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롱이 이야기 - 아직 그리고 있습니다, 그 병아리
김진솔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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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뾰롱이 이야기>는 귀여운 캐릭터의 성공담을 기대하고 펼쳤다가, 한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는지를 만나게 되는 책입니다. 김진솔 작가님은 노란 병아리 캐릭터 뾰롱이13년 동안 그려온 인스타툰 작가입니다. 지금은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이 책은 그 결과만 반짝이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입시 미술의 좌절, 대학 생활의 무기력, 계정 해킹으로 10만 팔로워를 잃은 사건, 오랜 우울증과 약물치료까지 꽤 깊고 어두운 시간을 숨기지 않고 꺼내놓습니다. 표지 속 뾰롱이는 여전히 동그랗고 무해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귀여움 뒤에 한 사람의 긴 생존기가 놓여 있다는 점이 이 책을 단순한 캐릭터 에세이와 다르게 만듭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뾰롱이의 탄생을 보여주는 초기 스케치였습니다. 회색 캐릭터를 노란 뾰롱이가 힘껏 껴안는 네 컷은 형태만 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한 포옹 안에 작가님의 창작 방식이 압축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능숙한 드로잉이나 화려한 연출보다, 지금 누군가에게 필요한 감정을 정확히 건네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사람을 잘 그리지 못해서 택한 마우스 그림, 볼펜으로 벅벅 그렸던 둥근 캐릭터가 결국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불 없는 밤하늘을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별똥별을 기다리는 뾰롱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시학원 옥상에서 친구와 재료를 준비하고, 유성우를 기다리다가 결국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기억이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그 밤이 좋았다고 말하는 대목이 오래 남았습니다. 결과만 보면 실패한 밤이지만, 함께 추위를 견디고 하늘을 올려다본 시간이 기억 속에서는 오히려 빛나는 장면이 됩니다. 저 역시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알게 된 시간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별것 없다고 생각했던 일, 실패로 분류했던 경험, 쓸모없어 보였던 관심이 훗날 선택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자신의 과거를 멋있게 재구성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게임에 몰두했던 시간도,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날도, 약봉투를 숨겨두었던 순간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그 시간을 전부 낭비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뾰롱이를 다시 그리게 한 힘도 그 어두운 방 안에서 조금씩 쌓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혼자 일하고 쓰는 삶을 꿈꾸면서도, 자유가 곧바로 생산성과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다는 낭만보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려면 생활과 마음을 함께 돌봐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뾰롱이 이야기>는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결과가 더디게 나타나는 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창작자, 프리랜서, 이모티콘이나 인스타툰 작업을 꿈꾸는 사람은 물론이고,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의심하는 사람에게도 잘 맞는 책입니다. 이 책은 끝까지 버티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늘의 작은 작업과 평범한 루틴이 언젠가 자신을 지켜주는 성벽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술 #모티브 #리뷰의숲 #뾰롱이이야기 #리뷰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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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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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주역>은 오래전부터 가까이하고 싶으면서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동양고전이었습니다. 건곤감리 정도는 익숙하지만, 64괘와 효사까지 들어가면 갑자기 암호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문 원문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어도 글자의 뜻을 해석하는 것과 그 문장이 가리키는 삶의 상황을 이해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주역>은 바로 그 간격을 역사적 인물과 이야기로 메워주는 책이었습니다.

 




저자 박찬근 선생님은 40여 년 동안 사서삼경과 한학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분입니다. 오랜 공부에서 나온 해설답게 <주역>을 단순한 점술서나 미래 예언서로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64괘는 길흉을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64가지 상황을 읽는 지도입니다. 일이 시작되지 않을 때, 관계가 막힐 때, 나아갈지 물러설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각 괘가 하나의 관점과 태도를 제시합니다.




 

본문은 원문과 풀이, 역사적 사례, 현대적 해석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읽기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수뢰둔(水雷屯) 해설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처음 생명이 움트는 상황을 시작의 어려움으로 읽습니다. 시작이 막히고 혼란스러운 것은 실패의 징조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가 태어나기 전 겪는 필연적인 진통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곧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방향부터 의심하곤 했는데, 이 대목을 읽으며 혼란도 과정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산겸(地山謙)을 설명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높은 산이 땅 아래로 들어가는 형상을 통해 겸손의 의미를 보여주는데, 여기서 겸손은 자신을 무조건 낮추거나 능력을 숨기는 태도가 아닙니다. 자기 역량을 정확히 알되 과시하지 않고, 필요한 때에 조용히 실력을 사용하는 힘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자신을 크게 포장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이 흔하지만, 이 책은 오래 버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요란한 자기 홍보보다 중심을 지키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낮아질수록 오히려 단단해진다는 해석이 현실적인 인간관계에도 잘 맞았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춘추전국시대 인물들의 삶을 통해 괘의 의미를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진목공의 기다림, 범려의 물러날 때를 아는 지혜, 초장왕의 절제와 결단 같은 이야기가 이어지므로 어려운 개념을 외우지 않아도 상황과 함께 기억됩니다. 역사 이야기를 읽다가 자연스럽게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어느 순간 고전 속 인물의 선택을 현재의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 대입하게 됩니다. 고전이 박물관 유리장 안에서 나와 현실의 회의실과 퇴근길로 걸어 들어오는 셈입니다.

 

특히 40대 추천도서로 이 책이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마흔은 불혹이라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선택지가 많아지고 책임도 무거워져 더 자주 흔들립니다. 이미 지나온 길을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대로 가기에는 답답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때 <주역>은 무조건 전진하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기다리고, 멈추고, 덜어내고, 관계를 회복하며, 충분히 축적한 뒤 움직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마음치유의 방식입니다. 달콤한 위로 대신 지금의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주역><주역>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친절한 입문서이고, 이미 동양고전과 인문학을 공부해 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문장을 새로운 현실에 연결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과 닮은 괘를 골라 읽어도 좋습니다. 읽기 편하면서 알찬, 흔하지 않은 <주역>책입니다.

 

#주역 #박찬근 #청년정신 #동양고전 #인문학 #40대추천도서 #춘추전국시대 #마음치유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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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호스트
박희종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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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숙박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대개 평점과 후기다. 사진이 깔끔하고 이용자들의 평가가 좋으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집인데도 이상하리만큼 안심하게 된다. 나 역시 숙소를 예약할 때 호스트가 누구인지보다 후기 숫자와 별점부터 살펴본다. <슈퍼호스트>는 우리가 그렇게 별 의심 없이 맡겨온 신뢰를 뒤집어, 익숙한 휴식 공간을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으로 바꾸는 소설이다.




 

박희종 작가님은 중고 거래 플랫폼이나 익명 커뮤니티처럼 현대인의 일상에 가까운 소재를 범죄와 인간 심리의 문제로 확장해온 분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공유 숙박 플랫폼 에어스테이의 인기 숙소 스테이 나른을 무대로 삼는다. 이름만 보면 조용히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지만, 이도윤이 숙소에서 핏자국처럼 보이는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호스트가 친절하게 보낸 메시지조차 배려인지 감시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문 하나와 작은 소리에도 불안해진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인물들을 소개하면, 도윤과 은재는 대학 시절부터 줄곧 장기연애를 해온 사이이다. 하지만 작은 오해로 헤어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도윤과 은재는 서로를 잊지 못한 채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도윤은 살인 현장으로 의심되는 스테이 나른에 은재가 갔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다급하게 은재의 행방을 쫓는다. 그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이 완벽한 남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대목 덕분에 은재를 찾는 일이 단순한 스릴러의 임무가 아니라, 끝났다고 생각했던 관계에 남아 있는 책임과 미련의 문제로 읽혔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도윤과 은재,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라졌던 현수, 그리고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준비해온 준영의 관계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독자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쉽게 확신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제목의 호스트게스트역시 단순히 숙소를 빌려주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누가 판을 만들고, 누가 그 안에 초대되었으며, 누가 익명의 관객에게 타인의 고통을 제공하는지를 계속 뒤집어 묻는다.

 

다크웹 살인 생중계라는 설정도 자극적인 장치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화면 너머에 숨어 타인의 불행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지만, 조회하고 반응하고 소비함으로써 폭력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도 끔찍한 사건을 기사 제목과 짧은 영상으로 소비한 뒤 곧바로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소설 속 익명의 관객들이 완전히 낯선 괴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무서운 것은 특별히 잔혹한 한 사람이 아니라, 구경을 하고 싶은 익명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호스트>는 낯선 숙소에서 벌어지는 복수극이면서, 우리가 평점과 시스템을 얼마나 쉽게 신뢰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숙소의 숨겨진 카메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의 과거와 죄책감, 그리고 익명 뒤에 숨은 구경꾼의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숙소에 들어가면 비상구보다 먼저 침대 밑을 볼 것 같다. 오랜만에 꽤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계속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이어서 이 소설을 읽는동안 드라마를 한 편도 시청하지 않았다. 반전이 많고 예측을 뒤엎는 소설이기 때문에 스릴러 마니아 독자들에게 큰 만족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슈퍼호스트 #박희종 #팩토리나인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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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 20개의 키워드로 전하는 인생의 지혜
한상연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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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학 #마흔에읽는하이데거 #미자모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는 어렵기로 악명 높은 하이데거 철학을 단순히 요약하는 책이 아니라, 그의 개념을 지금 살아가는 한 사람의 고민에 연결해 풀어낸 철학 교양서입니다.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를 전공한 한상연 작가님은 존재, 현존재, 잡담, 양심, 결단성, 시간, 테크네, 초연함 등 스무 개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남이 정해놓은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하이데거를 접한 적은 있지만, 그의 문장은 언제나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존재’와 ‘현존재’, ‘세상 사람’, ‘본래성’ 같은 개념은 대략적인 뜻을 안다고 해도 실제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하이데거를 어려운 이론으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권태와 불안, 인간관계, 성공 욕망처럼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문제 속으로 데려옵니다. 철학을 현실에 무리하게 끼워 맞춘다기보다, 현실의 감정을 철학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특히 '침묵 속에서 진정한 자기와 대화하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잡담’은 말을 많이 한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치와 성공 기준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평가, 유행, 비교, 조직의 분위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이야기는 점점 사라지고,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잡담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사회와 단절하는 일이 아니라, 잠시 침묵하며 내 삶을 지배해온 말들이 정말 내 생각이었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마흔, 도구로 전락한 존재의 비명'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은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 자신을 소모하는 순간 인간이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살아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조직 안에서 오래 일하며 업무 자체보다 타인의 기대와 암묵적인 규칙에 맞추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본 적이 있습니다.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삶이 내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일이 많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목적이 아니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감각이 사람을 더 깊이 지치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작가님이 모든 관계와 사회적 역할을 버리고 혼자만의 세계로 도망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준화된 세계, 도구가 된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타인을 쉽게 유용성과 효율의 관점으로 판단하지만, 고유한 자기를 회복할 때 오히려 타인 역시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나답게 산다’는 말이 자기중심적인 고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수단으로 삼지 않는 출발점이라는 해석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이미 상당한 시간을 살아왔지만, 남은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기에도 늦지 않은 시기입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성취하지 못한 자신을 슬퍼하고, 성공한 사람은 정작 자기 삶이 없다는 사실을 슬퍼한다는 책의 지적은 꽤 날카롭습니다.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는 하이데거 철학을 완벽히 이해하게 해주는 해설서라기보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읽고 나면 즉시 답을 얻기보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지금 선택하려는 길이 정말 내 것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마흔은 인생을 정리하는 나이가 아니라, 이제부터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데거가 길을 대신 정해주지는 않지만,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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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라진 세상 - 인공지능은 인간의 쓸모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이진우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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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이 사라진 세상>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빼앗을지를 계산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불편한 내용의 책입니다. 일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은 자신을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는가, 노동하지 않는 삶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존엄과 의미를 확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진우 작가님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니체 연구와 대중 철학서 집필을 이어온 철학자입니다. 작가님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로크,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 니체의 사유를 불러와 AI 시대의 노동 문제를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위기로 해석합니다.




 

책에서 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AI가 직업 전체를 한꺼번에 없애기보다, 직업을 구성하는 과업을 분해하고 재조합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의사나 변호사, 연구자라는 직업명이 당장 사라지지 않더라도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반복적으로 판단하는 업무는 이미 기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기술이 처리하지 못하는 일부 업무가 아니라, 무엇을 질문하고 어떤 기준으로 결과를 판단할 것인지 결정하는 역할일 것입니다. AI를 잘 사용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저 역시 오래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이 단지 월급을 받는 수단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조직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스스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할 때는 고된 업무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명확한 기준 없이 책임만 떠맡거나, 사람의 능력보다 순응과 눈치가 중시되는 환경에서는 실제 업무량과 무관하게 존재 자체가 소모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퇴사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고민한 것도 돈만은 아니었습니다. 조직을 떠난 뒤 나는 무엇으로 하루의 구조를 만들고, 어떤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될 것인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일을 잃는 것보다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을 잃는 것이 더 두렵다는 문장에 자연스럽게 공감했습니다.

 

다만 노동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이 곧 현재의 노동 체제를 옹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책은 플랫폼과 자동화가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노동자를 더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을 함께 다룹니다. 기술이 인간을 반복 노동에서 해방한다고 해도, 그 기술과 부를 소수가 독점한다면 다수에게 주어지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대기 상태일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받으며 오락과 소비로 시간을 채우는 사회는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삶의 주도권을 잃은 우아한 감옥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이 사라진 세상>AI 기술의 미래를 낙관하거나 공포에 빠뜨리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을 너무 미워하면서도 노동으로만 자신을 증명해 온 현대인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AI 시대를 준비하는 직장인, 퇴직이나 이직을 앞두고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 자신의 직업이 정체성의 전부가 되어버렸다고 느끼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일이 줄어든다고 삶의 의미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은 더욱 진지하게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책임을 지며, 어떤 방식으로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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