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통신
배수아 지음 / 해냄 / 1998년 6월
평점 :
절판


지금도 나오는지 모르겠다. BOOKPARK 천구백구십팔년도구월호에는 배수아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나는 그녀가 한 말 중 어떤 부분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승부욕과 경쟁이 인간의 진화를 낳았다고 생각해요. 인류를 위해 나 같은 사람은 도태되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러나 이런 것을 즐기면서 소설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그 인터뷰를 할 때가 그러니까 <심야통신>이 나온 지 몇 달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녀의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는 처음으로 작가의 사진을 다이어리에 붙여두고 거의 매일 바라보곤 했다. 그 사람의 첫사랑에 나오는 작가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 그 사진 아래에는 유시진의 에서 대사가 마음에 들어 잘라낸 두 컷의 만화도 붙여 놓았다.

"나는 사람이 좋아.
왜요?
착각하게 해 주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멋진 꿈을 꾸게 해주니까."

한 마디로 말해 배수아의 <심야통신>은 악몽 그 자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토록 막 나가는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이런 책이 비닐커버를 씌우지 않고 출판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한 적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소리가 아니다. <심야통신>을 읽고서 눈물이 쏙 빠져 나올만큼 배수아가 좋아졌으므로.

그 이전에 '켈로이드 아이'를 읽고서 미칠것처럼 흥분하기는 했지만 하나하나의 싱글이 아닌 앨범단위로 음악을 평가하는 것처럼 또한 소설을 평가한다면 배수아의 <심야통신>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소설이다. 그렇다고 최고로 잘 쓴 소설이라는 것은 아니다. 글쎄. 사랑으로 비유를 들자면 첫사랑이라고나 할까. 사랑을 할 때마다 계속해서 비교하게 되는 그런.

여점원 아나디아의 짧고 고독한 생애에서 아나디아와 사촌 혁명과 아미 그들의 아들 반은 그 이후 병든 애인에 나오는 무열과 미숙 군보다 좀 더 멜로드라마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또한 지극히 사랑스럽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사실 그렇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라고 coooooooool 하게 말하고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바뀌기 이전의 상처받기 쉬운 마지막 로맨스티스트들이 바로 그들이다. 누가 그랬더라 냉소주의자는 상처받은 로맨티스트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여기에 나오는 모든 소설들은 그 어떤 리얼리티도 없다. 그 누구도 이 소설을 읽으며 배수아의 나쁜 꿈이 현실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불면에 시달리다 죽은 피리와 달리 우리가 나이트 메어에 나오는 후레디의 갈고리에 걸릴까봐 잠을 자지 못하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그처럼 배수아의 <심야통신>이 호출하는 악몽은 데이비드 린치의 컬트영화를 보는 것처럼 안전하다. BLUE VELVET에서 그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장면에 나오는 로이 오비슨의 노래 IN DREAMS처럼 숲 속 巫의 사원은 불쾌하기는 하더라도 또한 너무 아름답다. 우리는 이 공포를 그저 눈 딱 감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악몽에서 깨어나 천천히 눈을 뜬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참을 수 있을 정도만큼은 사람이 좋다, 는 생각을 한다. 왜. 착각하게 해주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멋진 꿈을 꾸게 해주니까.

배수아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내가 너의 생에서 무엇이 될 수 있나? 단지 너의 집 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짧고 고독하게 여점원 아나디아의 생애를 살아가는 것. 그 뿐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인생이 복사된다. 밤은 그런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