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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 재판을 통한 개혁에 도전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권석천 지음 / 창비 / 2017년 7월
평점 :
판결문도 어려운데 그걸 만들어내는 대법원 내부 이야기라니 얼마나 딱딱하고 지루하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책을 펼치면 나름 꽤 흥미로운 프롤로그를 지나게 되고, 이내 백여페이지를 단숨에 읽고 있는 본인을 발견하게 될 거다
읽다보면 고루하고 답답해 보이는 법괸들의 세계에 의외의 치열한 정치적 드라마가 있고, 다들 똑같아 보이는 서오남(서울대법대 출신 오십대 남자) 대법관들 사이에 의외의 개성과 사회현실에 대한 극단적으로 다른 시각들이 존재한단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용훈 대법관 시절, 그와 대통령에 의해 그 서오남의 강건한 카르텔을 깨고 대법원에
들어온 소수의 목소리들이 다수, 주류에게 이의를 제기하고(책 제목은 여기에서 왔다)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내기도 하고, 반대로 다수에게 좌절당하기도 하는 흥미 만점의, 그러나 조금의 윤색도 없는 말 그대로의 리얼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 드라마는 판결의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드러나게 되는데 여기사 강석천의 놀라운 필력은 일견 딱딱하고 어려워보이는 판결에 숨은 치열한 다수와 소수의 줄다리기를 잘 풀어낸다. 단언컨데 이 책을 읽고나면 대법원이라는 곳의 중요성과 판결문에 담긴 소수의견이 갖는 의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주연(?) 중 한 명의 눈물로 끝나는 에필로그가 담겨 있다. 진짜로 일어난 일일 텐데(이 책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수많은 법원 관계자를 장기간 취재한 결과물임이 후기에 밝혀져 있다 ) 흡사 잘 만들어진 영화의 라스트신처럼 책을 덮는 독자의 가슴을 때린다.
참으로 희귀하게도 몇 사람의 집단 회고록이자, 잘 쓰여진 휴먼 드라마이자, 흥미진진한 정치 르포이자, 한 시대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역사의 기록이자, 새로운 대법원장 체제를 어떻게 바꿔가야 할 지 힌트를 제시하는 미래 보고서의 역할을 동시에 해 내는, 의심할 바 없는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