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의 함정 - 자극적일수록 더 공허해진다
따웨이 지음, 이지연 옮김 / 지니의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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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은 가만히 있어도 자극이 밀려옵니다. 스마트폰을 켜면 쇼트 폼이 이어지고, SNS에는 타인의 일상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쇼핑앱은 제가 무엇을 사고 싶어 할지 저보다 먼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예전보다 즐길 것은 훨씬 많아졌는데 이상하게 집중하기는 더 어려워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불편해졌습니다. <도파민의 함정>을 읽으며 저는 이 익숙한 피로가 단순히 의지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에서는 도파민을 흔히 알려진 ‘행복 물질’이라기보다 다음 보상을 기대하고 갈망하게 만드는 신호로 설명합니다. 사진 속 본문에서도 도파민 디톡스를 단순히 자극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외부 자극에 끌려다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을 잠깐 내려놓았는데도 손이 허전하고, 특별히 볼 것도 없으면서 SNS를 다시 열게 되는 행동을 떠올리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기에는 휴대폰을 훨씬 자주 봤습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화면을 켰는데, 정작 쉬지는 못하고 이것저것 보다 시간이 흘러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조직에서 사람 때문에 진이 빠진 날에는 생각을 멈추고 싶은 마음 때문에 즉각적인 자극을 찾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기보다 오히려 더 공허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갈 젖꼭지 효과’가 바로 이런 경험을 설명해주는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잠깐 달래주기는 하지만 진짜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도파민 이야기를 스마트폰 중독에만 가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간관계, 사랑, 소비와 투자까지 범위를 넓혀 우리가 왜 비슷한 선택을 반복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중에서도 ‘간헐적 강화’와 ‘미완성 과제 심리’는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상대가 늘 잘해주는 것보다 잘해줬다 차가워졌다를 반복할 때 오히려 관계에 더 매달릴 수 있다는 설명은 현실에서 생각보다 자주 보이는 패턴입니다. 끝난 관계인데도 계속 의미를 찾거나, 마지막 연락 하나에 지나치게 많은 해석을 붙이는 것도 결국 해결되지 않은 보상을 기다리는 심리와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사성의 마법’도 재미있었습니다. MBTI가 같거나 취향 하나가 겹치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금세 친밀감을 느끼는 현상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보면 출신 학교, 좋아하는 책, 비슷한 직업 경험처럼 작은 공통점 하나만 발견해도 대화의 거리가 빠르게 좁아집니다. 다만 유사성은 관계의 문을 쉽게 열어줄 뿐,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증서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나와 비슷한 사람’보다 나의 경계를 존중하고 행동이 일관된 사람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도파민의 함정>을 읽고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욕망을 없애는 것’과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타인의 반응, 조회 수, 소비, 관계의 불확실성 같은 즉각적인 보상에 계속 빼앗긴다면 정작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 힘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단순한 ‘스마트폰 끊기 책’으로 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시간과 감정의 운전대를 다시 잡는 방법에 관한 책으로 읽었습니다. SNS에 내가 점점 중독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도파민의함정 #따웨이 #지니의서재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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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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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을 공부하면서 사서삼경의 이름은 너무 익숙하게 들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서경>은 제게 묘하게 ‘알지만 멀게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논어>나 <맹자>처럼 비교적 잘 알려진 문장이 많지도 않고, 고대 군주들의 정치와 제도를 다룬다는 인상 때문에 지금의 삶과 바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찬근의 <서경>은 이 오래된 경전을 ‘옛 왕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에서 끝내지 않고, 결국 한 사람이 권한을 가졌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끌어옵니다.





저는 대학에서 한문을 공부했습니다. 조직 안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유형의 리더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문장들은 단순한 고전 해설보다 현실적인 조직론 같았습니다.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조직에서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말 한마디, 피드백 방식 하나가 구성원의 태도와 분위기를 크게 바꿉니다. 권력이 크든 작든 결국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호문즉유好問則裕’였습니다.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해진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는 세종이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제도를 만들고, 기록을 통해 주변 관리들이 백성의 접근을 막으면 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를 설명합니다. 저자는 이를 ‘뿌리의 소리를 듣는 제도’라고 풀어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좋은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윗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조직은 점점 한 사람의 시야만큼 작아집니다. 책에서 말하는 ‘자용自用’의 위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판단만 고집하는 리더는 결국 자기 한계 안에 조직 전체를 가두게 됩니다.





‘불긍세행不矜細行’도 오래 남았습니다. 작은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결국 큰 덕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계입니다. 이 책에서는 완성 직전에 작은 행실을 삼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성취가 있다고 해서 마지막의 작은 잘못까지 면죄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리가 높아질수록 사소한 태도가 더 크게 보입니다. 큰 결정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사람을 대하는 말투, 잘못했을 때의 반응, 자신보다 권한이 적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 리더십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제가 특히 좋아한 대목은 ‘개과불린改過不吝’입니다.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리더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면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가 생깁니다. 현실에서는 이상하게도 직급이 높아질수록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완벽해서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칠 줄 알아서 좋은 리더가 된다는 이 책의 해석에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공자의 제자 양성 이야기를 ‘덕을 넘겨주는 스승’이라는 관점으로 읽은 부분입니다. 좋은 스승과 좋은 리더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 사람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기뻐합니다. 지식과 권한을 독점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사람을 성장시키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남습니다.


<서경>을 읽으며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크게 달라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가지면 자만하기 쉽고, 자리에 익숙해지면 타인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3천 년 전 군주들이 경계했던 것이 지금 회사의 팀장과 대표, 정치 지도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단순한 리더십 책보다 ‘권한을 가진 인간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법을 배우는 책’으로 읽었습니다. 동시에 아직 큰 조직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읽을 만합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에서는 결정권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선택할지, 누구의 말을 들을지, 잘못했을 때 고칠지 버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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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인간
전광섭 지음, 김상균 그림 / 책고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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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조카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그림자 인간>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동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책가방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 인간’이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대신 혼내 준다니,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설정입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오히려 어른인 제 학창 시절을 자꾸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교라는 곳은 생각보다 작은 사회입니다.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반에서 누가 목소리가 큰지, 누가 만만하게 보이는지에 따라 아이들 사이에도 나름의 권력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말이나 장난처럼 보이는 일도 당시에는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만들곤 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이라면 별것 아니라고 넘길 일도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전부처럼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세호에게 그림자 인간이 나타났을 때의 안도감이 이해되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를 대신 혼내 주고,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까지 척척 해결해 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학창 시절의 저에게도 이런 존재가 나타났다면 솔깃했을 것 같습니다. ‘네가 직접 싸울 필요 없어. 내가 해결해 줄게.’라는 말은 힘없는 아이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림자 인간의 도움에는 수명이라는 무서운 대가가 따라옵니다. 이 설정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누군가에게 의존한다고 해서 실제로 수명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대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경험과 자신감이 조금씩 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받는 것이 편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림자 인간이 가져가는 ‘수명’은 그런 의미에서 세호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아영이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자 인간은 세호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하지만, 아영이는 세호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대신 해결해 주는 사람’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좋은 관계란 어쩌면 후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본문에서 세호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들은 학창 시절 특유의 답답함을 꽤 현실적으로 보여 줍니다. 물건을 빼앗고, 운동화를 건드리고,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행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특히 아이들 사이의 괴롭힘은 가해자에게는 금방 잊히는 장난일 수 있지만 당하는 아이에게는 학교라는 공간 전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교훈보다 세호가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세호가 마지막까지 그림자 인간에게 보호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세호는 다시 문제 앞에 서고 자신의 힘으로 대응합니다. 용기란 갑자기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섭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있는데도 예전과는 다른 행동을 한 번 선택해 보는 것, 어쩌면 그 정도가 우리가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용기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조카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친구한테 괴롭힘당하면 이렇게 해”라고 정답을 알려 주는 것보다 세호의 이야기를 읽고 “너라면 그림자 인간의 도움을 받을 것 같아?”, “아영이와 그림자 인간의 도움은 뭐가 다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본 답이 어른이 준비한 모범답안보다 오래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른이 되고 나서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우리는 생각보다 작은 일에도 많이 흔들렸고, 또 그 작은 일들을 하나씩 지나오면서 지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림자 인간>은 그런 어린 마음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는 동화였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자기 삶을 살아갈 힘까지 대신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읽어 주면서 저 역시 어린 시절의 저를 한 번쯤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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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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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는 한 사람의 극적인 인생을 다룬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는가’를 탐구하는 과학 교양서입니다. 약물 중독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가난과 방임, 보호시설을 경험한 소년이 훗날 계산신경과학자가 되었다는 이력만 놓고 보면 흔히 말하는 ‘역경을 이겨낸 성공담’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하기를 거부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할 때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노력과 재능을, 실패한 사람에게는 잘못된 선택이나 환경을 원인으로 붙입니다. 인과관계가 분명할수록 삶을 이해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삶은 그렇게 정돈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자 역시 자신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이유를 어느 하나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도 있었고, 우연히 만난 사람도 있었으며, 컴퓨터에 대한 호기심과 교육의 기회, 여러 번의 선택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의 데이비드 수실로라는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이 복잡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가져오는 개념이 ‘창발(emergence)’입니다. 저는 이 개념이 과학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매력적인 관점을 제공한다고 느꼈습니다. 뇌에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존재하고 각각의 세포는 전기적·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개별 뉴런 하나를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 안에서 ‘생각’이나 ‘나’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개별 요소에는 없었던 새로운 성질이 나타납니다. 인간의 의식과 사고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속귀의 약 1만 5천 개 털세포가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고, 신경세포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그것을 우리가 경험하는 소리로 만들어낸다는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리적 신호가 어느 순간 ‘내가 듣고 있다’는 주관적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과 ‘왜 나는 지금 나라고 느끼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과학이 상당히 발전했음에도 의식은 여전히 쉽게 풀리지 않는 난제라는 점에서 이 책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철학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저자가 이 창발의 개념을 자신의 인생에도 적용한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사람 역시 유전자+환경+노력처럼 간단한 공식으로 계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의 삶에서 보육원은 분명 커다란 조건이었지만 그것이 그의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책 속에서 어머니가 재활에 실패하고 다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상처가 이후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훗날 성공했다고 해서 과거의 고통이 소급하여 의미 있는 시련으로 미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바로 이 태도가 좋았습니다.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고통을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포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 캠프에서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돌아보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믿음 역시 처음부터 확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이후의 경험과 질문을 거치며 계속 변화합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 역시 발견해야 할 고정된 핵심이라기보다 살아가면서 계속 만들어지는 하나의 과정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책으로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책은 인간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과거의 조건만으로 미래의 인간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에도 하나의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수많은 사람과 기억, 상처와 우연, 선택과 실패가 서로 영향을 주며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제게 남긴 것은 화려한 성공담보다 인간의 가능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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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인공지능이 결코 계산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이영환 지음 / 앵글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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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목만 보면 익숙한 인생론처럼 보이지만, 책을 펼치면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보여줍니다. 30년 넘게 ‘합리적 인간’을 연구해 온 경제학자 이영환 교수가 인공지능에게 ‘스피리티’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 타인, 세계와의 관계를 묻습니다. 인간을 연구해 온 학자가 인간이 아닌 존재와 대화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찾아간다는 설정 자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AI를 자주 활용하기 때문에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AI가 등장한 뒤 흔히 듣는 질문은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 “인간보다 똑똑해지면 어떻게 할까?”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경쟁의 기준 자체를 바꿉니다. 인간과 AI가 지능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지능과 의식은 같은 것인가를 묻습니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마지막 근거를 지능이 아니라 의식에서 찾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계산 능력과 방대한 지식을 갖춘 AI라도 한 인간이 자신의 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주관적 경험까지 대신 살아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철학의 오래된 ‘마음-몸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부터 현대의 물리주의까지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오랫동안 철학의 난제였습니다. 책에서도 바로 이 문제를 다루면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넘어 인간의 고유성을 의식에서 찾으려 합니다. 특히 인간의 몸이 약 37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그렇다면 그 몸을 나라고 느끼는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대목은 단순한 AI 담론보다 훨씬 근원적인 문제로 독자를 끌고 갑니다.





제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것은 AI 자체보다 ‘AI와 어떻게 대화하는가’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책 속 스피리티는 자신이 질문자의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하수인이 될 수도 있고, 반대 논리를 제시하며 생각을 확장시키는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는 꽤 현실적인 통찰이 있습니다. 실제로 AI를 사용하다 보면 질문의 수준과 전제가 답변의 방향을 상당 부분 결정한다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결국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답을 빨리 얻는 기술만이 아니라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물으며, 돌아온 답을 다시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책에서 강조하는 ‘나만의 세계관’이라는 개념도 흥미로웠습니다. 세계관이라고 하면 거창한 철학 체계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이 좋은 삶인지, 돈과 성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전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것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가 제공한 기준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단순히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을 파악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어떤 가치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특히 1부 마지막에 등장하는 “나를 알아야 비로소 삶이 보인다”는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자기 인식은 단순한 자기계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기 위한 전제일 수 있습니다. AI가 점점 더 많은 판단을 대신해주는 시대에는 오히려 이것이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물론 ‘의식은 인간만의 영역이며 복제될 수 없다’는 책의 주장까지 완전히 결론 난 문제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의식의 본질 자체가 여전히 철학과 뇌과학에서 풀리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그 미해결 상태 때문에 이 책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AI에 관한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AI라는 낯선 거울을 인간 앞에 세워놓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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