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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ㅣ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평점 :
우리에게 다가오는 과학자라는 정의는 익숙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무척 생소하다. 우리는 흔히 그들을 티비에서나 책 속에서만 바라봐오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직종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왠지모를 이상적인 선입견을 가지기 마련이다. 일반인들보다 뛰어난 사고와 평범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고 냉정해보이는 안경을 쓴 채 하얀색 긴 가운을 늘어뜨린 이미지가 우리가 과학자라고 이야기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이다. 사실 이렇듯 보통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학자 뿐만이 아니다. 철학자나 예술가들도 이에 해당하며 이들을 별종이라고 구분지어 생각하기 일쑤인 것 같다. 사실 과학자나 철학자, 예술가들도 공통된 일을 해오고 있다. 무언가에 끊임없이 연구하고 관찰하며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분석을 하는 사람들.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예술가이고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과학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해져 있는 언어로 그들을 규정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생각에서의 그들의 이미지는 그렇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삶에 솔직하고 열중인 사람들이다.
이 책의 저자인 호프 자런도 그렇게 자신의 삶에 솔직하고 열중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학자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쳐온 아버지 덕분에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가진 채 자라나게 되었다. 실험실에서 포기할 줄 모르는 연구태도를 봐온 덕분일까. 그녀는 결코 연약하지 않은 정신을 가지고 자라났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자신도 의젓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성장해 나아간다. '랩 걸'이라는 말 그대로 실험을 하는 여성 과학자의 인생담이다. 문장 자체가 너무 수수하고 유려해서 글쓴이의 삶과 동료애에 대한 따뜻한 통찰이 엿보인다. 숲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면 나긋나긋 여유롭게 읽을 만한 에세이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긋한 어조 속에는 저자가 처한 과학 사회에서의 여성 과학자에 대한 핍박들이 묻어난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받는 그런 환경들 속에서도 저자는 굴하지 않고 꿋꿋이 성장해나간다. 그래서 제목이 랩 걸인 이유도 여성과학자로서 당당하게 거듭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런 아름다운 성장이야기라는 것은 느껴졌지만 역시 빠름을 최우선의 모토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인의 정서가 내면에 짙게 배어있어 그런가. 책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흥미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삶의 방식, 과학자로서의 태도는 그런 한국 사회에서 한번쯤은 회고되어볼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멸시적인 주변의 기운 속에서 조급하지 않고 견뎌나가는 마음. 그렇게 오랜 세월을 천천히 살아가는 식물들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태도가 필요하단걸 시사하는 것 같다. 마치 한 편의 조용하고 고요한 힐링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 아니 다큐멘터리 같았다.
오랜 기간을 참고 인내하는 식물들처럼,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인간과 식물의 비슷한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식물들에 빗대어 묘사를 하였다. 그게 어디 그녀의 삶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우리들도 한 순간 잎을 피우길 기다리는 씨앗들처럼. 내리쬐는 햇빛을 향해 나아간다. 모진 핍박이 다가와도 그저 굴하지 않고. 그 발걸음에 굳이 목적은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햇빛이 우릴 비춰주기에 뻗어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