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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나이토 이즈미 지음, 위지영 옮김 / 마음의숲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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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정된 일이지만, 우리는 이상할 만큼 그 장면을 상상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병원 중환자실의 기계음과 연명치료 장면에는 익숙하면서도, 정작 “나는 어디에서 어떤 얼굴로 생을 마무리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는 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책이었습니다.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인 나이토 이즈미 작가님은 30여 년간 환자들의 마지막 시간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을 관리하는 의료’보다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인간’을 보여줍니다. 또한 방송 다큐멘터리 번역가로 오래 활동해온 위지영 번역가님의 담백한 문장 덕분에 일본 특유의 정서가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죽음을 지나치게 비장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임종 직전까지 벚꽃을 보러 가고, 가족 빨래를 개고, 좋아하는 튀김을 먹으러 갑니다. 언뜻 보면 소소한 일상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강렬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말기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평범한 하루를 잃고 싶지 않다”는 욕구라고 합니다. 실제 완화의료(palliative care)에서도 통증 조절만큼 중요한 것이 환자의 ‘삶의 주도권’을 지켜주는 일인데, 이 책은 그 개념을 어렵지 않게 보여줍니다. 특히 저는 “사람은 살아온 대로 죽어간다”는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죽음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평생 반복해온 태도와 관계의 마지막 연장선이라는 의미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살아온 시간의 총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외할머니의 병간호를 지켜본 경험이 있어 이 책의 분위기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큰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셨는데, 치료 자체보다 더 힘들어했던 건 “내 삶이 병실 번호로 축소되는 감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집에서는 평범한 어른이었는데 병원에서는 환자 이름표가 먼저 붙는 현실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 인물들이 끝까지 자기 취향과 일상을 지키려 했던 모습이 유난히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와인 한 잔의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 마지막까지 스스로 움직이려 합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거창한 철학보다도 결국 “내가 나로 남아 있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단순한 감동 실화집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2026년부터 통합돌봄제도가 본격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의료·돌봄·주거를 연결해 익숙한 공간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하자는 흐름은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 오래 논의되어 왔습니다. 이 책은 그 제도의 성과를 정책 보고서처럼 설명하지 않지만, 실제 사람들의 얼굴과 일상으로 보여줍니다. 죽음을 삶에서 완전히 분리해버린 현대 사회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죽는 일이 흔했지만, 지금은 탄생과 죽음 모두 의료 시스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의료 발전은 중요하지만, 인간의 마지막까지 지나치게 ‘관리 대상’처럼만 다루게 되는 순간 삶의 존엄도 함께 흐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호스피스나 간병에 관심 있는 분들만 읽기에는 아까운 책입니다. 부모님의 노년을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 병원 중심의 죽음에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 혹은 지금 자신의 삶이 너무 타인의 기준에 끌려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책을 덮고 나면 “어떻게 죽고 싶은가”보다 “그날까지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삶의 마지막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반복한 태도들이 천천히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