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와의 사랑 세계사 시인선 71
성미정 지음 / 세계사 / 199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성미정이라는 시인이 있다.「대머리와의 사랑」에서 그녀는 대머리 남자를 위해 자신의 머리털을 뽑고 음모를 잡아뜯고 겨드랑이털을 깎아 진짜 머리털보다 더 진짜 같은 가발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그는 사실 대머리가 아니었다. 다만 머리카락이 뇌 속으로 자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누를 수 없었던 뇌가 폭발한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녀의 시는 재미있다. 엄숙한 시를 읽으면서도 깔깔깔 웃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야구처녀」연작시는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감동적이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시침 뚝 떼고 야구라고 하는 몸의 스포츠에 비유해서도 정신의 시를 쓸 수도 있는거구나 싶어 처음에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내가「야구처녀」연작 시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시는 바로「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이다. 고독이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모습은 날카롭고 선명한 못과 같은 어떤 치명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성미정은 어느날 혼자 날아가는 공에서 외로움을 느꼈고, 장갑 안으로 숨어드는 공에서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을 만났다. 그래서 야구는 고독이라 불리는 편이 더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공이 그렇게 사라진 건 그만큼 고독했기 때문이니까.

처음에 그 고독은 날카로운 그 어떤 것이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흐르면서 그 통증에 익숙해졌고, 그리고 그 고독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둥글둥글해져 야구공만한 둥근, 지루한 고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야구공처럼 둥근 고독.

나는 성미정의 시가 쉽고 재미있고 발랄하게 쓰여져 있어서 좋다. 소름끼치는 고독이라는 물건을 이렇게 말랑말랑한 야구공으로 만들어 시를 읽는 독자를 향해 변화구로 던질 수 있는 야구처녀인 그녀가 정말 마음에 든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야구가 존재하고 그 중에서 시라는 종류의 야구를 즐길 줄 아는 그녀는 그 고독이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둥근 공처럼 지루하더라도 결코 게임을 포기하지는 않을테니까.

야구에 있어 각각의 포지션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선택한 포지션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선수들의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 포지션

나는 그녀가 시에 있어 그 포지션을 지켜나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얼마전 <2000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에서「구두란 존재」를 읽었는데「검고 낡은 구두와의 이별」에도 불구하고 냄새나는 그 구두에 관해 여전히 쓰고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 어서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고독 또한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날아간 공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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