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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프롬 더 탑 - 창작의 기본과 이니셔티브에 관한 원칙 66
켄 양 외 엮음, 정지현 옮김 / 디플롯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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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팁 프롬 더 탑>은 건축가들의 조언을 모은 책이지만, 실제로는 ‘무엇을 짓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책에 가깝습니다. 건축은 눈에 보이는 구조물을 세우는 일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생각을 현실의 질서로 바꾸는 작업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 책에 실린 말들은 건축가만의 직업론으로 머물지 않고, 창작자·기획자·연구자처럼 아이디어를 형태로 구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넓게 가닿습니다. 특히 “기본을 놓치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는 식의 메시지는 진부한 훈계로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십 년간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견딘 이들이 끝내 붙들고 남은 최소한의 원칙처럼 읽힙니다. 화려한 영감보다 오래 버티는 태도, 단번의 성공보다 축적의 리듬을 말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조급함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 책을 엮은 켄 양 작가님은 생태건축과 지속가능한 디자인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건축가이자 생태학자이고, 클리퍼드 피어슨 작가님은 건축·도시·문화 분야를 넘나들며 오랜 시간 편집과 비평을 해온 저술가입니다. 라그다 알하얄리 작가님은 젊은 건축가로서 설계와 글쓰기를 함께 수행해온 인물이지요. 이 세 분의 이력이 흥미로운 것은, 단지 유명해서가 아니라 건축을 ‘짓는 기술’에만 가두지 않고 사유, 편집, 글쓰기, 생태 감각과 연결해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팁 프롬 더 탑>은 한 분야의 성공담 모음집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와 감각이 교차하는 지적 편집물로 읽힙니다. 리움미술관 M1, 롯데월드타워, MoMA 같은 상징적 건축을 만든 이들의 목소리가 등장하지만, 정작 책이 강조하는 것은 거대한 랜드마크의 위용보다 그 뒤에 있는 사고 습관과 직업 윤리입니다. 건축계 올스타전인데, 읽고 나면 남는 건 스타성보다 기본기입니다. 이 점이 꽤 믿음직합니다.

제가 창작이나 글쓰기와 관련해 늘 실감하는 것은, 좋은 결과물은 대개 처음의 번뜩임보다 그 이후의 수정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초고를 쓸 때는 누구나 자기 안의 가장 좋은 것을 한꺼번에 다 쏟아붓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과잉이 작품을 망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첫 프로젝트에 다 쏟아부으려는 유혹을 뿌리치라”, “시안은 비교해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기대를 충족할 수는 없다” 같은 조언이 유독 와닿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학문이든 창작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전능한 첫 시도가 아니라, 덜어내고 견디고 다시 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글을 다듬으며 가장 많이 배우는 순간은 잘 쓴 문장을 추가할 때보다, 애착 가는 문장을 삭제할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조언들은 건축적이면서 동시에 아주 문학적입니다. 형태를 세우는 일은 언제나 선택과 포기의 기술이기도 하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성공’보다 ‘훌륭함’을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 교과서식 구호가 아닙니다. 서양의 고전적 미학이 말해온 비례와 조화, 현대 예술론이 강조해온 실험성과 파열, 그리고 장인 정신이 중시하는 반복과 숙련이 이 책 안에서 은근히 만납니다. 예컨대 “건물은 스스로 말해야 한다”는 문장은 건축의 원칙이면서, 사실 좋은 글과 좋은 예술 전반에 적용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해설에 과도하게 기대는 작품보다 스스로 서는 작품이 오래 남지요. 또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격려 문구가 아니라, 창조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설과 수정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환기합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영감의 천재성보다 과정의 윤리를 배우게 됩니다. 삶을 하나의 설계라고 본다면, 중요한 것은 화려한 입면보다 무너지지 않는 구조라는 사실도 함께요.
그래서 <팁 프롬 더 탑>은 막 창작을 시작한 사람, 커리어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싶은 사람, 자기 일의 기준을 조금 더 단단하게 세우고 싶은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읽히고, 오히려 다른 분야의 독자가 읽을 때 더 많은 치환과 확장을 경험할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자주 흔들리는 분이라면, 이 책에서 조급함 대신 호흡을, 과시 대신 태도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판형도 작아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기 좋고, 한 꼭지씩 가볍게 펼쳐 읽어도 생각할 거리가 남는 장점을 가진 책이니 직장인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 번에 독파하기보다 곁에 두고 문장 몇 개씩 오래 되새기는 편이 더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구요. 삶을 대충 때려 짓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은 꽤 괜찮은 설계 참고서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