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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라진 세상 - 인공지능은 인간의 쓸모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이진우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이 사라진 세상>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빼앗을지를 계산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불편한 내용의 책입니다. 일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은 자신을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는가, 노동하지 않는 삶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존엄과 의미를 확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진우 작가님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니체 연구와 대중 철학서 집필을 이어온 철학자입니다. 작가님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로크,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 니체의 사유를 불러와 AI 시대의 노동 문제를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위기로 해석합니다.

책에서 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AI가 직업 전체를 한꺼번에 없애기보다, 직업을 구성하는 과업을 분해하고 재조합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의사나 변호사, 연구자라는 직업명이 당장 사라지지 않더라도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반복적으로 판단하는 업무는 이미 기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기술이 처리하지 못하는 일부 업무가 아니라, 무엇을 질문하고 어떤 기준으로 결과를 판단할 것인지 결정하는 역할일 것입니다. AI를 잘 사용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저 역시 오래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이 단지 월급을 받는 수단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조직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스스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할 때는 고된 업무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명확한 기준 없이 책임만 떠맡거나, 사람의 능력보다 순응과 눈치가 중시되는 환경에서는 실제 업무량과 무관하게 존재 자체가 소모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퇴사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고민한 것도 돈만은 아니었습니다. 조직을 떠난 뒤 나는 무엇으로 하루의 구조를 만들고, 어떤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될 것인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일을 잃는 것’보다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을 잃는 것’이 더 두렵다는 문장에 자연스럽게 공감했습니다.
다만 노동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이 곧 현재의 노동 체제를 옹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책은 플랫폼과 자동화가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노동자를 더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을 함께 다룹니다. 기술이 인간을 반복 노동에서 해방한다고 해도, 그 기술과 부를 소수가 독점한다면 다수에게 주어지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대기 상태일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받으며 오락과 소비로 시간을 채우는 사회는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삶의 주도권을 잃은 ‘우아한 감옥’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이 사라진 세상>은 AI 기술의 미래를 낙관하거나 공포에 빠뜨리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을 너무 미워하면서도 노동으로만 자신을 증명해 온 현대인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AI 시대를 준비하는 직장인, 퇴직이나 이직을 앞두고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 자신의 직업이 정체성의 전부가 되어버렸다고 느끼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일이 줄어든다고 삶의 의미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은 더욱 진지하게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책임을 지며, 어떤 방식으로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