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냄새
이충걸 지음 / 시공사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페이퍼 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엮은 책으로 얼마전 문학상 후보로도 추천받았다. 그런데 이충걸이 '내 몸에는 남자가 숨어있다' 추천사를 쓴 것에 대한 답례일까. 이번에는 배수아가 추천의 글을 썼는데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어떤 혐의가 느껴진다. 물론 불평하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 책은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에세이도 아닌것이 지독한 센티멘탈의 냄새를 풍겨서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기분이 몹시 나빠질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와 읽다가 잠들면 딱 좋을거 같다. 

암튼 청년실업시대라지만 나는 월급노동자로 사는 게 너무 피곤했고 어디 깐따삐야 별로 텔레포트하고만 싶었다. 도우너야, 날 좀 데려다줘.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삶으로부터 완전히 달아날 수 있을까. 모든 낭만주의자들은 生은 다른 곳에 있다고 믿었다. 내게 이별은 너무 쉽다, 상처받는 건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라고 시침 뚝 떼고 있지만 그는 상처받은 낭만주의자임에 틀림없다. 한수산의 말처럼 낯선 곳에 가면 우리는 술에 취해야 하니까. 술을 끊느니 숨을 끊겠어 라고 말하는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술에 취해 중심을 잃고 흔들려 본 사람은 알거다. 무거운 중력의 법칙에서 살짝 벗어난 그 순간,
내 지리멸렬한 生이 그 어떤 다른 외계에 불시착하는 듯한 SF적인 존재감을..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낯설고 신비로운 느낌을.. 이 책은 그 느낌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술이 마시고 싶어 미칠 거 같았다. 내가 이토록 어리석을만큼 우울한 게 술 때문이라면 단지 그 이유 때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날 밤, 잘 모르는 어떤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고 싶다. 그리고 책을 덮듯 모든 걸 잊어버리는 거다. 그러나 모든 걸 다 잊어도 끝끝내 기억나는 게 냄새라면 나는 당분간 그 슬픔의 냄새 때문에 못 견디게 괴로워하겠지만. 내게도 이별은 너무 쉽다, 상처 받는 건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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