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기독교 신간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 



1. 김명섭 목사의 <루카스 단 한 사람을 위한 복음서>


처음 신약이 그리스도인의 손에 들려졌을 때는 혁명적인 수단이었다. 초대교회는 성경을 읽고 변화 되었으며, 이웃들을 변화 시켰다. 심지어 부패와 타락의 상징이던 로마까지 정복했다. 그런데 요즘은 왜 아무도 변화 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이웃은 커녕 내 자신도 성화의 모습의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성경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잘못 읽은 것이다. 


성경 속에서 도전하는 예수의 음성을 묵살하고,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힌 내부의 음성만을 듣는다.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버린 우상숭배적 성경읽기가 낳은 병폐다. 김명섭 목사는 성경 속에서 포장되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과 관습에 재해석된 예수가 아닌 진짜 예수를 만나라고 권면한다. 그렇다! 진짜 예수. 그 예수를 만나려면 읽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2. 필립얀시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


상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이별! 세월호로 인하여 온 나라가 울분에 쌓였고 무책임한 정부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마음 속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시간으로 메우기엔 구명이 너무 크다. 노년의 필립 얀시는 고통에 대하여 다시 질문을 던진다. 고통 속에서 무엇을 해야하냐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는다. 누가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까? 


3. 박득훈 <돈에서 해방된 교회>


믿음은 행동이 증명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 행함이란 참자유자로서의 행함이다. 현대교회는 돈의 노예가 된 듯하다. 끊임없이 헌금을 강조하고, 헌금을 내지 않으면 이류신자 취급을 하고 심지어 교회에서 쫓아 낸다.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교회다. 장로도 돈이 있어야 뽑힌다. 권사도, 집사도, 모든 것이 돈이다. 어떻게 하면 돈에서 자유로운 교회가 될까? 그 질문에 답을 주려고 저자가 펜을 들었다. 


4. 셰인 & 토니 <예수 혁명>


기도만하는 그리스도인은 가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 소위 빨간글씨 신자로 불리는 보수적 신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실천, 즉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성도는 세상 속의 소금이지 포대 속의 신자가 아니다. 지금껏 복음의 순수성을 간직해 왔던 빨간글씨의 신자들은 자신을 보존하려고 배제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싸웠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치료할 수 없다. 이제 사랑하고, 치유하고, 보듬어야 한다. 예수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골방에서 나가라. 거리에서 몸으로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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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구입한 신간들


기독교 서적이 많이 잡혔다. 튼실한 말씀 강해자의 단 한 사람을 위한 김명섭 목사의 <루카스 단 한 사람을 위한 복음서>가 나왔다. 강릉예향교회를 담임하는 정직한 목사다. 성공주의와 물질주의가 만연한 한국교회 안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올곳게 목회하는 분이다. 한구절 한구절이 찡하게 다가온다. 


정동섭 목사의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는 급하게 구입했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된 구원파 교리와 그동안 구원파에서 활동하면서 보고 들었던 잘못된 교리와 소행을 회고식을 통해 들추어 낸다. 약간 지적이지 못한 면이 아쉽다. 


송양민 우재룡의 <100세 시대 은퇴 대사전>은 그야말로 100 시대를 바라보며 어떻게 노후를 준비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멋진 책이다. 저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은퇴 후의 삶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배터랑들이다. 충분한 자료와 논리로 무장했다. 손에 잡히는 실용적 가르침이 맘에 든다.


필립 얀시의 신간이다.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는 규장에서 나왔다. 규장은 그리 좋아하는 출판사는 아니다. 순수하지 못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립얀시는 좋아한다. 솔직 담백한 그는 화장하지 않는 생얼의 신앙을 보여 준다.


네 권 모두 썩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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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40회 

세월호, 읽기를 변화 시키다


난 그동안 독서가였다. 지금도 여전히 독서 한다. 독서는 여전히 나의 일부이며 삶의 축이다. 지금까지의 독서는 순전히 쾌락적 독서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쏟아 내기 위한 적극적인 독서로 바꾸었다. 세월호의 침몰은 나에게 '지각변동'을 가져다 주었다. 안이하게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읽을 것이 아니었다. 이제 누군가를 위해 책을 써야 겠다는 결단을 이끌어 냈다.


나는 가방끈이 짧다. 전문가다운 소양도 갖추지 못했다. 잘하는게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소설이다. 책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편집의 눈으로 책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 위한 작가 준비생으로 책을 읽을 생각이다. 나는 세월호를 소제로하여 추리소설을 쓸 생각이다. 그것이 몇년이 걸리든 상관 없다.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오늘 도착한 책 목록이다. 


G. K. 체스터튼 <결백><의심>

채은 <서머힐에서 진짜 세상을 배우다>

루신다 닐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이철환 <연탄길>

정은숙 <책 사용법>

김진섭 <책 잘 만드는 책>

마틴 라이언스 <책, 그 살아있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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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나?


우린 얼마나 더 많은 증인의 이야기를 들어야하고 부모들의 피 끊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 언론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정부의 이야기를 퍼다 나른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체험한 이들은 깡그리 무시 당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무엇을 판단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현장을 찾는 것이고, 현장의 증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초동수사가 중요하고, 현장보존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은 그것을 잃었다. 



이러한 오도는 다른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려보려하지 않고 정부는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예측한다. 참으로 암담한 것은 언론사들을 그것을 퍼나라며 진실인 것처럼 부풀린다. 이 사건 외에 또 하나의 논쟁은 바로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 번역이다. 나는 까뮈는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적인 책이 <이방인>인데 이미 많은 곳에서 출판 되었다. 새움출판사에서 다시 출판하는 것은 고전의 대열에 올라 갔다는 뜻이다. 그러나 너무 이상한 것은 번역에 관련된 논쟁이 너무 뜨겁다는 것이다. 


불어에서 번역했으니 영어에서 번역했으니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어제(21일) 새움 블로그에 번역에 관련되 해명 글이 올라 왔다. 

http://saeumbook.tistory.com/436

당사자와 추측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이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사실과 추측이 얼마나 다르며, 또한 왜곡의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가를 다시 알게 되었다. 중요한 건, 사실 팩트다. 제발 사실에 집중하라.


자,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방인이 출판되었는지 살펴보라. 많은 이들이 새움의 이방인을 공격하는 이유는 공격적인 광고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거.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이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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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죽었다!



책은 죽었다. 그러나 다시 부활한다. 책을 어떻게 읽느냐는 어떻게 보느냐다. 책은 관점이고, 세계이며, 사상이다. 강명관의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을 구입해 읽은 생각이다. 저자는 조선시대을 '책'이란 키워드로 분석하다. 책으로 본 조선이라고 해야 옳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의 책 역사를 다루고 있다. 조선은 책의 나라다. 책 없이 조선을 말할 수 없다. 조선에서 책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과거제도 때문인데, 중국에서 들여온 성리학의 영향으로 유가서적들을 읽고 또 읽었다. 모든 시험을 오지 책을 읽고 암송하고 풀어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책을 머릿속에 넣으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뜻을 밝히나 실천하는 이가 없으니 무슨 소용이랴. 책은 죽었다. 책이 죽었으니 나라도 망하리라. 조선은 망했다.


루쉬앵 페브르의 <책의 탄생>은 책이 가진 혁명성을 다룬다. 책은 그릇이다. 위허함 그릇이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책의 역사에서 15-16세기를 빠뜰릴 수 없다. 인쇄술의 발달은 세계 역사의 지축을 바꾸어 놓았다. 인쇄술의 발달은 책의 관전의 변화다. 양피지로 된 책은 지금의 한 권짜리 책이 수천만원이었다. 책은 책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책은 텐베르고 인쇄기 발명이후에 탄생한다. 


저자는 이러한 책의 변화를 주목하면서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찾아온 의식의 변화를 같이 다룬다. 낭독에서 묵독의 변화, 공유에서 사유에로의 변화는 곧 새로운 혁명의 시기를 가져온다.



그러나 책은 죽었다. 왜냐하면 더이상 혁명을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초기 해양 전문가들은 입을 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저러면 안 된다고, 어느 순간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 왜일까? 지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입을 다문 것이다. 


책도 마찬 가지다. 책도 입을 다문다. 로버트 단턴은 <책의 혁명>에서 책이 가지 혁명성은 언급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대를 바꾼 혁명서는 위대한 철학서나 전문서적이 아니었다. 조잡하고, 야하고, 버릇없는 내용이 가득한 3류에 가까운 책들이었다. 단턴은 또 다른 책 <책의 미래>에서 쿠테베르크 인쇄기가 시민 계몽을 이루어 시대를 바꾸었다면 이제는 전자책이 그렇게 할것이라고 예언한다. 시대에 맞게 담는 그것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로버트 단턴의 책들은 꼭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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