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 - 불안을 가라앉히고 고요를 회복하는 21일 따라 하기
대니얼 J. 시겔 지음, 권선아 옮김 / 하루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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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에는 마음이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직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의 태도를 곱씹느라 이미 지나간 일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재생하게 됩니다. 집에 돌아와 몸은 쉬고 있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그날 있었던 일에 붙잡혀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다르게 행동했어야 했나’,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힘든 것은 실제로 벌어진 사건보다 그 사건에 계속 반응하고 있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말자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생각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대니얼 J. 시겔의 <알아차림>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처음부터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는 불안하거나 복잡한 마음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마음을 억누르거나 좋은 방향으로 억지로 바꾸라고 말하는 대신,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먼저 바라보자고 제안합니다.





<알아차림>은 저자가 개발한 ‘알아차림의 수레바퀴’를 21일 동안 직접 연습하도록 구성한 실천 안내서입니다. 하루에 필요한 시간은 5분 정도입니다. 1주 차에는 호흡을 통해 흩어진 주의를 안정시키고, 2주 차에는 본격적으로 알아차림의 수레바퀴를 익히며, 3주 차에는 몸과 마음, 관계의 감각까지 아우르는 전체 수레바퀴를 완성합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마음 훈련의 세 가지 기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의 대상에 주의를 머무르게 하는 ‘집중된 주의’, 지금 일어나는 경험을 판단하거나 붙잡지 않고 바라보는 ‘열린 알아차림’, 그리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친절한 의도’입니다. 처음에는 명상이라고 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고요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잡생각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명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은 생각을 없애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생각이 떠올랐다면 ‘지금 이런 생각이 떠올랐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마음이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면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연습이었습니다. 





저는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저는 그 순간의 감정을 상당히 오래 끌고 가는 편입니다. 상대가 던진 말은 이미 끝났는데 제 머릿속에서는 대화가 계속되고, 화가 났던 상황을 떠올리면 다시 화가 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알아차림>을 읽으며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는 것과 ‘화가 곧 나 자신이다’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불안이 찾아와도 ‘지금 불안이라는 감정이 지나가고 있구나’ 하고 바라볼 수 있다면, 감정에 완전히 끌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수레바퀴의 이미지가 이 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테두리에 나타난 하나의 감정에 붙잡혀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끼지만, 중심으로 돌아오면 그것 역시 내가 경험하고 있는 여러 대상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닌데 문제와 저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생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거창한 변화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실의 스트레스는 명상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편한 사람은 다음 날에도 불편한 말을 할 수 있고, 직장의 답답한 상황도 호흡을 몇 번 한다고 갑자기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었다고 해서 모든 일을 초연하게 넘길 수 있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는 자극이 오면 곧바로 감정이 반응하고, 그 감정이 생각을 끌어내고, 생각이 다시 감정을 키우는 과정이 거의 자동적으로 이어졌다면 이제는 그 중간에 한 번쯤 ‘아, 내가 지금 이 일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구나’ 하고 바라보려 합니다. 힘든 날에는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화가 나는 날에는 화가 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을 읽으며 결국 제가 얻고 싶었던 것은 ‘아무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제게 마음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기보다 마음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 책입니다.


#알아차림 #대니얼j시겔 #하루헌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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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가 말하지 않는 것들 - 클래식 무대 뒤, 오케스트라 악보를 둘러싼 세계
김보람 지음 / 사농공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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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종종 공연장을 찾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와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로 들리는 것이 재미있고,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해석을 비교해서 듣는 것도 클래식 감상의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공연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지휘자와 협연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먼저 눈이 갔습니다. 그런데 김보람 작가님의 <악보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으며 제가 클래식 음악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악보가 무대 위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작가님은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20년 넘게 악보 전문위원으로 일하며 오케스트라가 사용할 악보의 판본을 결정하고, 오류를 확인하고, 지휘자의 해석을 파트보에 반영해 왔습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악보를 준비한다’는 일을 필요한 악보를 찾아 연주자들에게 나눠주는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악보위원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일을 합니다. 수십 명이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서는 바이올린의 보잉 방향 하나, 셈여림과 아티큘레이션 표시 하나만 달라져도 전체적인 음색과 호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휘자가 원하는 음악적 방향을 파악하고 그것을 각 파트의 악보에 정확히 반영하는 사람, 악보라는 종이 위의 기호가 실제 소리로 바뀌기 전에 음악의 정확성과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바로 악보위원이었습니다. 책에서 이들을 무대 뒤의 음악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같은 작품의 연주가 서로 다르게 들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넓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에는 주로 지휘자의 해석이나 연주자의 기량에서 차이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어떤 판본의 악보를 선택했는가, 어떤 보잉과 표현 지시가 반영되었는가, 여러 버전 가운데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가라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특히 말러나 브루크너처럼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말러의 '교향곡 6번'만 해도 2악장과 3악장의 순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유명한 ‘망치’를 몇 번 등장시킬 것인지 같은 문제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관객은 공연장에서 완성된 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그 자연스러움에 도달하기까지 누군가는 여러 자료와 판본을 검토하고 지휘자와 의견을 조율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듣는 연주는 악보를 그대로 소리로 옮긴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선택을 거쳐 만들어진 하나의 해석입니다. 정명훈, 오스모 벤스케, 얍 판 츠베덴을 비롯해 김선욱, 손열음, 조성진, 정경화 등 여러 음악가와 실제 현장에서 작업한 저자의 경험담이 흥미로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유명 음악가를 멀리서 바라보는 일화가 아니라, 악보와 공연 준비라는 구체적인 업무를 통해 각 음악가가 어떤 소리와 해석을 추구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원문이라도 번역자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번역문의 인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작품도 어느 악보를 기준으로 삼고 그 안의 지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처럼 악보를 단순히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 출판사를 통해 임대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국가별 저작권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악보도 달라집니다. 과거 미국에서 구입한 악보를 서울시향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까지 읽고 나면, 악보 한 권이 보면대 위에 놓이는 일조차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악보위원’이라는 직업 그 자체였습니다.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는 사람은 지휘자와 연주자이고 관객은 대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반면 악보위원은 공연이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존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악보에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그들의 역할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조금 묘한 직업입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이런 일이 꽤 많습니다. 아무 문제 없이 일이 굴러가도록 뒤에서 확인하고 준비하고 수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공연 직전에 오류를 발견하고, 연주자가 연주 중 불편하지 않도록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고려하고, 지휘자가 원하는 표현을 수십 개의 파트보에 빠짐없이 반영하는 노동 역시 그렇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은 결국 지휘자 한 사람의 예술도, 뛰어난 연주자 개인의 기량만으로 만들어지는 예술도 아닙니다. 지휘자와 연주자, 악보위원, 공연기획자와 무대 스태프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준비한 결과가 마지막 순간 하나의 소리로 합쳐집니다.  


다음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간다면 연주가 시작되기 전 보면대 위에 놓인 악보를 한 번쯤 바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악보가 어느 판본인지까지 알아맞힐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저 종이 한 묶음이 아무렇게나 그 자리에 놓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 책은 음악 전공자만을 위한 책이라기보다 저처럼 클래식을 좋아해 공연장을 찾으면서도 무대 뒤에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는 알지 못했던 독자에게 특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책의 제목처럼 악보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음표와 기호가 말해주는 것만으로 음악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누군가는 그 기호를 읽고, 선택하고, 해석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책이어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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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항 潛航 - 부자父子 잠수함 함장이 추적한 영화 속 심해의 진실
서강흠.서정훈 지음 / 예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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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예전에 잠수함을 타고 전쟁을 벌이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이제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속 잠수함 함장의 모습만큼은 꽤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고, 외부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상태에서 제한된 정보만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 그때 저는 잠수함 함장이 참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잠항>이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관심이 갔습니다. 영화에서만 접했던 잠수함을 실제 잠수함 함장을 지낸 사람이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책의 저자는 대한민국 최초의 ‘부자 잠수함 함장’인 서강흠·서정훈 부자입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잠수함 전력의 초창기를 경험했고, 아들은 현재 실제 잠수함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잠수함 역사의 한 시기를 지나왔고, 또 한 사람은 현재진행형으로 그 바다를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책의 무게가 남달랐습니다.





이 책은 <해저 2만 리>에서 시작해 <특전 U보트>, <U-571>, <붉은 10월>, <크림슨 타이드>, <헌터 킬러>, <쿠르스크>, 『유령> 등 잠수함과 관련된 여러 영화와 작품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단순히 영화 줄거리를 소개하는 책은 아닙니다. 영화 속 장면을 실제 역사와 잠수함 작전, 함장의 경험과 대조하면서 ‘이 장면은 실제로 가능한가’, ‘실제 잠수함에서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설명합니다.


평소 전쟁 영화를 볼 때 저는 주로 이야기와 인물의 선택에 집중했습니다. 잠수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수중에서 상대를 어떻게 탐지하는지, 함장이 어떤 정보를 근거로 판단하는지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잠항>을 읽고 나니 영화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장면들이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남북전쟁 당시의 잠수정 ‘헌리’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의 첨단 잠수함을 생각하면 잠수함은 현대전의 산물처럼 느껴지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바닷속을 전장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해왔습니다. 헌리는 실제 전투에서 적함을 침몰시킨 잠수함의 초기 사례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승조원 모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잠수함이라는 기술이 처음부터 얼마나 위험한 도전과 실패를 품고 발전해왔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U-571>을 다루는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독일 잠수함에 침투해 암호 장비를 확보하는 긴박한 작전이 펼쳐지는데, 책은 이런 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 역사적 배경과 비교합니다.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이라면 일종의 ‘해설판’을 읽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수함은 일반적인 조직과 상당히 다른 공간입니다. 바다 아래 깊이 들어간 순간 외부와 자유롭게 소통하기 어렵고,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쉽게 구조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함장의 판단 하나가 승조원 전체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함장이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승조원 모두가 영웅이 되기도 하고 패배자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정보가 충분할 때 판단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정보를 얻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잘못 판단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판단을 미룰 수도 없습니다. 결국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결정하고 그 결과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잠수함 함장은 그런 리더십의 극단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수함이라는 공간 자체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수면 위의 함정과 달리 상대를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소나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와 각종 장비가 보내오는 정보를 토대로 상대의 위치와 움직임을 추측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잠수함전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싸움이라기보다 일종의 고도의 심리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의 기술이 역설적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점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냉전 시대의 핵잠수함을 다룬 부분에서는 잠수함이 단순한 공격 무기가 아니라 상대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억제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보이지 않는 바닷속 어딘가에 상대의 공격에 반격할 수 있는 전력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군사 분야에 특별히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 잠수함의 종류나 무기체계 같은 내용이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라는 익숙한 매개가 있어서 생각보다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이 잠수함을 단순히 ‘멋있는 무기’로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잠수함에는 늘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장기간 생활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탈출조차 쉽지 않은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승조원들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몇 초 만에 지나가는 긴박한 장면이 실제 승조원들에게는 자신의 생명 전체가 걸린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잠항>은 잠수함에 관한 책이지만 동시에 역사, 영화, 군사전략, 국제정세와 리더십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굉장히 멋진 책이었습니다. 특히 영화 속 잠수함을 보며 한 번이라도 “실제로도 저럴까?”라고 궁금해했던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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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과 4분의 3의 슬픔
폴커 주어만 지음, 김시형 옮김 / 삐삐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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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청소년기를 떠올리면 저는 먼저 ‘복잡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돌아보면 별일 아닌 것 같은 일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고, 당시에는 왜 그렇게 불안하고 예민했는지 스스로도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그 시절을 쉽게 ‘사춘기였으니까’라고 정리할 수 있지만, 막상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감정 하나하나가 너무 크고 선명했습니다.





폴커 주어만의 <13과 4분의 3의 슬픔>은 바로 그 시기의 감정을 꽤 정확하게 건드리는 청소년 소설입니다. 제목부터 조금 우습고 이상합니다. ‘13과 4분의 3’이라는 애매한 나이와 ‘슬픔’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 조합이 오히려 사춘기를 꽤 잘 설명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세상이 낯선 나이. 감정은 넘치는데 그 감정을 설명할 언어는 충분하지 않은 시기입니다.





주인공 레온에게 사춘기는 흔히 떠올리는 반항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대신 이유 없는 슬픔과 눈물로 찾아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여드름이 나는데 자신은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장면은 우습지만 동시에 묘하게 아픕니다. 청소년기의 우울과 불안을 지나치게 비장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가볍게 넘기지도 않습니다.





저는 책 속에서 ‘오리무중’이라는 장면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레온은 이메일을 보내 놓고 매일 답장을 확인하지만 아무 소식도 받지 못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짧지만, 그 나이에는 그런 사소한 일이 이상할 정도로 크게 느껴집니다. 저도 청소년기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답장 하나, 친구의 표정 하나를 지금보다 훨씬 오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세상의 중심이 아주 좁았기 때문에 작은 사건 하나가 하루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곤 했습니다.


‘진척이 있다’ 장에서 레온과 루벤이 인터넷을 뒤지고, SNS를 검색하고,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가는 장면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수행평가 때문에 시작된 일이 점점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추적하는 일이 됩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종종 아주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예상하지 못한 세계로 이어지곤 합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탐색이 그들에게는 자기 세계를 넓히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 소설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 청소년을 ‘미성숙해서 가르쳐야 하는 존재’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레온과 루벤은 죽음과 애도, 인간의 상처에 대해 오히려 어른들보다 집요하게 질문합니다. 학교 근처 교차로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의 주인을 알아보려는 행동도 처음에는 수행평가를 위한 것이지만, 결국 한 사람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사라지는가를 묻는 일이 됩니다.


책 속 레온은 자기 안의 슬픔을 가득 찬 잔에 비유합니다. 평소에는 가까스로 넘치지 않고 버티지만, 아주 작은 일 하나가 더해지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읽으며 청소년기의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그 정도 일로 왜 그렇게 힘들어하지?’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마지막 한 방울이 아니라 이미 잔에 가득 차 있던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청소년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을 혼자 생각했습니다. 친구 관계, 진로, 공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같은 문제들이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를 만난다면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말을 듣는다고 당시의 제가 쉽게 안심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감정은 설명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나가야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레온과 루벤의 관계가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완전히 해결해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대신 함께 조사하고, 같이 걷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웃습니다. 결국 슬픔을 견디게 하는 것은 완벽한 해답보다 옆에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거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작품 전체가 지나치게 침울하지 않은 것도 좋았습니다. 두 소년이 공동묘지를 찾아다니면서 농담을 하고, 무서워하면서도 계속 걸어가는 장면도 서평을 쓰는 지금, 기억이 납니다. 죽음이나 우울을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습니다. 실제 삶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에도 사람은 밥을 먹고, 엉뚱한 농담을 하고, 친구 때문에 웃습니다. 슬픔과 웃음은 생각보다 자주 같은 하루 안에 존재합니다.


이 작품이 독일 교육 현장에서 윤리나 종교 수업 자료로 활용된다는 점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죽음이나 우울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단순한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된 뒤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부끄럽거나 유치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13과 4분의 3의 슬픔>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감정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청소년기를 생각나게 만드는, 꽤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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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 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
김희경 지음 / 웨일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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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결혼과 가정을 생각할 때 사랑이나 관계 자체보다 그 이후에 따라오는 삶의 운영이 더 먼저 걱정되는 편입니다. 지금 당장 결혼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결혼을 상상하면 육아와 집안일, 부모 돌봄 같은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특히 아이가 생긴 뒤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한다면 회사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면서 과연 제 시간과 삶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를 읽으면서 제가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것이 단순히 ‘집안일이 많아지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희경 작가는 <이상한 정상가족>과 <에이징 솔로>에서도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의 모습을 다시 질문해온 작가입니다. 이번 책에서는 돌봄과 살림 뒤에 숨어 있는 ‘기획 노동’을 이야기합니다. 직접 밥을 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실행 노동이라면, 그 일이 가능하도록 미리 생각하고 정보를 찾고 일정을 조정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기획 노동입니다.





본문 첫 장의 제목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 기획 노동을 호명하다.’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실제 행동만으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필요한 물건을 확인하고, 병원 예약일을 기억하고, 가족의 일정을 조율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을 한 사람조차 ‘내가 오늘 뭘 했지?’ 싶을 만큼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머리는 끊임없이 돌아갑니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맞벌이 부부 이야기는 제가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가사노동을 5대5로 나누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누가 먼저 일을 발견하고, 언제 해야 하는지 기억하고, 상대에게 부탁하고, 끝났는지 확인하는가에 따라 부담은 전혀 달라집니다. 그래서인지 ‘똑같이 나누어도 남는 차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의 양만 반으로 나눈다고 해서 머릿속의 책임까지 반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시키는 것도 또 다른 기획 노동’이라는 장의 제목에도 공감했습니다. 흔히 한쪽이 “말하면 하지”라고 말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고 설명하고 부탁하는 일 자체가 이미 노동입니다. 저는 결혼 후 이런 관계가 반복된다면 상당히 지칠 것 같습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더라도 상대방의 생활까지 계속 관리해야 한다면 어느 순간 배우자가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랑이 갑자기 업무 관리 프로그램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책은 특히 여성에게 기획 노동이 집중되는 현실도 짚습니다.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와 2023년 EBS 프로그램에서 확인한 사례들이 소개되는데, 실행 노동보다도 기획 노동의 성별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육아휴직을 한 남편이 상당한 가사노동을 담당하면서도 정작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역할은 아내에게 남아 있는 사례도 등장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출생 문제를 단순히 ‘요즘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출산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수년, 어쩌면 수십 년 동안 누군가는 아이의 건강, 교육, 생활, 감정, 일정과 미래까지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 직장생활까지 병행한다면 머릿속에는 회사와 가정이라는 두 개의 운영체제가 동시에 돌아가는 셈입니다. 제가 육아를 두려워하는 것도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이 끝없는 정신적 책임을 감당하다가 제 삶과 일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러니 결혼하지 말라’거나 ‘여성만 희생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결론 내리는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노동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름이 생겨야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지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처음부터 기획과 실행을 함께 맡고, 가족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돌봄은 제도와 사회가 분담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메시지라고 느꼈습니다. 결혼이나 육아가 두렵다고 해서 그 두려움 자체를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무엇이 두려운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저에게는 ‘가족을 갖는 것’보다 가족을 유지하는 모든 책임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에게 몰리는 구조가 훨씬 두렵습니다.


그래서 만약 언젠가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면 저는 단순히 “집안일 잘 도와주는 사람”보다, 집안일과 돌봄을 자신의 일로 인식하고 먼저 발견하고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더 중요하게 볼 것 같습니다. ‘도와준다’는 말부터 사실 조금 이상합니다. 함께 꾸린 삶이라면 누군가의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동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제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결혼과 육아에 대한 불안을 없애준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불안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편해졌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보다 이름이 붙은 문제는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림과 돌봄은 사랑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기억과 판단과 계획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노동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어떻게 나눌 것인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제게 이 책은 결혼을 권하는 책도, 비혼을 권하는 책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관계와 가정을 선택하든, 내 삶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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