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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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머리말부터 이야기하는 마늘은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이미 많이 사용되는 재료입니다. 그 재료가 갖는 친숙함과 범세계성 때문에 경제학에 대한 접근이 무척 용이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저자가 선택한 모든 재료가 친숙했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낯선 것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겪은,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선택이 됐을 것이며, 이는 독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낯선 재료가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경제학적 관점으로 이야기를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작용하고 음식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나 특정 음료가 이 레시피들 중 하나에 포함됨으로써 그런 의견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음식을 선택한 것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음식이 필수인 만큼 경제도 같은 선상에서 아주 인접하게 놓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사회 전반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광범위하게 다루며, 폭넓은 범위를 지속적으로 언급합니다.

자칫 무겁고 딱딱할 수 있는 내용들은 음식 재료와 그것을 활용한 레시피, 그리고 이미지를 곁들여 무게를 낮춥니다. 한결 수월하게 접근 가능하며 쉽게 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이가 있는 내용들이 이어진다기보다는 소개에 가까운 느낌이 강합니다.

이는 저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다른 장이나 또 다른 도서를 연결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요리책이 해당 요리의 기원이나 역사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따로 학습을 해 세부적인 내용들을 접하는 선택을 할 뿐입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레시피와 관련된 정보를 연결시키고 우리는 그것들을 선택할 '자유'를 제공받습니다. 적절한 '선택'을 할 뿐입니다.

또한 요리책 안의 모든 레시피를 시도해야 하는 의무가 없는 것처럼, 각자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택해서 시도하며 때로는 실패하기도 할 것입니다. 어쩌면 레시피 제공자가 의도한 맛이나 모양이 전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레시피를 제공하는 것과 그것을 읽고 습득하는, 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해당 도서의 제목에 '레시피'라고 일컬어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해당 레시피에는 저자의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특정 주제를 반복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속적으로 비추며, 자신의 이야기는 무조건 옳다는 시선이 과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정의인양하는 것처럼 보여 무척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자신의 성향과 태도를 온전하게 인정했다면, 언급된 이슈들과 그에 파생되는 또 다른 문제와 수반되는 다른 이슈들까지 함께 다뤘다면 훨씬 범용적인 도서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그것들을 배제한 채 자신만의 이야기가 옳다고 하는 것은 결국 경제학 레시피가 아닌 음식을 매개로 꺼내는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는 경제학자의 넋두리일 뿐입니다.

분명 다루는 게 좋을 수도 있고, 여러 시선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주제이며, 그의 의견이 마냥 틀렸다고 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당 도서를 바라볼 때, 어떤 요리 재료를 선택할 때, 아니 그것보다 앞서 철저하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레시피 제공자의 의도가 무엇이든 나만의 음식을, 나만의 방식으로 변화된, 나에게 적절한 재료 선택은 분명 독자들의 몫일 것입니다.


아쉬운 점

  • 한 쪽으로 치우친 정치적 성향이 짙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최대한 중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냉철함이 요구됩니다. 해당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 음식의 레시피 및 재료는 경제학적 이야기를 하기 위한 트리거일 뿐, 냉정하게 큰 연관은 없습니다.

특히나 음식 재료로 보이지 않는 것을 내밀면서 단순하게 그것을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짙게 들었습니다.

  •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아내지 않는 듯 보입니다.

여러 사상적인 부분과 역사를 갖고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모두 다루는 것은 당연히 말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개서의 입장에서 기술된 내용들이 많아 추가적인 학습이 필수적으로 느껴집니다.


총 평

경제라는 개념에 접근하기 쉽게 소개된 음식 재료들과 레시피들은 냉정하게 그들과 연관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러한 내용들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지만, 어쩌면 아주 사소한 연결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연결시켜 점차 확장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자가 다소 한쪽으로 기울어진 성향을 보이고, 자신의 이야기가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듯한 강한 신념을 담고 있는듯하기 때문에 최대한 중립적으로, 냉정하게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6 구성 6 재미 6 재독성 5 표현력 5 가독성 7 평균 5.8)

요리 레시피에 나와있는 음식을 선택해서 시도하듯, 그의 경제학도 적절한 선택이 필요하다. 최대한 중립을 유지한 채.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31356062


감상자(鑑賞者)

우리는 무지 때문에, 그리고 어떨 때는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낯선‘문화에 부정적인 문화적 고정 관념을 적용할 때가 있다. - P86

결국 늘 ‘바닥이 나고야 마는‘ 천연자원과는 달리 한번 습득한 기술이나 능력은 고갈되지 않기 때문이다. - P178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더 이상 많지 않게 되면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 옳다. - P254

국제 무역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이해하고, ‘자유‘라는 휘황찬란한 단어에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유 무역처럼 논란의 여지없이 모든 이에게 좋은 거라고 여겨지는 것을 두고 왜 그토록 많은 논쟁과 갈등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294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특별 대우가 아니다. 그것은 공평함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 P403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지보다 사람들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들이 거기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람들의 생존에 얼마나 핵심적인지와 상관없이 시장에서 중요성이 사라지고, 결국 큰 의미를 발휘하지 못한다. - P441

개인 행동의 변화가 단호한 대규모 공적 조치와 함께 이루어질 때 사회 변화는 가장 효과적으로 발현된다. - P482

같은 향신료지만 넣는 음식에 따라 요리를 놀라울 정도로 향상시키기도 하고, 완전히 망치기도 하는 것처럼 같은 제도라도 맥락에 따라 매우 유용할 수도 있고,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 P505

자동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과학 기술 공포증(‘자동화는 무조건 나쁘다‘)과 젊은 세대의 절망감(‘우리는 필요 없게 될 거야‘)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P534

현실을 잘못된 또는 편향된 방식으로 반영한 정보를 경제학적 분석의 근거로 사용하면 적용하는 경제학 이론이 아무리 훌륭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 P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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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종이달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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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시작된 듯한 이야기는 어떠한 색도 없는 듯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딘지 칙칙하게 생기가 없는 듯 보였고, 그런 분위기를 만든 당사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번잡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색이 있는 듯했고, 무엇인가 특징이 있어 보입니다. 당사자인 그녀는 충돌이 만들어 낸 혼잡 속에, 그 무리에 완전히 속해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녀가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왜 범죄를 행하게 되었는지 본인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의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각각의 시선과 이야기는 저마다 달랐고, 그녀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따라가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어딘지 난잡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는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며 계속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곤 했습니다. 본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외도와 그것을 고백하며, 정당성을 찾는 도구로 그녀를 추억합니다.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그들의 성격과 특색을 다르게 담아내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그녀와 전혀 상관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과거에 잠깐 스쳤던 인연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그녀는 나름 중요한 위치에 있는 듯 보였고, 그렇게 각각의 인물들이 각자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추억한 뒤 그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은 정작 그녀가 떠올리는 대상에 그들은 전혀 포함되지 않거나 아주 잠깐 언급되는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이 과연 그녀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탐구하고 싶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전개된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됐습니다.

처음부터 극적인 전개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저 조금씩 물들어 가는 듯한 것 같았습니다.

조금씩 내리던 이슬비를 무시하다가 어느새 홀딱 젖어버리듯, 아주 약한 환각제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마약에 중독된 듯 그녀는 그렇게 완전히 물들어 버렸습니다.

그녀에게 마약은 돈으로 이루어진 환상과 호화로움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를 완전히 취하게 했고, 중독시켰습니다. 처음은 내연남을 만나며 가벼운 마음으로 접했고, 그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많아질수록 그녀를 송두리째 흔들고 변화시켰습니다.

그 변화는 어느 사이엔가 태풍으로 바뀌었고, 자연스럽게 그녀는 태풍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이 일시적인 평화로움이 있듯 그것이 영영 지속될 줄 알았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발만 움직여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바람을 느끼면서,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약에 완전히 중독된 상태였고, 그 달콤함이 두 눈을 가려버렸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공기의 떨림이, 말도 안 되게 고요한 듯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스스로 눈을 감아 회피하고, 그저 잠잠해지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변의 소리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더욱 공포감에 휩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정하지 않던 고통은, 애써 외면하던 태풍은 그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온전히 다가왔습니다.

이제껏 그에게 받던 마약성 진통제 투약은 종료됐고,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눈을 떴고 태풍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부질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만약이라는 여러 가정들을 들먹였습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이름하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 그녀는 단 하나 선택했고, 그것이 현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만약은 그저 상상 속의 시간 여행이었으며, 그러한 사실은 그녀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만이 남았습니다. 그 어떤 변명도 핑계도 통하지 않는 그것을 그저 회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누군가 구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최소한 고통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구원이란 그 사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닌, 현실로 온전히 돌아가는 용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보다 수동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린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도서 내에서 '나는 그녀와 달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각자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다르고, 그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만 다를 뿐입니다.

그녀의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그를 다르게 보는 것 같았지만, 처음의 순수했던 모습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그녀의 과거가 행했던 태도를 그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마지막에 그와 같은 말을 했던 것이 그 증거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과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특별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한 누군가에게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본질적으로 그녀와 같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범죄에 가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들 또한 향기가 나는 가짜 달로 눈을 가리며 행복함을 느끼고, 그것이 가짜임을 알지만, 순간의 행복함과 향기에 취해 영영 그것을 치우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차이점이라면 누군가는 그것을 치우고 진짜 달을 보기도 하며, 흐린 하늘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짜 달을 치운 것을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언제 치우느냐, 즉 언제 현실을 마주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늦게 현실을 마주했을 뿐이며, 마약에 조금 더 취해 있었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이들과 우리들은 그녀보다 조금 빨리 마주해 다른 결과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는 지금도 종이달을 눈 위에 올려놓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쉬운 점

  • 약간은 현대화되지 못한 배경으로 느껴져 범죄 성립 자체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닮은 듯한 구석이 많아 현실감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 여성의 범죄 원인이 남자가 빠지지 않는다는 등이 반복되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약간은 과거의 시선이며, 일본의 풍토이지만 이는 현재의 우리나라도 적용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 어느 정도 우리 모두 그녀와 같다는 것을 지속해서 보여줍니다.

이는 강점이 될 수도 있지만, 너무나 획일적인 시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 외설스러운 상황들이 등장하고 이런 묘사가 생각보다 디테일합니다.

내용에 누가 되거나 불편함보다는 적절하게 등장하지만 이런 부분이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 평

눈을 가리는 것으로 선택한 종이로 만든 달은 단순히 모양만 갖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중독성 강한 향기를 품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실제가 아닌 환상만을 좇게 될 위험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강한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마는 종이는, 결국 눈앞까지 다가와 있는 태풍을 직접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공포감에 질린 탓인지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일정 부분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어 소름 돋게 됩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6 구성 7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6 가독성 7 평균 6.5)

바람과 함께 날아간 종이달이 보여주는 눈앞의 태풍과 공포, 그로 인해 얼어붙는 신체까지.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24204207


감상자(鑑賞者)






나는 무언가를 얻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잃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 P32

그 방이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았다. 요컨대 은둔하기에. - P46

니시신주쿠의 직장에 도착해서 누구랄 것도 없이 붙잡고 지껄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며 실제로 평소에는 천천히 걷던 길을 총총걸음으로 회사에 갔지만, 막상 동료나 부하들과 얼굴을 마주하니 말할 수가 없었다. 왠지는 모른다. - P49

마사후미의 말에 리카는 언뜻 위화감을 느꼈지만, 무엇에 대한 위화감인지는 알 수 없었다. - P138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말을 하다니, 좀 놀랍군. 리카는 마사후미의 목소리를 반추했다. 그런 말을 할 여자인 줄 몰랐다. 그런 천박한 말을 하는 여자인 줄 몰랐다. 마사후미의 목소리는 리카의 안에서 점점 말을 바꾸었다. - P149

하지만 그 생각과 정반대로 비명을 지르고 싶은 듯한 초조한 감촉이 천천히 온몸에 퍼져가는 것도 역시 느꼈다. 그 익숙한 느낌을 떠올렸다. 자신이 우메자와 리카의 일부라는 느낌. 리카는 그 느낌이 온몸에 퍼져나갈 것 같은 것을 간신히 막았다. - P168

리카는 아키에게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을 신경 써서가 아니란 걸 인정했다. 아키처럼 하나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78

왁자지껄한 회식 속에서 문득 학생 시절을 떠올렸지만, 사실은 다르다. 나는 학생 시절에도 그런 식으로 떠들었던 기억이 없다. 기분 좋게 취해서 웃기만 했던 기억밖에 없다. 나는 학생 시절을 떠올린 게 아니라, 학생 시절 상상했던 풍경을 떠올렸을 뿐이다. - P217

이 아이는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방향으로 원하는 방법으로 곧장 갈 수 있을 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걸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을 텐데. - P247

그들이 자아내는 혼잡하고 왁자지껄하고 젊은 에너지로 넘치는 공간은 리카에게 거역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전문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리카가 공상했던, ‘나 이외의 학생들‘의 일상이었다. 공상하고, 동경하면서도 경멸하며, 자신이 멀리했던 것이었다. - P261

리카는 무수한 ‘만약‘의 끝에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그러나 그 몇 개의 ‘만약‘을 자신은 선택하지 않았고, 그리고 1997년, 거의 동시에 두 가지 일은 일어났다. - P331

거기까지 생각한 유코는 리카와 자신, 그때 자작나무 가로수 길을 함께 걷던 두 사람이 지난 20여 년 사이에 얼마나 서로 먼 곳으로 와버렸는가를 새삼 깨달았다. - P371

어째서 사람은 현실보다 좋은 것을 꿈이라고 단정 지을까. 어째서 이쪽이 현실이고, 내일 돌아갈 곳이 현실보다 비참한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까. - P456

"이런 세계가 정말로 있군요" 하고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휘둥그레졌던 고타는 놀라울 만큼 빨리 ‘이런 세계‘에 익숙해진 듯이 보였다. - P459

흐뭇하다기보다, 복수를 한 것 같은 기분과 비슷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복수인지, 이것도 역시 따져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리카는 그저 그 유쾌한 기분만을 맛보았다. - P510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너무 당연해서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리카는 한 번도 그런 걸 부탁한 적이 없다. - P531

돈이란 것은 마르지 않는 용수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마르는 일 없이 계속 샘솟아, 주위 사람들의 목을 적시는 생활을 돕는 것.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퍼다 쓰면 되는 것. - P539

리카는 안도하고 동시에 절망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처럼 강한 끈으로 맺어져 있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안도와 자신은 이 두 사람 같은 깨끗하고 건강한 관계를 절대 만들 수 없다는 절망이었다. - P551

넌 무얼 샀니? 무얼 손에 넣으려고 한 거니? 그 물음은 어느새 유코 자신에게 향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절약을 한 거지. 무엇 대문에 저축하려고 한 거지. 그래서 무엇을 얻을 생각이었던 거지. - P577

마키코와 무스미는 정반대의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어떤 한 점에서 그녀들은 완전히 똑같지 않을까 싶었다. 즉, 돈으로 무엇이든 생각대로 할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믿는 부분이. - P582

우메자와 리카를 아는가.

대체 누가 우메자와 리카를 알고 있다고 할까. 나조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 P602

가정은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무수히 흩어져갔지만, 하지만 어떤 가정을 해도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P611

가, 움직여, 하는 마음의 소리와는 반대로 리카의 발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 P613

집을 나설 때는 완벽한 화장에 완벽한 코디네이트를 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지금 유리창 속에서 몹시 초라해 보였다. 엄마도 아내도 되지 못하고, 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한심한 여자로 보였다. - P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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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합본) - 소설로 읽는 철학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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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처음 책을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엄청난 두께를 자랑했고, 철학이 이런 분량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덜컥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해소시키기 위해 소설이라는 장르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깊게 이야기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소설이 재미있는 것이 아니고 자칫 지루해져 흔히 말하는 '별로'인 도서가 될 수도 이었습니다.

다행히 소설로서만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초반부터 철학이라는 직접적 언급이 이어졌고, 이것이 소설이라는 사실은 그것을 알려주는 선생님과 대답을 하는 소피의 존재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물음과 가르침에 대한 대답을 하는 소피를 통해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탐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딘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가진 듯 대답은 꽤 귀여웠습니다. 그렇다고 그 내용까지 귀여운 것은 아니며, 충분히 생각해 볼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소피가 어린아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이따금 나오는 집중력을 확인하는 선생님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진행됨에 따라 드러난 열다섯이라는 소피의 나이는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귀엽게 대답하던 모습은 어쩌면 사려 깊은 태도와 정숙함, 깊게 생각하는 사고력을 갖춘 것에 대한 질투일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투는 갑작스럽게 화자로 등장한 힐데도 똑같이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더 심하게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 또한 노발리스의 어린 약혼녀와 같은 나이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나이의, 똑같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기에 그런 감정이 더 깊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둘은 이 소설이 말미에 다다르면, 평생 열다섯으로 남아 더 이상의 성장이 없는 운명입니다.

그런 면에서 소피가 조금은 더 나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소피와 다르게 힐데는 자신이 창조된 존재임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저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만 했습니다.

사실 소피와 선생님인 크녹스, 힐데와 그녀의 아버지인 크나그 소령은 서로에게 직,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창조한 세상의 인물이 현실로 오기도 하고,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기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써 온전히 존재했으며, 철학사와 철학가들에 대한 내용과 밸런스를 잡기 위해 힘들고도 흥미롭게 균형을 잡는 과정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철학과 소설 본문 내용은 짧은 호흡으로 유지되어 읽기 수월합니다.

또 시간순으로 철학자들과 철학사를 들려줌으로써 역사적인 느낌으로, 시간 속에 속해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몹시 흥미롭기도 합니다. 만약 내용 이해가 어렵거나 철학이 막연하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면 역사적인 접근으로 독서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끝까지 역사적 관점으로만 내용이 전개되진 않습니다. 신학적 측면이 나오기도 하며 이후 미술과 과학적 분야, 그리고 정신분석학, 마지막으로 천체물리학까지 확장이 됩니다. 이를 통해 철학이 근본적으로 여러 학문들과 밀접하고, 그만큼 우리와 아주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중 가장 높은 빈도는 신학적 측면입니다. 종교적인 명칭들과 어원이 다소 깊게 다뤄지며, 종교가 역사적으로 중대한 위치에 있고 그 아래에서 철학이 많이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엄연히 종교와 철학은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긴밀한 관계라도 조금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나 데카르트의 철학론은 무척이나 추상적이고 신앙심의 농도가 짙어 보였으며, 맹목적 신앙이 철학과 자신의 종교론을 과도하게 연결 짓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판단도 성급하게 내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새로운 철학적 논제들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끝이 없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서로 맞물릴 수 없는 것들이 무한하게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계속해서 쏟아지는 다양한 철학론 속에서, 본인에게 가장 적합하고 와닿는 것을 골라서 섭취하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소설 속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던 소피가 아니라 아직도 스스로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힐데일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전혀 모르고 사는 편이 삶을 사는데 더 유리하기에 일부러 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각자의 세상에서 온전하게 독립하기를 바라며,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 엄청난 분량의 내용에 압도 당할 수 있습니다.

단순 소설책도 그런 분량이라면 겁이 날 법한데, 철학이기에 더 두렵기도 합니다.

  • 소설의 형태를 취했어도, 근본은 철학이기 때문에 내용이 무겁습니다.

물론 호흡이 짧고, 소설과의 밸런스도 적절하지만 흐름을 늦게 탄다면 독서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 종교적인 색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와 깊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다소 과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 각 철학의 내용들이 생각보다 깊지 않습니다.

방대한 철학을 역사처럼 시간순으로 나열하기 때문에, 아무리 페이지가 많아도 담아내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맞는다고 생각하거나 궁금한 철학사를 따로 찾아봐야 합니다.


총 평

다양한 철학들을 역사 및 각종 학문을 통해 가볍게 다루지만, 사악한 분량 때문에 읽기가 꺼려집니다.

소설이 가미되어 있고, 밸런스도 나쁘지 않지만 소설에서 벗어난 내용들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다소 재미를 붙이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충실하게 철학들을 소개함으로써, 이들 중 자신에게 맞는다고 판단되거나 궁금한 철학사를 따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 번 보기에는 분량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에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8 구성 7 재미 7 재독성 5 표현력 8 가독성 7 평균 7)

소설과 철학의 적절한 밸런스를 갖춘 아주 두꺼운 소개서.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10356121



감상자(鑑賞者)

슬픈 사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지. 동시에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유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세상에 대해 놀라워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로 인해 무엇인지 근본적인 것을 상실하고 말았지. - P32

뭇사람들에겐 늘 자연의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런 설명 없이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과학이 존재하지 않던 그 옛날, 사람들은 신화를 지어 낸 것이다. - P47

그러나 이제 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앎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 P92

소피 스스로 느끼기에 예전의 자신은 색맹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그림자들만 보아 왔지 순수한 이데아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 P140

"엄마는 변하지 않으셨어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단지 발달했을 뿐이죠. 나이를 더 먹었구요······." - P154

때마침 세계가 새로 창조된 듯 뜰에선 새들이 지저귀었다. 낡은 토끼장 뒤쪽의 자작나무들은, 조물주가 아직 색 배합을 채 마치지 않은 듯 선명한 연초록색을 띠고 있다. - P205

"어차피 아무도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배운 적이 없잖아?" - P278

데카르트는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공간을 차지하는 이중적 존재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지. 그에 따르면 인간은 영혼과 공간적 육체를 모두 갖고 있다. - P349

한 예로 그는 윤리적 원칙은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로크는 소위 자연권 사상을 표방했다. 자연권 사상엔 합리주의적 특징이 있다. 아울러 로크가, 신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바로 인간의 이성에 내재해 있다고 믿은 것 역시 분명한 합리주의적 특징을 지닌 생각이다. - P382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뒤따라 생기는 사건들 사이에 꼭 필연적인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야.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않도록 경고하는 일이야. 특히 성급한 결론은 여러 가지 미신을 유발한다. - P401

더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성으로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신을 증명하거나 이성의 논증에 만족하면 신앙 자체를, 그리고 동시에 종교적인 간절함을 잃는다. 기독교가 진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진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지. - P555

때때로 우리는 합리화를 한다. 그러니까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행한 일에 대해 실제 이유와는 다른 어떤 이유가 있노라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지. 그 실제 이유가 너무도 수치스런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 P632

그러고는 다시 눈을 뜨고 계속 천장을 쳐다보았다. 결국 힐데는 눈을 뜨는 걸 잊어버리고 잠이 들었다.

​힐데가 요란한 갈매기 울음 소리에 잠을 깬 것은 6시 66분이었다. - P648

네가 사랑에 빠져 네 연인의 전화를 기다린다면 너는 아마도 저녁 내내 그 연인이 전화하지 않는 걸 ‘들을거다.‘ 바로 그가 전화하지 않는다는 걸 너는 내내 확인하는 거다. 네가 기차역까지 마중나가서 네 연인을 찾지도 못하고 플랫폼에 쏟아져 나온 한 떼의 사람들을 만난다면 너는 이 사람들을 전혀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방해가 될 뿐이고 너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 P665

그러나 세상에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마 우린 아직도 자연의 모든 법칙을 알고 있지는 못할 테니까. 과거에는 자기력이나 전기 현상 같은 것들이 일종의 마법으로 통했단다. - P680

케이크는 밑으로 갈수록 원둘레가 커지기 때문이지요. 우리 삶도 바로 그렇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소피는 아주 작은 원을 그리며 이 주위를 돌아다녔죠. 그런데 해가 바뀔수록 그 원은 점점 커졌습니다. 이제 그 원은 집에서 옛시가지까지 뻗어나갔습니다. - P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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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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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는 조합이라고 느꼈습니다.

쓸쓸함의 대명사로 쓰이는 고독은 어쩐지 시끄럽다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는 듯싶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게 시끄러운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제목에 쓰여있는 표현처럼 독특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 많을 것 같아 기대감도 커졌습니다.

도서는 첫 문장의 맨 처음부터 삼십오년이라는 시간으로 시작됐습니다.

중간중간 반복되는 이 삼십오년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반복은 되지만 어색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반복은 그의 정신세계가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딘지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혹은 벗어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영화와 비교를 해 보자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적절한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쩌면 그도 이미 근대화 혹은 현대화가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미 시대를 극복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와 사상에 먹히고 맙니다.

아무런 자아도 없이 그저 부품처럼 이용되었어야 했지만, 조금씩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의 끊길 줄 모르는 긴 호흡의 말들은 삼십오년간 억눌려있던, 억압됐던 자아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의 감정들을 마구 토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혐오감에 적응을 마치고 온전히 새 시대를 맞이하고 나아가기 어렵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새 시대에 저항하고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본능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의 선택이 패배가 아니라 선택인 것 같습니다.

그의 선택과 더불어 표현되는 내용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성모독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여인을 성녀로 만들고, 성부를 쉽게 이야기하며 삼위일체를 울부짖습니다.

이런 표현들 때문인지 해당 도서는 얇으면서도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은유적인 표현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듯했고, 어딘가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어 아이러니했습니다.

마치 그의 정신세계가 공유된 것 같았습니다.

초반부부터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았던 구간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지루하다는 감정보다 약간씩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꿈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고, 조금씩 그 감각에 익숙해졌습니다. 이때부터 도서의 활자들이 눈이 아닌 머리로 바로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몽상가였던, 계속해서 꿈꾸고자 하는 그에게 중독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독은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저항하고 부정하기에 고립되었고 쓸쓸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계속 흔들어대는 시대가, 사상이 그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 다소 난해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초반의 이러한 표현들 때문에 독서 자체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어쩌면 기독교인들에게 신성모독처럼 느껴지는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의 정신 상태나 현재 상태 등을 비유하는 표현일 수 있지만, 그것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 때문에 가볍게 읽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그런 것들을 표현하기보다는 은유적 표현이 많지만, 이 때문에 내용에 접근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총 평

어딘지 난해하고 몽환적인 표현들과 더불어 같은 말을 반복하는 모습의 형이상학적이고 혼란스러운 그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억압되었고, 부품처럼 살아갔지만 자아를 찾았기에 억눌렸던 감정들을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현재의 두려움 때문에 과거를 택한 것 같은 그의 선택은 시대가 아닌 사상에 패배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선택은 미래이기도 하며, 현재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7 구성 8 재미 6 재독성 8 표현력 9 가독성 7 평균 7.5)


과거가 현재이고 미래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함에 중독되는 과정.


감상자(鑑賞者)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01209373

#도서리뷰 #북리뷰 #리뷰 #서평 #독서 #도서추천 #책리뷰 #도서후기 #추천도서 #도서 #책 #책추천 #너무시끄러운고독 #보후밀흐라발 #소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 P10

한 번도 진짜로 버림받아본 기억이 없는지라 그렇게 나 자신을 방기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 P18

침대 위로 솟은 책들의 천개를 올려다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2톤짜리 닫집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무게에 짓눌려 내 몸이 구부정해진 것이다. - P33

파리떼는 떠나가고 없었지만 콘크리트 포석 밑에서 쥐들이 찍찍대며 이 도시의 모든 하수도에서 절망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하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이 변함없이 창궐해 있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 - P68

넘실대는 노란빛이 그녀의 어깨와 목을 비추고, 불의 열기에 싸인 변화무쌍한 옆모습이 촉촉한 금빛 땀으로 인해 한층 선명히 드러나 보였다. - P79

노란색과 오렌지색 장갑을 낀 노동자들이 책들의 내장을 꺼내 곤두선 책장들을 무정한 컨베이어 벨트 위로 던진다. 그것들은 거대한 피스톤 밑으로 조용히 흘러들어 보따리 크기로 압축된 뒤 제지 공장에서 생을 마친다. - P94

굴욕감에 잔뜩 긴장한 나는 뼛속 깊이 퍼뜩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새로운 삶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이었다. - P106

우리는 가을 하늘에 연을 날린다. 그녀가 연줄을 쥐고 있다······ 저 위를 올려다보니 연이 비통한 내 얼굴을 하고 있다. 집시 여자가 밑에서 보내는 메시지 하나가 연줄을 타고 올라 간다. 메시지가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며 전진해 마침내 나와 닿을 거리에 이른다. 나는 손을 내민다······ 어린아이가 쓴 듯한 큼직한 글씨가 쓰여 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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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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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처음부터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종이 편지로 진행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페이스북으로 보내는 메시지였습니다.

짧지 않은 내용들이 서로에게 이어지는 것과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은 구시대의 문화와 현시대의 문화가 적절하게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묘한 섞임이 '기묘한'과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내 접었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화된 것 같았고, 어딘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주고받는 편지는 어느 순간부터 외설적인 느낌을 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딘지 묘한 느낌을 품고 있었고, 감정을 전달함에 있어서 무언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외설적인 표현들이 줄지어 나타났고, 이전까지의 분위기를 단숨에 뒤집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전혀 가시질 않았습니다.

단순히 표현을 함에 있어 사용하는 단어나 설정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습니다.

그렇게 추악한 범죄자의 이면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 불편함이 신선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신선함의 기분은 너무나 짧게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불편함이 아니라 불쾌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독자가 느꼈어야 할 감정을 편지 내용인에 직접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억지로 이해를 이끌어내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차라리 미완으로 남겨두었거나, 불편한 감정을 아무런 말 없이 이어가게 했다면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감정은 확실하게 전달된다며 칭찬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는 흥미를 끌기 위해 일부 정보만을 전달하며 도서를 유도하는 식의 광고가 많이 보이는 편입니다.

어쩌면 이 도서는 그러한 용도에 아주 걸맞은 구성일 수도 있습니다. 편지 형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독서를 마칠 때쯤이면 속빈 강정을 만난 것처럼 큰 실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해당 도서가 가볍고 손쉽게 읽힌다는 점입니다.

많은 페이지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각 페이지들도 짧은 내용들만 이어집니다.

또한 편지 형태이기에 구어체로 내용을 전달하여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이 도서에 무엇이 남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내용을 페이스북이라는 SNS와 단순 결합하여 재구성했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써놓은 소설이 억지로 변화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서면으로 작성된 편지로 만들어진 소설을 '요즘' 소설처럼 만들기 위해 단순하게 SNS와 결합한 것 같았습니다.

물론 억측일 수 있지만, 그만큼 해당 도서는 실망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 외설적인 내용들이 연달아 나옵니다.

물론 성인이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어딘지 불편한 감정까지 느껴졌습니다.

  • 편지 형태가 갖고 있는 한계가 많이 보였습니다.

주고받는 감정에 대해 독자가 직접 느꼈어야 할 텐데, 아무런 설명을 해주는 이가 없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담아내어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 러브 레터라는 제목에 낚여 실망을 할 수 있습니다.

로맨스 물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총 평

많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어 가볍고, 구어체로 이루어진 편지 형태의 내용들이 쉽고 편안하게 독서를 이어갈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본문은 얼핏 보여주었던 신선함을 외설적 표현들과 범죄자의 모습을 녹여냄으로써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으며, 이 감정을 직접적으로 편지에 담아내면서 불쾌한 감정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차라리 편지 형태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풀어내는 식이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4 구성 6 재미 5 재독성 3 표현력 5 가독성 7 평균 5)


형태의 한계에 갇혀 구구절절 설명해버리는 이상한 편지


감상자(鑑賞者)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098559271

#도서리뷰 #북리뷰 #리뷰 #서평 #독서 #도서추천 #책리뷰 #도서후기 #추천도서 #도서 #책 #책추천 #기묘한러브레터 #야도노카호루 #소설

학생 시절에는 이런 물건으로 문장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이 정도 문장을 치는 데에도 일요일 하루를 전부 쓰고 말았습니다. - P68

그러니까 이건 피장파장이라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이기적인 말이지만, 이것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었던 일념 때문이었어요. - P151

그러니까 바꾸어 말하자면, 행운의 신과 불행의 신 양쪽이 한꺼번에 찾아온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없었어요. - P166

아니면 자신의 비극이 제 탓이라고 말하기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아니, 과연 당신의 인생을 비극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진짜 비극이라고 해야 할 인생은, 본의 아니게 당신과 관련되었던 사람들 쪽이 아닐까요?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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