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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탈출 도감 3 위기 탈출 도감 3
스즈키 노리타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이아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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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재미있게 보았어요. 각권마다 위기탈출수준(위기감정그래프)을 나타내는 그림이 다른데 아이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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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탈출 도감 3 위기 탈출 도감 3
스즈키 노리타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이아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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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재미있게 보았어요. 각권마다 위기탈출수준(위기감정그래프)을 나타내는 그림이 다른데 아이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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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 - 이주배경청년의 일, 배움, 성장에 관하여 점선면 시리즈 6
고예나 지음 / 위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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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지방, 농촌, 다문화가정, 여성. 폭력, 차별, 저소득, 소외. 각기 서로 다른 말이지만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느낀다. 사회적 시스템은 약자를 약자가 처할 수 있는 상황을 예견하고 선제적으로 지원하기위해 만들어진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며, 이렇게 쓰는 돈은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그것은 나도 혜택을 못 받아봤는데, 왜 내 돈을 다른 사람 퍼주는데 쓰느냐는 분노가 아닌가. 죽도록 노력했는데 왜 그들이 혜택을 받아 내가, 혹은 내 자식이 밀려나야하느냐는 분노가 아닌가. 왜 우리의 분노는 더 크고 강한 곳이 아닌 작고 작은, 약하고 약한 곳으로 향해야하는가.

여기 스스로를 ‘이주배경청년’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흔히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유튜브에서 다른 국적의 사람과 연애하는 영상에 환호를 보내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같은 시퀀스를 다른 시선으로 본다. 그리고 굳이 다른 점을 분리해내려고 한다. <배려와 차별>이라는 챕터에 보면 교육·취업 분야 복지에 대해 나온다. 일부에서는 역차별이라면서 ‘국민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한다. 다문화가정에서는 다문화가정 관련 복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정당한 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저자도 말했듯이 이러한 복지는 대체로 다문화가정 외 다른 복지대상층인 탈북민, 저소득자, 한부모가정, 장애인 등과 묶여있다. 개별적 지원이라기보다는 다소 뭉뚱그려져있다. 모자란 부분도,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을 늘려나가는 게 쉬운 법이다. 나는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내가 그들과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문화가정 복지를 지지하는 소리를 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하지만 약자에게는 수가 중요하다. 이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참여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이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힘을 보낼 수 있다. 우리는 개별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여전히 약자로 있는 자들을 위해 편드는 것이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김영화 지음, 메멘토, 2024)에는 아프간 난민이 실제로 우리나라에 와서 겪은 일들이 담겨있다. 전쟁으로 인해 제 나라를 떠난 사람들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그들이 우리나라로 왔을 때는 제 나라를 ‘버린’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한다. 비어있는 노동 분야에 들어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이라며 적대한다. 실재하지 않는 위험에 아이들이 빠질까 걱정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일 때,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올 때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은 달라진다.

최근 들어 장애인, 다문화가정, 노동 등과 같은 키워드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좀더 들을 필요가 있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외면하기에는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이 너무 크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면죄부 삼고 싶지는 않다.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기억해주기를,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외면하지 않기를.

밑줄 그은 문장들

“필리핀에는 이제 엄마가 부양할 사람도, 신경 써야할 사람도 없다. 돌아가서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다고 한다. 그저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집에서 평화롭고 조용히 살기를 원한다고.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한국 집은 무엇이느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상처를 받은 공간“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나라를 선택한 건 자신이고, 그래서 당신은 그 선택에 책임을 다 했고 후회는 없다고 했다.”

-92~93쪽

“원하는 만큼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만큼 높은 경제적 수준이 필요했다.”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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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20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작가 소설은 하루살이 님 서재를 참고해야겠군요^^

하루살이 2026-01-21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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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아들>이라는 제목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책의 맨 앞에 있는 글들로 짐작할 수 있다.

본문의 <응급실> 챕터에 보면 나오는 이 문장들...

잠시 후 하디가 조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하는데요?"

그러자 조지가 말했다.

"생명을 구해요."

그리고 속표지를 넘기면 다시

황홀한

기운이

밀려들면

내가

예수의 아들

된 기분이야

- 루 리드, <헤로인> 중에서

라는 단어들이 흩어져 있다. 그다지 질서는 보이지 않는다. 내(독자)가 생각해본 제목의 의미는 이 글의 맨 뒤에 남겨보려고 한다.

띠지에는

세기말 미국이 세계 문학사에

영원히 남긴 흉터

출간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이 소설집이 미국 전역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의 목소리는 완전히 자유로운 정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정신 그 자체다.

- 케빈 잠브라노(문학 비평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소설가가 '쓰고 싶은',

'써야만 하는' 소설로 늘 상상하는 어떤 책이 있다고 하자.

<예수의 아들>은 그 상상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일 것이다.

이 소설이 구현하는 영광은 작가들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높은 구역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강덕구(문화 비평가)

시작하기에 앞서 이 띠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책은 장편(혹은 중편)소설이 아니다. 케빈 잠브라노는 이 책을 '소설집'이라고 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집은 "여러 편의 소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실제로 이 책은 분량이 제각각인 글들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공통되게 화자는 '나'이고 무책임하고 방탕한 인물이다. 내용 역시 분량처럼 제각각이다. 연결되는 듯 보이지만 죽었던 사람이 버젓이 살아나(?) 다음 챕터에 등장하고, 시간의 흐름상 예전 시간대에서 진행된 이야기인 듯 한데데 버젓이 현재진행형처럼 서술된다. 이 책을 다읽고 깨달은 것은 시간의 흐름으로 사건들을 재배치하고 인과관계를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독특함은 형식에도 있다. 우선 각 글들의 제목이 글의 맨 뒤에 위치해있다. 마치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구성이다. 일반적으로 제목은 글의 맨 앞에 위치하지만 그런 질서나 법칙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마치 순행적 흐름을 역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자꾸 뒷문장을 읽고 앞문장을 읽고, 다시 그 앞문장을 읽는 방식으로 맨뒤에서부터 문장들을 읽어나가봤다. 말이 되는 거 같으면서도 안되는, 눈도 혼란스럽고 머리도 아팠다. 이걸 의도한 걸까? 이런 구성 때문인지 차례도 책의 맨 뒤에 위치해있다.

11개의 챕터로 되어있고 글의 사이사이에는 각기 다른 어지러운 패턴들이 인쇄되어있다. 이런 식이다.


눈을 감고 손끝으로 눈 부위를 지긋이 누르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빛과 어둠이 이지러지며 묘한 패턴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묘한 기분이 들고는 한다. 마치 어디론가 날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패턴은 '나'라는 화자의 정신 상태와 글과 글 사이의 시간과 거리를 의미하는 거 같다. 그리고 그 의미는 패턴의 모양처럼 제각각으로 짐작하기 어렵다.

유일하게 언제인지를 알 수 있는 건 '응급실' 챕터에 나오는 1973년이다. 1973년의 미국은 전후 낙관이 완전히 무너지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이 동시에 흔들리던 '전환기'였다. 베트남전이 종결 국면에 접어들며(미국의 패전) 정당성이 대중적으로 부정되었고,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본격화되며 정치 불신의 시대를 열었다. 소련과의 긴장 완화로 "세계의 도덕적 리더"라는 이미지는 붕괴되었다. 오일 쇼크는 끝없는 성장의 믿음에 찬물을 끼얹었고 68세대의 이상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공동체적 이상보다는 개인의 생존과 냉소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민권운동은 계속되어 전통적 권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그런 시절이었다.

한 마디로 혼란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혼란한 시기를 대변하듯 소설 속 이야기는 분절되어있고 시간은 뒤죽박죽이다. 인과가 부서져있다. 읽은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 설명하거나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독자의 무시하는 적합하지 않은 연결을 서슴지않는다. 감각도, 표현도 제멋대로다. 아래의 내용을을 보자.

"환자분 얼굴이 컴컴해요. 뭐라고 하시는지 안 보여요."

“조지.”

내가 끼어들었다.

“뭐라고 하시는 거죠? 안 보여요. "

간호사가 오자 조지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분 얼굴이 컴컴해요.' "

<예수의 아들>, 98쪽

목소리는 듣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다. 얼굴은 낯빛이 어두울 수는 있어도 컴컴할 수는 없다. 감각과 표현도 제멋대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 대화라고 하고 있지만 서로 자기 말만 한다. 서로 맞지 않는, 어울리지 않는 질문과 대답만을 할 뿐이다. 허세에 찬 인물들이 정말로 큰 일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고 작은 일에 전전긍긍한다. 뻔번하기까지 하다. 이 글의 맨 앞에서 이야기한 인물인 조지는 자신이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을 근거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뻐기며 한다. 그러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화자인 '나'도 다르지 않다. 무언가 제대로된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약에 취해 제멋대로 한다. 의무와 책임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위해 행위하지는 않는다. 해야할 일이 많을 거 같은데 "고가 열차를 타고 달리는 거 말고는 아무 것도 할 게 없다"고 한다. 겁도 많고 걱정도 많지만 헤로인, 아편 같은 마약에 취해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는, 나중에는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나'는 분절적인 경험들을 통해 고양된 기분에 취한다. 다음의 문장은 그의 기분을 잘 드러낸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다음 날 이른 아침 앞 유리에 덮여 있던 눈이 녹고 햇살이 나를 깨웠다는 것이다. 안개가 모든 것을 뒤덮더니 햇살이 비추면서 날카롭고 기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토끼 사건은 그 이후에 일어난 걸지도 모르겠다. 혹은 ユ 전에 일어났지만 이미 다 잊은 걸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때 내 머릿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침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이 문득 극심한 갈증이 해소됐다고 느낄 때와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혹은 노예가 자기 주인과 친구가 되었을 때.

<예수의 아들>, 111쪽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결과론적인 끼워맞춤일지라도),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한다(망상일지라도). 그러면서 그는 점차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첫 번째 챕터,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사고"에 보면 '나'는 뭔가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거 같은 모습을 보인다.

나는 올즈모빌 한 대가 속도를 늦추기도 전에 그게 내 앞에 서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 안에 탄 가족들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는 우리가 이 폭풍우 속에서 사고를 겪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상관없었다. 그 가족은 나를 목적지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예수의 아들>, 24~25쪽

'나'는 그 사고를 막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사고가 난 후에는 어떤 구호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저 배회하며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뿐이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냉소한다.

그런 숨조차 많이 남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알았지만 그는 몰랐고, 그렇기에 나는 그를 내려다보면서 이 지상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측은한지 절감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결국 죽는다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내게 말할 수 없고 나는 현실이 어떤지 그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점이 내게는 지독히도 측은하게 느껴졌다.

<예수의 아들>, 30쪽

그리고 당신들, 당신들은 어이없게도 내가 도와줄 거라 기대하겠지.

<예수의 아들>, 33쪽

맨 뒤의 챕터에서 앞으로 올 수록 '나'는 겁 많고 철 없는 동네 양아치의 모습에서 뭔가에 초탈한 듯한 모습으로 바뀐다. <예수의 아들>이라는 제목은 신의 신성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권능을 이어받은 한 명의 자녀라는 망상을 드러낸다. '나'는 약에 취해 뭐든 할 수 있는 고양감에 빠져있다. 하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물일 뿐이다. 허세를 부림과 동시에 무력함에 빠져있다. 추천사에서 케빈 잠브라노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 것은 결국 약에 취해 있는 상태를 기반하여 이야기한 것일 뿐이다. 나(독자)는 그것이 어떤 위대함을 담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강덕구 평론가가 말한 '위대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영미소설을 유독 읽기 어려워하는 나의 탓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라면 시도도 못할 거라는 점에서 <예수의 아들>은 대단하다. 형식과 장치도 재미있었다. 다만 이런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한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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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리커버) -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위픽
최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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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셋째 날 오후, 너는 제주공항에 내려 102번 버스를 탄다."(8쪽)

소설의 미덕은 흔히 간접체험(경험)이라고 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 인물의 상황을 보고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것이다. 다른 존재가 되어 생각해보고 혼자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일종의 몰입이자 사고실험이다. <오로라>는 독특하게 2인칭을 쓴다. 2인칭 소설은 <엄마를 부탁해> 이후 오랜만이다.

위에 인용한 문장을 보자. '너'라는 단어를 보며 읽고 있는 주체, 즉 독자 자신을 호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하지만 왜 그래야하는가. 좀더 적극적으로 '너'가 되어보자. 제주공항에 내려 102번 버스를 타는 나를 상상해보자. 보이는 풍경은 어떻고 귀밑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은 어떠하며, 코를 간질이는 냄새는 무엇인지를 머리 속에 쌓아왔던 데이터들을 끄집어내보자.

때론 문장과 부딪히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좀처럼 몰입되지 않고 그래서 상상할 수 없는 지점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되어 보기'에서 이런 상황을 '견뎌 보기'로 전환된다. 이것 역시 재미있는 경험이다. 나로 읽고 있으나 내가 되지 못하는 경험. 나를 자꾸 튕겨내려고 하지만 버티고 참아보는 흥분.

<오로라>를 읽는 독자는 '너'가 되고, 너는 오로라가 된다. 오로라가 아니지만, 아니어서 너는 오로라가 될 수 있기도 한다. 새로운 긴장감을 느끼며 믿음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네 친구는 말했다.
그땐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믿었지. 동기 부여가 필요했던 것 같아. 일단 저질러놓고 그걸 계기 삼아서 더 힘을 내려고 했던 걸까. 아무튼 난 정말 열심히 했어.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했거든. 이제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해야겠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실패하더라도 그 방법뿐이겠지. 중요한 건 결과니까.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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