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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때 우주공학이 있었다면? - 일상을 바꾼 나사 스핀오프 기술 26
김상협 외 지음 / 생각학교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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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때 우주공학이 있었다면?>은 우주를 ‘먼 미래의 낭만’이 아니라 ‘당장 손에 잡히는 공학의 결과물’로 끌어내리는 교양 과학서입니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로서 가장 반가웠던 지점은, 이 책이 NASA의 기술을 나열하지 않고 “만약 그때 이런 기술이 있었다면?”이라는 익숙한 이야기 장치로 시작해 호기심을 먼저 열어 준다는 점입니다. 신데렐라, 별주부전, 이순신 같은 서사에 무선 청소기, MRI, GPS가 얹히면서 과학이 갑자기 교과서에서 내려와 일상 물건으로 변합니다. 독자를 웃기려고 꾸민 설정 같지만, 읽다 보면 ‘우주공학은 생존 문제를 풀기 위한 사고법’이라는 핵심이 계속 남습니다.

김상협 작가님, 김홍균 작가님, 정상민 작가님은 현직 과학 교사답게 주제를 딱딱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각각의 주제들을 설명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으로 개념을 데려오고, 뒤에서 원리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해석해서 한 편의 재미있는 웹드라마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각 장의 ‘과학 톡톡’은 이야기에서 생길 수 있는 공백을 메워 주는 장치인데, 이게 은근히 설득력이 큽니다. 재미로 시작했는데 끝에는 배터리 전력 제어, 승화, 상변화 물질, 자기공명 같은 개념이 최소한의 정확도로 정리되어 있어 “아, 이건 드립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이야기였구나”로 마음이 바뀝니다. 즉,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고 과정의 시뮬레이션에 가깝습니다.

이 책의 중심축으로 꼽고 싶은 흥미 포인트는 세 가지인데요. 먼저, ‘스핀오프’라는 키워드를 통해 기술의 출발점이 거창한 발명 욕망이 아니라 극한 환경의 제약(물, 열, 무게, 안전)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각인시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공학을 ‘멋진 기술’이 아니라 ‘문제 정의→제약 조건→대안 설계’의 흐름으로 보여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세번째로, 유머가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이해 장벽을 낮추는 교육 장치로 작동한다는 점도 독자로서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입니다. 대부분의 우주 교양서들은 딱딱하고 설명 중심적인데, 이 책은 “왜 그 기술이 필요했는지”를 생활감 있게 붙잡고 가는 쪽이라 접근성이 확실히 다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주제는 8장 ‘이순신 장군에게 GPS가 있었다면’입니다. 여기서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정보가 정확하면 전술이 바뀌는가?”입니다. GPS는 ‘길 찾기 앱’ 정도로 소비되기 쉬운데, 이 장을 따라가면 위치·시간 정보의 정밀도가 곧 의사결정의 속도와 리스크를 바꾼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제 배경지식을 조금 덧붙이자면, 현대 전쟁·조직 운영에서 ‘관측(Observe)-판단(Orient)-결정(Decide)-행동(Act)’의 루프가 빠른 쪽이 유리하다는 관점이 있는 반면 GPS 같은 기술은 그 루프의 앞단(관측)을 압도적으로 강화합니다. 그러면 ‘용기’나 ‘감’의 영역으로 보이던 판단이 사실은 정보 인프라의 문제였다는 해석으로 바뀝니다. 독자는 “영웅이 세상을 바꾼다”에서 “조건과 도구가 의사결정의 품질을 바꾼다”로 인식이 한 단계 이동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에 흥미는 있지만 교과 개념에서 막혔던 분, 아이와 함께 읽을 교양서를 찾는 분, 그리고 “내 일상이 왜 이렇게 기술로 돌아가나”가 궁금한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과학을 ‘외워야 하는 지식’으로 싫어했던 독자에게 “과학은 문제를 푸는 말투”라는 경험을 주는 책입니다. 읽고 나면 우주가 가까워진다기보다, 냉정하게 말해 ‘내 집 물건들이 갑자기 NASA 출신처럼 보이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러면 뭐 어때요. 어차피 정수기 물은 이미 우주 한 번 찍고 온 물일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