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메이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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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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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메이커>는 트레이시 슈발리에 작가님이 오랜 시간 천착해온 역사 속에서 지워진 여성의 노동과 예술을 다시 한 번 정교하게 복원해낸 장편소설입니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로 30분 떨어진 무라노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소설이 다루는 시간의 스케일은 르네상스에서 21세기까지 수백 년에 이릅니다. 슈발리에 작가님은 특유의 치밀한 고증과 절제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여성의 삶을 따라가며 예술과 생존, 전통과 변화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워낙 유명한 작가님이라서 굳이 제 서평에 소개가 필요하진 않겠지만, 간단히만 언급하자면 슈발리에 작가님은 역사 속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현대 역사소설의 대표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세계라는 설정입니다. 무라노의 인물들은 나이를 거의 먹지 않은 채 몇 세기를 건너뛰며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독서를 이어갈수록 이 장치는 매우 설득력 있게 작동합니다. 저 역시 오랜 시간 한 분야를 공부해 본 경험이 있어, 오르솔라가 같은 손놀림을 반복하며 시대만 바뀌는 장면에서 묘한 공감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대신, 남는 것은 축적된 기술과 감정의 흔적뿐이라는 설정은 성장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유리구슬이라는 사소해 보이는 공예품이 지닌 의미의 확장입니다. 소설 속에서 오르솔라의 구슬은 한때는 경시되지만, 결국 가문을 살리는 핵심 생계 수단이 됩니다. 이는 고급 예술과 생활 노동 사이의 위계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슈발리에 작가님은 유리의 빛과 결, 손끝의 감각을 집요할 만큼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문장은 과장 없이 차분하며 장면을 투명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감정의 고조 대신, 시간이 침전된 뒤 남는 기억의 기억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단순한 여성 서사에 머물지 않습니다. 베네치아가 교역 도시에서 관광 도시로 전락하는 과정, 전통 산업이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쇠퇴하는 모습은 무라노 유리공예의 역사와 맞물려 제시됩니다. 이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이나, 전통 장인 기술이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겪는 변형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작가님은 이러한 맥락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오르솔라의 삶이라는 구체적 사례로 조용히 녹여냅니다. 그 덕분에 독자는 무겁지 않게, 그러나 깊은 사유에 도달하게 됩니다.




 

<글래스메이커>는 해외 장편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 특히 역사소설과 예술 서사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빠른 전개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보다는, 시간의 결을 따라 천천히 읽는 독서에 익숙한 분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예술이 어떻게 시간을 초월하는지, 그리고 한 개인의 손끝에서 시작된 노동이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를 차분히 목격하게 됩니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소설을 찾고 계신 분이라면, 충분히 손에 들 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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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노벨 경제학상 - 1969-2025: 혁신을 이끈 41명의 경제학자들
김나영 지음 / 가나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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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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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노벨 경제학상>노벨 경제학상이라는 무게감 있는 제목과 달리, 독자를 위압하지 않는 방식으로 경제학의 핵심 질문들을 일상 속으로 끌어오는 책입니다.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평소 경제 관련 교양서를 즐겨 읽어 온 독자인데요. 제가 보았을 때, 이 책은 경제학이 왜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는가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입문서에 가깝습니다. 수식과 그래프 중심의 설명 대신, 우리가 실제로 겪는 선택과 갈등을 출발점으로 삼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나영 작가님은 오랫동안 교실과 강연 현장에서 경제를 설명해 온 교육자답게, 복잡한 이론을 단순화하되 왜곡하지 않는 균형 감각을 보여 줍니다. 책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특징은 쉽게 쓰되 얕지 않다는 점입니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쓰였지만, 경제학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에게도 충분한 사고 거리를 던집니다. 각 장이 특정 경제학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하나의 생활 속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 역시 독서 부담을 크게 낮춥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3장에 실린 클라우디아 골딘의 시간 프리미엄 보상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남성을 앞서는 상황에서도 임금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 문제가 아닌 장시간·대기 상태 노동에 과도한 보상을 주는 구조로 설명하는 대목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는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이 노골적인 배제보다 제도 설계의 미세한 편향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과거 인적자본 이론이나 노동 공급 이론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독자로서는, 기존 지식이 현대 노동시장 분석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소한의 노벨 경제학상>의 강점은 개별 이론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관점의 경제학자들을 한 무대에 올려 놓는 데 있습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유진 파마와 시장의 비이성을 강조한 로버트 쉴러를 함께 소개하는 구성은, 경제학이 정답을 제시하는 학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논쟁하며 발전해 온 학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여기에 게임 이론, 행동경제학, 제도경제학 등 다양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독자는 경제학의 큰 지형을 조망하게 됩니다.

 

이 책은 경제 뉴스가 어렵게 느껴지는 청소년은 물론, 이미 여러 경제 교양서를 읽어 왔지만 이론의 맥락이 흩어져 있다고 느끼는 성인 독자에게도 추천할 만합니다. 특히 이 이론이 왜 중요했는가”,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고민해 보고 싶은 독자라면 만족도가 높을 것입니다. 최소한의 분량으로 최대한의 통찰을 전한다는 제목처럼, 이 책은 경제학을 한 단계 더 이해하고 싶어 하는 교양 독자에게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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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위한 디자인 - 일의 본질을 다시 설계하는 AI 시대의 생각 훈련
올리비아 리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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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디자인 #기획 #개발 #마케팅 #성장 #일을위한디자인 #올리비아리 #한빛비즈 #신간도서 #추천도서 #베스트셀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I, , 성장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작업대 위에 동시에 올라와 있는 도구들처럼 느껴집니다. <일을 위한 디자인>은 이 혼재된 시대에 무엇을 더 잘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일할 것인가를 묻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자기계발서 특유의 속도감 있는 처방보다, 오래 일해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정제된 질문을 만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올리비아 리 작가님은 디자인을 직무가 아니라 사고의 방식으로 확장시키며, AI 시대의 불안을 기술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올리비아 리 작가님은 산업디자인을 기반으로 프로덕트, 브랜드, 마케팅, 교육 현장을 두루 경험해온 디자이너입니다. 저자 소개는 화려하지만, 책의 태도는 오히려 절제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AI를 잘 쓰는 법이나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얕은 멀티태스킹이 어떻게 사고를 납작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깊은 사람은 왜 AI 앞에서 더 강해지는지를 차분히 설명합니다. 저 역시 기획과 글쓰기, 교육을 병행하며 도구에 의존할수록 생각이 흐려지는 순간을 자주 겪었기에, 이 부분에서 강한 공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지점은 최고의 프롬프트는 결국, 라는 관점입니다. 작가님은 공부와 성장을 정보를 쌓는 행위가 아니라, 몸에 새기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책 속에서 언급된 새로운 이론이나 기술을 배울 때 설명보다 실제로 써볼 때 더 기억에 남는다는 문장은, 경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청이란 타인의 말을 조용히 듣는 태도가 아니라, 세계가 던지는 신호를 흘려보내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입니다. 이는 디자인뿐 아니라 기획, 개발, 마케팅 전반에 적용 가능한 핵심 역량이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떠올랐던 장면은, 일을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오히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기획서와 원고를 반복해서 고치고, 더 나은 표현과 구조를 찾는 데 집중할수록 결과물은 정교해졌지만, 정작 일의 중심이 흐려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더 많은 자료를 찾고, 더 새로운 도구를 익히려 했습니다. 그러나 올리비아 리 작가님이 말하는 설계는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무엇을 더 할지 고민하기 전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떤 구조로 바라보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제안은, 제게 일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 경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경험을 한 단계 위에서 정리해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위한 디자인>의 강점은 결과보다 흐름을 설계하라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최근 조직심리학이나 학습과학에서 강조하는 메타인지와도 닿아 있습니다. 잘 일하는 사람은 정답을 빨리 내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 정의를 반복적으로 조정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일에 관한 철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AI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자신의 사고 구조를 점검하는 거울로 활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책은 AI 시대에 불안을 느끼는 직장인, 기획자,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자신의 일을 오래 지속하고 싶은 모든 직업인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점점 지치는지질문해본 적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은 속도를 늦추는 대신 방향을 다시 잡게 도와줄 것입니다. <일을 위한 디자인>은 더 빨리 성장하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대신 덜 소모되며 오래 일하는 법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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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 기술 - 말 한마디 안 해도 원하는 것을 얻는 듣기의 힘
야마다 하루 지음, 정지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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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기술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 #잘듣는방법 #신간도서 #추천도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경청의 기술>은 흔한 커뮤니케이션 자기계발서처럼 잘 말하는 법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하기에 과도하게 집착해 온 우리의 습관을 조용히 되돌려 세우며, ‘듣는 행위가 얼마나 능동적이고 지적인 활동인가를 차분히 설득하는 책입니다. 평소 자기계발서나 소통 관련 책을 즐겨 읽어온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얄팍한 기능을 알려주는 흔한 스타일의 책이라기보다, 태도와 인식의 방향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안내서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말이 넘쳐나는 시대에 침묵 속의 집중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능력임을 일깨웁니다.



 

야마다 하루 작가님은 사회언어학자로서의 연구 이력과 개인적 경험을 균형 있게 엮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특히 사고로 청각 장애를 겪은 뒤 듣지 못하는 상태를 통과하며 경청의 본질을 체감했다는 배경은 이 책의 주장에 과장 없는 무게를 더합니다. 이론은 많지만 훈계는 없고, 사례는 풍부하지만 감정에 기대지 않습니다. 은행원 회의 대화 분석, 문화권별 소통 방식, 비언어적 신호 해석 등은 학문적 토대 위에서 설명되지만, 일상 대화에 바로 대입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입니다. 문단 간 여백 또한 충분해서, ‘속도를 늦추고 읽게 만드는장점이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지점은 세 가지인데요. 첫째, ‘듣기 지능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예의나 공감 능력이 아니라 정보 처리·판단·관계 조율을 아우르는 종합 역량으로 정의한 점입니다. 그리고 빠른 듣기와 느린 듣기를 구분해 상황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는 설명도 좋았습니다. 저 역시 회의나 대화에서 늘 모든 말을 동일한 밀도로 들으려 애썼는데, 이 책을 통해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경청의 핵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비언어적 경청에 대한 분석을 읽으며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얼굴 표정, 시선, 몸의 방향 같은 요소들이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는 설명은, 앞으로 제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훌륭한 힌트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장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소주제는 1장의 ‘14개의 마음으로 듣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듣기를 귀의 기능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가님은 청각 시스템, 인지 과정, 감정 반응까지 포함해 듣기를 다층적인 마음의 작동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주의 자원이나 인지 부하 개념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경청은 상대를 위해 참고 견디는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이 더 정확히 판단하고 선택하기 위한 전략이 됩니다. 듣는 태도가 바뀌면 말할 때의 어조와 질문의 질도 함께 달라진다는 점을 일상 생활 속에서 실제로 조금씩 확인하는 중입니다.

 

<경청의 기술>은 말이 막히는 사람보다, 오히려 말을 잘한다고 평가받아 온 사람에게 더 필요한 책일지도 모릅니다. 회의에서, 관계에서, 혹은 가족과의 대화에서 왜 자꾸 엇갈리는가를 고민해 본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더 많이 말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대신 덜 말하고 더 정확히 듣는 법을 알려줍니다. 읽고 나면 대화의 목표가 설득이나 승리가 아니라, 이해와 연결로 조용히 이동합니다. 그 변화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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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순례
헤르만 헤세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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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순례 #헤르만헤세 #독일문학 #추천도서 #신간도서 #헤세문학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동방순례>는 헤르만 헤세 작가님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유독 조용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는 소설입니다. 겉으로는 동방을 향한 순례단의 여정을 기록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내면의 붕괴와 재구성을 그린 정신적 기록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저는 흔히 소설에서 기대하는 서사적 쾌감이나 사건의 연쇄보다는, 오히려 고백에 가까운 문장의 밀도를 통해 독서 자체가 하나의 사유 행위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헤르만 헤세 작가님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문학을 삶의 유일한 구원으로 선택한 인물입니다. 청소년기의 좌절과 정신적 위기, 전쟁과 정치적 고립, 반복되는 창작의 무력감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라는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동방순례>는 그러한 삶의 궤적 중에서도 특히 말년을 향해 가는 중간 지점에서, 더 이상 이전 방식으로는 자신을 지탱할 수 없음을 자각한 작가가 선택한 형식적 실험이자 고백입니다.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는 서사 자체를 해체하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순례단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여정은 점차 붕괴되고 화자는 신뢰를 잃으며 독자 역시 길을 잃습니다. 이는 단순한 플롯의 실패가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헤세 작가님은 자아 실현을 성취가 아닌 소멸의 과정으로 제시합니다. 젊음의 생성과 성숙의 내려놓음을 대비시키는 이 사유는, 삶을 끊임없는 성장 서사로만 소비해 온 독자에게 불편하지만 정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헤르만 헤세 문학 전체에서 볼 때 <동방순례><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를 지나 <유리알 유희>로 나아가기 직전의 관문과 같은 작품입니다. 개인적 신화와 상징이 집단적 질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그는 더 이상 나를 찾는 이야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이 소설에서 암시된 결맹과 기록의 문제는 이후 헤세가 인간과 공동체, 정신과 제도의 관계를 사유하는 토대가 됩니다.

 

이 책은 삶의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독자에게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성취와 확신의 언어가 더 이상 자신을 설득하지 못할 때, 이 작품은 혼란 그 자체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헤세 작가님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그의 문학 세계가 어떻게 개인적 고백에서 보편적 성찰로 확장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자기 삶의 내면을 다시 질문해 볼 계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을 찾는 분들께, <동방순례>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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