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왕의 사회학 -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
최종렬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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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3
나는 지방대에서 10년 이상을 가르친 요즘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성실이란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주어진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다. 영혼 없이. 어차피 나는 노력해도 성취를 이룰 수 없으니 성실하게라도 임하자는 생각이 지방대생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p 59
어떤 사람의 실천적 자아 이미지는 고프먼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타자와 노선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그의 공안, 즉 승인된 사회적 속성들에 따라 윤곽이 그려진 자아 이미지이다. 공안, 즉 공적 얼굴은 사회적으로 승인된 긍정적인 자아이미지이다. 조우 중에 있는 행위자들은 서로의 공안을 보호해야 하고 최소한 위협하지 말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타자에게 제출한 자신의 공안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제출한 공안과 실제 자신의 모습을 일치 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타자와 노선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공안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것이다.

p 61
그렇다면 누구를 대화의 망으로 상정하는가? 그것은 가족, 친구, 대학 동료와 선후배 등 일차 집단이다. 가족에 대해서는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아이로 자신의 자아를 드러낸다. 어릴 적 친구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함께하는 의리 있는 아이로 자신의 자아를 표출한다. ... 지방대생은 이런 자아에 대해서 결코 도구적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자신의 자아와 진정된 관게를 맺고, 이를 활용하여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간다. 이 모든 자아가 일차 집단과 함께 노선을 만들어가기 위해 진정으로 제출한 공안이다. 사랑이라는 인정 형식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제출하는 것이다.

p 78
이러한 압박감은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온다. 그렇다면 이들의 습속이 지닌 이러한 평범함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김홍중의 언어를 빌려 말하면 다음과 같을까?
"착한 척 하지만 사실은 시린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청년들. 그들의 평범함은 도저한 선함의 둔각을 은닉한다. 그들은 선함의 평범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이 선함이 되는 세상을 보여준다."
착한 척하지만 실상은 지방대의 패배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시린 영혼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서로 가족같은 평범한 영혼들. 자신의 시린 영혼을 드러내지도 남의 시린 영혼을 파헤치지도 않는 그 도저한 선함.

p 144
지금 와서는 대체로 모든 것에 가치부여를 하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대신에 이런 건 있어요. 남이 좋아하는 가치에 대해서 많이 이해해주려고 하는 노력. 내가 뭔가를 좋아하고 뭔가 좋다고 하면 누군가가 나를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만 있으면 내가 뭘 하고 살든지....

p 261
지방대 졸업생에게는 가족의 인정을 추구하는 집단주의와 자신의 감각적. 쾌락적 경험을 추구하는 개인주의가 혼재되어 있다. 이를 보수주의적 가족주의와 나르시시즘적 개인주의의 불안한 동거라고 말하면 될까? 가족주의가 보수주의적인 이유는 가족 또는 유사 가족의 인정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요구에 순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꾸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나 자신을 그들의 기대에 마추게 된다. 문제는 기대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큰 거 바라지 말고 작은 거에 마족하며 살아가자고 서로 북돋운다. 기대가 워낙 낮다보니 충족시키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끼리끼리 어울릴 때는 행복한 거 같다. 하지만 가끔씩 나 자신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때 나르시시즘적 개이주의가 등장한다. 남의 판단이나 의견에 신경쓰지 않고 내 안에서 느끼는 감각적, 쾌락적 경험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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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정희진 외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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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들.

이 캐릭터는 이렇다.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캐릭터성을 띄는 형태들은

그 모습에 오히려 고정관념이 생겨버린다.


그렇다고 마동석이 여고생 역할을 할 수 도 없지 않은가?

이렇듯 배역에 어울리는 인물과 이미지가 중요하게 작용해야하는 부분도 있지 않는가?




p 22
제가 생각하는 폭력의 정의 중 하나는 인간의 감정을 제도화하는 겁니다. 동창회, 민족주의, 가족제도, 부부 관계 ... 인간의 감정을 제도화했을 때, 우리는 일신우일신하거나 노력하는 삶을 살 필요가 없어요. 제도의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제도가 우리의 몸을 태워서 날라다줍니다. 저는 타인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1분 전의 제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쉽지않죠. 그래서 제도의 지원을 받지 않는 사랑, 제도가 보장해주지 않는 관계, 제도 밖에서 일하고 언어를 만든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거예요. - 정희진

p 26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이성애제도에 국한됩니다. 연애, 섹스, 로맨스, 사적인 관계, 가족 ... 그래서 직장동료를 ‘동료‘가 아니라 ‘여성‘으로 대하면 소위 성희롱이 되는 겁니다. 가부장제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성과 사랑, 사적인 관계라고 간주돼요. 왜냐? 여자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사람은 사람이죠. 하지만 남성과 동등한 사람은 아닙니다. 동등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말을 잘 듣거나 착하거나 예쁘거나 출산율을 높여주거나, 돈을 벌어서 가져다주건, 섹스 상대가 되어야 하는 거죠. - 정희진

p 44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비웃을까봐 걱정한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죽일까봐 걱정한다. - 마거릿 애트우드

p 69
우리는 낯선 것을 싫어합니다. 주체적인 여성성이 영화안에 등장하는 것은 관객들을 낯설게 합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전지현의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싫어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증오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어색해하고, 실제로 자주 본 모습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만큼 거리를 느낀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것은 즐기기 힘들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편안하게 즐길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에 돈을 잘 지불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두드려패고 굴복시키면서 세상을 개척해가는 여성 보스의 모습을 난 본 적이 없는데? 영화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군. 자연스럽지가 않아.‘ 관객의 무의식이 그렇게 응답하는 영화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산업은 그런 영화의 제작을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고정적 여성성이 강화되고, 관객의 고정관념도 고착되는 끝없는 되먹임이 일어나죠. - 손아람

p 70
주류 미국인들이 아시아인에게 바라는 모습이니까요. 심지어 의사인데도 아시아인은 어쩔수가 없다면 더 웃긴 거죠. 웃음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재밌게 생각하는 점이다‘라는 합의에 도달할 때, 동의의 표시로 사람들은 헛숨이 터져나오는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이야기 안에서 주어진 인물의 역할은 사회적 편견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그렇듯, 한국에서는 여성이 그렇습니다. - 손아람

p 73
‘이야기 안에서는 살인도 하고, 전쟁도 일어나는데, 여성혐오는 왜 안 돼?‘
판단 착오입니다. 작가가 작품 안에서 세계의 문제를 드러낼 때는 보통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모형으로 만들면서 일종의 문제적 대상화를 하지요. 문제의식이 있는 작가들은 거기서 작업을 끝내지 않습니다. 대상화된 인물들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게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이 완결되면 작가의 의도대로 이 세계가 작품 안에 ‘투사‘된 것입니다.
여성혐오라고 비판받는 영화는 세계의 문제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재생산하는 데서 멈춥니다. 단지 여성이 두들겨맞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고 ‘여성혐오‘라고 말하는 여성관객은 없습니다. 그건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는 거에요. 관객들은 맥락을 본능적으로 구분해냅니다. 영화가 여성인물이 당면한 문제를 전시하고 지나가는지, 아니면 작가의 문제의식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중인지. - 손아람

중요한 건 ‘동성애‘와 ‘반대‘라는 문구 뒤에 ‘확실‘을 넣어서 뭔가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것을 자신이 당선되어야만 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대통령 후보를 만나게 되었고, 길거리에서 선거운동원들이 그 피켓을 흔들며 시민들의 호감을 사려고 하는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인데 대통령 후보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반대하며 웃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 한채윤

p 129
지금 한국사회에서 유감스럽게도 종교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적폐입니다. 정치가 종교화되면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구원자‘로 신봉됩니다. 종교가 정치화되면 종교인은 약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배후를 자처합니다. 정치와 종교가 서로 호환되기 쉽다는 것은 그 사회가 위험에 빠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관심이 있는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내는 혐오정치가 횡행합니다. 이때 동성애에 집중해서, 동성애가 정말 옳은지 그른지에 집중하면 ‘저쪽‘ 프레임에 말려드는 겁니다. 바로 그런 효과를 노려서 동성애를 먹잇감으로 가져오는 거거든요. - 한채윤

p 133
작은 팁을 드린다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옳고 그름을 바로 잡기 위해서 너무 감정을 쓰지 마세요.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섞어서 말하면 서로 상처만 남을 뿐이거든요. 대화나 토론이 안 되죠. 그래서 감정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미리 다잡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겁니다. 감정을 섞지 않고 끝까지 나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죠. .... 의견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의가 상할 때까지 싸우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거나, 의가 상할까봐 내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죠. 둘 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권해드리는 것은 의가 상하지 않기 위해 침묵은 하더라도 마지막 한마디는 하자는 거죠. "나는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

p 134
논쟁을 하다보면 우리는 이기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상대가 "너의 말에 내가 설득되었어" 라는 말을 듣고 싶어지죠. 하지만 기대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엄청난 달변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늘 많은 정보와 지식을 머리에 넣어두었다가 상대가 무슨 말을 할 대마다 "그건 이런거고, 저건 그런거고" 이렇게 따박따박 반박할 수도 없고요. 상대방은 나의 말솜씨에 넘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다른 입장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변화가 생깁니다. - 한채윤

p 186
그랬을 때 이 이너서클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남성 - 동성사회적인 내부입니다. 이 안에 여자가 들어갈 공간은 없죠. 전부 다 남성들로 구성돼 있어요. 남성들이 서로의 비리를 백업해주면서 그걸 바탕으로 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이 이너서클이 남성 - 동성사회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관계 안에서 여성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선물이거나, 약점으로 잡고 있는 히든카드이거나, 승진 혹은 신분상승을 위해 사다리같이 사용하는 매개이기 때문입니다. - 손희정

p 218
조진웅이 김민희와 결혼한 하정우에게 계속 요구하는 것 역시 ‘첫날밤이 어땠는가‘에 대한 상세한 묘사입니다.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성‘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것이죠. 결국 여성에 대한 강간과 멸시가 가능해지는 것은 이런 ‘상상력‘때문 입니다.
강간이라는 실제 행위도 중요하지만, 실제 행위가 가능해지고 필요하다고 상상되는 그 ‘상상력‘이 여성에 대한 배제 및 차별, 폭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배제 위에 만들어지는 남성공동체란 또 한편으로는 이성애중심적이고, 비장애인중심적이며, 원주민중심적이죠.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내각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상력의 문제 역시 이해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정치적으로 합당한 대응을 했어야죠. 왜냐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돌려서 먹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그것이 남성다움을 형성한다는 그 상상력이 지금과 같은 배제적인 정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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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 예술사 이야기 지식전람회 21
조중걸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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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3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듣고 감상이나 행복에 젖을 때 음악 그 자체의 미적 가치 ‘대문이 아니라 그 음악이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환각적 회상 - 예를 들면 첫사랑의 오솔길이나 이제는 사라진 젊은 시절 등 - 때문일 경우 우리는 키치적 정서에 몰입되어 있는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 키치는 ‘이차적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일차적 정서가 아니라 그 일차적 정서가 조장하는 다른 정서에 모입될 경우 우리는 이차적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키치는 작품 그 자체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p 16
키치의 토양은 이와 같은 것이다. 즉 의미 없는 것으로 드러난 삶에 거짓 의미를 덧붙여 우리 삶이 짐짓 의미 있다고 위장하는 태도가 자라나는 것이다. 본래 모든 문화구조물은 자체 내의 의미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실천적 의미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p 29
마치 ‘허공에 걸린 스핑크스‘이다. 그러나 고객은 비밀을 풀고자 애쓰지 않고 스핑크스는 해석을 강요할 권력이 없다. 권력은 오히려 고객의 손에 있다. 그는 그저 익숙하고 편안한 음식을 원한다. 자기가 항상 먹어왓던 것들을 원하는 것이다. 고급 예술의 딜레마는 피곤에 지친 노동자에게 진정한 요리를 감식시키려는 자부심 넘치는 요리사의 곤혹스러움이다.

p 37
산업사회에 내재한 이러한 성격이야말로 근대에 들어 통속예술이 폭발적으로 증대한 배경이다. ‘일하는 기계‘들의 무위와 공허를 채워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긴장이 요구되는 고급예술을 제공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급예술이 지니는 엄격함과 난해함과 준엄성은 일종의 독침인 것이고, 그것들은 이 독침이 모두 제거된 채로 제공되어야 한다. 예술이란 모름지기 그 감상이 용이하고 그 향수가 편안해야 한다.

p 39
키치는 ‘뻔번스러움의 자리에 허위의식이 자리 잡은 통속예술‘이다. 그것이 자기 기만적이고 자기 만족적이며 그 감상이 용이하고 무엇보다도 피상적이며 사이비예술인 것, 그리고 감상자에게 아첨하고 거짓된 예술인 것은 통속예술과 같다. 그러나 순수예술에 기생한다는 점에서 키치는 통속예술과 다르다. 즉, 키치는 고급예술 혹은 진지하고 세련된 에술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통속예술은 적어도 솔직하다. 그것은 자신들이 고급예술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거나 삶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에 몰두하고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만하지 않는다. 통속예술이 기만하는 것은 우리의 감상벽이지 자신의 의의에 대해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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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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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0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 - Paul Klee

p 59
창의성이란 결국 남들과 다르게 해석하려는 노력이다. 사람들은 보통 선입관을 가지고 남이 이미 만들어놓은 지식에 맞춰 생각하지만, ‘이것은 이렇다‘ 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세상을 낯설게 보며 다시 내 눈으로 받아들이고 조합하고 새로운 해석을 할 때 창의성이 발현된다. - 구본창

p 87
인류가 시작되고 집이 먼저 생겼지, 예술과 기술이 먼저 생긴 게 아니거든요. 건축은 예쑬과 기술이 없어도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건축설계라는 것이 제가 사는 집을 설계하는 게 아니고 남의 집을 설계하는 것이니까, 남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공부하는 게 첫번째죠. 그래서 문학이나 소설, 영화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왜 사는지 알려면 철학을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면 역사를 공부해야 하니까요.

p 106
한편 가난한 달동네의 골목길에서 그는 비록 볼품은 없지만 이웃과 더불어 살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을 보았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그의 건축적 신조인 ‘빈자의 미학‘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짓기‘는 ‘살기‘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살기‘란 거주의 편리함 따위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연을 존중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터 위에 무늬처럼 각인되는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며 살아가는 사려깊은 삶을 의미한다.

p 234
그냥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집단이 있고 안 되는 집단이 있는거죠. 30대와 70대가 소통이 잘 아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언어파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의 E=MC2을 칠판에 적어놓으면 과학자들은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칩니다. 그걸 언어파괴라고 볼 수 없잖아요. 언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소통이므로, 결국 소통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 용도와 기능에 따라서 생명력이 짧은 놈이 있고 긴 놈이 있기 ㄸ문에, 생명력이 긴 것들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고 짧은 것들은 곧 사라질 겁니다. 그러니 억지로 근심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는 생각입니다.

p 238
선생님, 예술하면 굶어 죽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뭘 하건 대한민국에서는 실력이 어중간하면 어차피 다 먹고살기 힘들어.

쫄지마, 이 말이 참 보약인 것 같습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기 자신인데, 남이 만든 인생이기 때문에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남이 만든 이생이 아닌 자신이 만든 인생, 인생을 스스로 창조해가는 각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 261
아시다시피 김동률은 비주얼도 훌륭하지 않고, 다른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도 없고, 오로지 음악밖에 없어요. 근데 김동률의 팬들은 끝없이 조용히 같이 갑니다. 그 층이 소멸하지도 않고 조금 떨어져나가면 또 새로운 세대가 채워요. 대개의 스타들이 그렇지만, 너무 빨리 자신을 소진시키면 대중은 아무래도 싫증을 내기 마련이죠. 근데 김동률은 한결같은 자세로 20년을 왔습니다. ... 스스로가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천착, 음악에 대한 신념과 지지를 가질 때만이 팬들과 오래 같이 늙어가는 뮤지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p 266
하나의 문화적 상품이 되려면 어린 아이들이 엄청난 훈련을 받아야 해요. 상업적인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그런 가혹한 훈련을 시키는 것을, 아무리 본인이 원한다 해도 거기선 사회가 규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런 걸 규제하는 나라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그걸 만드는 나라가 세상에 우리나라밖에 없었던 거죠.

p 286
총매출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그 성장세 속에서 정작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산업으로서의 음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을지 몰라도, 문화로서 음악은 외려 후퇴했는지도 모른다. 그사이에 음악의 주체가 뮤지션에서 기획사로 넘어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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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
세실 앤드류스 지음, 강정임 옮김 / 한빛비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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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지나친 개인주의자들로 만든 것일까? 집단적 문화를 지극히도 강조하는 한국 사회는 집단의 정서가 주를 이룬다. 좋게 보면 단합력이 되지만 그 집단성이 가져오는 파급력 또한 어마무시하다. 국내에서 급격하게 발달된 통신기술 덕분에 한국인들은 국내 어디에서든 손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런 의사소통은 더 이상 개인에서 개인에게로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다. 개인을 넘어 집단에게로, 또 집단을 넘어 사회에게로. 하나의 생각, 이념들은 집단적인 가치가 되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로 남아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축구경기를 볼 때 실수하는 수비수를 비난하고 골 넣는 공격수에게 찬사를 보내듯이 집단적인 민족성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지고 있는 성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의 정도가 유독 심하다. 하나의 의견은 집단적인 추진력에 힘입어 거대한 칼날이 되어 누군가를 향해 드리워진다. 그 대상은 사실 그 칼날 자체가 되어 지기도 하며 이념에 맞지 않는 다른 정서들을 배척하며 몰아낸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주를 이루고 있는 집단적인 특성이다. 끈끈한 단합력은 분명한 의기투합과 함께 협동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문제는 이것이 가져오는 폐해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의기투합이 고위 권력층 인물들의 내부비리 혹은 부동산 경제를 담합하고 있는 약삭빠른 투기꾼들 같은 경우 불법적인 일의 도모에 강력한 단결력을 보이고, 그 불법을 까발리는 정의로운 인물들에게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을 찍어 다시는 현장으로 돌아올 수 없도록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 경우이다. 그런 정의에 대한 보장도 온전치 못하며 권력형 비리에 침묵하고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로부터 우리 사회의 부조리는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인간 본성의 탐욕인 경제적 욕구를 지닌 채 집단적 문화가 가져오는 고질적인 병폐이다. 심지어 그 안에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가들에 의해 능률적으로, 체계적으로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고, 그러한 영리만을 위한 질서는 집단 속의 개인들에게 강력한 스트레스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 형태 또한 집단성이 가진 고질적인 특성 중 하나로써 사회에 집단혐오 증세를 만연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문제의 시발은 어디일까?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무조건적으로 다녀와야 한다는 군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쟁 속 최고의 효율을 위해, 최상의 전투를 위해 모난 인물들을 틀에 맞추어 가두고 각 개인의 창의성과 특출함을 무시한 채 육체적인 하나의 건강한 병사라는 규격 안에 집어넣는다. 그러한 집단에서는 예술가도 철학자도 한낱 병사에 불과하게 된다. 이러한 각 개인의 창의성을 갉아먹는 군대조직 문화의 폐단은 그 조직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인구의 절반이 경험을 해보았기에 당연히 일의 효율을, 능률을 중요시 하는 남성이 기업의 고위직을 차지해 일반적인 회사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놓는다. 심지어 그러한 계급 체계와 질서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학교의 문화에까지 그대로 적용되어 학생 개인의 자율을 단속하고 학생이라는 틀에 가두어 규정을 정해 그들의 자유를 억압한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대착오적인 폭력이다. 더 이상 사회는 전시 사회가 아니며 또한 각각의 사회를 구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결국 정복이 최고 가치가 되는 전쟁처럼, 이윤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마인드 또한 비참한 집단 문화를 존속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문화는 현재 한국 사회의 주축의 문화가 되어 모든 것을 가치화 시켜놓고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짓밟히는 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스스로도 같은 처지라 여기며 묵인한다. 이렇듯 아직까지도 국내엔 잔인한 집단주의 문화가 만연해있고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숨통을 찾기 위해 욜로며, 소확행이며, mean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며 살아간다. 얼마 전 <개인주의자 선언>이란 책도 크게 붐을 일으키고, 보노보노처럼 살자 등 오늘을 그냥 살아나가는 실존주의적 마인드에 대한 책이 유행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이토록 잔인한 집단주의적 문화에 대해 염세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던 나는 아직까지도 집단이라는 가치에 그리 관대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이라는 책은 우리가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식과 이해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가볍고 진중한 형태로의 집단을 도모한다.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도 결국 가장 큰 두려움은 외로움일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결국 우리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대화하기를 원한다. 애초에 심리적인 교착상태가 전혀 없는 순수 그 자체로써의 관계인 셈이다. 나도 어릴 적엔 그런 관계들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각각의 관계에는 이해관계가 얽히기 마련이고 묘한 감정들이 오고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런 관계들이 온전하지 못한 관계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만큼 순수한 관계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저자 세실 앤드류스는 그런 순수한 공동체의 관계를 강하게 어필한다. 그리고 가이드북이라는 형태로 여러 가지 실천방안들을 들며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관계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렇게 혼자서 목소리를 드높여 책을 내준 사실에 감사하다. 책이 제시하는 방법론적인 부분은 다양하지만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다. 그저 한마디로 그의 생각을 표현하자면 우리 삶의 행복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편의적인 공동체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계산적인 집단에서 벗어나 가볍고 단순한 집단으로의 관계는 우리의 삶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자유롭고 유쾌한 분위기의 대화모임이 형성되는 것에 대해 강력히 찬성한다.

사회엔 내성적인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기보다 착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쟁 사회 속 자신이 더 튀어 보이려고 남들의 말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자본사회에 걸맞는 인물들 때문에 말할 기회를 타인에게 양보하는 배려 넘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내성적이란 타이틀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줄여 나간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인물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준다. 혹시나 자신도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심히 자기이야기만 하지는 않았는지 반문해보면서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여겼던 인물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봤으면 한다.

그리고 점차 너도나도 대화의 힘을 실감한 채, 이해관계나 감정이 오가는 대화가 아니라 그냥 편안한 대화가 오고가는 관계의 힘을 깨달았을 때 사회는 그런 공동체에 대해 더욱 관대해지며 우리의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결코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엔 아직도 세실 앤드류스나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처럼 이런 이상을 그리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고.

어떻게 그런 커뮤니티 속으로 한걸음 나아가는지 알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통해 배워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p 82
지루한 강의와 죄쵁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도들은 이제 진부하다. 그런 방법들은 우리의 행동을 많이 변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전환운동에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의 핵심 주제는 포괄주의였다. 그것은 원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과 변화를 원한다면 서로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는 깨달음 그리고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진솔하게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에 대한 이해였다.

p 117
경청은 대화의 핵심이다. 중요하거나 재치 있는 말을 해야 한다고 불안해하지 마라. 경청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라. 대화가 상대방과 내가 우주의 힘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듣는 행위에 엄청난 의미가 생긴다.

p 195
무엇보다도 논쟁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관걔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자들이 공정성, 정의, 감정이입, 평등의 가치를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은 사람들이 공정하고 공감하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p 209
시민들이 참여하는 작은 모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그들만이 사회변화를 이끌어왔다.

p 321
사람들과 모여서 생각하고 대화하고 행동하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우리는 인간의 본성, 행복, 커뮤니티, 공유, 시민적 자질, 단순하게살기, 정치적인 문제 등을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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