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게임 - '세대 프레임' 을 넘어서
전상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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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형식을 차용한 거 같은 문체는 지루함을 자아냈지만 저자의 주장이 흥미로웠기에 완독할 수 있었다. 세대 프레임을 만드는 레토릭 사이에 현혹되지 않을 것. 그리고 진정으로 우리가 불빛을 갖추고 바라보아야 할 것. 이 시대의 언론은 끊임없이 갈등을 부추긴다. 그것이 비단 세대에만 관련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p 16
‘선의‘를 가지고 돕던 경관은 취객의 ‘지휘‘아래 헛된 일만 한다.
혹시 우리도 ‘세대 프레임‘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되어 엉뚱한 곳만 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 32
갈등은 모든 세대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거다. 여러 사회갈등들이 중첩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 자체로 무의미한 세대 갈등들을 하나로 겹쳐 보이게 만들면, 우리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일로 격하게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의심하고 주저하는 역할이 중요한 까닭이 그에 있다.

p 42
상사는 연령 세대의 관점에서 후배를 대하지만, 후배들은 동년배 세대의 입장에서 상사를 대한다. ‘내가 거쳐 온 길을 너희도 걸을 것‘이라는 연속성의 입장과, ‘당신은 당신의 길을 걸었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차이를 강조하는 관점의 갈등이다.

p 71
"모든 청년들의 대규모적인 자격과 노동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현재의 노동 사회에서 청년은 더 이상 진보와 갱신의 상징적 표현이 되지 못하며, 경제적이며 기술적인 사회의 자체 동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청년의 가치가 하락했다. 그렇게 청년=미래의 등식도 해체되었다.

p 82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젊은이들을 또 다른 사회적 부담으로 여기는 시각이 퍼지면서 이들은 더 이상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담론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이제 이들은 처분 가능한 인구의 일부로 간주된다." 즉시 전력감도 아니고 미래도 열 수 없는, 단지 사회적 부담에 불과한 청년은 처분 가능한, 곧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일 뿐이다.

p 107
세대 전쟁론에 경험적 근거를 제공하는 세대 회계는 여러 지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역사적 우연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걸핏하면 차별이라 외친다. 가족이라는 제도를 무시하고, 합리적 개인만을 고려한다. 보상을 문제로 삼을 뿐 가불은 문제 삼지 않는다. 곧 세대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들의 예측은 분명 공론장의 주목을 끄는 데 도움이 된다. 딱 거기까지다. 경험적으로나 현실적, 학술적, 정책적으로 세대 전쟁론은 빈약하고 공허하다. 그러나 그것의 사회적 소구력은 크고 강하다. 나는 그 이유가 세대 전쟁의 ‘레토릭‘에 있다고 생각한다.

p 142
요컨대 비난의 세대 게임은 1. 정적을 지지하는 세대를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려는 정당한 정쟁에 더해 2. 사회문제의 해결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책임을 회피하고 3. 어떤 정치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해 특정 세대를 희생양 삼아 비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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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개정판
파커 J. 파머 지음, 홍윤주 옮김 / 한문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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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신의 소명을 찾는 것. 우리가 이 땅에 도착한 이유. 단순한 인생학 책이라 생각했지만 인생선배로써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저절로 마음이 열렸다.

우리는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가?

p 36
소명에 대한 가장 깊은 질문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가 아니다. 더욱 본질적이며 어려운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타고난 본성은 무엇인가?‘ 이다.

p 39
진정한 소명은 자아와 봉사를 하나로 결합한다. 프레더릭 뷰크너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소명의 시작은 세상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본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자아에게 신이 창조한 선물로 이 땅에 태어났음을 깨닫는 크나큰 기쁨을 안겨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p 64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별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용기를 얻는가?
그들은 남이 가하는 처벌보다 자기 스스로를 비하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벌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p 111
신비는 다 풀리는 거라고 억지를 부리면 인생은 더 진부하고 더 희망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p 115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의 고통을 ‘고치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일, 그냥 그 사람의 신비와 고통의 가장자리에서 공손하게 가만히 서 있는 일이다.

p 116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소멸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이에게는 생명을 주는 일이다.

p 117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말하기를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방어하다가 서로를 접하고 인사하는 것" 이라고 했다. 빌이 내게 준 사랑이 이런 것이었다. 그는 결코 나의 내면을 거짓 위로나 충고로 침범하지 않았다. 그는 내면의 경계선에 가만히 서서 나와 내 여행을, 그리고 모든 상황을 그냥 그대로 놔둘 수 있는 용기를 존중해 주었다.

p 120
"당신은 우울증을 당신을 망가뜨리려는 적의 손아귀로 보는 것 같군요. 그러지 말고 당신을 안전한 땅으로 내려서게 하려는 친구의 손길로 생각할 수 있겠어요?"
우울증을 친구로 생각하라는 제안은 말도 안되는 소리같고 심지어 모욕적으로 느껴졋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알고 있었다. 아래로, 땅으로 내려서는 것이 완전함의 방향이라는 것을.

p 177
실직이 내게 필요한 일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길 막혔음‘ 이라는 표지 덕분에 내가 방향을 돌려 가야 할 길로 들어서게 되었음을, 회복 불능이라고 느꼈던 손실 덕분에 내가 진짜 알아야 할 의미를 깨닫게 되었음을. 표면상으로는 인생이 작아지는 듯 보였지만, 언제나 소리 없이 그리고 풍부하게 새 생명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p 188
가을의 풍족한 씨 뿌리기에서부터 엄청난 봄의 선물공세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한결같은 교훈을 일러 준다. 즉, 우리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그것을 움켜쥐고 있지 말고 아낌없이 써 버리라는 것이다. 지나친 손익 계산과 생산성, 시간과 활동의 능률성, 수단과 목적의 합리적인 관계, 적당한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이르는 ‘최단코스‘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착하면, 우리가 하는 일이 결실을 맺기도 힘들고, 우리 인생에서 봄의 충만함을 누리기란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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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인문학 - 5000년 역사를 만든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
이지성 지음 / 차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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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이 되지만 역시나 읽는 순간 인문 고전의 세계에 대한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저자의 주관이 다소 맹신적인 어체를 지니고 있다라고도 생각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따스한 활동들이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돈벌이를 위한 인문학이라고 비난하기 이전에 인문학을 통해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조금이라도 사랑하고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세계에서 해내기 위해 존재하기에.

p 111
첫째,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내가 사랑하는 일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 한다. 셋째, 내가 사랑하는 일을 통해 시간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 만일 내가 이 세 가지를 서른 살 안에 해내지 못한다면 나는 이 사회의 무자비한 시스템 아래 돈과 시간을 무자비하게 통제당하면서 노예로 살다가 스트레스와 과로로 일직 죽게 될 것이다.

p 117
사회가 시간을 착취하는 구조는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조를 깨뜨리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문학을 하면 된다. 생각의 질량을 늘려서 두뇌 속 시간을 느리게 흐르도록 만들면 된다.

p 137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보다는 ‘나를 위한 인문학‘을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쉽게 말해서 저는 공자나 플라톤의 생각 시스템에 종속되어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자나 플라톤의 생각 시스템이 나를 위해 움직여주기를 원했습니다.

p 214
라이프니츠에게는 특별한 인문학 독서법이 있었다. ... 그것은 각 분야의 대표적인 고전들을 엄선해서 읽되, 책의 내용과 저자의 생각 시스템이 완벽하게 자기 것이 될 때까지, 원전을 반복해서 읽고, 필사하는 방법이었다.

p 233
인문학은 생각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 내 생각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인문학 강의도 내 생각을 하기 위해서 듣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인문고전이나 인문고전 해설서를 읽고서 자기를 잃어버린다. 조금 과장하면, 저자가 전한 생각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인문학 강의도 마찬가지다. 뜨겁게 들으면서, 정성스럽게 적으면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강사가 전한 생각의 노예가 된다. 여기에 대해서 동의하기 어렵다면 지난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라.

p 334
1.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선정한다. 2. ‘자유론‘의 목차들을 종이에 옮겨쓴다. 3. ‘자유론‘의 목차 순으로 또는 각 목차에 덧붙여 스스로 만든 세부 목차 순으로 사색을 시작하고 이를 글로 정리한다. 4. ‘자유론‘을 통독, 정독, 필사한 뒤 이를 각 목차별로 요약 정리한다. 그리고 이를 내가 사색한 내용을 정리한 글과 비교해보면서, 나의 생각과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은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른가를 연구한다. 5. 내가 ‘자유‘에 대하여 존 스튜어트 밀처럼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사색하고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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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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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볍고 유쾌한 탐정소설. 문장이 위트있어 독자의 흐름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작가이다.

그래서 단순 킬링타임으로 읽기 적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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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 그들이 배운 미덕에 대한 불편함
오마르 지음 / 레터프레스(letter-press)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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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저자의 짙은 주관이 배어있는 에세이.

가벼운 말투이지만 쿡쿡 찌르는 말투로 유쾌함을 자아낸다.

하지만 에세이는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공감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구분을 스스로 잘 하자는 입장.


p 25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부럽다는 말은 참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여태 흘린 땀과 눈물과 고통과 외로움은 제가 잘 모르겠고요, 저는 그냥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 걸 갖고 싶네요.‘라니.

p 32
꼰대가 된다는 것은 남의 말을 듣고 도무지 얌전하게 ‘그렇구나‘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 77
팔짱을 끼고 선 채 남들의 도전을 평가하고 비웃는 게 일인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그것뿐인 사람들에게 그것마저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p 110
내가 싫어하는 어른들의 말버릇이 내입에서 툭 나올 때가 있다. ...
나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로 내가 감염되었음이 분명한 징후들을 관조하고 있다. 잔인한 감각이다. 이 징후가 뇌까지 잠식하면 나는 오늘의 생각을 모두 잊은 채, 꽉 막힌 동시에 명쾌한 사고로 남은 삶을 꼬장꼬장하게 살겠지. 그것이 두려워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p 128
내가 정답이라고 믿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그 당연한 것이 실은 나의 개인적인 기준일 수도 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졌음에도 설거지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건 잘못된 행동이지만 설거지를 할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기다리는 것은 -물론 내가 보기에는 도대체 왜 저러나 싶어도- 그 사람의 기준일 수 있다.
...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보편적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보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이 많은 충돌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인간은 어쩔수 없이 개인적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그 개인적 기준을 주변에 주입해 내가 편하기 위해 보태는 말일 분이다.

p 150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라고 해서 사진처럼 언제나 똑같은 모습은 아니다. 우리는 이 길위에서 걸음을 멈출 수 없고, 돌아본 그곳의 풍경은 사실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점점 멀어지는 시간 속 그곳은 오늘 날씨에 따라 맑아보이기도, 흐릿해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이야기는 지겹지 않다. 우리는 이 길 위에서 걸음을 멈출 수 없기에 사실은 한 번도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p 156
논리는 진작에 무너졌지만 가오상 바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아무 말이나 계속하게 될 때가 있다. 얌전히 죽기에는 너무 억울해서이다. 이미 엔진에 불이 붙은 채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어떻게든 착륙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너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나는 가능한 한 우아하게 죽고 싶다.

p 162
만약 지금 쓰고 있는 카톡이 상대방에게 한 달 뒤에 도착한다면 우리는 한 자 한 자에 온 마음을 눌러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글 속에 담는 마음에 중량이 있다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글에 가벼운 마음밖에 담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
나는 더 빨라지는 세상이 고맙지 않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던져버린 짐짝이 너무도 많기에.

p 205
대부분 무슨 말을 해 줄까 고민했지만 언제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았다고 생가한다. 나는 아직 관계 맺음에 있어 아무 말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p 218
우리는 빛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 빛나는 것들의 특별함을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그리고 그 황홀함과 경이로움을 이야하기 위해 빛나지 않는 것들은 그저 하찮게 치부하고 만다.
지루한 비유지만 밤하늘이 온통 검은색이기에 별은 빛나 보인다. 우리 대부분은 검은 하늘임에도 별을 찬양하느라 우리의 의미를 너무 낮추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 나는 가끔 입 안이 쓰다.

p 291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형들의 그 말들은 나에게 잊히지 않는, 크고 묵직한 위롤 남았다. 그날 나는 정말로 위로가 절실했다. 그저 앞뒤 없이 내 편을 들어 주는 말들. 그 투박한 다독임이.
만약 그때 형들이 냉정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해결책부터 제시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애석한 말이지만 정말 하나도 고맙지 않았을 것 같다.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헤엄을 가르치려는 꼴 아닌가. 그런 말은 발이 닿는 수영장에서나 필요한 말이다.
.....

p 356
누구나 반짝이는 돌 몇 개 쯤은 가지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걸 쥐고 홀로 긴 터널을 지나는 시간,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출구를 향해 무작정 걸어야 하는 그 길고 외로운 시간. 우리는 그 시간의 두께를 예술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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