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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
지웅배(우주먼지)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2월
평점 :
#천문학자의쓸모없음에관하여 #과학 #우주 #신간도서 #천문우주학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는 제목부터 독자를 약간 불편하게 만듭니다. ‘쓸모없음에 관하여’이라니, 그것도 천문학자가? 그러나 이 도발적인 질문은 곧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으로 이어집니다. 저자 지웅배 작가님은 천문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한성과학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를 거쳐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세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천문학을 소개해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작가님의 이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쉽고 친절한 우주 이야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과학자로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 난처함과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한 사유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천문학의 ‘비실용성’을 미화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입니다. 지웅배 작가님은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이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의 상호작용이며, 그것이 당장 인류의 복지나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천문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독자라면, 관측 장비의 정밀도 향상이나 우주론적 모형이 직접적인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그 간극을 억지로 메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과학 연구를 가치로 환산하려는 사회적 요구 자체를 되묻습니다. 이는 기초과학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통상적인 논리와는 다른 방향에서 독자를 설득합니다.

그리고 ‘우주적 시간 감각’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에 대한 서술도 흥미로웠습니다. 우주 나이를 기준으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찰나에 불과하고, 개인의 삶은 그보다 더 미미합니다. 작가님은 이 인식이 오히려 자신을 조급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흔히 기대되는 ‘우주를 알면 마음이 넓어진다’는 통념과는 다릅니다. 천문학적 시간 스케일은 위안을 주기보다는, 인간 사회의 과도한 의미 부여와 속도 강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이 대목은 우주론적 관점이 반드시 낭만이나 초월로 귀결되지 않음을 보여주며, 과학적 세계관이 인간의 감정과 충돌하는 지점을 날것 그대로 드러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다중우주 이론이나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개념을 다루는 태도입니다. 지웅배 작가님은 다중우주 이론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에 분명한 거리감을 둡니다. 관측 불가능한 영역을 가정함으로써 현재의 이론적 불편함을 덮어버리는 태도는, 과학이라기보다 신념에 가깝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칼 포퍼의 반증 가능성 논의나, 과학과 형이상학의 경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철학적 맥락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지만, 과학 내부에서조차 ‘설명 욕망’이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천문학의 최신 성과보다, 천문학이 인간의 세계관을 어떻게 비틀어 놓는지를 얻게 됩니다. 우주를 이해한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이 자동으로 강화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주의 부산물이라는 냉혹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웅배 작가님은 그 인식이 허무로 끝나지 않도록, 인간을 우주 속 특별한 주인공이 아니라 동등한 구성원으로 위치시키는 감각을 제안합니다. 이는 겸허함이자, 동시에 과학적 태도에 대한 윤리적 요청으로 읽힙니다.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는 우주 사진에 감탄하는 독자보다는, 과학을 하나의 사유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천문학이나 물리학에 대한 기초적인 교양을 갖춘 대학 학부 이상 독자라면,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과학의 유용성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쓸모없음’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오래 남는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