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디어 조작자다 - 여론 조작 전문가가 폭로하는 페이크 뉴스의 실체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한재호 옮김 / 뜨인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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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J’라는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올 상반기까지 반응이 뜨거웠다. 내부 조직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또 대한민국 언론 전반에 대한 비평의 칼날을 날카롭게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상예술대상에 TV부문 교양작품상까지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도 초반의 열기는 많이 식은 듯하다. 그 날카로움이 KBS의 혁신을 일으키기에까지는 그 힘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런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조차 의구심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무엇이? ? 바로 라이언 홀리데이의 나는 미디어 조작자다라는 책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속성이 이렇게 더럽고 이해타산적인 것이었나 하는 실망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물 건너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즘 가짜뉴스와 자본과 이해관계로 왜곡된 뉴스보도 때문에 큰 골치를 앓고 있으니. 유튜브가 모든 쓰레기 뉴스의 진원지가 되면서 더 심해진 인상이다. 미국의 경우 타락한 저널리즘의 폐해가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나는 미디어 조작자다는 실제로 여론 조작 전문가로서 많은 성과를 올리고 이익을 챙겼던 저자가 미국 미디어 산업에 대한 절망적인 현주소를 폭로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블로그로 대표되는 온라인 미디어 생태계의 확장이 장점보다 단점으로 더 부각되고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흔히 저널리즘 하면 엘리트스럽고 보통 사람들보다는 스마트한 이미지를 주게 마련인데 이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아래를 향한 본성이 정설인 것일까 하는 무력감을 주었다.

 

주류 언론까지 근거와 검증이 전무하다시피한 뉴스 소스를 그대로 내보내고, 해프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지경까지 이르게 하는 페이지뷰 저널리즘의 실상은 매우 놀랍고 참혹한 것이었다. ‘페이지뷰 저널리즘이란 쉽게 말해 조회수를 많이 올리기만 하면 다른 요건은 아무래도 좋은 인식과 시스템을 말한다. 많은 트래픽과 페이지뷰가 그대로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인데, 이 조건만 충족하면 뉴스가 뉴스로서 갖추어야 할 다른 조건들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저널리즘의 행태는 신문이 발생한 초창기부터 있어왔던 행태라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조회수에 목매는 미국 언론들의 실상은 우리나라의 싸이월드 열풍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했다. 한때 방문자수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사건들이 발생해 사회적 비난을 일으킨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의 좋아요 구걸, 유튜브의 구독자 구걸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런 성질의 플랫폼 위에서 자리잡은 온라인 미디어가 다른 노선을 달리기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바람인가보다.

 

한마디로 유사언론이 주류언론, 정통언론과 분별되지 않는 시대다. 날조와 왜곡, 훔치기, 속임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으로 수익을 얻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태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다 그렇게 하니까 문제될 것 없다는 식으로.

 

페이지뷰 저널리즘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 중에는 뉴스 소비자들의 무비판적 수용의 자세도 들 수 있겠다. 이것이 정말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조금만 복잡하고 사고를 요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외면해버린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건에만 관심을 보이고 반응을 하다 보니 언론들도 이에 맞춰 자신들의 뉴스를 상품화하고 서슴없이 조작과 날조를 일삼는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 콘텐츠 경제가 이익 중심으로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과거에도 물론 왜곡과 날조, 속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가상의 이야기, 상황이 여론 몰이를 했다. 그러나 그때는 사람들의 생각에만 일으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기술로 그 세계가 구현되면서 현실적인 파괴력이 더 강해진 것에 심각성이 있다. 사람들의 시간과 정신을 흡입하는 온라인 미디어가 더욱 가공할 괴물로 성장해버린 것이다.

 

자신이 그 생태계의 혜택을 누려오다가 위험성과 심각성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자각에 이런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저자의 생각이 얄밉기는 하지만, 이렇게 저널리즘이 마케팅과 결합하여 낳는 해악을 정면에서 다루고 폭로해준 것은 어찌되었든 고마운 일이다. 이런 책을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소음과 신호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과 판단력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 됨으로써 이 세상 속 무의미한 시끄러움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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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승부사 - 품위 있게 할 말 다하는 사람들의 비밀
조윤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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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특징이겠으나 특별히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생존 문제를 넘어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특별한 관계성을 가진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언어의 발달이다. 보이는 언어와 보이지 않는 언어, 들리는 언어와 들리지 않는 언어 같은 것들로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언어는 진화했다. 그리고 언어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인간이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표현하는 능력은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더욱 그렇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거의 무한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뿐만이 아니라 가상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온라인의 역할이 특히 크다. 이런 시대에서 더욱 자기를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는 능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미디어 광풍의 시대에서 트렌드는 돌고 돌아 이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말하기 능력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의미와 가치가 집중되고 있다.

 

우아한 승부사라는 책 제목만 놓고 보면 무슨 소설 제목 같다. 도박이나 스포츠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말에 관한 책이다. 혼자 하는 말에 대해서도 약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동양 고전들에서 뽑아낸 깊이 있고 흥미로운 가르침들을 통해 사람이 말을 어떻게 무기로 만들 수 있는지, 중용의 언어 혹은 때와 상황, 사람에 따른 적절한 말이 어떻게 자기를 살리고 남을 살리고 조직을 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호흡이 짧다. 저자는 공자, 맹자, 노자 등의 역사적 인물들이 남기거나 채근담, 주역 등의 문헌에 남겨진 지혜와 교훈 등에 자신의 생각을 얹어 3페이지 내외의 글들로 말하기의 비결을 전하고 있다. 주요 요지는 이렇다. 말과 마음의 일치의 중요성, 또 같은 생각이라도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과 날것 그대로 표현하는 것의 차이를 논한다. 또 말은 상대에게 전하는 것이기에 상대를 배려하는 것 또한 말하기의 중요한 요소임을 주장하고 있다. 지식은 경험을 통해 질을 더해야 하며, 실천을 통해 신뢰를 얻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가 실질적인 힘이 있음을 주장한다. 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진정한 특별함은 평범함 가운데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성실과 겸손과 솔직함 가운데에서 나오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사람을 대하든, 학문을 하든, 사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지 적용될 수 있는 범용적 - 보편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말은 소통을 위해서 존재한다. 타인과의 관계다. 너와 나의 존재와 마음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든지, 아니면 그저 즐거움을 위해서든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어울리기 위해서는 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인격에 품격이 있듯이 말에도 품격이 있다. 품격의 차이가 인간관계의 차이를 만들어내며 인생의 질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부담없이 동양의 고전을 처음으로 접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또 말하기에 있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는 독자의 첫걸음으로 적당한 책이다. 또한 이 책은 인간관계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얼마 전 읽었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필립 체스터필드의 아버지의 말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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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 (양장 에디션) - 아들아! 네 스스로 만들지 않는 한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이재연 옮김 / 탐나는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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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은 18세기 영국에서 정치가이자 외교가, 문필가로 이름을 날렸던 필립 체스터필드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네덜란드 주재 영국 대사로 있을 때 아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정보만 나와 있지만, 최근 출간된 '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이란 책에 의하면 네덜란드에서 생활할 때 두뷔체라는 여인과 미혼인 채로 얻은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바로 이 편지의 수신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표지에 나온 이미지처럼 인생의 완숙한 경지에 이른 아버지가 미숙한 아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조언, 충고 등으로 아들을 훌륭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미 18세기에 출간될 당시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 편지글들의 초반부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소위 '꼰대' 소리 듣기에 딱 좋은 뉘앙스의 내용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아들을 향한 사랑과 염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 진정성에 있어서 여러 번 들어도 그 중요성이 퇴색되지 않는 귀중한 교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잔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정말 마음에 새겨야 될 인생의 법칙이 '노력'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다만 이 노력이라는 것도 스스로 생각하는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방식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 없이 끝나고 말 것이라는 충고도 담겨 있다.


또 이 책은 각 장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따뜻한 느낌의 사진과 함께 중간중간 정리해주고 있어, 다음에 다시 읽을 때 이 부분들만 짚고 넘어가도 읽었던 내용들이 생각날 수 있도록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의 독서 세태를 반영한 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에는 독서로, 저녁에는 사람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스스로의 것으로 소화하고 실생활에서 적용하는, 실천하는 것으로서 진짜 내것이 되는 배움의 가치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흐름을 보면 처음에는 아버지가 아들의 미숙함과 고쳐야 될 점 등을 걱정하고 지적하고 나무라는 내용들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조언을 잘 받아들여 변화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저자인 아버지가 매우 기뻐하고 대견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너무 당연하고 뻔해서 요즘 시대에 오히려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 진짜 보석 같은 인생의 법칙과 원리, 교훈과 조언들이 가득 담겨 있다. 시대를 넘어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고 있으며,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등에서도 인용할 만큼 많은 저명인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편지글들이다. 말뿐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 지식을 지혜로 만든 귀한 결과물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일단 먼저 일독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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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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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책을 읽으면서 만듦새가 좋은 책과 별로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떠올랐다. 페이지가 표시되는 부분인데 나는 보통 바깥쪽 위나 아래에 쪽수가 표시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살짝 앞뒤로 넘겨보면서 내가 제대로 보고 있나 확인을 해보는 편인데 페이지가 안쪽에 인쇄되어 있는 책은 그만큼 더 펼쳐서 봐야되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다. 이 책은 심지어 안쪽 중간에 쪽수가 인쇄되어 있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책을 편집하는 분들은 페이지 표시를 안쪽에다 한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일까? 책읽기에 썩 도움이 되는 형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책처럼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들이 그런 경향들이 좀 있는 것 같다.

 

앞표지 책날개의 저자 소개란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을 길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혼자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이 책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림을 선택한 예술인문학자가 쓴 책인다. 혼자만의 충실하고 충만한 시간을 가질 줄 아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더 잘 지낼 수 있는 비결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루에 쌓이는 불안과 긴장감을 해소하는 시간을 블루 아워Blue Hour'라고 한다. 매일 쌓이는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 관리하지 않으면 언젠가 구멍이 나버릴 것이다. 그런 위험을 방지하는 지혜의 시간, 블루 아워를 가지면서 인생을 연명하는 과정으로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수는 성장통이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부딪혀야 하다. 후회는 시도한 후에 해야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성장을, 성숙을 기대할 수 없다. 도둑놈 심보다.

 

"나는 고독을 뜻하는 ’solitude'자기의 영혼을 가지려는 태도soul+attitude'로 받아들인다. 혼자 있어 즐거우면 고독이고 고통스러우면 외로움인 것이다

 

저자는 위와 같이 자기만의 방식, 혹은 탐구를 통해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거나 정의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28쪽에서 어린이는 신적인 존재라는 프리드리히 횔덜린이라는 사람의 말이 인용되는데, 요즘 세태를 생각해보면 별로 와닿지 않는 인용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정말 순수한지, 순수한 욕망덩어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40쪽에서는 장국영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자 자를 풀어낸다. 네모 칸에 갇힌 나무의 답답한 심정처럼 사람의 마음이 꽉 막혀 있는, 괴로운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병들어 있음을 아는 것이 완전한 치유는 아니어도 치유의 첫 단계가 될 수 있기에, 정신의 아픔을 가벼이 보지 말자는 표현이 와닿았다. 왜냐하면 얼마전 한 정신과 정문의가 쓴 책에서 우울증을 극복하는 첫 단계가 바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자기의 상태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며 객관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조언을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56쪽에는 서양 미술의 근대를 시작했다고 평가받는 에두아르드 마네의 그림이 두 점 소개되는데, 아스파라거스를 그린 그림이다. 친밀하고 장난기 넘치는 마네의 일화와 그런 성향이 반영된 작품들은 처음 듣고 보는 것이어서 흥미로웠고 새로운 정보였다.

 

52쪽과 90쪽에는 너무 가벼운 발상이 아닌가 싶어 약간 거부감이 드는 내용이 나온다. ‘고난은 너나 가지세요즐길 수 없다면 피하라인데, 각각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어렵고 가난한 시절을 겪지 말자’, ‘우리는 피할 만큼 싫은 일조차도 즐길 수 있는 용자가 아니다. 즐길 수 없다면 재빨리 피하자의 결론들을 내고 있는데, 전자는 선택할 수 없는 사항을 그럴 수 있는 것처럼 결론을 내려서 상식적이지 않고, 후자는 즐긴다는 것을 하나의 단계나 경지로 볼 때 피하는 것만이 상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론 조금 비틀어서 생각하면 경험에 의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피하거나 빨리 포기하는 현명한 것이 맞다. 그런 생각의 결을 같이 하는 101쪽의 김관장님의 조언은 OK.

 

120쪽에는 몸은 늙어도 생각은 늙지 말자는 제목 하에 본인이 긍정적인 의미의 적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자존감과 열등감이 약간씩 섞인, 다시 말해 넘치는 무엇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부족한 무엇을 채우는지 그 방식에 대해 소개한다. 바로 매일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의심으로 곱씹었으며, 어렵고 복잡한 사실들을 단순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글로는 표현해내지 못하는 감정과 생각들에 절망하지 않고, 매일 서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내용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람에게는 생각이 있고 언어가 있다. 특히 언어로 나타나는 인간의 존재방식이란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속성이다. 이것을 더 훌륭하고 섬세하고 세련되고 탁월한 방식으로 다듬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분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말이나 글로 정갈하게 풀어내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은 크게 돈이 들지 않으면서 인간을 기품이 높고 바른 존재로 성장, 성숙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새벽 145, 나의 그림 산책은 그림과 저자의 생각이 어우러져 하나의 책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림보다는 저자가 스스로 성찰하고 깨달은 인생의 원리나 교훈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전달하고 나누고픈 측면이 더 부각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다. 그 가운데 공감이 되는 것도 있고, 의견을 달리 하게 하는 내용들이 있고, 어중간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이 책은 깊이 있는 독서를 꿈꾸고 있지만 아직 책이 익숙하지 않는 초보 독자들에게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그림, 낯선 그림, 재미있는 그림 등이 조금 더 즐거운 독서를 돕는다. 저자의 말처럼 어떤 주제의 내용을 단순한 문장으로 풀어내어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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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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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가 시리즈는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이 다루고 있는 학문의 분류부터 친절히 안내해준다. 이번에 나온 책은 크게 문학의 범주에서 세부적으로 서어서문학, 즉 스페인어권 세계(나아가 포르투갈어권까지)의 언어와 문학을 탐구하는 영역에 속해 있는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그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책에서 주로 다뤄지는 개념들의 정의를 설명하여 독서에 도움을 준다.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는 매력적인 제목의 이 책은 앞서 말했듯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을 다루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란 우리에게 익숙한 중남미 지역의 국가들, 지도의 위도로 보면 위로는 멕시코에서 아래로 칠레와 아르헨티나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독립을 이루었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미국-스페인 전쟁 직전인 19세기 말의 일이라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라는 용어는 쿠바 혁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온 세계로부터 관심이 집중되었고, 역으로 쿠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은 국제화되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치적으로 혁명을 이루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배후에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끼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간섭과 지원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비슷한 혼란과 시련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혼탁한 상황이 오히려 라틴아메리카문학에 특유의 색채를 더해간 건 아닌지모르겠다.

 

1960년대 유럽 소설의 위기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서사의 회복과 함께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 주변부 문학에서 중심부 문학으로 들어오면서 이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작가들을 붐 세대라고 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발견한 마술적 사실주의로 명명되는 창의적인 글쓰기 방식은 사실주의의 지역적 변형을 넘어 탈중심적인 새로운 세계 인식의 방법이기도 하다. 라틴 아메리카 고유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며, 전근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일상적 삶의 범주에서 확인되는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적 현실이라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과 서구 문명이 혼합된 형태로 오늘날까지 이어온 라틴 아메리카 문화는 이러한 역사적 이중성 가운데서 사회와 문화, 정치 등에서 마찬가지의 특성을 띄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혼합된 형태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라는 고유의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된다. 확실히 미디어를 통해 보게 되는 중남미 국가들은 오롯이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가 어지럽게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인상이 있다. 그런데 그게 또 하나의 특징이 된다는 미묘함이 있다.

 

주류 세계의 문화적 공백과 전쟁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환상과 현실,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드는 새로운 의미의 서사의 귀환을 선보이며,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방향을 제공했다.

 

그에 앞서 라틴아메리카는 시적 전통이 매우 강한 대륙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인들이 닦아놓은 탄탄한 문학의 길이 없었다면 라틴 아메리카 현대 소설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는 붐 작가들에 앞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세계적인 시인이었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상 깊은 정의들이 나온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특히 시 문학에 집중하여 그 주요 인물 네 사람,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를 다루고 있다.

루벤 다리오는 모든 라틴 아메리카 시문학의 근원이며, 그 영향에서 벗어난 후예들이 없다고 할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고, 네루다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사회참여적인 측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고, 많은 사랑을 받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한다. 바예호를 다룬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나는 신이 / 아픈 날 태어났다'라는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고통을 가장 시적으로, 가장 근본적으로 표현한 시인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었다. 파라는 '나는 시를 청산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라는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문학 속에서 다시 반기를 들었다는 점, 형태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시인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어떤 특징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나라 문학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현실과 가상현실이 점점 구분되지 않는 세상으로 가는 이 시대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이중성 속에서 독특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 그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간접적인 조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였다.

이미 존재했지만, 새로웠던 세계에 한 걸음 더 발들여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에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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