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서원의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 시리즈 세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욥기, 요한계시록에 이어 이번에는 다니엘서다. 세 권 모두 난해한 책이다. 그런데 백쪽 분량으로 명료하게 풀어낸다. 읽으면 내용이 그리 가볍지 않다. 그러나 책은 가볍고, 읽기 편하도록 한 속에 쏙 들어온다. 


성서유니온 선교회에서도 su 총서를 발행 중인데 한결같이 다 작다. 이제 출판 계가 작은 소책자 수준의 책들을 연이어 펴내고 있다. 


먼저 휴대가 간편하다.

한 손에 들어온다.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중요한 문제를 언급한다. 


이런 책이 얼마나 더 나올지 두고볼 일이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아침에 다시 소책자에 대해 생각했다. 정식적인 한 권의 책으로 나오는 것은 벅찬일이다. 그러나 작은 소책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 이레서원의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세세한 내용은 아니나 개론과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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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를 엿보다 : 다니엘 일상을 변화시키는 말씀 3
바바라 륭 라이 지음, 송동민 옮김 / 이레서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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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탄탄하고 명징하다. 모호한 다니엘서를 백 쪽 남짓의 작은 분량임에도 다니엘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료하게 풀어낸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은 1-6장이며 그 안에는 6개의 "궁정 이야기"(court tale)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부분은 7-12장까지다. 이곳은 일인칭 환상들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가 개관적 서술이라면 후반부는 다니엘에 체험한 개인적 환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담긴 신비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씨름하는 데 놓여 있다는 것’(112)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메시지는 신비. 일단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서론에서 저자는 다니엘이 처한 큰 국가적 위기’(10) 속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위기는 곧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다니엘서의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여전히 모든 일을 다스리고 계심을 일깨’(10)워 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고난과 위기 속에 있는 살아가는 수많은 다니엘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닌, 자신이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다니엘들에게 다니엘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것을 신비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계 캐나다인인 저자는 이민자이며, 동시에 포로적 정황에 맞닿아 있다. 다니엘의 상황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체험했지만 여전히 포로라는 현재의 삶 속에 살아가고 있다.

 

다니엘서의 순서는 연대기적이지 않다. 첫 여섯 장에서 하나님이 이 땅의 사건들에 개입하셔서 세 이방 왕의 다스림 아래 놓인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셨다’(21)고 증언한다. 그러나 나머지 7-12까지에서는 천상의 영역으로 끌고 올라가 하나님의 신비한 사역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니엘서는 논리적 순서로 엮었지만 역사적 순서는 따르지 않은 것이다. 궁정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후반에 소개되는 천상의 환상들이 삽입 되어 있다. 15쪽의 표를 참고하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다니엘서를 읽는 세 가지 방식을 제언한다. 첫째는 묵시문학으로 읽을 것, 둘째는 예언 문학으로 읽을 것, 나머지는 지혜 문학으로 읽는 방법이다. 결국 서론에서 저자는 다니엘서는 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다니엘들에게 현재를 해석하는 프레임으로서 다니엘서를 읽도록 요구한다. 그것은 보인 미래와 닫힌 현재라는 긴장이 만들어낸 신비.

 

신비는 보인 미래와 닫힌 현재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저자는 2장에서 초반부인 궁정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도 풀무불에 던져진 이야기와 사자굴 던져진 다니엘의 이야기는 주일학교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포로 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운명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즉 하나님은 유대뿐 아닐 모든 나라와 열방 가운데서도 주인이시다. 저자는 이곳에서 데이비드 발레타의 의견을 빌려와 ‘1-6장은 적대적인 통치자의 지배에 맞서는 저항문학으로 해석될 수 있다.’(29)고 말한다. 실제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신하들에 의해 조종되는 왕에게 저항한다. 그들의 고난은 저항의 결과다. 즉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저항함으로 죽지 않고 살아간다. 저항의 결과는 고난이고, 고통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으로 공동체는 파괴되지 않는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포로 된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열방들 가운데 참된 주권자’(48)이심을 선언하는 것으로 종합된다.

 

이곳에 필자의 의견을 가필(加筆) 해 본다면, 여섯 개의 이야기 속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왕의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더 윤택한 얼굴을 한 것은 숨어계신 하나님이시다. 풀무 속에서 보았던 다른 한 명 역시 사람이 아닌 숨겨진 하나님의 드러남이다. 꿈의 해석과 벽에 쓰인 글씨를 해석하는 것 역시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다. 다니엘은 닫힌 현재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해석하고 예언한다. 다니엘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현재를 계시를 통해 여는 것이다. 우리는 열린 틈을 통해 모든 나라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3장은 7장부터 시작되는 천상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후반부는 포로인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해방되는 모습’(50)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한 부활과 기업을 받게’(51) 된다. 삼인칭에서 갑자기 일인칭으로 넘어간다. 삼인칭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 그러나 일인칭은 사건을 내재화시키면서 자기 고백적으로 보게 한다. 시점이 변화는 사건을 해석하는 관점의 변화를 유도한다. 1-6장까지의 사건 역사의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한다. 반면 7-12장까지의 일인칭 관점은 하나님과 다니엘과의 친밀성을 강조한다. 일인칭은 환상 사건의 배타적 속성을 강조하며 감추어진 하나님의 은밀함을 강조한다.

 

환상은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먼저 그 환상들은 불가해한 성격’(52)을 가진다. 천사들을 통해 환상은 해석되고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나 드러난 의미조차 이해를 넘어서는 것’(53)들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환상으로 인해 다니엘이 얼마 동안 깊은 괴로움을’(53) 겪게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괴로움은 보이는 현재에서 계시된 환상의 이야기들은 자신의 인식으로 담기에 너무나 벅찬 것들이다. 저자는 다니엘서 본문을 살피는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세계에 대한 상상을 해보도록 권면한다.

 

1. 본문 뒤에 있는 세계

2. 본문의/본문 속의 세계

3. 본문 앞에 놓인 세계

 

본문 뒤의 세계는 포로로 끌려간 역사적, 문화적, 사상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본문 속의 세계는 다니엘서의 분문의 문학적 차원이다. 본문 앞의 놓인 세계는 독자 자신의 삶의 정황이다. 세 가지 관점은 결국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이나 과거 속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되고, 독자 자신의 독특한 상황 속으로 끊임없이 끌고 와야 할 것을 촉구한다.

후반부의 환상이 갖는 특징은 시간이다. 즉 역사는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조종해 가신다. 특히 8장 환상 속에 보이는 거대한 신상은 정한 때가 있음, 여러 날 이후라는 시간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 결국 이들의 운명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파멸을 맞게’(67) 된다. 볼드윈의 지적처럼 다니엘이 기도하고 환상을 본 시기는 아직 그 포로 생활이 끝나지 않은 때’(73)이다. 그는 유배 상태이지만 이미 회복될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소망이 시작된다.

 

나가면서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처음 질문했던 신비를 다시 물었다. 저자는 이미 성취된 역사도 있지만 아직 깊은 신비로 남아 있는 부분들이 있다’(86), 그것을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인은 이미 종말을 알고 있지만, 내일과 모레의 이야기는 아직 닫혀 있다. 그 부분은 신자들이 살아가야 할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때로는 삼인칭의 관점에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묵상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일인칭의 관점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현재에 침투한 종말을 소망 가운데 살아 나가야 한다. 우린 아직도 다니엘처럼 듣고도 깨닫지 못(12:8)’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마지막을 알고 있다. 종종 닫힌 현재 때문에 수없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지만 역사는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독자들이 다니엘의 경험을 전유(appropriation)’하도록 충고한다. 전유(專有)라는 이 독특한 단어는 도용(盜用)’ 또는 전용(轉用)’의 의미를 가진다. 다니엘의 경험을 객관적 차원에 방치하지 말고 자신의 것으로 끌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일종의 모방이며, 재현이다.

 

전유는 본문과 독자 사이의 교차점에서 이 둘의 상호 작용을 통해 발생하며, 되새김(reliving)과 재현(reexpressing)의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99)

 

무술가들이 책이 있는 고대 무술을 연마하려면 재현(再現)의 과정을 거친다.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해 본다. 그러면 끊어진 장면과 장면 사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술가들은 몸의 길을 알고 있다. 일반인들은 서로 다른 두 장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무술가들은 본 다음 시연하여 몸으로 반복 재현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끊어진 그림들이 이어지게 된다. 다니엘서라는 텍스트 속에 잠긴 하나님의 신비는 현대 독자들에게 난해한 고대의 그림이다. 그러나 삶으로 재현해 나갈 때 하나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니엘서가 지닌 신비는 현재의 독자들에게 다니엘서의 전체적인 메시지와 씨름하고 이를 전유하도록 모든 독자들을 초청’(113)하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끝이 났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신비는 여전히 남겨져 있다. 오늘 다니엘이 미처 말하지 못한 하나님의 신비를 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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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전문우 지음 / 누림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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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왔다. ‘딩동’ ‘누구세요?’ ‘택뱁니다.’ 그렇게 도착한 책은 포장지가 뜯기는 순간 아내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만 하루가 가기 전 아내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리고 지금은 양산 남부시장에서 구입한 배추와 삼천 원 동치미용 무를 잘라 김장을 하고 있다. 말이 김장이지 배추 한 포기도 아니다. 무엇을 넣어야 할 줄 몰라 나에게 묻지만 나의 대답은 늘 편하게 해이다. 편하게,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난 잘 먹으니 잘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난 오후부터 이 책을 임대하여 잠깐 책을 읽고 있다. 고작 세 시간 즈음에 다 읽고 말았다.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블랙홀에 빠져들 듯 정신없이 읽고 말았다. 훑어 읽기가 아닌 정독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흡입력 있는 책은 처음이다. 전에 셜록 홈스 시리즈에 빠져 그렇게 읽을 적이 있지만, 이 책은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음에도 알 수 없는 뭔가가 나를 끌어당긴다. 읽는 모든 독자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내와 나에게는 순식간에 읽히는 책이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아내는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았다. 십 년을 넘게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홀로 그렇게 지내왔다. 여자 홀몸으로 살아온 세월이 십 년 하고도 몇 년을 더 넘겼으니 그 살아온 삶의 굴국을 어쩌다 알 수 있으랴. 그런데 올봄 나와 결혼을 하면서 사역을 내려놓게 되었고, 그 후로 심한 우울증세를 겪었다. 저자는 우울과 우울증은 다르다고 한다. 우울이 가끔씩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손님이라면, 우울감은 하루 24시간 겪어야 하는 고통 그 자체이다.

 

우울증은 슬프고 괴로운 감정 탓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영향을 미치는 보다 심각한 상태이다. 인생의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을 때도 극도의 슬픔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자살 충동까지 이어지는 극심한 고통의 우물 상태이다.”(40)

 

불과 30초마다 우울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도 있다. 아내는 책 중간에 첨부된 우울증 셀프 체크리스트(44) 읽더니 거의 다 해당되네.’라며 으스레를 떤다. 난 아내의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내는 그동안 살아 있으나 죽은 듯한 삶을 살았다. 버려지고 소외된 체 살아왔다. 언제나 죽음을 생각했고, 아이들에게 유언도 남겼다. 자신이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유언이다. 결혼 후 아내와 나는 가끔씩 의견 충돌이 생겼다. 이전에는 서로가 왕이었지만 결혼 후, 한 지붕 아래 두 명의 칸이 공존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에 순종적인 아내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통제하고 공부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많이 허용적인 나에게 아내의 요구는 부당해 보였다. 두 가정이 만나다 보니 이것저것 조율해야 할 의견도 많았다. 물질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탓인지 언성 높이는 일도 가끔 일어났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집 안 문제로 마음이 갈리고, 사역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아내를 짓눌렀다. 아마도 수술 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할 수 있는 것도 점점 사라져 가는 탓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나의 투정까지 겹치니 아내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인 것이다. 이 책의 처음 몇 장은 독서 에세이 형식으로 떠내려간다. 정말 평이한 문장과 설득은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에세이 형식을 벗어나 치밀한 정신의학적 담론을 언급한다. 특히 정신 병원이 치료가 아니라 환자들을 의사들의 실험 연구용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들은 섬뜩하게 만들었다. 전에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로젠한 박사의 가짜 환자 이야기는 진정한 정신 치료라는 것이 존재나 할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아내에게 물었다.

 

읽고 나니 어때요?”

평이한 것 같은 데 읽을수록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

 

그렇다면 평이한 책이 아니다. 이것은 마음을 치료하는 묘약이다. 어떤 책은 강열하고 지독하게 몰입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 맛이 떨어진다.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젊은 시절의 불장난 같은. 그러나 어떤 책은 평범한듯하면서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울렁거림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책이다. 남성의 고향이 여성이라면, 독자의 고향은 책이다. 읽을수록 영혼의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책, 바로 이 책이다.

 

책이 과연 우울증을 치료할까? 다만 아내와 나의 특별한 케이스일까? 호기심에 우울증독서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하니 이곳저곳에서 우울증의 비약물 치료의 대표적 예로 독서와 걷기를 추천한다. 걷기는 햇빛을 쬠으로 멜라토닌을 발생시켜 기분을 전환해 주고, 독서는 전두엽을 활성하고 한 곳에 몰입하게 하여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테베의 도서관을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라고 불렀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위한 약상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아주 오래전부터 책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치유해주는 힘이 있었다.”(22)

 

그냥 편하게 읽었을 뿐인데 아내는 마음이 훨씬 편하다고 한다. 책이라고 같은 책은 아닌 것 같다. 우울증 책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책이 아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통의 무게는 좀 더 가벼워진다. 매장마다 중요한 책에서 가져온 이야기와 문장으로 채워진 글들은 마음을 다독여 주면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냥 편하게 읽지만 읽고 나면 이것저것 공짜로 얻어간 느낌이 든다.

 

왜 이리 마음이 편하지? 마지막 장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받은 느낌이다. 내용도 좋았지만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책을 다시 펼쳐 살펴보았다. 사진이었다. 해바라기, 낙엽, 한적한 시골길, 우체통, 들꽃....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하다. 그랬다. 이 책은 글도 좋지만, 사진도 좋다. 그런데 이 많은 사진은 다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저자 자신의 찍은 사진일까? 어쨌든 책이 좋다. 집 나간 아내가 돌아왔으니 말이다. 아내가 집 나간 남편들이여 이 책을 선물해 보라. 가정은 화목해지고, 삶을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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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관련된 소설을 찾는다. 

설국. 아직 사 놓고 읽지 못한 책이다.

겨울의 눈빛, 잘 모르지만 읽고 싶다.

철도원, 영화로만 보아서 인지 책으로 읽고 싶다. 


겨울은 춥다. 그래서 아름답다. 

설경 위에서 펼쳐지는 그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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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이 집에서 홈스쿨 중이다. 홈스쿨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홈스쿨 하는 부모들도 몇을 만나 이야기했다. 가장 힘든 건, 아이들이 자력으로 공부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원해 자퇴하고 홈스쿨을 시작한 아이들 조차도 퍼질대로 퍼진 상태로 지낸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모두가 공통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러니까 놀다 지칠 때가 되면 스스로 공부를 시작한단다. 그런데 공부 시작이 묘하다. 바로 독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만화책을 읽다 동화책을 읽고, 그리고 다시 진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한다. 어쩌면 홈스쿨의 시작은 부모가 먼저인 듯하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핵심은 홈스쿨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공부와 능력을 배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고경태의 <글쓰기 홈스쿨>을 읽는다. 이 책은 각론은 탁월하고 총론은 어지럽다. 글은 정말 좋은데 순서나 명료함이 떨어져 읽고 자료화 하지 않으면 읽어내기 힘든 책이다. 아쉬운 책이다. 다른 몇 권의 책도 함께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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