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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깨달을 결심
권오만 지음 / 제이브리즈북스 / 2026년 5월
평점 :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이상하게 멈추는 일이 어렵습니다. 해야 할 일은 계속 쌓이고,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 역시 공부와 일, 앞으로의 계획 사이에서 늘 무언가를 더 채워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깨달을 결심>이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깨달음이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특별한 수행의 결과라기보다 잠시 멈추어 자기 삶을 바라보는 조용한 태도에 가깝습니다.

<지금, 깨달을 결심>은 경동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이자 수필가인 권오만 작가님의 산문집입니다. 작가님은 안식년을 맞아 경주 단석산의 작은 산사 신선사에 머물며 보낸 스무날의 시간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건축과 디자인,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연구해온 학자이자 등단 작가답게, 책의 문장에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문학적인 사유가 함께 배어 있습니다. 특히 산사 생활을 단순한 휴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불편함과 고요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으로 기록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의 매력은 거창한 법문이나 극적인 사건보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나옵니다. 낯선 부엌에서 밥을 짓고, 산길을 오르고, 빨래를 하며, 산사의 강아지 댕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장면들이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특히 댕구라는 존재가 그렇습니다. 산사를 지키는 얼룩 강아지 댕구는 작가님에게 어떤 철학적 개념보다 직접적인 깨달음을 줍니다. 앞서 달리다가도 기다리고, 다가왔다가도 제 리듬대로 사라지는 댕구의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자주 관계와 경쟁, 소유에 매달리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동물은 말이 없지만, 때로는 인간보다 훨씬 정직하게 삶의 리듬을 보여줍니다.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철학에는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원각경> 원문을 읽어본 적도 있는데, 그때도 어려운 한문 문장 너머로 마음을 붙드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불교의 매력은 삶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괴로움에 완전히 끌려가지는 않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역시 그런 결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자는 산사에서 무엇인가 대단한 답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밥을 짓고 산을 오르고 댕구와 이별하며, 삶이란 결국 머물고 흘러가고 다시 비워지는 과정임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불교적 사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무상과 인연, 비움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전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비우러 갔다가 채워져 돌아온다’는 역설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쉰다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좋은 쉼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더 선명하게 만나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저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면 불안해지거나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붙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에 조용히 브레이크를 걸어줍니다.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며, 고요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지금, 깨달을 결심>은 빠른 결론과 실용적인 조언을 기대하는 독자보다는, 지금 자신의 삶이 너무 소란스럽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잘 맞는 책입니다. 특히 일과 책임,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은 사람, 자연과 산사, 동물과의 교감이 주는 위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큰소리로 위로하지 않습니다. 대신 신선사의 바람, 산길의 흙냄새, 댕구의 발소리 같은 것들로 천천히 마음을 풀어줍니다. 읽고 나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내 삶 안에 작은 산사 하나쯤은 들여놓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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