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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시작하면 잠들 수 없는 세계사 - 문명의 탄생부터 국제 정세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김도형(별별역사) 지음, 김봉중 감수 / 빅피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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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지만 새롭지 않은, 무난한 내용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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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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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님은 얼마 전에 시몬 베유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신에 대하여>를 쓰게 된 배경을 밝힌다. 그렇다면 시몬 베유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할 거 같았다.

 

시몬 베유는 초기에는 혁명적 사상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녀는 억압의 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노동자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을 비판했다. 직접 공장 노동을 경험하며 노동자가 단순히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파괴되는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시몬 베유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서 힘은 행사하는 자도, 당하는 자도 모두 사물로 만든다고 말하며 정치철학에서 존재론적인 문제로 확장한다.

 

그녀는 인간은 왜 착취하고 착취당하며 살아갈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이렇게 현실을 깊이 직시한 결과 초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신이 주신 바른 상태에서 너무 멀어진 것이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즉 인간 임의대로 해석하고 행위 되어 원래의 원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 자유를 자기중심에 놓았고 이 자기중심성이 힘의 구조를 낳았다. 힘의 구조에서 벗어나 파괴된 인간을 복구하고 제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회복할 수 있는 지점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회복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malheur)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다. 육체적 파괴, 사회적 추방, 나아가 영적 침묵을 뜻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무력화된다. 하지만 이 무력화된 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중심(자아)이 붕괴되면 그 사이로 빈 공간이 생기고 은총이 들어올 수 있다고 보았다. 은총은 위에서 내려오는 힘으로 인간 스스로는 초월할 수 없다. 초월은 받아들임이다. 그것은 초월자가 주는 것이고 줄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총을 얻지 못한다. 다만 은총이 들어올 수 있도록 비워질 뿐이다.” 한병철 님도 <신에 관하여>에서 인간 쪽에서의 찾아나서기는 탈진으로 이어질 따름이”(23)라고 시몬 베유의 말에 동의한다.

 

기다림은 무위이고, 주의이며, , 읽기, 바라봄, 처분 불가능, 수줍음이다. “‘중력은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중력은 과 멀어지게 한 과학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과학은 오늘날의 또다른 신이다.”(26) 시몬 베유는 신의 개념을 기독교적 구조에서 빌려왔지만 완전한 신자는 아니다. 그녀는 어떤 집단도 배타적일 수 있다고 보았고,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신은 플라톤적 선에 가깝고 존재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근원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인 선(good)으로 자리한다.

 

신은 긍정할 수 있다. 나 역시 신은 이야기하지만 인간은 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초월적 존재들은 늘 선, 사랑, 자비, 나눔을 말한다. 그것을 인간이 착취, 억압, 독식으로 오독할 뿐이다. 한병철 님은 <신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있는 그대로 보고 내려놓고 가만히 기다려라.’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 포기하며 세계의 흐름에 그저 동조하며 주일의 기도로 티끌 같은 변명을 보탤 뿐이다.

 

나는 사람들이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한데 그건 아마도 시몬 베유가 말한 자기중심성때문인 거 같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신을 따른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신의 말씀과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신을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들조차 경외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신을 내가 왜 믿어야하는가. 그럼에도...

 

삶을 한낱 생존이상으로 만드는 최고의 아름다움은 앞으로도 늘 과거의 종교적 아름다움일 것이다.”(34)

 

p.s. 사물을 향한 주의에 처분 가능하게 만들기”(15)가 들어간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오타인 거 같다. 앞부분에서는 처분 불가능성이 주의를 심화한다고 했는데 주의를 심화한다는 건 주의를 깊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럼 처분 가능하게 만들기와 처분 불가능성은 서로 부딪힌다. 그러므로 처분 가능하게 만들기처분 불가능하게 만들기로 수정되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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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탈출 도감 3 위기 탈출 도감 3
스즈키 노리타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이아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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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재미있게 보았어요. 각권마다 위기탈출수준(위기감정그래프)을 나타내는 그림이 다른데 아이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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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탈출 도감 3 위기 탈출 도감 3
스즈키 노리타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이아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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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재미있게 보았어요. 각권마다 위기탈출수준(위기감정그래프)을 나타내는 그림이 다른데 아이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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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 - 이주배경청년의 일, 배움, 성장에 관하여 점선면 시리즈 6
고예나 지음 / 위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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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지방, 농촌, 다문화가정, 여성. 폭력, 차별, 저소득, 소외. 각기 서로 다른 말이지만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느낀다. 사회적 시스템은 약자를 약자가 처할 수 있는 상황을 예견하고 선제적으로 지원하기위해 만들어진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며, 이렇게 쓰는 돈은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그것은 나도 혜택을 못 받아봤는데, 왜 내 돈을 다른 사람 퍼주는데 쓰느냐는 분노가 아닌가. 죽도록 노력했는데 왜 그들이 혜택을 받아 내가, 혹은 내 자식이 밀려나야하느냐는 분노가 아닌가. 왜 우리의 분노는 더 크고 강한 곳이 아닌 작고 작은, 약하고 약한 곳으로 향해야하는가.

여기 스스로를 ‘이주배경청년’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흔히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유튜브에서 다른 국적의 사람과 연애하는 영상에 환호를 보내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같은 시퀀스를 다른 시선으로 본다. 그리고 굳이 다른 점을 분리해내려고 한다. <배려와 차별>이라는 챕터에 보면 교육·취업 분야 복지에 대해 나온다. 일부에서는 역차별이라면서 ‘국민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한다. 다문화가정에서는 다문화가정 관련 복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정당한 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저자도 말했듯이 이러한 복지는 대체로 다문화가정 외 다른 복지대상층인 탈북민, 저소득자, 한부모가정, 장애인 등과 묶여있다. 개별적 지원이라기보다는 다소 뭉뚱그려져있다. 모자란 부분도,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을 늘려나가는 게 쉬운 법이다. 나는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내가 그들과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문화가정 복지를 지지하는 소리를 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하지만 약자에게는 수가 중요하다. 이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참여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이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힘을 보낼 수 있다. 우리는 개별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여전히 약자로 있는 자들을 위해 편드는 것이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김영화 지음, 메멘토, 2024)에는 아프간 난민이 실제로 우리나라에 와서 겪은 일들이 담겨있다. 전쟁으로 인해 제 나라를 떠난 사람들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그들이 우리나라로 왔을 때는 제 나라를 ‘버린’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한다. 비어있는 노동 분야에 들어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이라며 적대한다. 실재하지 않는 위험에 아이들이 빠질까 걱정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일 때,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올 때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은 달라진다.

최근 들어 장애인, 다문화가정, 노동 등과 같은 키워드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좀더 들을 필요가 있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외면하기에는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이 너무 크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면죄부 삼고 싶지는 않다.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기억해주기를,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외면하지 않기를.

밑줄 그은 문장들

“필리핀에는 이제 엄마가 부양할 사람도, 신경 써야할 사람도 없다. 돌아가서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다고 한다. 그저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집에서 평화롭고 조용히 살기를 원한다고.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한국 집은 무엇이느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상처를 받은 공간“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나라를 선택한 건 자신이고, 그래서 당신은 그 선택에 책임을 다 했고 후회는 없다고 했다.”

-92~93쪽

“원하는 만큼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만큼 높은 경제적 수준이 필요했다.”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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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20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작가 소설은 하루살이 님 서재를 참고해야겠군요^^

하루살이 2026-01-21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차트랑 2026-02-23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하루살이님,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좀 더 말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찾아가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글, 좋았습니다. 평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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