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50 이판사판
하야시 마리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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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마리코 작가님의 <8050>은 단순히 히키코모리 문제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 한 가족이 오랫동안 외면해온 균열이 어떻게 서서히 사람의 삶 전체를 잠식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제목인 ‘8050’80대 부모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일본의 사회문제를 뜻하지만, 이 소설은 숫자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공포를 다룹니다.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족 전체가 조금씩 무너져가는 과정 말입니다. 치과의사 아버지, 전업주부 어머니, 대기업에 다니는 딸, 그리고 7년째 방 안에 틀어박힌 아들. 겉으로 보면 중산층의 안정된 가정이지만, 사실 모두가 서로를 외면한 채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야시 마리코 작가님은 이런 조용히 붕괴하는 가족을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냅니다. 이규원 번역가님의 문장 역시 과장 없이 담백해서 오히려 더 묵직하게 읽혔습니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히키코모리를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작품 속 아들 쇼타는 어느 날 갑자기 방 안에 숨어버린 사람이 아닙니다. 학교폭력, 실패 경험, 가족의 외면, 사회의 무관심이 오랜 시간 쌓이며 한 사람의 시간을 멈춰버린 결과에 가깝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언젠가는 정신 차리겠지라는 부모의 안일함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사실 가족은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정확히 직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더 망가질까 봐,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믿으며 미루다가 결국 모두가 지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폭력 장면이 아니라, 서로 말을 잃어버린 가족의 공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한국 사회의 현실이 계속 겹쳐 보였습니다. 일본의 ‘8050 문제라고 하지만, 지금 한국 역시 청년 고립과 은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취업난, 경쟁, 관계 단절, 실패에 대한 과도한 수치심 같은 문제들이 누적되면서 점점 방 안으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이 소설이 단순히 노력하면 극복 가능하다는 식의 얄팍한 희망을 말하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대신 한 인간이 다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가족의 태도 변화와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작품 후반부에 아버지가 뒤늦게라도 아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려 하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씁쓸했습니다. 결국 가장 늦게 성장하는 사람은 오히려 부모였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가족 안의 역할 문제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특히 딸 유이가 느끼는 분노와 피로감은 꽤 인상 깊었습니다. 문제 해결과 감정 노동은 늘 상대적으로 사회 기능을 하는 사람에게 몰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가족 내 은둔 문제는 특정 한 사람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모의 노후, 형제자매의 삶, 결혼과 인간관계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8050>은 단순한 사회파 소설이 아니라,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분명 존재하고, 때로는 사랑보다 현실적인 개입과 책임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8050>은 가족 문제나 사회적 고립, 은둔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입니다. 특히 일본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지만 한국 독자에게도 전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히키코모리를 단순한 괴짜실패자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대신 왜 어떤 사람들은 삶의 궤도에서 밀려나 방 안에 갇히게 되는지, 그리고 남겨진 가족은 어떻게 늙어가는지를 끝까지 보여주고 있어서 참 훌륭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8050 #사회문제 #북스피어 #일본소설 #하야시마리코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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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 - 개별적 특성을 존중하는 테일러드 케어
황이선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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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치매 #돌봄 #황이선 #초고령사회 #신간도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치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기억을 잃어가는 병정도로 단순화되어 이해됩니다. 하지만 실제 돌봄 현장에서는 기억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어떤 어르신은 특정 시간만 되면 극심한 불안을 보이고, 어떤 분은 익숙한 물건 하나가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종일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치매 케어의 핵심은 단순한 병리 지식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은 꽤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대한민국 1호 치매 이상행동 케어 현장 전문가인 황이선 작가님은 15년 넘게 방문요양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치매 어르신을 증상이 아니라 개별적 특성을 가진 인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테일러드 케어(Tailored Care)’입니다. 쉽게 말하면 치매 환자를 획일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각자의 성격·생활 습관·감정 패턴·가족 관계·종교·직업 경험까지 고려해 맞춤형으로 돌보아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사실 의료 현장에서도 같은 진단명을 가진 환자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흔합니다. 특히 치매는 뇌 기능 저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병이라, 환경 변화와 감정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작가님은 이를 단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사례와 관찰 기록을 통해 설명합니다. “치매 시간과 비치매 시간이 공존한다는 표현도 흥미로웠습니다. 완전히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또렷해지는 시간들이 존재하며, 특히 감정 기억은 끝까지 남는다는 점은 치매를 바라보는 시선을 많이 바꾸게 합니다. 결국 치매 어르신도 표정과 말투,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존중받고 있는지 끊임없이 느끼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은 관찰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병원이나 시설에서는 효율성과 안전이 우선되다 보니 종종 사람 자체보다 관리가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오래 일한 돌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제행동이라 불리는 많은 증상도 사실은 이유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낯선 냄새, 불안, 수치심, 배고픔, 과거 직업 습관 같은 요소가 예상 밖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그런 행동을 무조건 교정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를 먼저 질문합니다. 저는 이 태도가 단순히 치매 케어뿐 아니라 인간 이해 전반에도 중요한 관점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더 불안정해지니까요.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도 바로 이런 감정의 맥락 읽기일 것입니다. 제목이 괜히 <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이 아닌 셈입니다.




 

책은 실용적인 면에서도 꽤 강점이 있습니다. 이상행동 관찰 기록법, 응급상황 대처, 배회 실종 대응, 보호자와 요양보호사 갈등 문제까지 현실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치매 케어를 특정 개인의 희생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보호자·요양보호사·기관이 협업해야 하는 팀 기반 돌봄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은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 내부의 책임으로 돌봄 부담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치매 환자 보호자의 우울증과 번아웃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현장에서 가능한 방법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흐르지도, 반대로 차갑게 매뉴얼만 나열하지도 않는 균형감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만 읽기에는 아까운 책입니다. 부모님의 노화를 체감하기 시작한 중장년층, 가족 돌봄 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사람, 혹은 인간다운 돌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치매는 먼 미래의 남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우리 사회 대부분이 직면하게 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책은 치매를 무너지는 삶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한 사람의 존엄과 취향, 감정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돌봄은 기술 이전에 결국 관계와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읽고 나면 치매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뿐 아니라, 늙어가는 인간 자체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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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힘 - 얼어붙은 조직, 신뢰로 녹인 600일의 여정
김주성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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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힘 #김주성 #조직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 #직장인 #필독도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주성 작가님의 <동료의 힘>은 처음부터 거창한 리더십 이론을 앞세우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 사이의 신뢰는 어떻게 다시 만들어지는가라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에서 출발하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파업 이후 깊게 갈라진 조직,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 반복되는 리더십 공백 속에서 저자는 제도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한 명씩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름을 기억하고, 생일 전화를 하고, 함께 밥을 먹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그 꾸준함이었습니다. 화려한 혁신 전략보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라는 태도가 조직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조용하지만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이 책은 공공기관 조직문화의 현실을 꽤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규정에 없습니다라는 말이 단순한 업무 거절이 아니라,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조직의 방어 기제였다는 해석은 무척 현실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래된 조직일수록 사람들은 점점 말을 아끼게 되고, 책임을 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자가 선택한 방식은 지시보다 질문이었습니다. 90건의 개별 면담과 GROW 코칭 방식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에게 당신 의견이 중요하다는 신호를 주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리더십 책이면서도 동시에 관계 회복에 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직장생활에서 경험했던 장면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는 이유로 연봉이나 업무를 말하지만, 오래 버티게 만드는 건 의외로 사람 대접받는 감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조직 분위기가 얼어붙으면 작은 업무 하나도 괜히 조심스러워지고, 서로 말을 아끼게 됩니다. 저 역시 일하면서 이건 내 일이 아닙니다라는 분위기가 조직 전체를 얼마나 빠르게 지치게 만드는지 여러 번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료의 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동료라는 단어가 꽤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한 호칭 같지만, 누군가를 동료로 대한다는 건 결국 함께 문제를 해결할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또 좋았던 점은 이 책이 지나치게 완벽한 성공담처럼 쓰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조직관리 책은 결과만 정리해서 보여주지만, <동료의 힘>은 변화 과정의 서툰 부분과 현재진행형의 고민도 함께 드러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읽혔습니다. 510번의 생일 전화나 200회 이상의 식사 같은 실천은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조직문화는 그런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대화는 가능합니다. 변화도 가능합니다.”라는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직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책은 공공기관 관리자뿐 아니라, 팀을 이끄는 사람이나 조직 속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리더십 담론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실제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읽고 나면 좋은 조직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구나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성과와 효율만 강조되는 시대라서 더 그런지, 이 책이 말하는 동료의 힘이라는 단어가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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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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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메아리처럼 #앤절라미영허 #열린책들 #화제작 #문학 #소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메아리처럼>은 읽는 동안 계속 묘한 기분이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분명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국 설화와 가족의 저주, 여성의 비극 같은 오래된 소재가 있는데도, 동시에 남극 기지와 입자 물리학, 디아스포라 정체성 같은 현대적인 감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 있거든요. 자칫하면 설정만 화려하고 붕 뜰 수도 있는 조합인데, 앤절라 미영 허 작가님은 그걸 꽤 설득력 있게 끌고 갑니다. 특히 한국 설화를 단순히 동양적 분위기로 소비하지 않고, 여성들의 반복되는 희생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번역은 임슬애 번역가님이 맡았는데, 문장이 지나치게 번역투로 느껴지지 않고 감정선이 매끄럽게 살아 있어 읽기 편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과학으로 도망친 사람이라는 설정입니다. 주인공 엘사는 어머니가 들려주던 설화와 저주의 세계를 거부하기 위해 과학자가 됩니다. 그런데 결국 남극이라는 세계 끝에서도 다시 이야기와 마주하게 되지요. 이 흐름이 되게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종종 가족이나 과거와 완전히 단절했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멀리 도망친 자리에서 다시 자기 뿌리를 만나게 되니까요. 특히 과학은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는 문장은 단순한 직업 선택 이상의 의미로 읽혔습니다. 누군가에게 학문이나 공부는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탈출구가 되기도 하니까요.




 

소설은 한국 설화를 계속 이야기하는데, 읽다 보면 익숙했던 이야기들이 갑자기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심청, 선녀와 나무꾼, 에밀레종 같은 이야기 속 여성들은 대부분 누군가를 위해 희생되거나 빼앗기거나 침묵당합니다. 어릴 때는 그냥 슬픈 이야기정도로 넘겼던 설화들이,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면 꽤 잔인하게 보일 때가 있지요. 특히 우리는 메아리처럼 비극을 반복한다는 말은 단순히 가족 저주 이야기만이 아니라, 세대마다 되풀이되는 감정 구조와 상처까지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판타지 같으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인 작품입니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오래 이어져 온 침묵과 체념이라는 걸 보여주니까요.

 

또 하나 좋았던 건, 이 작품이 단순히 여성의 고통만 강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엘사는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다시 쓰려 합니다. 이게 중요하더군요. 최근 여성 서사 작품 중에는 상처를 드러내는 데는 성공하지만, 인물이 끝내 자기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느꼈는데, <우리, 메아리처럼>은 적어도 다른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깁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우울감만 남기보다 묘한 해방감도 함께 남습니다. 중성미자 같은 유령 입자를 끌어온 설정도 좋았습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계속 형태를 바꾸며 이동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민자 정체성과 정말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약간 SF 같고, 약간 신화 같고, 동시에 굉장히 개인적인 소설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판타지나 호러를 기대하고 읽으면 의외로 독특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가족 서사, 여성 서사, 디아스포라 문학, 한국 설화 재해석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꽤 깊게 빠져들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가족에게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같은 질문을 오래 품어본 사람이라면 더 그렇고요. 읽다 보면 남극의 차가운 풍경 속에서 오래된 한국 설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이 드는데, 그 조합이 참 낯설고도 이상하게 잘 어울립니다. 약간 꿈처럼 읽히는 소설인데,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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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강박과 살아갑니다 - 이상한 생각에 자꾸 휘둘리는 당신을 위한 치유의 심리학
신재현 지음 / 시그마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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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정신건강 #강박증 #시그마북스 #오늘도강박과살아갑니다 #신재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신재현 작가님의 <오늘도 강박과 살아갑니다>는 강박장애를 단순히 예민한 성격이나 의지 부족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불안과 뇌의 학습 구조 속에서 이해하도록 돕는 심리서입니다. 강박장애를 다룬 책들은 종종 지나치게 의학적이거나 반대로 감성적인 위로에 치우치기 쉬운데, 이 책은 그 사이의 균형을 꽤 안정적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신재현 작가님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 만난 사례와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강박이 왜 반복되고 왜 멈추기 어려운지를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특히 강박의 핵심은 이상한 생각 자체가 아니라, 그 생각을 위험하게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는 설명은 강박을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박을 비정상적인 생각의 문제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침투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짚어주는 부분이 특히 좋았습니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강박을 없애야 할 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면 빨리 제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강박은 역설적으로 그 불안을 통제하려 할수록 더 강해집니다. 확인 행동을 반복할수록 잠깐 안심은 되지만, 뇌는 오히려 확인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공식을 더 단단하게 학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은 강박 치료의 핵심을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있어도 강박이 시키는 행동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훈련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ERP(노출 및 반응 방지) 치료를 설명하는 방식이 현실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참아라가 아니라, 불안을 견디며 뇌가 새로운 안전 경험을 학습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읽다 보면 강박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불안을 피하려는 인간 본능이 과열된 상태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강박을 지나치게 극복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요즘 심리서 중에는 완전히 회복된 나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오히려 불안이 남아 있어도 괜찮다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저는 이 태도가 오히려 현실적이고 건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인간은 원래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고, 완벽하게 흔들리지 않는 상태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특히 완치가 아니라 성숙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았습니다. 강박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삶의 방향을 강박에게 빼앗기지 않는 상태를 회복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치료 안내서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또 흥미로웠던 부분은 강박을 단지 개인 내부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었습니다. 강박은 종종 가족과 관계 속에서도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만 좀 확인해”, “왜 그렇게 예민해?”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 그런 반응은 강박 환자에게 더 큰 죄책감과 수치심을 안기기도 합니다. 이 책은 가족이 어디까지 도와야 하고 어디서부터는 강박의 고리를 강화시키는 개입이 되는지를 꽤 섬세하게 설명합니다. 특히 안심 추구의 악순환을 다루는 부분은 인간 심리 전반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완전히 없애주는 확신을 원하지만, 삶은 원래 완벽한 확신을 주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강박은 특정 질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의 불안 구조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강박과 살아갑니다>는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뿐 아니라, 만성적인 불안과 자기 의심 속에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특히 왜 나는 별것 아닌 일에도 이렇게 불안할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 사람이라면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독자를 함부로 다그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온 불안의 방식을 이해하고, 조금씩 다른 선택을 연습해보자고 말합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갑자기 강해지는 느낌보다는, 자기 자신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되는 쪽에 가까운 책이었습니다. 결국 회복은 완벽한 무결함이 아니라, 불안을 안고도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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