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인간
전광섭 지음, 김상균 그림 / 책고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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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조카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그림자 인간>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동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책가방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 인간’이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대신 혼내 준다니,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설정입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오히려 어른인 제 학창 시절을 자꾸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교라는 곳은 생각보다 작은 사회입니다.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반에서 누가 목소리가 큰지, 누가 만만하게 보이는지에 따라 아이들 사이에도 나름의 권력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말이나 장난처럼 보이는 일도 당시에는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만들곤 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이라면 별것 아니라고 넘길 일도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전부처럼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세호에게 그림자 인간이 나타났을 때의 안도감이 이해되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를 대신 혼내 주고,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까지 척척 해결해 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학창 시절의 저에게도 이런 존재가 나타났다면 솔깃했을 것 같습니다. ‘네가 직접 싸울 필요 없어. 내가 해결해 줄게.’라는 말은 힘없는 아이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림자 인간의 도움에는 수명이라는 무서운 대가가 따라옵니다. 이 설정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누군가에게 의존한다고 해서 실제로 수명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대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경험과 자신감이 조금씩 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받는 것이 편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림자 인간이 가져가는 ‘수명’은 그런 의미에서 세호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아영이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자 인간은 세호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하지만, 아영이는 세호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대신 해결해 주는 사람’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좋은 관계란 어쩌면 후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본문에서 세호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들은 학창 시절 특유의 답답함을 꽤 현실적으로 보여 줍니다. 물건을 빼앗고, 운동화를 건드리고,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행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특히 아이들 사이의 괴롭힘은 가해자에게는 금방 잊히는 장난일 수 있지만 당하는 아이에게는 학교라는 공간 전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교훈보다 세호가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세호가 마지막까지 그림자 인간에게 보호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세호는 다시 문제 앞에 서고 자신의 힘으로 대응합니다. 용기란 갑자기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섭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있는데도 예전과는 다른 행동을 한 번 선택해 보는 것, 어쩌면 그 정도가 우리가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용기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조카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친구한테 괴롭힘당하면 이렇게 해”라고 정답을 알려 주는 것보다 세호의 이야기를 읽고 “너라면 그림자 인간의 도움을 받을 것 같아?”, “아영이와 그림자 인간의 도움은 뭐가 다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본 답이 어른이 준비한 모범답안보다 오래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른이 되고 나서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우리는 생각보다 작은 일에도 많이 흔들렸고, 또 그 작은 일들을 하나씩 지나오면서 지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림자 인간>은 그런 어린 마음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는 동화였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자기 삶을 살아갈 힘까지 대신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읽어 주면서 저 역시 어린 시절의 저를 한 번쯤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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