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이충걸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T시에 계신 엄마가 너무 보고싶다. 달리 바쁜 일도 없으면서 내려갔다 오지, 늘 보고싶다 투정만 부린다. 그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그리움의 속도로 읽기 시작한다. 해질녘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서글픈 고아의 마음. 이젠 파고들 엄마 품도 없는데.

이충걸은 아시다시피 그 나이에도 아파트에서 엄마와 단둘이 사는 독신남자다. 롱코트와 구두, jean을 좋아하는 패션피플답게 그가 엄마를 추억하는 방식도 다분히 패셔너블하다. 아들이 말쑥한 양복을 입길 원하는 노모와 청바지가 스무벌이나 되는 아들은 티격태격 싸울 수 밖에 없다. 아들은 서랍에 차곡차곡 개켜둔 5,60년대 엄마의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를 통해 그 시절 예뻤던 엄마를 그리워하길 원한다.

한때 미워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돌아가신 후 입던 코트를 태우면서, 그게 얼마나 비싼 건데 비싼 건데 하는 안타까움으로 애둘러 표현되고. 하필이면 그 많은 색 중에 팥죽색 밥통을 사줄게 뭐람. 마음이 맞지 않는 형들에 대한 기억도 한번도 형의 옷을 물려 입지 않았다는 옷에 관한 추억으로 불러들이는 식이다.

이충걸의 문체는 사실 좀 남사스러울 정도로 서정적이고 문장은 가스오부시처럼 살랑살랑거리지만 그래서 독보적인, 나름대로의 순정적인 아우라가 있다. 마치 영화 '러브레터'처럼 그의 추억도 살짝 더 예쁘게 장식되어 있지만, 구태여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된 6, 70년대 보도사진으로 개인적인 추억을 들여 봐야할 이유가 있을까.

패션과 술과 탐닉에 관한 미사여구를 조심스럽게 들쳐보면 거기엔 노모의 주름이 있고 아픈 팔다리와 뚱뚱한 육체가 있다. 그리고 남편이 없는 엄마와 아내가 없는 아들이 만들어내는 엇박자 사랑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엄마를 기억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충걸은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아, 이런 막무가내로 사랑스런 아들을 둔 엄마는 얼마나 행복할까. 엄마, 나도 엄마에게 잘 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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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1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문체는 남사스러울 정도로 서정적이고 문장은 가스오부시처럼 살랑살랑거리지만...
어쩜 그렇게 꼭 집어내셨는지...
지겹고 짜증나면서도 그의 글은 찾아 읽게 되니 참 별난 일이죠?^^

히나 2004-10-19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제서야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달인가 지난달에 '허스토리'에 김갑수, 김어준씨와 함께 나온 인터뷰 혹시 읽어보셨나요?

로드무비 2004-10-20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못 읽어봤는데요.

히나 2004-10-2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스토리에 이충걸, 김갑수, 김어준씨가 나와 여자에 대해 어쩌구 저쩌구 했던 거 같은데 함 읽어보세요 재밌더라구요..

로드무비 2004-10-2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올려주실 순 없을까요? 헤헤
서점 가면 꼭 서서 읽어보고 오겠습니다.^^

히나 2004-10-2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퍼오려고 '허스토리' 사이트 가 봤는데 안 올라와 있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