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매일성경 2014.3.4
매일성경 편집부 엮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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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음과 길 찾음 - 마음속의 우상과 신앙생활의 열심, 그 이상한 결합
유재혁 지음 / TnD북스(티앤디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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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길이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신적 의존이 불가피한 존재였다. 굳이 하나님 아니어도 사람은 '서로'가 필요했다. 첫 사람이 하나님을 추방하고 스스로 살아가려 했을 때 불가피하 반역이 일어났다. 타락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다. 


타락은 길 잃음이고, 표류하는 것이고, 우상 숭배다. 자신이 신이 되어야 했으니,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렇게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왔다. 길을 잃은 것이다. 에덴은 광야가 되었고, 풍성한 동산은 메마른 사막이 되었다. 서로에게 의존적이던 남자와 여자는 불신과 반목의 경쟁상대가 되었다.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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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서재 - C. S. 루이스를 만든 작가와 글 믿음의 글들 271
제임스 스튜어트 벨 외 엮음, 강주헌 옮김 / 홍성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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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뭘까?

 

남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호기심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수년 전에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곳에 보니 이유는 단 한다. 세기의 천재로 알려진 그의 뇌는 어떻게 생겼을까였다. 그건 두 가지 내재된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 사람과 다르다면 천재는 곧 뇌가 된다. 또는 생물학적으로 천재는 탄생하게 된다. 만약 다르지 않다면 우리도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교육학자들은 후자를 기대할 것이고, 생물학자들은 전자를 기대할 것이다.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미안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왜냐고? 아인슈타인의 뇌가 특이하긴 하지만 특이함이 천재성을 말하는지는 아무도 밝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루묵이다. 이런 연구가 하나 둘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호기심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다.

 

루이스의 서재에 대한 호기심은 아마도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호기심만큼은 되지 않을까. 서재는 사유(思惟)의 궤적(軌跡)을 살피는 일종의 역사학이다. 아니면 고고학적 유물의 발굴(發掘)작업 쯤 될 것이다. 루이스의 책은 열권이 넘게 읽었다. 아직 그의 소설들을 읽지 않았지만, 기독교 변증과 논증에 관련된 책은 거의 읽은 셈이다. 아직도 그의 작품의 깊이는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만큼 생각의 폭과 깊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책은 무엇이 있을까? 그의 천재성이 독서(讀書)를 통해 이루어진 것을 믿기에 서재는 살피는 것은 곧 그의 생각의 연유(緣由)를 묻는 것이다.

 

표지에 ‘C. S. 루이스를 만든 작가와 글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나의 추측이 그리 엇나가지 않아 보인다. 분명 그렇게 생각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임스 스튜어트 벨은 머리말의 제목을 위대한 사상가는 과거의 위대한 업적에서 태어난다.’로 잡았다. 책은 이미 과거다. 모든 영향 받음도 역시 과거다. 루이스 역사 여러 곳에서 다른 학자들이 책을 읽음으로 지독한 불신에서 지적인 회심을 했다고 밝힌다. 몇 명의 저자의 이름을 들어보면, 조지 맥도널드, 길버트 체스터턴, 새뮤얼 존슨, 에드먼드 스펜서, 존 밀턴 등이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현재의 루이스를 있게 한 정신적 스승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작가들의 글을 봄으로써 우리는 루이스의 영성 형성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까지 바꿔 갈 수 있을 것이다.”(7)

 

그렇다. 우리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루이스의 서재를 탐하게 한다. 나도 변화될 수 있다는 일말(一抹)의 희망 말이다. 실제로 루이스는 여러 곳에서 고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끊임없이 역설(力說)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고전의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십 페이지 고전을 읽기 전에 수천 페이지의 난해한 주해서를 읽는다. 루이스는 이들을 어리석은 이들이라고 평한다. 나도 종종 이러 오류를 범한다. 성경을 읽기 전에 그 어려운 주석들을 읽다 그만 지치고 만다. 그냥 읽으면 될 일인데 말이다. 하여튼, 그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의 탁월함의 근원을 파헤치는 흥분된 탐험이 될 것이다.



몇 개의 문장을 발췌 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곳에는 화합도 없고, 사랑의 기쁨도 없습니다. 조화도 없고, 존재의 유익도 없습니다. 하나가 되려면 적어도 둘이 필요합니다. 개체 수가 많을수록 화합은 더 커지고 더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더 풍요롭고 더 신성합니다.”-조지 맥도널드

 

사도 바울은 먹을 것을 얻으려고 복음을 설교하지 않았다. 목회를 하기 위한 힘을 얻으려고 먹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빵이 아니라 복음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보상을 요구하지 않지만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누구도 사랑의 값을 치르겠다고 나서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응분의 보상을 받으며, 그 사랑이 꾸준할 때 사랑으로 보상받기 마련이다.”-성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

 

우리는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만드시도록 돕지 않는다. 그분께 더 나은 재료를 드릴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뿐인 좋은 것을 만드신다. 당신은 당신일 뿐, 당신과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당신 배경의 장점만이 아니라 장점까지 지금의 당신을 빚어내는 재료로 쓰였다.”-오스틴 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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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학창시절 -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헨리 키신저까지 세계사를 바꾼 60인의 성장일기
게르하르트 프라우제 지음, 엄양선 옮김 / 황소자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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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학창시절이 궁금하다!

 

천재는 태어난다? 만들어진다? 어느 것이 옳을까?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원한 주제다. 천재들을 연구한 책은 많다. 가장 잘 알려진 책은 말콤 글래드 웰의 <아웃라이어>일 것이다. 그는 천재들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지는 쪽에 한 표 던진다. 아마도 이게 보편적인 생각인 듯하다. 좋다. 그럼 천재로 알려진 사람들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우리의 궁금증을 알기나 한 듯 게르하르트 프라우제는 <천재들의 학창시절>을 알려주는 책을 펴냈다. 그리 깊거나 어려운 책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서너 페이지, 어떤 사람은 한쪽 분량의 간략한 보고서이다. 그럼에도 읽으면 많은 유익과 격려가 된다. 왜냐하면 많은 천재들은 바보들이었기 때문이다.

 

학습 부진아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이 어릴 시절 학습 부진아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떤 이들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게 보였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일반 교사의 기준에서 그는 부진아가 맞다. 심지어 그는 학교 부적응아였다. 그를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하사관 같았고, 김나지움 선생님들은 장교 같았다. 학교는 내 즐거움과 거룩한 호기심을 질식시켰다.”

 

강압적인 학교가 싫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공부하고 싶었던 아인슈타인은 수학은 우등생이었지만 나머지는 그야말로 꽝이었다. 자기가 싫은 것은 노력도 하지 않았고, 선생님들의 화를 돋웠다.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어떤가? 당신은 아인슈타인보다 너 똑똑하지 않는가. 그러니 힘을 내라. 아직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았지 않는가.

 

자퇴생 빌헬름 부슈

 

독일의 가정에 빌헬름 부슈의 한 권 이상 꽂혀있지 않는 곳이 없다. 독일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천재적인 작가인 부슈는 자퇴생이다. 아버지는 기계 기술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슈에게 끊임없이 기계기술학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그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결코 더 이상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자식이 기계기술자라는 직업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퇴하게 된다.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민담과 전설, 노래들을 수집해 모으기 시작하며 재미를 붙인다. 희극과 오페레타 대본을 쓰기 시작하다 마침내 <막스와 모리츠>로 큰 성공을 거둔다. 성공이 곧 부를 부르지는 못했다. 결국 빚에 쪼들린 부슈는 1000굴데라는 적지 않는 돈을 받고 판권을 넘긴다.

 

독학으로 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조지 버나드 쇼

 

근대 영국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조지 버나드 쇼를 빗겨갈 수는 없다. 192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그런 그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도 없이 전학을 다녀야 했다는 것은 의외다. 그리고 그가 학교에 다닌 시간은 고작 12살에서 16살까지의 4년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폭로한다.

 

교육제도 전체는 사기에 불과하다. 10년 동안 교육을 받고 나서도 사람들은 자기 모국어조차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 굳이 말하자면, 체육을 통해 어느 정도의 담력을 키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정신적 용기는 모두 쓸어 내버리게 될 것이다.”

 

학교제도에 대한 악담도 이런 악담은 없다. 그럼 그는 어떻게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는가. 답은 독학(獨學)이다. 학교를 그만둔 이후 독학, 독서를 통해 광범위한 지식을 얻는다. 스스로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원하는 것을 즐겁게 함으로 탁월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람이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는 것부터 공부는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아직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알고 싶다고? 그럼 책을 사서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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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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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ej어 벼르다 오늘에야 구입한 책이다.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좋아하니 이 책도 구입한다. 결국 커피 매니아는 커피에대한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되는 법이다. 표지로 볼때 300쪽 분량인줄 알았다. 손에 쥐어보니 두께가 만만치 않다. 620쪽이 넘는다. 양장이라 느낌도 좋다. 일어보자. 



제목이 주제를 잘 드러내 준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다. 커피는 매혹스러우면서도 잔혹한 배후를 가지고 있다. 띠에 커피사 '쓴'(write or bitter) 세계사라고 소개 한다. 그렇다. 커피는 역사의 한 편을 썼고, 쓰다. 


현대를 움직이는 두 검은 물이 있다. 하는 오일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다. "원래 커피나무는 에티오피아 고원의 산기슭, 열대 우림 속에서 자라던 관목이었다."(21쪽) 지금은 가장 귀한 농산품이며 거대 산업의 주역이다. "자본주의 황금기인 19세기 말에 미국에서는 현대적인 커피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다."(24쪽) 커피 때문에 수많은 전쟁과 정략이 일어났고, 수억의 사람들이 커피에 밥줄이 닿아있다. 


1732년 커피 음용이 논란거리가 될 즈음 그 유명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커피 칸타타]라는 오페라를 만들어 낸다. 그곳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버자, 너무 그러지 마세요! 하루에 커피 세 잔씩 마시시 못하면 전 구운 염소고기처럼 바짝 쪼그라들 거예요! 커피 맛이 얼마나 좋은데요! 천번의 키스보다 더 감미롭고 머스캣 와인보다 더 달콤하다고요! 전 커피 없인 못 살아요. 누근 커피로 저를 유혹한다면, 저는 그냥 마음이 넘어가 버릴 거예요."(50쪽)


자 어떤가. 이쯤이며 커피의 위력을 알 것이다. 하여튼 커피에 읽힌 사연은 길고 깊다. 그리로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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