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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 그들이 배운 미덕에 대한 불편함
오마르 지음 / 레터프레스(letter-press)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저자의 짙은 주관이 배어있는 에세이.
가벼운 말투이지만 쿡쿡 찌르는 말투로 유쾌함을 자아낸다.
하지만 에세이는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공감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구분을 스스로 잘 하자는 입장.
p 25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부럽다는 말은 참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여태 흘린 땀과 눈물과 고통과 외로움은 제가 잘 모르겠고요, 저는 그냥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 걸 갖고 싶네요.‘라니.
p 32 꼰대가 된다는 것은 남의 말을 듣고 도무지 얌전하게 ‘그렇구나‘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 77 팔짱을 끼고 선 채 남들의 도전을 평가하고 비웃는 게 일인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그것뿐인 사람들에게 그것마저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p 110 내가 싫어하는 어른들의 말버릇이 내입에서 툭 나올 때가 있다. ... 나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로 내가 감염되었음이 분명한 징후들을 관조하고 있다. 잔인한 감각이다. 이 징후가 뇌까지 잠식하면 나는 오늘의 생각을 모두 잊은 채, 꽉 막힌 동시에 명쾌한 사고로 남은 삶을 꼬장꼬장하게 살겠지. 그것이 두려워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p 128 내가 정답이라고 믿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그 당연한 것이 실은 나의 개인적인 기준일 수도 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졌음에도 설거지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건 잘못된 행동이지만 설거지를 할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기다리는 것은 -물론 내가 보기에는 도대체 왜 저러나 싶어도- 그 사람의 기준일 수 있다. ...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보편적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보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이 많은 충돌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인간은 어쩔수 없이 개인적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그 개인적 기준을 주변에 주입해 내가 편하기 위해 보태는 말일 분이다.
p 150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라고 해서 사진처럼 언제나 똑같은 모습은 아니다. 우리는 이 길위에서 걸음을 멈출 수 없고, 돌아본 그곳의 풍경은 사실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점점 멀어지는 시간 속 그곳은 오늘 날씨에 따라 맑아보이기도, 흐릿해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이야기는 지겹지 않다. 우리는 이 길 위에서 걸음을 멈출 수 없기에 사실은 한 번도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p 156 논리는 진작에 무너졌지만 가오상 바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아무 말이나 계속하게 될 때가 있다. 얌전히 죽기에는 너무 억울해서이다. 이미 엔진에 불이 붙은 채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어떻게든 착륙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너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나는 가능한 한 우아하게 죽고 싶다.
p 162 만약 지금 쓰고 있는 카톡이 상대방에게 한 달 뒤에 도착한다면 우리는 한 자 한 자에 온 마음을 눌러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글 속에 담는 마음에 중량이 있다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글에 가벼운 마음밖에 담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 나는 더 빨라지는 세상이 고맙지 않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던져버린 짐짝이 너무도 많기에.
p 205 대부분 무슨 말을 해 줄까 고민했지만 언제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았다고 생가한다. 나는 아직 관계 맺음에 있어 아무 말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p 218 우리는 빛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 빛나는 것들의 특별함을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그리고 그 황홀함과 경이로움을 이야하기 위해 빛나지 않는 것들은 그저 하찮게 치부하고 만다. 지루한 비유지만 밤하늘이 온통 검은색이기에 별은 빛나 보인다. 우리 대부분은 검은 하늘임에도 별을 찬양하느라 우리의 의미를 너무 낮추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 나는 가끔 입 안이 쓰다.
p 291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형들의 그 말들은 나에게 잊히지 않는, 크고 묵직한 위롤 남았다. 그날 나는 정말로 위로가 절실했다. 그저 앞뒤 없이 내 편을 들어 주는 말들. 그 투박한 다독임이. 만약 그때 형들이 냉정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해결책부터 제시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애석한 말이지만 정말 하나도 고맙지 않았을 것 같다.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헤엄을 가르치려는 꼴 아닌가. 그런 말은 발이 닿는 수영장에서나 필요한 말이다. .....
p 356 누구나 반짝이는 돌 몇 개 쯤은 가지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걸 쥐고 홀로 긴 터널을 지나는 시간,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출구를 향해 무작정 걸어야 하는 그 길고 외로운 시간. 우리는 그 시간의 두께를 예술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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