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은자와의 결혼 - Q.MYSTERY 37 ㅣ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8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9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
추리소설 베스트 10에서 언제나 1~2위를 다투는 서스펜스 걸작 <환상의 여인>은 그런 멋진 말로 시작해 단숨에 읽는 사람을 매혹시켜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코티 향수를 듬뿍 담은 샴페인을 흩뿌려놓은 듯한 공기'라는 표현 역시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소설의 작가 윌리엄 아이리쉬가 쓴 또다른 걸작이 바로 <죽은 자와의 결혼>이라는 이 책으로 원제는 I Married a Dead Man 이다.
콜필드의 여름밤은 정말 기분이 좋다. 헬리오트로프와 재스민, 그리고 인공덩굴과 클로버의 향기가 난다. <죽은 자와의 결혼>또한 이런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해 읽어 내려가는 우리들의 가슴을 또다시 설레이게 하며 그 아련한 분위기에 녹녹히 젖어들게 만든다. 여기에서는 주인공이 헬렌 조지슨이라는 여자인만큼 쓸쓸한 느낌이나 애수. 비애. 그러한 독특한 분위기가 더 잘 살아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한편의 프랑스 영화를 본 것처럼 정말 슬.프.다.
언젠가 갑자기 그가 짐을 챙겨 나를 남겨두고 이 집에서 나가리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비록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그가 그 때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 하더라도. 만일 그가 집을 나가지 않으면 내가 집을 나가게 되겠지. 나의 마음과 그 마음을 바친 남편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지만 역시 나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이 말을 하는 여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왜 그런 말을 해야 하는가. 현재 패트리스 해저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자의 진짜 이름은 헬렌 조지슨으로 임신한 몸으로 남자에게 버림받아 5달러만을 든 채 열차에 타야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열차에서 임신한 패트리스 & 휴 해저드 부부를 만나 자리를 양보받게 되는 데 갑자기 열차사고가 발생하여 부부는 죽는다. 깨어나보니 사람들은 자신을 패트리스 해저드라는 여자로 잘못 알고있다. 사실을 밝히려 했지만 따뜻하고 친절한 해저드 부부 가족들(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동생 빌) 품에서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헬렌은 차일피일 미루다 주저앉고 만다. 그러다 차츰 빌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이제 자신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 그녀를 버렸던 예전 남자 스티브로부터 돈을 요구하는 협박편지가 날아들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그는 진실을 묻어두는 대신 시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은 패트리스(헬렌)와의 비밀결혼을 강제로 요구한다. 결국 패트리스는 스티브를 죽이러 가게 되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스티브는 죽어있고 그 자리에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빌 또한 와 있다.
누가 범인인가? 알 수 없다.
결국 그들은 시체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어머니가 그날 밤 숨을 거둔다. 그녀는 죽으면서 빌과 결혼하라고 말하고 아주 곤란한 일이 생겼을때만 열어보라며 편지 한통을 남긴다. 빌이 경찰에 끌려가게 되자 패트리스(헬렌)는 편지를 열어보는 데 거기에는 시어머니 자신이 스티브를 죽였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에 대한 의심을 풀고 결혼하게 되는 데 어느날 결혼한 다음에 만일 원한다면 읽어보라는 어머니의 또다른 편지를 받게된다. 결국 어머니 역시 범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범인인가? 이제 그녀 아니면 그 둘 중 하나이다.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의심 뿐. 그들은 사랑했지만 결국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졌다.
어떤 게임인지 우리는 모른다. 단지 그 이름을 알고 있을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인생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인지 방법도 잘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 게임에서 실수한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졌다. 패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