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시평집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한 때 한국에는 이른바 진보담론을 형성하는 명 칼럼리스트들이 백가쟁명까진 아니더라도 서로들 필력과 내공을 과시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80년대의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타고난 부지런함과 진중한 역사의식에 기반해 강고하던 기성체제에 대해 저항하는 글들을 썼다.

물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쌍두마차는 강준만과 진중권이다. 그리고 도올이 있었고, 지금은 거대한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유시민이 있었다. 아,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운영, 리영희라는 거목이 버티고 있었지.  이들 자유주의자들보다 조금 더 좌측에는 박노자와 홍세화라는 좌파의 지성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적어도 이들이 앞다투어 글을 쓰던 시기에는 이른바 우파를 참칭하던 극우세력들의 글은 정말로 웃음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가장 큰 상징은 박정희 군주론을 썼던 조갑제의 책을 그대로 패러디한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당시 이들에게 가리워졌던,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칼럼리스트가 조용히 활동하고 있었다. 글의 아름다움으로 보나, 그 사상적 건강함으로 보나, 또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나 지적 충실함으로 보나 그는 이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우뚝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위의 사람들같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들처럼 명쾌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채 기자출신 답게 중도적인 글을 풀어갔던 이유가 클 것이다. 뜨뜻미지근한 것은 한국사람의 취향이 아니니까. 물론 여기서 내가 누구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가는 짐작하실 것이다. 일단 이 정도만 언급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자.

이들, 한 때 중도파의 집권을 위해 암묵적으로 결합해 조선일보-한나라당 수구동맹과 싸우던 이들은 마침내 중도세력이 집권한 후 자신의 포지션을 뚜렷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한다. 일찌감치 방향을 틀어버린 정운영 선생은 제외한다면  맨 처음 강준만이 (정치적인 글에서)절필을 선언했고,  탄핵을 기점으로 진중권 역시 애매한 글쓰기로 인한 집중포화를 맞고 글쓸 동력을 잃어버린다. 박노자는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국을 떠나면서부터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잃어버렸고, 유시민은 글을 쓰기에는 너무 정치에 깊숙하게 발을 담궜다. 도올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홍세화는 순결한 19...가 아닌 순결한 좌파로 남기 위해 스스로의 글을 자신의 틀에 가둬버린다.

결과적으로 이들 대부분은 절필했거나, 예전같이 사람들의 가슴을 치고 양심을 뒤흔드는 글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이 사람이 홀로 그런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이름은 고종석이다.

고종석마저 없었다면 지금 '양심적인 우파의 상식적 극우비판'이나 '자유주의자의 신자유주의 비판'을 이처럼 명쾌한 언어로 풀어낼 사람은 없다. 물론 그도 지쳤다. 지금의 상황에서 지치지 않을 '상식을 가진 칼럼리스트'가 어디 있으랴? 그는 이번 책에서 강준만에 대한 (절필의)아쉬움과 (떠날 수 있는)부러움을 동시에 풀어낸다. (강준만 생각, "신성동맹과 같이 살기" 69~71페이지)

그럼에도 나는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라는 사실을.  세상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이도 아니며, 한 때 입장을 같이하던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고무찬양이 아닌 비판적인 관점을 직필로 풀어놓는 이이며, 무엇보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그가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필화를 일으킨 동아일보의 '김순덕 칼럼'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 그는 이런 조악한 글을 견딜 수 없는,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이며,  그것도 취미로 쓴 것이 아니라 이 책에도 나오듯 조선일보에서 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작가이다. 그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책을 사서 읽어보라) 사람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어보고, 세상에 대한 눈을 틔우기를 기원하면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책 소개(?)를 마친다.

P.S  이 책은 수작이다. 그러나 그의 이전 책인 불후의 명저인 '서얼단상'이나 '자유의 무늬'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책이 좋았다면 반드시 이 두 책을 사서 읽어보라. 특히 서얼단상. 그리고 김훈이 '부당하게' 독점해 버린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설가'라는 칭호를 나뉘가질 자격이 충분함을 보여주는 그의 소설들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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