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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 피처 에디터 ‘김경’은 좋아하지만 패션잡지 ‘바자’는 보지 않는다. 그건 경쟁지 보그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과 함께 지상에 내려온 ‘천상의 피조물’처럼 사랑스러운 것들은 나로부터 아주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깟 몇 푼 안 되는 돈에 눈이 팔려 회사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에 잡아먹힌 나로서는 미안하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게 남아있는 유일한 것은 활자 중독증뿐인지 모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것만은 처녀막처럼 상당히 질겨서 난생 처음 읽어보는 2억짜리 손해배상 청구소장의 딱딱한 법률 용어도 (이 책 53페이지에 나오는) 왼쪽 손바닥에 그려진 ‘시’라는 글자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상징을 품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처럼 자신의 직업을 미워할 수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어떤 불행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돌연변이를 저자는 ‘뷰티플 몬스터’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지?
분명 당대의 첨단을 걸으며 스타일리쉬 그 자체인 멋진 언니오빠들과 청담동 라이프를 구사하는 김경의 코드는 ‘패션피플’이지만 그렇다고 그 아름다운 백조들의 세계에 ‘주류’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명품이라고는 무슨 라벨같은 것이 굴러다니길래 예뻐서 강아지 목걸이를 만들어 본 게 전부인데다 자신의 드레스코드는 빈티지도 아닌 그런지에 불과하다나?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두 극단을 자유롭게 오가는 ‘뷰티플 몬스터’가 될 수 있었다고, 직업은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나에게 언젠가 위안을 준 적이 있다. 물론 내 경우 그 앞에 뷰티플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제 첫 번째 작품으로부터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피처 에디터’ 중의 한 사람 김경은 그 보다 더 멋진 두 번째 작품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라는 가슴 설레이는 부제를 달고서 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김훈은 (우리가 아는) 김훈이고 싸이는 (우리가 아는) 싸이라는 어찌 보면 단순 재확인 절차과정일 뿐인 이 책에는 총 22명의 사람들이 나와 저자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직업군도 작가를 비롯해 가수, 배우, 화가, 건축가, 정치인, 만화가 등 다양한데 그만큼 기자 김경이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 넓다는 의미도 되지만 잡지라는 매체가 깊이보다는 오지랖이 넓다는 반증도 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짧은 시간 밖에 허용되지 않은 취재의 어려움일 수도 있고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친밀도가 반영된 탓일 수도 있지만, 22명이라는 출연인물 사이에 그 편차가 어느 정도는 들쭉날쭉한 것이 사실이다. 구성에 있어서도 ‘보이스 레코더’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도 있고 에세이로 재구성한 것도 있는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런 사소한 아쉬움만 제외한다면 영악한 그녀는 여자라는 카멜레온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정치인 노무현과는 마포의 허름핫 대폿집에서 서민적인 술자리를, 제멋대로 꼴통 뮤지션 싸이와 DJ DOC에게는 우리 놀아본 선수끼리 청담동에서 같이 한번 ‘지대로’ 놀아보자고(?) 덤비는 등 각각 다른 방법식으로 작업을 걸고 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원나잇 스탠드까지는 못 가더라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까.
그리고 인터뷰이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도 언제나 인터뷰어인 자신에게 초점이 돌아오는 이충걸과 달리,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 간직한 채 자신의 자의식을 너무 많이 쏟아내지 않는 (그렇다고 너무 적지도 않게) 김경의 인터뷰 방식은 본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이충걸의 방식이 못마땅하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의 팬이다)
또한 인터뷰가 끝난 다음에도 냉정하게 그 자신인 채로 남을 수 있는 이충걸과 달리 김경은 만나기 전부터 언제나 ‘폴 인 러브 위드 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인터뷰는 솔직하지만 공정하다고는 볼 수 없고 도발적이지만 그렇다고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이충걸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할까. 그 전체적인 색의 조화가 멋들어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얘기다.
처음인 김훈부터 시작해 마지막 순서인 싸이까지 오면 어느새 그녀의 용의주도한 페이스에 그만 말려들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대한민국 땅에 (마태우스님 말고) 자기분야의 대가들을 한 자리에 이 정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스포츠 신문이 아니라 청담동 현장(!)에 떠도는 소문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당신은 가진 게 많잖아. 그러니까 좀 내놔 봐’ 라고 앙탈을 부릴 수 있는 그녀의 멋진 직업과 대담한 용기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지도를 매혹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줄 아는 그녀의 말빨, 글빨, 맘빨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처럼 김경 만세?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다면 구판 ‘뷰티플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또한 당대 문화의 최첨단을 걷는 패션지 기자께서 만든 책 치고 디자인이 너무 스타일리쉬하지 못하다는 사실. 나의 소견이 다음 세 번째 작품에는 꼭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