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왕자와 깊이 만나는 즐거움 - 최복현 시인이 <어린왕자>를 사랑한 30년의 완결판
최복현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왕자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때이다. 집에 혼자 있다 심심해서 TV를 틀었는데, 기존에 내가 보던 만화영화와는 다른 묘한 분위기의 만화를 보게 되었다. 컴컴한 우주에 어린왕자 한명. 분위기는 음침했다. 화면이 검은 색으로 가득차 있었으니까.. 대사는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웃기지도 않고, 예쁜 공주가 나오지도 않아서 조금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중학교시절 친척이 주신 동화 전집에서 어린왕자를 다시 만났다. 첫 장의 보아뱀 그림은 강렬했다. 호기심에 읽었다. 하지만 세 그루의 바오밥나무 그림이 나오는 데까지 읽다가 책을 덮었다. 고등학교 때 어린왕자를 다시 만났을 땐 이 책을 다 읽긴 했지만 도대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이 책이 유명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한번씩 생각나 읽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이해가 잘 안되는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어린왕자와 깊이 만나는 즐거움’은 일종의 어린왕자 해설서이다. 이 책이 예전에 출간되었다면 나는 어린왕자를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한 장 한 장 읽어나갈 때마다 ‘아!’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동안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실타래 풀리듯 조금씩 풀려 나가는 기분이 든다.
어린왕자에는 수많은 명언이 나온다.
“내 비밀은 이거야.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어.”
이 명언은 그동안 여러 번 어린왕자를 읽어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생떽쥐베리가 친구인 기요메의 일을 겪고 이 문장을 쓰게 되었다는 부분을 읽고 그 뜻을 이해했다.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길들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위 위를 오른 기요메의 일화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왕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의 직업을 왜 비행사로 했는지, 왜 하필 사막에 떨어졌는지, 왜 다른 동물도 아닌 사막여우가 나오는지, 어린왕자 별에 있는 꽃은 왜 장미 한송이인지 등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이 많이 풀렸다. 생텍쥐베리가 비행사였으며 사막에 불시착했던 경험이 있다는 점 등 생텍쥐베리의 삶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어린왕자’라는 책에서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비밀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어린왕자의 여러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 부분이 무슨 뜻인지, 왜 이런 내용이 쓰여지게 되었는지,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 해요체로 쓰여 있어 작가가 친근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배울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혜나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설명되어 있어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야 할지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에는 어린왕자를 읽으면 느낀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과 상충하는 부분도 있었다. 어린왕자가 방문한 여섯 개의 별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은 최복현 시인이 생각한 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 왕을 정치인에, 허영쟁이를 연예인에 비교하면서 술 주정뱅이를 비롯한 다른 네 사람보다는 지나치게 비꼬거나 비난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허영쟁이를 연예인에 비교한 부분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영은 특정 직업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인에 대한 생각에서 조금은 이상적인 부분도 있었다. 점등인에 대한 생각도 다른 편이다. 점등인이 공무원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명령에 따라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건 군인이 아닌가? 최복현 시인은 점등인이 자기 일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에 반대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지 안 주는지도 모른 체 싫어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 같다. 아무리 명령이라고 해도 1분마다 전등을 켰다 껐다 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복현시인이 30년동안 사랑한 작품 ‘어린왕자’!
한 책을 이렇게 오랫동안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오랜 기간 사랑했다면 아마 생텍쥐베리보다 그가 어린왕자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모른다. 100페이지 남짓한 책을 읽고 오랜 짝사랑 끝에 최복현시인이 다른 책을 쓰고, 나는 그 책과 어린왕자를 다시 읽고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오늘은 왠지 밤하늘을 보면 별들이 웃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