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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 좋아하세요? - 평범한 아침에 만나는 열한 번의 양자 수업 ㅣ 프린키피아 12
채드 오젤 지음, 하인해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인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문학이나 철학, 역사 분야의 책을 많이 읽어왔고, 과학은 제 전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부러 과학책도 찾아 읽고 있습니다. 특히 양자컴퓨터 연구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양자’라는 말이 뉴스나 산업 분야에서도 자주 등장하다 보니, 양자컴퓨터를 이해하려면 그 바탕이 되는 양자물리부터 조금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역시 진입장벽이었습니다.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불확정성 원리 정도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선뜻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목부터 대놓고 질문을 던지는 <양자물리 좋아하세요?>를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채드 오젤은 미국 유니온 칼리지의 물리학 교수로, 메릴랜드대학교에서 화학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레이저 냉각 원자 충돌 연구를 했습니다. <1초의 탄생>, <우리집 강아지에게 양자역학 가르치기> 등 일반 독자에게 물리학을 설명하는 책을 꾸준히 써온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양자물리를 설명하는 출발점입니다. 저자는 거대한 입자가속기나 우주 같은 특별한 공간으로 독자를 데려가지 않습니다. 대신 아침에 눈을 뜨고 집을 나설 때까지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알람 시계, 전기레인지, 휴대전화 카메라, 인터넷, 냉장고 자석, 토스터, 연기 감지기 같은 익숙한 물건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목차 구성도 재미있습니다. 일출에서는 중력·전자기력·강한 상호작용·약한 상호작용을 다루고, 빨갛게 달아오른 발열체에서는 플랑크의 양자 가설로 넘어갑니다. 디지털 사진에서는 광전 효과를, 알람 시계에서는 원자와 시간 측정을, 인터넷에서는 레이저를 만납니다. 이후 후각, 고체 물질, 컴퓨터 칩, 자석, 연기 감지기, 양자 암호까지 이어집니다. 즉 ‘양자역학 제1장, 제2장’ 식으로 이론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만지는 사물을 따라가면서 필요한 개념을 하나씩 꺼내는 방식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한 제게는 이 방식이 특히 잘 맞았습니다. 저는 공식 자체보다 어떤 질문에서 하나의 개념이 태어났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바꾸어왔는지를 따라갈 때 훨씬 재미를 느끼는 편입니다. 이 책에는 수식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학적 내용을 단순한 비유로 얼버무리지 않습니다. 이중 슬릿 실험이나 광전 효과, 프라운호퍼선, 행렬 역학처럼 실제 물리학의 발견 과정을 따라가면서 ‘무엇이 정답인가’보다 ‘인간은 어떻게 이것을 알아냈는가’를 보여줍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과학자들이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던 천재들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플랑크는 자신의 양자 가설을 임시적인 수학적 방법처럼 여겼고, 밀리컨은 실험으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뒷받침하고도 그 이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의 주장은 훗날 틀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문제 제기가 양자 얽힘 연구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대목을 읽으면 과학도 결국 완성된 정답의 집합이 아니라 의심하고, 틀리고, 다시 검증하면서 만들어진 인간의 지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양자물리를 ‘나와 상관없는 기묘한 이론’에서 ‘이미 내가 매일 이용하고 있는 세계의 작동 방식’으로 바꿔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휴대전화 카메라의 센서는 빛의 입자성과 연결되고, 반도체는 전자의 파동성과 관련되며, 평범한 냉장고 자석에도 양자적인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양자물리 좋아하세요?>는 저처럼 인문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 양자컴퓨터나 현대 과학에 관심이 생긴 분, 양자역학을 공부해보고 싶지만 수식부터 등장하는 책에는 부담을 느끼는 분께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과학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기보다 발견의 역사와 일상의 사물을 통해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잘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