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정희진 외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5월
평점 :
70 -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들.
이 캐릭터는 이렇다.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캐릭터성을 띄는 형태들은
그 모습에 오히려 고정관념이 생겨버린다.
그렇다고 마동석이 여고생 역할을 할 수 도 없지 않은가?
이렇듯 배역에 어울리는 인물과 이미지가 중요하게 작용해야하는 부분도 있지 않는가?
p 22 제가 생각하는 폭력의 정의 중 하나는 인간의 감정을 제도화하는 겁니다. 동창회, 민족주의, 가족제도, 부부 관계 ... 인간의 감정을 제도화했을 때, 우리는 일신우일신하거나 노력하는 삶을 살 필요가 없어요. 제도의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제도가 우리의 몸을 태워서 날라다줍니다. 저는 타인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1분 전의 제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쉽지않죠. 그래서 제도의 지원을 받지 않는 사랑, 제도가 보장해주지 않는 관계, 제도 밖에서 일하고 언어를 만든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거예요. - 정희진
p 26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이성애제도에 국한됩니다. 연애, 섹스, 로맨스, 사적인 관계, 가족 ... 그래서 직장동료를 ‘동료‘가 아니라 ‘여성‘으로 대하면 소위 성희롱이 되는 겁니다. 가부장제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성과 사랑, 사적인 관계라고 간주돼요. 왜냐? 여자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사람은 사람이죠. 하지만 남성과 동등한 사람은 아닙니다. 동등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말을 잘 듣거나 착하거나 예쁘거나 출산율을 높여주거나, 돈을 벌어서 가져다주건, 섹스 상대가 되어야 하는 거죠. - 정희진
p 44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비웃을까봐 걱정한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죽일까봐 걱정한다. - 마거릿 애트우드
p 69 우리는 낯선 것을 싫어합니다. 주체적인 여성성이 영화안에 등장하는 것은 관객들을 낯설게 합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전지현의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싫어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증오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어색해하고, 실제로 자주 본 모습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만큼 거리를 느낀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것은 즐기기 힘들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편안하게 즐길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에 돈을 잘 지불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두드려패고 굴복시키면서 세상을 개척해가는 여성 보스의 모습을 난 본 적이 없는데? 영화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군. 자연스럽지가 않아.‘ 관객의 무의식이 그렇게 응답하는 영화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산업은 그런 영화의 제작을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고정적 여성성이 강화되고, 관객의 고정관념도 고착되는 끝없는 되먹임이 일어나죠. - 손아람
p 70 주류 미국인들이 아시아인에게 바라는 모습이니까요. 심지어 의사인데도 아시아인은 어쩔수가 없다면 더 웃긴 거죠. 웃음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재밌게 생각하는 점이다‘라는 합의에 도달할 때, 동의의 표시로 사람들은 헛숨이 터져나오는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이야기 안에서 주어진 인물의 역할은 사회적 편견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그렇듯, 한국에서는 여성이 그렇습니다. - 손아람
p 73 ‘이야기 안에서는 살인도 하고, 전쟁도 일어나는데, 여성혐오는 왜 안 돼?‘ 판단 착오입니다. 작가가 작품 안에서 세계의 문제를 드러낼 때는 보통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모형으로 만들면서 일종의 문제적 대상화를 하지요. 문제의식이 있는 작가들은 거기서 작업을 끝내지 않습니다. 대상화된 인물들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게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이 완결되면 작가의 의도대로 이 세계가 작품 안에 ‘투사‘된 것입니다. 여성혐오라고 비판받는 영화는 세계의 문제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재생산하는 데서 멈춥니다. 단지 여성이 두들겨맞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고 ‘여성혐오‘라고 말하는 여성관객은 없습니다. 그건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는 거에요. 관객들은 맥락을 본능적으로 구분해냅니다. 영화가 여성인물이 당면한 문제를 전시하고 지나가는지, 아니면 작가의 문제의식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중인지. - 손아람
중요한 건 ‘동성애‘와 ‘반대‘라는 문구 뒤에 ‘확실‘을 넣어서 뭔가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것을 자신이 당선되어야만 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대통령 후보를 만나게 되었고, 길거리에서 선거운동원들이 그 피켓을 흔들며 시민들의 호감을 사려고 하는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인데 대통령 후보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반대하며 웃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 한채윤
p 129 지금 한국사회에서 유감스럽게도 종교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적폐입니다. 정치가 종교화되면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구원자‘로 신봉됩니다. 종교가 정치화되면 종교인은 약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배후를 자처합니다. 정치와 종교가 서로 호환되기 쉽다는 것은 그 사회가 위험에 빠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관심이 있는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내는 혐오정치가 횡행합니다. 이때 동성애에 집중해서, 동성애가 정말 옳은지 그른지에 집중하면 ‘저쪽‘ 프레임에 말려드는 겁니다. 바로 그런 효과를 노려서 동성애를 먹잇감으로 가져오는 거거든요. - 한채윤
p 133 작은 팁을 드린다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옳고 그름을 바로 잡기 위해서 너무 감정을 쓰지 마세요.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섞어서 말하면 서로 상처만 남을 뿐이거든요. 대화나 토론이 안 되죠. 그래서 감정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미리 다잡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겁니다. 감정을 섞지 않고 끝까지 나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죠. .... 의견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의가 상할 때까지 싸우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거나, 의가 상할까봐 내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죠. 둘 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권해드리는 것은 의가 상하지 않기 위해 침묵은 하더라도 마지막 한마디는 하자는 거죠. "나는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
p 134 논쟁을 하다보면 우리는 이기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상대가 "너의 말에 내가 설득되었어" 라는 말을 듣고 싶어지죠. 하지만 기대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엄청난 달변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늘 많은 정보와 지식을 머리에 넣어두었다가 상대가 무슨 말을 할 대마다 "그건 이런거고, 저건 그런거고" 이렇게 따박따박 반박할 수도 없고요. 상대방은 나의 말솜씨에 넘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다른 입장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변화가 생깁니다. - 한채윤
p 186 그랬을 때 이 이너서클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남성 - 동성사회적인 내부입니다. 이 안에 여자가 들어갈 공간은 없죠. 전부 다 남성들로 구성돼 있어요. 남성들이 서로의 비리를 백업해주면서 그걸 바탕으로 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이 이너서클이 남성 - 동성사회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관계 안에서 여성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선물이거나, 약점으로 잡고 있는 히든카드이거나, 승진 혹은 신분상승을 위해 사다리같이 사용하는 매개이기 때문입니다. - 손희정
p 218 조진웅이 김민희와 결혼한 하정우에게 계속 요구하는 것 역시 ‘첫날밤이 어땠는가‘에 대한 상세한 묘사입니다.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성‘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것이죠. 결국 여성에 대한 강간과 멸시가 가능해지는 것은 이런 ‘상상력‘때문 입니다. 강간이라는 실제 행위도 중요하지만, 실제 행위가 가능해지고 필요하다고 상상되는 그 ‘상상력‘이 여성에 대한 배제 및 차별, 폭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배제 위에 만들어지는 남성공동체란 또 한편으로는 이성애중심적이고, 비장애인중심적이며, 원주민중심적이죠.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내각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상력의 문제 역시 이해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정치적으로 합당한 대응을 했어야죠. 왜냐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돌려서 먹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그것이 남성다움을 형성한다는 그 상상력이 지금과 같은 배제적인 정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 손희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