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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30년 만의 거센 폭풍우가 쏟아지던 어느날, 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십대 소년 이나무라 신지를 차에 태운 잡지사 기자 고사카는 우연히 한 초등학생의 실종사건에 휘말린다. 정황상 누군가 열어놓은 맨홀 뚜껑 때문에 아이가 실족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옆에 있는 신지라는 소년의 반응이 심상찮다. 하얗게 질린 채 아이의 생사를 걱정하더니 맨홀 뚜껑을 열어둔 두 명의 남자를 찾으러 가자는 것. 자신은 그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유>, <인생을 훔친 여자(원제: 火車)>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또 다른 걸작. 남다른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초자연 미스터리(Supernatural Mystery)이다. 제45회 일본 추리작가협회 대상 수상작이다. 이상하게도 오래전에 사 놓은 <이유>는 아직까지 읽지 못한 상태인데, 이번 작품인 <용은 잠들다>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 전체의 구성이 약간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화자인 잡지사 기자 고사카와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초능력을 가진 두 명의 소년들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이지만 이런 독특한 작품도 썼다니 역시 다재다능한 작가다. 엄청난 태풍이 부는 날, 누군가가 열어놓은 맨홀 뚜껑에 어린 아이가 실족하여 행방이 묘연해진다. 기자인 고사카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며 앞날을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그로 인하여 삶을 고통스러워하는 신비로운 소년 신지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신지는 소년의 실족해서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며 죽었다는 것과 범인의 옷차림과 자가용을 초능력으로 알아내고 주위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예측해내는 영능력자이다. 귀납적 추리가 아닌 초인적인 능력으로 전후 사정을 간파함으로서 이 소설은 머리로 추리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추리하는 것에 중점이 맞춰진다. 이 작품은 신지가 자신만이 가진 이 축복인 동시에 저주인 이 능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사춘기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그 시절에야 누구나 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갈등한다지만, 특히 이 소설에서는 병약하며 연약해 보이는 순수한 소년의 내면적 갈등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서 독자에게 풋풋한 그때의 추억과 향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춘소설, 또는 연애소설(주인공인 기자와 이를 좋아하는 후배의 짝사랑 이야기가 주축이 되는)로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초능력자인 신지 외에 신지보다 더 큰 초능력의 소유인 오다가 신지의 가까운 친구로서 나오며, 오다는 신지의 영능력을 셜록 홈즈 못지 않은 솜씨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 이상 신지의 능력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다 역시 자신이 가진 초능력으로 인해 많은 상처와 고통을 갖게 된다. 역시, 사람은 평범한 것이 가장 좋을 걸까, 라고 생각되지만, 한번쯤 내 안에 잠든 용을 깨워서 신지나 오다 같은 능력을 갖고 싶기도 하다. 물론, 머잖아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것처럼 그것을 고통스러워 하겠지만 말이다.
역시 추리소설답게, 작품에서 주인공인 고사카는 기묘한 협박과 사건 및 인물들과 마주치게 되고, 비밀을 풀기위해 분투하게 된다. 다소 아늑해 보이는 잡지사가 주 무대이며, 애처가인 선배와 자신을 짝사랑하는 후배가 작품에서 양념처럼 활약하게 된다. 이 설정도 흥미진진하다. 오히려 사건보다는 둘의 로망스가 기대되기도 했었다.
다소 아쉽게도, 이 작품의 사건은 처음과 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두어 가지 사건이 산발적으로 터지고 어떤 것은 약간 미지근하게 해결되어 아쉬운 점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작품의 흡입력은 일품이라 할 수 있고 결말의 반전과 작품에서 보이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남녀의 사랑, 기발한 설정과 인간미가 결합되어 작품을 정말 멋지게 만들어 준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추리소설이다. 이 작품은 겨울에 읽으면 더욱 좋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인 '용은 잠들다'의 의미는 우리는 가슴 속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능력을 우리는 발휘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지만 끝내 우리는 그 용을 깨우지 못하고 잠들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가슴 속에는 아직도 잠들어 있는 용이 있단다. 나도 한번쯤 그 잠든 용을 깨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