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오디세이 -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원작 대서사!!
호메로스 원작, 손길영 편저 / 스타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오디세이>는 저에게 처음 만나는 고전은 아닙니다. 약 10년 전에 이미 한 번 읽었던 작품입니다. 당시에도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솔직히 10년이 지나 다시 이렇게 주목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영화화 소식과 함께 대중적인 관심까지 크게 높아질 줄이야. 10년 전에 읽어둔 독자로서는 약간의 뿌듯함도 생깁니다. ‘나는 진작 읽었는데?’ 하는 쓸데없는 고전 선점자의 마음이랄까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10년간의 방랑을 다룬 서사시입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단순한 ‘영웅의 모험담’이라고 하기에는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뿐 아니라 고향에 남겨진 아들 텔레마코스와 아내 페넬로페의 이야기, 신들의 개입,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까지 겹쳐집니다. 무엇보다 약 3천 년 전의 작품이니 현대 독자에게 낯선 신과 인물, 지명이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은 분명한데 원전으로 들어가려 하면 입구에서부터 이름표 확인 작업이 시작되는 고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초역 오디세이>에서 가장 크게 느낀 장점은 이야기의 재미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읽는데도 술술 넘어갔습니다. 칼립소의 섬에서 빠져나오는 오디세우스, 파이아케스에서 만나는 나우시카, 폴리페모스의 동굴, 키르케와 세이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같은 유명한 에피소드들이 빠른 호흡으로 이어집니다. 원전을 읽으며 이야기의 구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보다는 ‘이 장면을 이렇게 쉽게 풀어냈구나’ 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아테나는 텔레마코스에게 무조건적인 용맹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젊은이가 위험 앞에서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충고하고, 필요할 때는 지혜와 냉정한 판단을 먼저 요구합니다. 오디세우스 역시 귀향했다고 곧바로 왕궁으로 뛰어들어 구혼자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변장한 채 자신의 왕궁으로 들어가 상황을 살피고, 누구를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면서 때를 기다립니다.


이런 장면들은 10년 전보다 지금 읽을 때 오히려 더 재미있었습니다. 어릴 때 영웅 이야기를 읽으면 대단한 힘이나 용기에 먼저 눈길이 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언제 움직이고 언제 참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도 힘이라는 사실이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읽으며 새삼 느낀 것은 <오디세이아>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외눈박이 거인이 사람을 잡아먹고, 마녀가 사람을 돼지로 만들고, 세이렌이 노래로 사람을 죽음으로 유혹하고, 괴물이 기다리는 해협을 통과하고, 죽은 자들의 세계까지 다녀옵니다. 겨우 고향에 돌아왔더니 자기 집에는 백여 명의 구혼자가 눌러앉아 있습니다. 





다만 <초역 오디세이>는 제목 그대로 ‘초역’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 편이 좋겠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읽었던 <오디세이아>와 이번 책의 독서 경험은 꽤 달랐습니다. 원전의 문학적 표현과 서사시 특유의 호흡을 충분히 맛보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방대한 이야기를 현대 독자가 빠르게 따라가면서 전체 구조와 주요 에피소드, 인물의 선택을 이해하도록 문턱을 낮춘 책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이 책을 <오디세이아>에 처음 들어가는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고전은 읽고 싶지만 두꺼운 원전부터 시작하기 부담스러운 분,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이름 때문에 몇 번이나 포기했던 분, 오디세우스와 세이렌·키르케·폴리페모스 정도는 알고 있지만 전체 이야기는 모르는 분에게 특히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영화 때문에 오디세우스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분이 먼저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반대로 저처럼 이미 <오디세이아>를 읽은 사람에게도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의 기억을 빠르게 되살릴 수 있고, 예전에는 모험 자체에 집중해서 지나쳤던 인물의 판단이나 선택을 다시 보게 됩니다. 저 역시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서 같은 이야기가 전과 조금 다르게 들어왔습니다.


#초역오디세이 #호메로스 #손길영 #스타북스 #체크카페 #체크카페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프랑스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프랑스 역사를 다룬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특히 흥미로운 시대였습니다. 왕정과 신분제 사회를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분명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지만, 혁명 이후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과정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조나탕 베르베르의 <단두대와 욕조>는 제목과 소개부터 제 취향을 제대로 건드린 소설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공포정치, 그것도 방데 전쟁과 낭트를 배경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라니 안 읽어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익숙한 프랑스 혁명사를 또 한번 설명하는 소설이 아니라, 그 거대한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는 어두운 부분으로 들어간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작가 조나탕 베르베르는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공학을 공부하다 시나리오 창작으로 방향을 바꾼 작가입니다. 단편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고, 2020년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로 장편소설에 데뷔했습니다. <단두대와 욕조>는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실제 역사와 미스터리·스릴러를 결합하는 것이 특징인데, 시나리오를 공부한 작가라는 이력을 알고 읽어서인지 장면 전환과 사건을 밀어붙이는 방식이 상당히 영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시몽은 전쟁을 마치고 고향 낭트로 돌아왔다가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개인적인 복수와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폭력이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역사책에서는 ‘공포정치’, ‘방데 전쟁’, ‘낭트 학살’ 같은 이름으로 정리되는 사건들이 소설에서는 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책 몇 페이지에 불과한 사건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가족이 사라지고, 하루아침에 체포되고,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죽을 수 있는 현실이었다는 것이 훨씬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시몽이 카리에르의 주변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역사소설보다 첩보 스릴러를 읽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첨부한 부분에서도 시몽은 상대에게 의심받지 않으면서 정보를 얻어야 하고, 한마디를 잘못하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입니다. 램버티와 대화하며 일부러 자신을 과시하기도 하고, 다음 임무를 미리 알려달라고 떠보는 장면에서는 누가 누구를 시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독자는 실제 역사에서 카리에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도, 허구의 인물 시몽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프랑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로서 재미있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인물과 사건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머릿속의 역사 지식과 소설 속 이야기가 계속 겹쳐졌습니다. 저는 역사소설을 읽을 때 이런 순간을 좋아합니다. 완전히 낯선 세계를 배우는 재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내세워 시작된 혁명 속에서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이 발생하고, 어느 순간 사람을 죽이는 일조차 대의를 위한 행동으로 정당화됩니다. 소설 속에서 “전쟁 중에는 도덕이 낄 자리가 없다”는 식의 논리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 섬뜩했습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사람은 자신이 믿는 정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기 쉽고, 그 순간 반대편의 인간은 제거해도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제목인 <단두대와 욕조> 역시 책을 읽을수록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단두대는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를 상징하는 익숙한 이미지지만, 이 소설에서 ‘욕조’는 훨씬 낯설고 그래서 더 불길합니다. 우리가 프랑스 혁명의 폭력이라고 하면 흔히 단두대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 작품은 그 익숙한 이미지 바깥에도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단두대와 욕조>는 프랑스 혁명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역사소설은 좋아하지만 사건 설명이 길어지면 지루하게 느끼는 분,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나 첩보물을 좋아하는 분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반대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시몽의 복수와 잠입이라는 강한 서사가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읽은 뒤 방데 전쟁이나 낭트의 역사에 대해 따로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단두대와욕조 #조나탕베르베르 #열린책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이라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음에도 체류 시간이 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몇 년 뒤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야 자신에게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했는지 알게 됩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와 나난 작가의 그림이 함께 담긴 <오래 머무는 마음>은 바로 그런 것들을 천천히 돌아보게 하는 시화집입니다. 화려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꽃 한 송이, 계절의 변화, 사랑했던 사람, 헤어진 뒤의 빈자리처럼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순간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페이지에서 한동안 머물러 읽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님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며 등단한 뒤 50년 넘게 시를 써온 분입니다. 43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으며, 우리에게는 특히 짧고 평이한 언어로 풀꽃과 사람, 사랑과 삶을 이야기하는 ‘풀꽃 시인’으로 익숙합니다. 이번 책에는 윈도페인팅 아티스트 나난 작가님의 그림이 함께합니다. 나난 작가님은 꽃과 나무, 계절과 빛을 다채로운 색채로 표현해 온 작가입니다. 실제 책을 펼쳐보면 두 사람의 작업이 꽤 잘 어울립니다. 나태주 작가님의 시가 일부러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듯, 나난 작가님의 그림 역시 시의 의미를 거창하게 해석하기보다 곁에 꽃과 색채를 놓아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책 자체가 하나의 작은 전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특히 오래 바라본 작품 가운데 하나는 「드라이플라워」였습니다. 한때 아름답다고 말했던 꽃이 어느 순간 물 없는 항아리 속에서 말라 있고, 환희와 만남의 장소였던 공간도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감정을 품은 장소가 됩니다. 꽃은 같은 꽃이고 장소도 같은 장소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달라진 것입니다.  


「삶」과 「네가 너무나 예쁘므로」에서는 나태주 작가님의 시에서 자주 느껴지는 삶과 사랑의 감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을 잠시 다녀가는 것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짧은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행복했지만 동시에 그 사랑 때문에 아팠다는 마음이 함께 존재합니다. 꽃과 분홍색 표지 때문에 처음에는 따뜻하고 밝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쪽에는 이별과 그리움, 외로움과 후회도 꽤 많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사랑은 기쁨과 고통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서 가져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믿어야 한다」는 이 책의 다른 한쪽을 보여주는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봄이 오면 들판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새싹이 돋는다고 말하며 결국 희망과 사랑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조건 괜찮아질 것이라는 낙관보다는, 시들고 다시 피어나는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인간의 마음 역시 다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보자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난 작가님의 꽃 그림이 이 메시지와 만나면서 말로만 읽을 때보다 한층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은 한두 편씩 천천히 읽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요즘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분, 사랑과 이별을 지나온 분, 꽃과 계절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자신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겹쳐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를 평소 많이 읽지 않는 분에게 선물하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특별한 순간만이 인생에 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평범했던 산책, 무심코 바라본 꽃, 좋아했던 사람과 나눈 짧은 시간처럼 당시에는 몰랐던 것들이 훗날 가장 오래 남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제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공생의 언어 - 소리, 몸짓, 냄새로 소통하며 진화해 온 생물들
롭 던 지음, 송근아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생의언어 #롭던 #흐름출판 #교양과학 #생물학 #미자모





자연을 좋아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개별 생물보다 관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꽃과 벌, 나무와 균류, 인간과 미생물처럼 자연은 수많은 생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지되는 거대한 관계망입니다. 그래서 <공생의 언어>라는 제목부터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 개념은 ‘상리공생(Mutualism)’입니다. 둘 이상의 종이 관계를 맺으며 서로 생존상의 이익을 얻는 현상입니다.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고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저에게 이 책은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이야기를 넘어, 애초에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다른 생명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공생의 언어>를 쓴 롭 던 작가님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응용생태학과 특훈교수이자 진화생태학자로, 인간의 진화부터 미생물과 개미, 음식의 생태와 진화까지 연구해온 학자입니다. 특히 실험실 밖의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수많은 생명과 생태적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관점이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번역을 맡은 송근아 번역가님은 대학에서 물리학을, 대학원에서 국제영어교육을 공부한 뒤 과학·자연과학 분야의 책을 꾸준히 번역해왔습니다. 덕분에 전문적인 생태학과 진화생물학 이야기가 등장하면서도 대중 과학서답게 비교적 편안하게 읽힙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인간과 꿀잡이새의 관계였습니다. 아프리카의 큰벌꿀길잡이새는 특유의 소리로 인간을 벌집까지 안내하고, 인간은 꿀을 얻은 뒤 밀랍을 새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간 역시 새를 부르는 신호를 사용했고 새들이 지역마다 다른 인간의 신호를 학습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공생’보다 훨씬 적극적인 관계였습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종이 일종의 의사소통 체계를 만들어낸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산업화된 방식으로 당을 얻기 시작하면서 이런 관계가 약해졌다는 이야기는 씁쓸합니다. 기술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존재했던 생태적 관계 하나를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부분은 인간이 만들어낸 ‘효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버-보슈법을 통한 질소비료 생산은 엄청난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오늘날의 인구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도하게 투입된 영양분이 하천과 바다로 흘러가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 책이 단순히 “자연은 착하고 기술은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인간의 기술 역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문제는 하나의 기술과 몇몇 생물종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진 생태계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생태계에서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도 결국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남겨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닭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진화생물학에서 적응도는 흔히 얼마나 성공적으로 후손을 남기는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기준만 적용한다면 인간에 의해 엄청난 개체 수로 번식한 가축은 대단히 ‘성공한’ 종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산업용 닭을 보며 우리는 그것을 행복한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개체 수와 생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생명의 삶을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습니다.


<공생의 언어>를 읽고 나니 ‘자연을 보호한다’는 표현 자체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인간이 자연 바깥에 서서 자연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간 역시 미생물과 식물, 동물과 끊임없이 물질과 신호를 주고받는 생태계 내부의 한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는 분은 물론, 진화생물학이나 생태학에 관심 있는 독자,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를 단순한 캠페인 구호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리볼버
하라다 마하 지음, 강영혜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센트 반 고흐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화가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아를의 침실>처럼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 많고, 자신의 귀를 자른 일화나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다가 생전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미술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고흐의 대표작과 생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고흐의 이미지는 상당히 강렬한 몇 가지 장면으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광기 어린 천재, 잘린 귀, 고갱과의 갈등,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밀밭에서 스스로 총을 쏘아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화가. 워낙 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 작품만큼이나 그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소비되어 온 것 같습니다.





하라다 마하의 <리볼버>는 제목부터 상당히 강렬합니다. ‘리볼버’. 고흐가 죽음에 이르게 된 총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2019년 파리 경매에 고흐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녹슨 권총이 등장했고, 작가는 여기에서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총에 우리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면?’이라는 상상이 미술사와 미스터리를 연결합니다.


작가 하라다 마하의 이력도 이 소설과 무척 잘 어울립니다. 일본문학뿐 아니라 미술사를 공부했고, 모리미술관 설립준비실과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일했던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볼버>를 읽다 보면 단순히 유명 화가를 소재로 가져온 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미술계의 내부를 아는 사람이 그림과 미술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사에 역시 미술사를 공부하고 파리의 경매회사에서 일하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이 찾아와 오래된 리볼버 한 자루를 내놓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것이 고흐의 죽음과 관련된 총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고흐는 정말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을까? 저는 이 설정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죽음을 무조건 뒤집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도 빈틈이 있을 수 있다는 데서 미스터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에는 리볼버를 둘러싼 사람들을 만나고 질문을 던지면서 조금씩 이야기에 접근합니다. 경매회사, 큐레이터, 작품을 소유한 사람과 그것을 추적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실제 미술계에서 작품의 출처와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미술사를 볼 때 흥미로운 지점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림은 미술관 벽에 걸리는 순간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그린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인간관계가 있었으며, 작품은 이후 누군가에게 팔리고 소장되고 때로는 사라졌다가 다시 발견됩니다. 결국 작품 한 점 뒤에는 생각보다 긴 인간의 이야기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리볼버>를 읽으며 오히려 고흐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별이 빛나는 밤>이나 <해바라기>도 그의 삶과 인간관계를 조금 더 알고 난 뒤 보면 전과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특히 고갱과 고흐의 관계처럼 미술사 책에서는 몇 문장으로 지나쳤던 이야기가 소설을 통해 구체적인 인간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경험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연도와 화파, 작품명을 외우는 것만이 미술사를 알아가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고, 한 점의 그림이 만들어진 장소를 상상하고, 기록되지 않은 시간에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미술을 가까이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고흐를 죽인 총의 정체’ 하나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너무 유명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 화가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취향과 딱맞는 흥미로운 소설 덕분에 주말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 작가의 신작이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리볼버 #하라다마하 #북스피어 #아트미스터리 #일본소설 #신간도서 #책카페 #독서카페 #리투서평단 #리딩투데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