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종이달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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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시작된 듯한 이야기는 어떠한 색도 없는 듯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딘지 칙칙하게 생기가 없는 듯 보였고, 그런 분위기를 만든 당사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번잡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색이 있는 듯했고, 무엇인가 특징이 있어 보입니다. 당사자인 그녀는 충돌이 만들어 낸 혼잡 속에, 그 무리에 완전히 속해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녀가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왜 범죄를 행하게 되었는지 본인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의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각각의 시선과 이야기는 저마다 달랐고, 그녀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따라가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어딘지 난잡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는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며 계속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곤 했습니다. 본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외도와 그것을 고백하며, 정당성을 찾는 도구로 그녀를 추억합니다.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그들의 성격과 특색을 다르게 담아내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그녀와 전혀 상관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과거에 잠깐 스쳤던 인연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그녀는 나름 중요한 위치에 있는 듯 보였고, 그렇게 각각의 인물들이 각자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추억한 뒤 그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은 정작 그녀가 떠올리는 대상에 그들은 전혀 포함되지 않거나 아주 잠깐 언급되는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이 과연 그녀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탐구하고 싶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전개된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됐습니다.

처음부터 극적인 전개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저 조금씩 물들어 가는 듯한 것 같았습니다.

조금씩 내리던 이슬비를 무시하다가 어느새 홀딱 젖어버리듯, 아주 약한 환각제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마약에 중독된 듯 그녀는 그렇게 완전히 물들어 버렸습니다.

그녀에게 마약은 돈으로 이루어진 환상과 호화로움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를 완전히 취하게 했고, 중독시켰습니다. 처음은 내연남을 만나며 가벼운 마음으로 접했고, 그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많아질수록 그녀를 송두리째 흔들고 변화시켰습니다.

그 변화는 어느 사이엔가 태풍으로 바뀌었고, 자연스럽게 그녀는 태풍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이 일시적인 평화로움이 있듯 그것이 영영 지속될 줄 알았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발만 움직여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바람을 느끼면서,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약에 완전히 중독된 상태였고, 그 달콤함이 두 눈을 가려버렸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공기의 떨림이, 말도 안 되게 고요한 듯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스스로 눈을 감아 회피하고, 그저 잠잠해지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변의 소리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더욱 공포감에 휩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정하지 않던 고통은, 애써 외면하던 태풍은 그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온전히 다가왔습니다.

이제껏 그에게 받던 마약성 진통제 투약은 종료됐고,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눈을 떴고 태풍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부질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만약이라는 여러 가정들을 들먹였습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이름하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 그녀는 단 하나 선택했고, 그것이 현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만약은 그저 상상 속의 시간 여행이었으며, 그러한 사실은 그녀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만이 남았습니다. 그 어떤 변명도 핑계도 통하지 않는 그것을 그저 회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누군가 구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최소한 고통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구원이란 그 사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닌, 현실로 온전히 돌아가는 용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보다 수동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린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도서 내에서 '나는 그녀와 달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각자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다르고, 그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만 다를 뿐입니다.

그녀의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그를 다르게 보는 것 같았지만, 처음의 순수했던 모습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그녀의 과거가 행했던 태도를 그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마지막에 그와 같은 말을 했던 것이 그 증거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과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특별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한 누군가에게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본질적으로 그녀와 같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범죄에 가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들 또한 향기가 나는 가짜 달로 눈을 가리며 행복함을 느끼고, 그것이 가짜임을 알지만, 순간의 행복함과 향기에 취해 영영 그것을 치우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차이점이라면 누군가는 그것을 치우고 진짜 달을 보기도 하며, 흐린 하늘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짜 달을 치운 것을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언제 치우느냐, 즉 언제 현실을 마주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늦게 현실을 마주했을 뿐이며, 마약에 조금 더 취해 있었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이들과 우리들은 그녀보다 조금 빨리 마주해 다른 결과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는 지금도 종이달을 눈 위에 올려놓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쉬운 점

  • 약간은 현대화되지 못한 배경으로 느껴져 범죄 성립 자체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닮은 듯한 구석이 많아 현실감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 여성의 범죄 원인이 남자가 빠지지 않는다는 등이 반복되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약간은 과거의 시선이며, 일본의 풍토이지만 이는 현재의 우리나라도 적용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 어느 정도 우리 모두 그녀와 같다는 것을 지속해서 보여줍니다.

이는 강점이 될 수도 있지만, 너무나 획일적인 시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 외설스러운 상황들이 등장하고 이런 묘사가 생각보다 디테일합니다.

내용에 누가 되거나 불편함보다는 적절하게 등장하지만 이런 부분이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 평

눈을 가리는 것으로 선택한 종이로 만든 달은 단순히 모양만 갖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중독성 강한 향기를 품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실제가 아닌 환상만을 좇게 될 위험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강한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마는 종이는, 결국 눈앞까지 다가와 있는 태풍을 직접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공포감에 질린 탓인지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일정 부분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어 소름 돋게 됩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6 구성 7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6 가독성 7 평균 6.5)

바람과 함께 날아간 종이달이 보여주는 눈앞의 태풍과 공포, 그로 인해 얼어붙는 신체까지.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24204207


감상자(鑑賞者)






나는 무언가를 얻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잃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 P32

그 방이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았다. 요컨대 은둔하기에. - P46

니시신주쿠의 직장에 도착해서 누구랄 것도 없이 붙잡고 지껄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며 실제로 평소에는 천천히 걷던 길을 총총걸음으로 회사에 갔지만, 막상 동료나 부하들과 얼굴을 마주하니 말할 수가 없었다. 왠지는 모른다. - P49

마사후미의 말에 리카는 언뜻 위화감을 느꼈지만, 무엇에 대한 위화감인지는 알 수 없었다. - P138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말을 하다니, 좀 놀랍군. 리카는 마사후미의 목소리를 반추했다. 그런 말을 할 여자인 줄 몰랐다. 그런 천박한 말을 하는 여자인 줄 몰랐다. 마사후미의 목소리는 리카의 안에서 점점 말을 바꾸었다. - P149

하지만 그 생각과 정반대로 비명을 지르고 싶은 듯한 초조한 감촉이 천천히 온몸에 퍼져가는 것도 역시 느꼈다. 그 익숙한 느낌을 떠올렸다. 자신이 우메자와 리카의 일부라는 느낌. 리카는 그 느낌이 온몸에 퍼져나갈 것 같은 것을 간신히 막았다. - P168

리카는 아키에게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을 신경 써서가 아니란 걸 인정했다. 아키처럼 하나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78

왁자지껄한 회식 속에서 문득 학생 시절을 떠올렸지만, 사실은 다르다. 나는 학생 시절에도 그런 식으로 떠들었던 기억이 없다. 기분 좋게 취해서 웃기만 했던 기억밖에 없다. 나는 학생 시절을 떠올린 게 아니라, 학생 시절 상상했던 풍경을 떠올렸을 뿐이다. - P217

이 아이는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방향으로 원하는 방법으로 곧장 갈 수 있을 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걸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을 텐데. - P247

그들이 자아내는 혼잡하고 왁자지껄하고 젊은 에너지로 넘치는 공간은 리카에게 거역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전문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리카가 공상했던, ‘나 이외의 학생들‘의 일상이었다. 공상하고, 동경하면서도 경멸하며, 자신이 멀리했던 것이었다. - P261

리카는 무수한 ‘만약‘의 끝에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그러나 그 몇 개의 ‘만약‘을 자신은 선택하지 않았고, 그리고 1997년, 거의 동시에 두 가지 일은 일어났다. - P331

거기까지 생각한 유코는 리카와 자신, 그때 자작나무 가로수 길을 함께 걷던 두 사람이 지난 20여 년 사이에 얼마나 서로 먼 곳으로 와버렸는가를 새삼 깨달았다. - P371

어째서 사람은 현실보다 좋은 것을 꿈이라고 단정 지을까. 어째서 이쪽이 현실이고, 내일 돌아갈 곳이 현실보다 비참한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까. - P456

"이런 세계가 정말로 있군요" 하고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휘둥그레졌던 고타는 놀라울 만큼 빨리 ‘이런 세계‘에 익숙해진 듯이 보였다. - P459

흐뭇하다기보다, 복수를 한 것 같은 기분과 비슷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복수인지, 이것도 역시 따져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리카는 그저 그 유쾌한 기분만을 맛보았다. - P510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너무 당연해서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리카는 한 번도 그런 걸 부탁한 적이 없다. - P531

돈이란 것은 마르지 않는 용수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마르는 일 없이 계속 샘솟아, 주위 사람들의 목을 적시는 생활을 돕는 것.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퍼다 쓰면 되는 것. - P539

리카는 안도하고 동시에 절망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처럼 강한 끈으로 맺어져 있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안도와 자신은 이 두 사람 같은 깨끗하고 건강한 관계를 절대 만들 수 없다는 절망이었다. - P551

넌 무얼 샀니? 무얼 손에 넣으려고 한 거니? 그 물음은 어느새 유코 자신에게 향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절약을 한 거지. 무엇 대문에 저축하려고 한 거지. 그래서 무엇을 얻을 생각이었던 거지. - P577

마키코와 무스미는 정반대의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어떤 한 점에서 그녀들은 완전히 똑같지 않을까 싶었다. 즉, 돈으로 무엇이든 생각대로 할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믿는 부분이. - P582

우메자와 리카를 아는가.

대체 누가 우메자와 리카를 알고 있다고 할까. 나조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 P602

가정은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무수히 흩어져갔지만, 하지만 어떤 가정을 해도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P611

가, 움직여, 하는 마음의 소리와는 반대로 리카의 발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 P613

집을 나설 때는 완벽한 화장에 완벽한 코디네이트를 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지금 유리창 속에서 몹시 초라해 보였다. 엄마도 아내도 되지 못하고, 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한심한 여자로 보였다. - P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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