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우울증> 출간 기념으로 로쟈 선생님의 강연이 있었다. 출판사 사무실 내에서 열린 강연이라 색다르기도 했고 아늑했다. ^^ 그린비 블로그에 소식이 올라왔기에 스크랩한다. (강연 후기도 올려야 하는데 요즘 귀차니즘이 초절정기인지라.. ^^)
낭만적인, 너무나 낭만적인
그린비 이야기 2011/09/27 09:00 by 그린비
─『애도와 우울증』 출간기념 저자특강 후기
반....반갑습니다!
지난 목요일(22일) 오후, 그린비 식구들은 오랜만에 손님맞이 준비에 분주했습니다. 이날 그린비 사무실 내에서 『애도와 우울증』 출간기념 저자강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의실 테이블 위치도 이리저리 바꾸어 보고, 화분들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아이구, 허리야) 정신이 없었습니다. 깔끔해진 회의실을 한 번 보고, 짹깍짹깍 가는 시계를 한 번 보니 왠지 마음이 붕 뜨는 것 같았습니다. 『애도와 우울증』 저자강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웰컴 투 그린비♡
7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독자 분들이 속속 도착하셨습니다. 어쩐지 다들 익숙하게 자리에 앉으셔서, 어쩐지 익숙하게 책을 펼쳐 읽고 계십니다
(포...포스가 남다르다!!!-ㅁ-;;;). 몇몇 독자 분들의 손에 쥐어진 『애도와 우울증』에는 색색깔의 포스트잇이 가지런히 붙어 있기도 했는데, 강의가 끝난 후 어떤 질문을 던지실까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역시 뒷담화는 재밌어
강의실 저 뒤쪽에 왠지 모르게 뾰루퉁하게 앉아 있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네, 접니다). ‘선생님, 이렇게 재미있는 분이셨습니끄아? 이 얘기는 왜 책 만들 때는 안 해주셨던 건가요?’라는 원망 어린(?) 표정으로 말입니다. 물론 농담이고요. 그만큼 재미있는 강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언변이 좋아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는 많았으나, 입이 가벼워서 데카브리스트 혁명 준비 당시 친구들이 끼워주지 않았다는 푸슈킨의 비화. 데카브리스트 봉기날 광장으로 달려가던 푸슈킨의 발걸음을 되돌려, 결과적으로는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슈킨을 살려 냈던 '문학적 토끼'(?) 두 마리에 얽힌 이야기
(러시아에서는 '토끼'가 자신을 앞질러 가는 것이 불길한 징조라고 합니다. 푸슈킨은 봉기에 참여하러 광장으로 나가던 길에 이 토끼들을 보고 바로 집으로 되돌아갔다고 하네요). ‘욱’하는 성질이 있어 툭하면 결투를 벌였던 레르몬토프의 이야기
(언제 죽을지가 문제였지, 결국은 결투로 죽을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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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애도와 우울증』에도 나오는 얘기들이긴 하나
(이렇게 뒷담화 식으로 나오진 않습니다^^), 선생님의 입담을 빌려 들으니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이 외에도 선생님의 '뒷담화'는 계속되었으니!!! 박사논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책이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 등등 독자 분들이 궁금해하실 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 주셨습니다. 덕분에 강의실에 웃음꽃이 만발하였으니, 역시 뒷담화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응?).
강의 중간에 몰래 찰칵. 너무 열띤 분위기여서 작은 셔터소리조차도 죄송할 정도였습니다. 작은 규모여서 더 화기애애했던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사진의 배경으로 보이는 가지런한 서가는 '절대' 설정된 것이 아닙니다-ㅁ-;;;;).
낭만주의 시인에게서 빠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푸슈킨과 레르몬토프가 각각 애도적 유형, 우울증적 유형임을 밝히기 위해 함께 읽어 본 주된 텍스트는 ‘사랑’과 관련한 시였습니다
(실제 책에는 '정치시', '메타시' 등등 다양한 유형의 시가 언급됩니다). ‘우린 사랑했었지, 그렇지만 우리의 사랑은 끝났으니, 서로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야 해’라고 말하는 듯한 푸슈킨의 시. ‘다른 사랑으로 이전의 사랑이 대체될 수 있다’는 푸슈킨의 태도에서 우리는 ‘애도’를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레르몬토프는 어떤가요. ‘우리는 헤어졌어, 그렇지만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지.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레르몬토프에게 사랑의 상실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우울증적’인 태도의 전형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쏘쿨(so cool) 혹은 쏘핫(so hot)일 수밖에 없을까요. ‘애도’와 ‘우울증’ 사이의 '그 어디쯤'은 없는 것일까요. 강의를 듣다 말고, 과거 사랑의 경험을 뭉게뭉게 떠올렸던 건 저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먼 산 바라보는 듯한 표정 지으셨던 분들... 저는 봤습니다=ㅁ=). 헤어지자는 애인을 한 달 넘게 쫓아다니며 울고불고 매달렸던 스무 살 적의 사랑, ‘우리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랄게’라며 쿨하게 이별을 고했던 최근의 사랑……. 아~ 그렇게 그렇게 깊어가는 가을밤이었습니다.
너무나 ‘낭만’적이었던, 그날 밤
교정 막바지 작업 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노래가 하나 있었습니다. "레르몬토프의 「나 홀로 길을 나선다」라는 시에 멜로디를 붙인 노래가 있는데, 정말 좋다. 예전에 한국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쓰인 적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찾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업무 시간에 찾아본 것 아니냐, 그린비 사장님은 이런 사실을 알고 계시냐’며 저에게 면박을 주셨더랬지요ㅎㅎ;;;;). 그런데 그만 남들보다 먼저 마음속으로 가을을 맞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흑. 가사도 알아듣지 못하겠는 이 노래는 어이하여 내 가슴을 이리도 후벼 파는 것이냐!!!
강의 마지막에 저를 때 이른 가을로 밀어 넣은 그 노래를 함께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법 선선해진 가을밤, 강의실 불을 다 꺼 놓고, 2시간 전까지만 해도 면식도 없던 분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그 공간 안에 감돌던 공기를 뭐라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요. ‘너무나 낭만적이었다’는 상투적 표현을 쓰기는 싫지만, 러시아 낭만주의 문학을 함께 읽고, 생각하고, 게다가 노래로 듣기까지 했던 그 밤은 정말이지 ‘낭만’적이었습니다.
행사에 미숙한 담당편집자는 혹여 시간이 촉박할까 1절만 듣고 말 요량으로 음악볼륨을 낮추었으나, 음악에 푹 빠져 있던 수강생 분들의 눈총을 받고 다시 볼륨을 높이고 말았습니다. 음악을 끝까지 듣고 불을 켰을 때,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던 그때, 다들 기억 나시나요? 집에 가셔서 ‘그 음악이 뭐였더라?’ 찾고 계실 독자님들을 위해
(‘도대체 뭔 노래인데,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판다는 거여?’라고 궁금해하실 독자님들도 계실 것 같아) 노래 제목과 유튜브 영상도 함께 올립니다.
레르몬토프의 시 「나 홀로 길을 나선다」가 가사로 쓰인 안나 게르만(Anna German)의 노래입니다. 한국에서는 1999년 드라마 「안녕 내 사랑」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깨알 같은 질문, 질문, 질문
"이런 소규모 강의에서 질문 없으면 정말 어색합니다;;"라는 선생님의 말로 시작된 질의응답 시간. 깨알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 중 하나만 골라 보았습니다.
Q.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분석틀로 다른 러시아 작가들이나 한국 시인들도 분석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향후에 이와 같은 연구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우울증적 시인의 한 유형으로 ‘기형도’가 떠올랐는데, 한국 작가들도 분석해 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A. 사실 이 논문을 쓰고, 후속작업을 해볼 생각은 없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기에 쓰인 이론을 일반화시키려면 다른 많은 작가들, 사례들에게도 적용을 해봐야 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연구가 러시아 낭만주의 문학뿐 아니라 문학적 태도의 일반론적인 유형학을 구상하는 데에도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상실'은 상당히 보편적인 주제라, 일반 다른 문학들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떤 샘플을 하나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기형도는 전형적인 '우울증적 시인'일 것 같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시인의 시와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분석틀이 만나면, 또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