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 있으면 아빠의 49재이다. 지난 늦가을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를 앓으셨던 아빠는 우리곁을 떠나셨다.. 우리들이 아빠의 발병을 알게된것이 96년 1월이었으니까 9년정도의 세월을 우리곁에 더 계셨다. 처음 병원에서 의사에게 뇌종양이나 알츠하이머같다며 PET검사를 권유받았을 때 차라리 뇌종양이면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병세는 점점 않좋아지셔서 99년이 되니까 자주 우리들도 못알아보시게 되었고, 2000년 말쯤에는 말씀도 점점 못하게 되셨다..결국 우리들은 병원을 수소문하게 되었고, 그후부터 계속 같은 병원에 계시게 되었다..
한평생 자식들 위해 사시느라구 변변히 쉬지도 못하시고, 정년퇴임하면 1년정도 미국에 있는 오랫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가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그 어느것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셨다..한평생 자식들에게 변변한 선물 한번 못 받으셨는데, 끝까지 자식들에게 손한번 벌리지 않고 당신의 연금으로 병원비도 해결하셨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신 동안 자주 찾아가려고 했지만, 회사생활에 이리저리 바쁘다보니 항상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다. 아니 변명이었다..그래서 대부분의 월요일은 우울했다. 아빠를 보고 온날은 보고 와서 우울했다.더 자주 가야 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과 그저 조금씩 나빠져가는 아빠를 보고 온 후 맘 아파졌고, 보러가지 못한 주말은 그 사실 때문에 우울했다..
늦가을에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지셔서 큰병원 응급실에 입원하시게 되었다..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실감이 안났었다. 상태가 안정이 되어서 퇴원해도 되겠다고 해서 엄마와 남동생이 집에 있고 여동생만 병원에 있던 날,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시고 심장이 멎었다..급하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우리들은 병원으로 다시 달려갔다..난 아니 가족들은 몰랐다.심폐소생술이라는게 그런건지..갈비뼈가 3개나 부러지셨다는 말을 듣고 우리가 더이상 붙잡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의사에게 더이상 심폐소생술은 안하겠다고 차마 들어가고 있는 약물을 끊지는 못하겠지만, 이제는 편히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친척들이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 다음날 새벽 한마디 유언도 못 남기시고 그렇게 가셨다.
이제 나도 나이가 먹고 직장생활을 계속 하다보니 왜 밥벌이가 고달픈것이 아니라 지겨운 것인지 슬슬 알게 되어 가고 있다..요즘 늦은밤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다 보면 지나가는 불빛을 보면서 갑자기 아빠가 넘 생각난다..당신도 늦은밤 퇴근길에서 이런 쓸쓸함을 맛보았을까? 난 당신이란 든든한 버팀목을 가지고 있었는데, 과연 내자식에게 내가 그런 존재일까? 조금만 더 건강하셨더라면 좀 더 인생을 즐겁게 사실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남들보다 빨리 기운이 쇠하실정도로 일을 많이 하신걸까......이런저런 생각에 가끔 버스안에서 혼자 운다.
지금쯤이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고 계시겠지....몇년동안 기억못하신 첫째딸 ...이제는 기억하시겠지...이제 나 기억하지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