메일을 살피던 그는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기묘한 동영상 메일을 보게 된다. 사람이 자살하는 모습이 실린 끔찍한 동영상이다. 그 이후로 이메일은 선우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내져 그들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참혹한 자살이 이메일이라는 단서에 맞물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자살에 큰 관심을 가지고 기사를 쓰던 도엽이라는 기자는 일련의 자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계속되는 의문의 죽음과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등장인물들앞에 펼쳐진다. 더없이 행복한 인생을 만끽하던 그들이었지만, 어느새 그들은 죽음에 몸을 맡기고야 만다. 이 작품의 특징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기자인 도엽과 함께 일련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재미가 있고, 공포 소설 애독자들에게는 숨을 죽이고 미친듯이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된다. 스릴러적 요소와 추리소설적 요소가 이 소설에는 넘쳐난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갑자기 무명의 가난한 소설가가 되고, 행복을 만끽하던 여대생이 투신자살을 한다. 성적에 비관한 남학생은 전철에 몸을 던져 죽고, 짐승만도 못한 아버지에 농락당한 소녀가 마침내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난다. 죽을 동기가 있는 사람은 그렇다쳐도 이들은 왜 스스로 죽었을까. 기묘한 자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사건을 조사하던 기자 도엽은 사건의 실마리에 서서히 접근하게 되지만, 그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일상에서 볼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두 그들을 죽고 싶을 정도의 삶의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갑자기 조폭과 사채빚에 시달려 아내와 아들의 피눈물을 보게되는 작가인 선우. 뚱뚱한 얼굴과 몸매 때문에 사랑하는 이성에게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속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여대생. 성적만으로 아들을 판단하는 부모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는 꽃다운 나이의 학생과 죽은 아버지의 망령에 시달리는 엄마와 딸이 입은 정신적 상처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루면서,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와 사회의 어두운 본모습을 결합하여 선명히 비추어 주고 있다. 이러한 평범한 선남선녀들의 죽음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우리 또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요즈음의 소설들은 모두 반전을 강조하고 있고, 이 소설 또한 반전의 요소에 무게를 실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미스터리한 자살 뒤에 감춰진 진실의 실체는 참으로 사이코틱하고 무시무시한 충격을 가져다 준다. 인터넷, 이메일과 핸드폰이라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여 지푸라기같은 단서조차 찾기 어려운 견고한 구성을 갖춘 이 소설은 참으로 멋진 호러 + 미스테리 + 스릴러라고 생각된다. 수박이나 맥주 한 잔과 함께, 더운 여름에 읽으면 더 없이 좋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 단편집보다 훨씬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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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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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거센 폭풍우가 쏟아지던 어느날, 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십대 소년 이나무라 신지를 차에 태운 잡지사 기자 고사카는 우연히 한 초등학생의 실종사건에 휘말린다. 정황상 누군가 열어놓은 맨홀 뚜껑 때문에 아이가 실족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옆에 있는 신지라는 소년의 반응이 심상찮다. 하얗게 질린 채 아이의 생사를 걱정하더니 맨홀 뚜껑을 열어둔 두 명의 남자를 찾으러 가자는 것. 자신은 그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유>, <인생을 훔친 여자(원제: 火車)>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또 다른 걸작. 남다른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초자연 미스터리(Supernatural Mystery)이다. 제45회 일본 추리작가협회 대상 수상작이다. 이상하게도 오래전에 사 놓은 <이유>는 아직까지 읽지 못한 상태인데, 이번 작품인 <용은 잠들다>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 전체의 구성이 약간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화자인 잡지사 기자 고사카와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초능력을 가진 두 명의 소년들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이지만 이런 독특한 작품도 썼다니 역시 다재다능한 작가다. 엄청난 태풍이 부는 날, 누군가가 열어놓은 맨홀 뚜껑에 어린 아이가 실족하여 행방이 묘연해진다. 기자인 고사카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며 앞날을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그로 인하여 삶을 고통스러워하는 신비로운 소년 신지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신지는 소년의 실족해서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며 죽었다는 것과 범인의 옷차림과 자가용을 초능력으로 알아내고 주위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예측해내는 영능력자이다. 귀납적 추리가 아닌 초인적인 능력으로 전후 사정을 간파함으로서 이 소설은 머리로 추리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추리하는 것에 중점이 맞춰진다.  이 작품은 신지가 자신만이 가진 이 축복인 동시에 저주인 이 능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사춘기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그 시절에야 누구나 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갈등한다지만, 특히 이 소설에서는 병약하며 연약해 보이는 순수한 소년의 내면적 갈등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서 독자에게 풋풋한 그때의 추억과 향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춘소설, 또는 연애소설(주인공인 기자와 이를 좋아하는 후배의 짝사랑 이야기가 주축이 되는)로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초능력자인 신지 외에 신지보다 더 큰 초능력의 소유인 오다가 신지의 가까운 친구로서 나오며, 오다는 신지의 영능력을 셜록 홈즈 못지 않은 솜씨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 이상 신지의 능력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다 역시 자신이 가진 초능력으로 인해 많은 상처와 고통을 갖게 된다. 역시, 사람은 평범한 것이 가장 좋을 걸까, 라고 생각되지만, 한번쯤 내 안에 잠든 용을 깨워서 신지나 오다 같은 능력을 갖고 싶기도 하다. 물론, 머잖아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것처럼 그것을 고통스러워 하겠지만 말이다.

역시 추리소설답게, 작품에서 주인공인 고사카는 기묘한 협박과 사건 및 인물들과 마주치게 되고, 비밀을 풀기위해 분투하게 된다. 다소 아늑해 보이는 잡지사가 주 무대이며, 애처가인 선배와 자신을 짝사랑하는 후배가 작품에서 양념처럼 활약하게 된다. 이 설정도 흥미진진하다. 오히려 사건보다는 둘의 로망스가 기대되기도 했었다.
다소 아쉽게도, 이 작품의 사건은 처음과 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두어 가지 사건이 산발적으로 터지고 어떤 것은 약간 미지근하게 해결되어 아쉬운 점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작품의 흡입력은 일품이라 할 수 있고 결말의 반전과 작품에서 보이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남녀의 사랑, 기발한 설정과 인간미가 결합되어 작품을 정말 멋지게 만들어 준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추리소설이다. 이 작품은 겨울에 읽으면 더욱 좋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인 '용은 잠들다'의 의미는 우리는 가슴 속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능력을 우리는 발휘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지만 끝내 우리는 그 용을 깨우지 못하고 잠들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가슴 속에는 아직도 잠들어 있는 용이 있단다. 나도 한번쯤 그 잠든 용을 깨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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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키스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7
아이라 레빈 지음, 남정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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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에 찬 비정한 청년이 목적에 따라 차근차근 냉혹한 계획을 밟아가는 완전범죄 소설. 임신한 여학생은 남자친구에게 결혼을 재촉하고, 그는 결국 여자친구를 죽이려고 한다. 방법은 자살로 위장하는 것. 유서까지 조작할 것을 결심하는데...

<죽음의 키스>는 아이라 레빈(Ira Levin)이 23살 때 쓴 처녀작으로, 당시의 독서계를 진동시켰고, 레빈을 일류의 미스터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걸작이다. 당시의 트릭에 집착하는 미스터리의 형식에서 벗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고, 당대의 미국 젊은이들의 삶과 야망과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서, 물질 만능 주의와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상과 그것에 물든 젊은이의 심리를 날카로운 필치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출세와 야망과 장래의 영광에 의지를 불태우는 20대의 대학생이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를 이용하고 또 그 사랑이 방해가 되자 사랑하는 여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무뢰한이다. 한 개인의 출세욕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살인으로 이어지고 끝내 파탄과 파멸의 길로 치닫는 젊은이의 비극이 작품의 내용이다. 비록 소설의 형식이지만 이 작품은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큰 작품이다. 당대 미국의 젊은이들의 가치와 어두운 뒷면을 집중 조명함으로서, 양지에 가려진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출세와 재물을 위해 인간을 짓밟는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약관 스물 셋의 나이에 이런 작품을 쓰다니, 아이라 레빈은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된다.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보자면 이 작품은 역으로 범인의 범행과정을 보여주는 도서라고 볼 수 있다. 여타 추리소설들의 범인들과 마찬가지로 범인인 주인공은 치밀한 범행 계획을 수립하고 하나하나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범행의 예정이 몇 가지 오차가 생김으로서 범인은 임신한 애인을 참혹하게 살해하기에 이른다.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가진 출세와 황금에 대한 욕구는 사그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그의 마음을 불태우고, 자신이 죽여버린 애인의 언니들에 또 다시 접근하고, 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의혹을 품은 언니와 그 후원자의 추리에 의해 자신의 범행과정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한 범인은, 또 다시 냉정하고 가차없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작품을 읽어나가며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점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람의 목숨을 파리의 그것보다도 하찮게 여기는 범인의 냉혈한적인 모습에서의 인간성 상실과 가치 전도를 드러내는 모습에서 느끼는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와 타락한 부분이다. 작가는 아마도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신봉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참혹한 죽음과 이에 대한 단서를 얻는 남자가 있다. 그러나 또 다시, 살인범인 젊은이는 또 다른 여자에게 접근하기에 이른다. 더없이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하고, 결혼을 눈앞에 두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의심을 품게 되고, 아마추어 탐정의 헌신적인 추리에 의해 남자의 정체는 탄로나게 되고, 비극적인 결말로 작품은 막을 내리게 된다. 범인의 마지막 위기에서 느끼는 심리의 갈등도 특히 볼 만한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그래서 다른 사람과 다른 권리와 이익을 누려야 한다는 우월적인 심리와 지금 자신이 처한 파리보다 못한 위기위식이 겹쳐져서 심리의 극한 갈등이 벌어지고 끝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참 잘 묘사해 놓았다. 작품의 마지막 한 마디도 볼만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1950년대의 사회상을 다룬 것이지만, 왜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왜 이렇게 이 작품에 공감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생명과 진솔한 사랑보다는 황금과 영욕의 노예가 된 우리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일 것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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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트 마지막 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4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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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 피살사건 수사에 나선 트렌트는 피살자의 아내도 공범이라는 확증을 잡는다. 하지만 그녀한테 애정을 느낀 나머지 진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떠나 버린다. 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 그녀는 그 자리에서 트렌트의 추리에 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 욕망과 미묘한 성격 묘사를 융합시켜 긴박감을 더했다.

저자인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는 브라운 신부의 창조자인 G.K 체스터튼과 각별한 관계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에게 헌정하는 작품인데, 1910년작이지만 탐정인 필립 트렌트의 치밀한 추리나 반전의 반전, 결말의 처리등에서는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 관계나 등장 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는 너무나 고색창연하고 전형적이어서 낡아빠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출판연도를 생각하면 이러한 설정을 현 시대의 독자는 애교로 봐 줄 수도 있다. 특히 셜록 홈즈가 대활약하던 시점에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미스터리의 현대성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작품에 나오는 탐정 역의 이름은 필립 트렌트. 잘 생긴 30대 초중반의 사나이이며, 각종 괴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했다. 직업은 잘 나가는 화가. 이 작품에서는 사랑과 숨겨진 진실에 갈등하며, 사랑을 위해 정열을 불태우는 청년이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작가의 바쁜 일상생활 때문에 이 작품은 필립 트렌트가 나오는 첫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트렌트 '마지막 사건'이 되어 버렸다. 코난 도일이 홈즈를 라이헨바흐에서 죽였다가 다시 되살린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인 벤틀리도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다시 트렌트가 나오는 단편집을 다시 썼을했을 정도이니 이 탐정의 인기도 당대에는 상당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은 참으로 고색창연하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속에서 언제나 볼수 있는 등장 인물들 같은데, 돈 많은 나이많은 부호, 젊고 아름다운 아내, 충직한 늙은 집사와 너무 잘생겨서 남편의 심지를 돋우는 젊고 잘생긴 비서며 괄괄한 성격의 하녀가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용의자는 정해져 있는 듯 보이며, 여러 가지 귀납적 증거가 골고루 제시된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특히 풍부한 증거가 제시되며, 탐정은 심리적인 추론보다는 홈즈와 마찬가지로 제시되는 증거를 깔끔하게 분석해서 결론에 이르는 추리가 멋지게 설정되어 있는 점이다. (비록 뒤에 가서는 대부분의 추리가 물거품이 되어버리지만 말이다.)
1910년대의 다소 봉건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대적 현실에 반하여, 탐정 역의 필립 트렌트는 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위해 갈등하고, 가슴 아파하는 대단히 능동적인 인물이다. 과부가 된 아내와 탐정 필립의 사랑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낸 로맨스는 이 소설의 읽는 맛을 더한다. 흔해빠진 신파극같지만, 결말에서 사랑의 쟁취를 이룬다는 점에서 또 독자로서는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작품 자체가 추리소설이면서 추리소설을 비판한다는 점이다. 인기 만화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과 마찬가지로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범죄와 증거는 언제나 탐정이 그것을 짜맞출 수 있는 퍼즐과 마찬가지로, 제한적이고 언제나 맞아 떨어지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어떻다는 것인가. 그런 결론은 작가만이 낼 수 있는 것이고, 독자는 상상도 못하는 무리한 생각이며 설정이 실은 추리소설에 허다하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이다. 앞에서 말한 반전의 반전이란 이를 말하는데,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미스터리의 현대성이란 바로 그것이다. 추리소설의 태동기 초반이라 할 수 있는 1910년에 이런 진보적인 생각과 비판 정신을 가지고 작품을 쓴 작가에게는 정말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명탐정의 추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최후의 결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우리가 홈즈의 추리를 보고 감탄하지만 언제나 감탄만 해서는 안된다는, 진보적인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트릭을 풀어나가는 추리소설로서 최고급은 아니지만, 추리소설의 비판으로서 이 작품은 탁월한 걸작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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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징살인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83
요꼬미조 세이시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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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화 '이누가미가의 일족' 기념 - 긴다이치 코스케 피규어)

오까야마현 어느 시골마을의 관청과 마주 보는 식당에 세 손가락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혼징관 저택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혼징 집안의 장남 겐조에게 시집온 신부가 거문고 울림과 함께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범인은 세 손가락의 사나이인가, 일본 전통가옥의 특징을 교묘히 이용한 밀실 트릭! 엘러리 퀸이 탄복한 거장 요꼬미조 세이시의 출세작이자 명탐정 긴다이찌 고스께('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등장한 첫 작품이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이 함께 실려있다.

소년탐정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의 할아버지이자 일본 최고의 명탐정이라 할수 있는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耕助)의 창조자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첫번째 작품이자, 긴다이치 코스케의 데뷔작이기도 한 혼징살인사건(本陳殺人事件)과 유리(由利)선생이 탐정으로 활약하는 '나비부인 살인사건' 두 작품이 실려있다.

먼저 작가인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 최고의 추리 작가이자 거장이라 할 수 있는데 일례로 그의 긴다이치 시리즈 두번째 작품인 옥문도(獄門島)는 출간 이후 40년 넘게 일본 역대 추리소설 1위를 차지해 온 작품이며, 그의 여러 작품들이 역대 일본 미스터리 작품들의 100위권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1970년대 그의 작품들이 영화화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드라마라도 수없이 만들어진다. 일례로 요코미조의 걸작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팔묘촌(八つ墓村)이라는 작품은 세 번의 영화화와 여섯 번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최근에도 일본의 인기 배우 이나가키 고로가 주연하는 드라마 시리즈가 꾸준히 방영중(이라고는 하지만 1년에 두편정도?)이다.

또한 작가 자신의 작품 세계도 참으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이 추구하는 분위기가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그의 작품들에서는 선명한 구상적 이미지를 느낄 수가 있다. 줄거리의 탄탄함이나 심리 묘사, 화려한 문장보다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는 에도가와 란포가 그랬던 것처럼 한결같이 기괴한 공포와 인간 본연의 내재적 욕망들을 느낄 수가 있다.
그가 다루어왔던 작품들의 주제와 소재들.-집념, 망상, 숙명적 증오, 봉건적 동기, 강렬한 애정, 복수, 인과응보들이며 이미지의 소재가 되는 것은 쌍둥이, 정신이상, 불구자, 화상, 이상성격 등등.. 또한 에드거 엘런 포우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공포스러운 이미지 - 고양이, 짐승의 시체, 갑옷 입은 무사, 독풀, 점술, 절세 미녀, 미소년, 거미, 문신 등등... 이 정도면 스티븐 킹의 팬들도 족히 만족시킬 수 있을 법한 소재들이 아닐까.
작품 각각의 이미지와 소재들도 매우 독특하지만 그가 쓰는 트릭과 동기는 늘 독자의 상상을 어느 정도 초월한다. 이 <혼징살인사건>도 그러했고,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옥문도>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세계와 다루는 바가 기묘하고 무시무시하다고 해서 작가인 요코미조와 함께 평생을 달려온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 또한 무시무시한 탐정은 아니다. 이 책의 표지에서는 어떤 할아버지가 앞을 응시하는 장면과 함께 콘트라베이스 케이스 속에 발을 묶인 대단히 자극적인, 변사체가 등장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꼭 정신이 이상한 녀석이야, 라고 할만한 표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분위기를 대단히 기괴하고 변태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이것은 출판사의 크나큰 실수이자, 작품에 대한 모욕이라 할 수 있다.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는 셜록 홈즈에게서 느낄 수 있는 날카로움도 아니요, 에르큘 포와로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부르주아적 이미지도 아닌 너무나 친근한, 우리 옆집에 있는 동네형 같은 이미지다. 작가인 요코미조는 A.A 밀른(아기 곰 푸우의 원작자-인데 "빨간 집의 미스터리"라는 추리소설도 썼다)의 추리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자기도 그것과 비슷하게 긴다이치를 소개한다.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는 대단히 평범하고, 나이도 어리고, 얼굴도 평범하지만 실은 비범한 재능을 간직한 탐정의 이미지다. 또한 당황하면 머리를 벅벅 긁고 말을 더듬기도 한다.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이름도 매우 특이한 이름이라 할 수 있는 데 이것은 저명한 아이누어 학자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발자국 수색이나 지문 채취는 경찰관들이 하면 됩니다. 나는 거기서 얻은 결과를 논리적으로 분류, 종합해서 추단을 내립니다. 이것이 나의 탐정 방법입니다."
귀납적 증거를 적절히 제시하는 작가의 솜씨도 솜씨지만 긴다이치의 말마따나 그의 추리를 보는 것도 기가 막힌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경찰도 꽤 수사에 진전이 있는 것도 볼만했다. 또 이 작품말고 드라마에서 "아니 명탐정이 범인도 몰라요?"라고 묻는 서장의 말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다소 복잡다단한 트릭을 써서 살짝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거장으로서의 푸른 싹이 보인다고나 할까.

<혼징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에서는 오래된 일본가옥의 특성을 교묘하게 활용한 점이 포인트이다. 엘러리 퀸도 탄복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고 본다. 더 놀라운 것은 작가가 하루만에 100페이지 가량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과연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은 '기묘한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시대는 급속히 변화하지만 여전히 봉건적인 질서와 가문을 중시하는 인물들이 제시된다. 봉건적인 관습을 존중하는 가문의 남자와, 신여성의 결혼식 첫날밤에 기괴한 참극이 시작된다. 고양이, 전통적인 거대한 저택과 일본적인 가옥, 기묘한 거문고 소리등이 어우러져 독자에게 기묘한 공포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세 손가락을 가진 기묘한 사나이가 등장하여 사건을 더욱 혼란시킨다. 이 참극을 당시 스물 너뎃살의 긴다이치 코스케가 명쾌하게 해결하는데, 독자는 어이쿠! 이건 어디서 본 건데,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은 이 작품은 셜록 홈즈의 어떤 작품에서 사용한 트릭과 흡사하다. 그래도 범인도 놀랍거니와, 트릭도 기가 막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긴다이치의 귀납적 추리에 뒤이은 심리 추리도 깔끔해서 좋았다.
끝까지 보고 나니 십년묵은 체증이 다 풀리는 듯 시원했다.
문장에서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처럼 깔끔한 기교를 부린 점도 눈에 띈다. 처녀작이지만, 별 다섯개를 주어도 좋은 걸작이라고 생각된다. 86년 문춘 미스터리 100선에서는 이 작품이 7위를 차지했으니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대단히 복잡다단한 트릭과 함정을 설치한 작품이다. 보면서 일본식 이름과 지명에 끙끙대고, 또 복잡다단한 트릭에 끙끙대다보니 앞의 작품을 하루만에 읽어버린 것에 비하면 다 읽어내는 데 몇 배가 걸렸다. 동기는 그럭저럭이지만, 범인은, 진짜 놀랐다. 간단히 범인의 심리를 추리해내는 유리 선생과 그 증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서도. 이 작품에서 범인은 천재적인 트릭과 함정 및 알리바이를 구축해낸다. 살해된 여자의 매니저의 일기 형식과 탐정인 유리 선생을 돕는 왓슨 역의 기자의 서술이 합쳐저 작품이 전개되는데, 이는 작가의 탁월한 독자 사냥용 그물망이 아니었을지.
혼징 살인사건 만큼 유쾌한 결말과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인 요코미조의 추리소설과 트릭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국내나 미국, 유럽의 추리소설들도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일본 작가들의 소설들, 특히 추리소설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대단히 아쉽게도, 정작 소개되어야 할 거물인 요코미조 세이시와 긴다이치 코스케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국내 독자들에게는 큰 인기도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참 아쉽다. 그나마 요즈음 시공사에서 긴다이치 시리즈를 내주고 있으니, 참 고맙고도 반가운 일이다.^^;;


<2004년 드라마 이누가미가의 일족(犬神家の一族)에서 긴다이치 코스케 역의 이나가키 고로(稻垣吾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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