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씹어먹기 - 꼼꼼한 언론의 역사, 예리한 미디어 비평
브룩 글래드스톤 지음, 권혁 옮김, 조시 뉴펠드 그림 / 돋을새김 / 201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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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커뮤니티에 쓴 서평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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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굽시니스트가 올해의 책으로 극찬한  "미디어 씹어먹기" 라는 책이 있습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82

만화책인데, 언론에 대한 저널리스트의 통찰이 담긴 책이죠.

그 추천을 보고 뽐뿌를 받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두 가지인데, 첫번째는 문맥상 앞뒤 연결이 안 맞는 부분,

두번째는 우리말 표현이 너무나 어색한 부분.

오죽 답답했으면... 제 돈 들여 아마존 킨들로 원문 책을 구입했죠. 원문과 비교해 보려구요.

그리고 비교를 하면서 보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대체 굽시니스트는 이런 번역을 통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 책을 추천했는지 의문일 정도네요.)

한 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번째로, 문맥상 연결이 안 맞는 부분입니다.

번역본의 문장입니다. 밑줄 그은 부분만 보시죠.



네 문장이 있습니다.
1. (베트남전에서) 현실은 반전 분위기로 돌아선다.
2. 그래서 정부의 (긍정적) 경과보고를 거부하고 직접 사실을 취재해 보도한다.
3. 그 보도는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다.
4. 그렇다면 무엇이 대중을 반전무드에서 되돌리는데 성공한 걸까?

보시다시피 1-2 까지와 3은 서로 모순됩니다.
앞의 두 문장은 언론이 반전 분위기를 읽고, 정부의 선전을 따르기보다 사실을 취재해서 보도했다는 말인데
대체 왜 그런 사실 취재 보도가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의 생각을 되돌리는데 " 실패한다는 걸까요?
그리고 4번 문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전혀 부합되지 않죠. 미국의 월남전 당시 반전여론은 점점 커져갔는데요?


원문을 한 번 보겠습니다.



제가 번역한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1. 기자들은 현실적으로 이미 반전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했습니다.
2. 그래서 기자들은 전황 보고를 그대로 싣는 것을 거부하고 진짜로 취재한 것들을 보도하기 시작했죠.
3. 그렇지만 이런 보도들 때문에 (미국의) 대중들이 반전 여론으로 돌아선 건 아닙니다. 
4. 그럼 뭣 때문에 그렇게 된 걸까요?

보시다시피 3번 문장은 완전히 오역을 했죠. "언론이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
"대중이 전쟁에 반대하게 된 것은 언론 탓은 아니" 라는 겁니다. 4번 문장을 보면 명확하죠.

결국 3번 문장을 잘못 해석하니 4번 문장도 정 반대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부분을 번역본만 보고 이해가 간다면... 그게 이상한 거죠.


또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도저히 한글문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저널리스트들이 일종의 정치적, 이념적 환관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의견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보도를 할 때 일정한 의견들을 억누르지는 않느냐의 여부입니다"

이 두 문장이 이해가 가세요? 특히 굵게 표시한 부분? 그리고 두 문장간의 관계는 이해가 가시나요?

저건 번역이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냥 영어를 직역한 것이지 한국어 표현이 아니니까요.

원문은 이렇습니다.



 저라면 이 두 문장을 이렇게 번역하겠습니다.
"기자들이 보도할 때 정치나 이념적으로 무색무취해야 한다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기자가 자기 의견을 갖고 있는 건 문제가 안됩니다. 그런 의견을 보도에서 적절히 자제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거죠"

첫번째 문장에서 물론 영어로는 "환관" 이라는 표현을 썼죠. 하지만 정치적, 이념적 환관이라는 표현이 이해가 가세요?
그냥 무색무취라는 표현 정도로 바뀌주면 훨씬 이해가 빠르지 않겠습니까.

hopeless 라는 단어를 "기대할 수 없는 일" 이라고 번역한 부분도 오역이죠.  hopeless 는 "구제불능" 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기대할 수 없는 일이라고 번역하면, 무색무취한 자세가 (기자들에게 기대하는) 바람직한 자세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죠. 저 말을 한 사람은 그 반대로 무색무취한 언론을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 겁니다.

뒷 문장도 마찬가집니다. "~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라는 부분도 어색합니다만 넘길 수 있다고 쳐도
후반부의 "보도를 할 때 일정한 의견들을 억누르지는 않느냐의 여부입니다" 는 완벽한 오역입니다.

아래 제 번역이나 원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억누르는 것" 이 문제라는게 아니라
"억누를 수 있느냐"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
완전히 거꾸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니 이 번역본의 문장은 앞의 문장들과 논리상, 맥락상 전혀 연결이 안되죠. 

뒤에 붙은 "to the extent they can" 이라는 부분이 이해가 안 가니
 
"whether they suppress" 라는 앞부분을 거꾸로 해석해 버린거죠. 

영어 잘 하는 분들이 많은 요즈음에 이런 번역이 아직도 나온다는게 참...

좋은 번역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해가 갈 수준으로) 제대로 번역만 해 줘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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