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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ㅣ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8월
평점 :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문을 공부하면서 사서삼경의 이름은 너무 익숙하게 들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서경>은 제게 묘하게 ‘알지만 멀게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논어>나 <맹자>처럼 비교적 잘 알려진 문장이 많지도 않고, 고대 군주들의 정치와 제도를 다룬다는 인상 때문에 지금의 삶과 바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찬근의 <서경>은 이 오래된 경전을 ‘옛 왕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에서 끝내지 않고, 결국 한 사람이 권한을 가졌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끌어옵니다.

저는 대학에서 한문을 공부했습니다. 조직 안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유형의 리더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문장들은 단순한 고전 해설보다 현실적인 조직론 같았습니다.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조직에서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말 한마디, 피드백 방식 하나가 구성원의 태도와 분위기를 크게 바꿉니다. 권력이 크든 작든 결국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호문즉유好問則裕’였습니다.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해진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는 세종이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제도를 만들고, 기록을 통해 주변 관리들이 백성의 접근을 막으면 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를 설명합니다. 저자는 이를 ‘뿌리의 소리를 듣는 제도’라고 풀어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좋은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윗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조직은 점점 한 사람의 시야만큼 작아집니다. 책에서 말하는 ‘자용自用’의 위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판단만 고집하는 리더는 결국 자기 한계 안에 조직 전체를 가두게 됩니다.

‘불긍세행不矜細行’도 오래 남았습니다. 작은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결국 큰 덕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계입니다. 이 책에서는 완성 직전에 작은 행실을 삼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성취가 있다고 해서 마지막의 작은 잘못까지 면죄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리가 높아질수록 사소한 태도가 더 크게 보입니다. 큰 결정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사람을 대하는 말투, 잘못했을 때의 반응, 자신보다 권한이 적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 리더십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제가 특히 좋아한 대목은 ‘개과불린改過不吝’입니다.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리더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면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가 생깁니다. 현실에서는 이상하게도 직급이 높아질수록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완벽해서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칠 줄 알아서 좋은 리더가 된다는 이 책의 해석에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공자의 제자 양성 이야기를 ‘덕을 넘겨주는 스승’이라는 관점으로 읽은 부분입니다. 좋은 스승과 좋은 리더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 사람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기뻐합니다. 지식과 권한을 독점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사람을 성장시키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남습니다.
<서경>을 읽으며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크게 달라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가지면 자만하기 쉽고, 자리에 익숙해지면 타인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3천 년 전 군주들이 경계했던 것이 지금 회사의 팀장과 대표, 정치 지도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단순한 리더십 책보다 ‘권한을 가진 인간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법을 배우는 책’으로 읽었습니다. 동시에 아직 큰 조직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읽을 만합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에서는 결정권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선택할지, 누구의 말을 들을지, 잘못했을 때 고칠지 버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자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