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황경신은 <그림같은 세상>이란 책에서 스물 두명의 화가를 자신의 느낌에 따라 사계절로 나눠 설명한 적이 있는데,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당연히 맑고 차갑고 고요한 겨울의 이미지였다. 주로 혼자 있는 여자들을 그린 그 그림들엔 일상속 여인의 내실을 들여다 보는 비밀스런 분위기와 더불어 그 알 수 없는 표정에서 보여지는 불가해한 어떤 존재감과 신비로운 기운이 뒤섞여있었다.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삶을 짧게 옮겨보자면- 네델란드의 중소도시 델프트에서 나고 자라 죽었는데 관청에 보관된 서류상의 기록 말고는 거의 알려진 사실이 없다. 결혼한 뒤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무려 열한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19세기 후반이 지나서야 겨우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리고 그림 35점 말고는 스케치도 글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진주 귀고리 소녀>는 '북구의 모나리자' 라고 불리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17세기 네델란드 회화전이 열리고 그 유명한 그림 '델프트 풍경'도 왔다는 기사를 읽었다. 낙엽이 떨어지면 가보겠다는 핑계를 대며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그 와중에 우연히 이 책(의 표지가)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책날개를 펼치자 작가의 프로필이 드러났는데 (바보같은 얘기인지 모르지만) 처음 보는 외국 여성작가의 프로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단번에 사고 말았다. 물론 베르메르에 대한 애정이 더 컸겠지만.. (나도 아래와 같은 프로필을 가지고 싶다!!!)

'워싱턴에서 나고 자랐다. 오하이오의 오버린 컬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1984년 런던으로 갔다. 여섯달 후에 돌아올 작정이었으나, 아직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이 소설은 베일에 쌓인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를 중심으로, 만일 그 그림에 모델이 있다면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라는 (베토벤에게 연인이 있다면(불멸의 연인) 세익스피어에게 연인이 있다면(세익스피어 인 러브) 그런 식으로 말이다) 한 작가의 호기심에서 출발하였다. 다행히 베르메르의 생애는 대부분 베일에 쌓여져 있어 작가는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는 너무 아름답고 또 너무 가슴아픈 소설 한편을 읽을 수 있었다.

소녀는 어떻게 여인이 되는 걸까..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오래전 집을 떠나 진주 귀고리로 표상되는 금단의 열매를 꿈꾼 적 있었던 한 평범한 소녀의 성장기를 속삭이듯이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 어조는 담담하지만 펼쳐진 그 세계는 너무도 눈부시다. 마치 베르메르 그림 속의 그 빛처럼.. 이 책을 연애소설로 읽던지 아니면 전기소설로 읽던지 그 것도 아니면 예술소설로 읽던지 어떤 식으로라도 상관없겠지만 중요한 건 '너 자신으로 남아있도록 조심하거라' 는 그 말 한마디다.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남아있을 때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P.S 그런데 그리트의 아들 이름이 얀(요하네스의 줄임말이겠죠?)인 건 무슨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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