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아직도 가난이 수치 대신에 어떤 로맨틱을 품고 있고, 흩어진 머리는 정신적 변태가 아니라 자유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되며, 면밀한 계산과 부지런한 노력 대신에 무료로 인류를 구제할 계획이 심각히 토론된다.-40쪽
가라타니 고진의 비평서 번역을 도맡아 해온 조영일. 한국 문단문학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매섭고도 통쾌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슬퍼런 문장에 나는 그가 왠지 장년층 투사의 몽타주일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지원에서 처음 그의 강연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ㅋㅋ) 창비와 문학동네의 야합, 황석영과 신경숙의 지극히 문학적인 통속성, 장편소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문단문학의 종언, '국가와의 긴장감'을 상실한 문인들, 소외된 자들을 착취해서 고프지도 않은 배를 불리는 한국문단의 자기기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론 같지 않은 평론'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는 정여울. 하지만 그 어떤 비평보다도 나에게 많은 의미를 생산케 했다. <다지원> 강연에서 그 차분한 목소리를 익히 들어서인지 읽는다기보다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무리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반성, 그리고 문학의 언저리에 발딛고 있는 자의 고뇌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녀를 통해 알게된 김애란, 한유주, 윤성희의 작품들은 소설에 무심하고도 냉소적이었던 내게 선물과도 같은 위안이었다.
'근대문학의 종언' 앞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라타니 고진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그저 문학의 아우라에만 집착하는 그의 비평은, 그의 에티카는 이미 훼손될 운명에 놓인 것 아닐까. '전복을 위한 전복'의 에티카를 꿈꾸지만 그 전복의 수혜는 독자의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부질없어 보인다. 종언에 대해 온전히 몸부림치지도 못하면서 곁눈질하는 양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