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 ㅣ 시대철학 1
자코모 카사노바 지음 / 비원 / 2026년 7월
평점 :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카사노바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바람둥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수많은 여성을 유혹하고, 관계를 즐기며,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남자. 그래서 처음에는 이 책도 연애 기술이나 밀고 당기기를 다루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는 카사노바의 연애 편력만을 흥미롭게 소비하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는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은 어디에서 생기는지, 그리고 타인의 관심을 얻는 능력과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어떻게 다른지를 함께 묻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의 핵심을 헌신이나 진심이 아니라 ‘호기심’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는 점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는 상대보다 아직 다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다음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할 때 관계에는 긴장감과 생명력이 생깁니다.

카사노바는 바로 그 호기심의 작동 방식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모두 설명하거나 상대에게 끊임없이 확신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 침묵을 만들었습니다. 책 속 표현처럼 그는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의 여백’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과거의 제 관계를 자연스럽게 떠올렸습니다. 한때 저는 사랑한다는 것은 솔직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며, 상대에게 제 마음을 충분히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표현했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으며,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제가 더 많이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태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제 기준을 낮추고, 관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무례한 말까지 이해하려 들다 보면 어느새 관계의 중심에서 제가 사라집니다.
이 책이 말하는 ‘고프레임’은 상대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라는 뜻이라기보다, 자신의 가치와 자유를 타인의 반응에 맡기지 않는 태도에 가까웠습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느냐에 따라 내 가치가 달라지지 않고, 관계를 잃을까 두려워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으며, 사랑 속에서도 자기 삶을 계속 살아가는 사람. 저는 그것이야말로 제가 지난 관계를 통과하며 뒤늦게 배운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언제나 타인보다 내 자유를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오래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하는 일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제멋대로 행동할 자유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을 자유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는 관계가 끝난 원인을 제게서 찾으려 했습니다. 내가 조금 더 예뻤다면, 조금 더 재미있었다면, 조금 더 맞춰주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더 해줬어야 했을까?”가 아니라 “왜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 앞에서 오래 머물렀을까?”였습니다.
카사노바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줄이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과 지키고 싶은 기준이 있으며, 언제든 관계 밖으로도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상대에게 모든 시간을 바치고 모든 관심을 쏟는 사람보다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카사노바의 기술을 무조건 찬양하지 않습니다. 작가님은 환상의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같은 침묵도 상대에게 감정을 정리할 여백을 주는 배려가 될 수 있고,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 집착하게 하는 조종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카사노바는 상대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언어로 말하며, 자신을 흥미로운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탁월한 사회적 감각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결핍과 허영을 이용해 지배하려는 순간 매력은 곧 기만이 됩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과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이 책은 놓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책의 후반부가 특히 좋았습니다. 카사노바의 화려한 성공담만 보여주었다면 자극적인 연애 전략서에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범했던 순간과, 여성을 자기 인생의 배경으로 소비했던 한계까지 함께 짚습니다.
결국 건강한 매력에는 윤리가 필요합니다. 상대에게 호기심을 일으키되 일부러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것, 자신의 가치를 지키되 상대를 낮추지 않는 것, 자유를 사랑하되 그 자유로 타인의 존엄을 침범하지 않는 것. 이것이 단순한 연애 기술과 성숙한 관계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느꼈습니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가까워지는 일은 아름답지만, 그 사람의 관심을 얻기 위해 내 삶 전체를 내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은 두 사람이 각자의 세계를 버리고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호기심을 품고 가까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는 카사노바처럼 사람을 유혹하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의 매력과 기만, 자유와 착취, 자기 연출과 자기기만을 함께 바라보며 결국 독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선 속에서 살고 있는가. 당신의 자유는 진짜 자유인가. 그리고 당신은 자기 삶을 어떤 이야기로 남기고 싶은가.
이제 저는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제 가치를 증명하는 사랑보다, 서로의 세계를 궁금해하면서도 각자의 자유를 지켜주는 관계를 원합니다. 마음을 다 보여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진심을 주더라도 나까지 통째로 넘겨주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랑의4분의3은호기심이다 #모티브 #리뷰의숲 #자기계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