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
휘트니 채드윅 외 지음, 최순희 옮김 / 푸른숲 / 1997년 8월
평점 :
절판


버지니아 울프는 세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질문을 바꾸어 보자. 만일 세익스피어와 같은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던 그 여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도 같은 예술가와 말이다. 같은 직업을 가진 두 사람이 한집에 살게 되었으니 시너지 효과가 생겼을까, 아니면 서로에게서 가장 나쁜 점만 끄집어내게 되었을까?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는 바로 그 가상의 질문이 이 지상에서 성립된 10가지의 선별된 예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자도 있고 후자도 있다.

이 책은 성과 창조성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고자 하는 공동 노력의 소산으로 휘트니 체드윅ㆍ이자벨 드 쿠티브론을 포함한 10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써내려 간 전기이다. 주인공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 바로 커플이다. 결혼이라는 가장 낡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그들의 예술성이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 그 궤적을 살펴본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너무 유명한 카미유 클로델과 로댕 커플을 제외하고 좀 덜 유명한 커플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

아나이스 닌과 <북회귀선>의 헨리 밀러, 바네사 벨과 던컨 그랜트,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 릴리언 헬만과 <말타의 매>등을 쓴 대시얼 해멧, 소니아와 로베르 들로네 같은 커플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별에 따른 고정 관념의 한계를 뛰어넘어 분명 새로운 커플상을 만들어나간 '시대를 앞서간 커플들'이었다. 서로의 관계 안에서 그들의 창조성 또한 꽃피었다. 특히 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들의 예술혼을 꽃피웠던 블룸즈베리 그룹의 예는 어느 정도 부러운 감이 없지않다.

그러나 분명 그 다른 예도 있다. 클라라 말로와 앙드레 말로, 카미유 클로델과 로댕의 경우는 한 쪽(여자)이 한 쪽(남자)에게 구속된 '거짓과 비극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후자는 너무 유명하다. 앙드레 말로를 떠나 홀로서기를 한 다음 그 영광 안에 자신도 분명 들어있음을 입증하고자 했던 클라라 말로. 그녀는 좀 더 빨리 떠났어야 했다. 그것은 카미유 클로델도 마찬가지다.

레오노라 캐링턴과 막스 에른스트, 리 크리스너와 잭슨 폴록의 경우는 서로의 예술세계를 공유하면서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한 케이스다. 서로를 떼놓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역시 전자는 후자의 연인, 아내, 영감의 원천, 동반자 같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슈바르츠-바르트 부부는 우리가 본받아 나갈만한 모범적인 평등부부의 예이다. 백인이고 유태인인 유럽계 남성과 흑인이고 노예의 후예인 프랑스령 과드루페 태생의 여성의 완전한 문학적 결합은 성과 창조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과 사랑과 성공은 함께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릴리언 헬만과 대시얼 헤맷 커플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조지아 오키프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커플의 예가 여기에 잠깐 나오는데 그 유명한 조지아 오키프도 남편을 위해 수없이 옷을 번어던져 누드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어야 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나 사족처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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