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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언어 - 소리, 몸짓, 냄새로 소통하며 진화해 온 생물들
롭 던 지음, 송근아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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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좋아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개별 생물보다 관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꽃과 벌, 나무와 균류, 인간과 미생물처럼 자연은 수많은 생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지되는 거대한 관계망입니다. 그래서 <공생의 언어>라는 제목부터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 개념은 ‘상리공생(Mutualism)’입니다. 둘 이상의 종이 관계를 맺으며 서로 생존상의 이익을 얻는 현상입니다.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고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저에게 이 책은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이야기를 넘어, 애초에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다른 생명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공생의 언어>를 쓴 롭 던 작가님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응용생태학과 특훈교수이자 진화생태학자로, 인간의 진화부터 미생물과 개미, 음식의 생태와 진화까지 연구해온 학자입니다. 특히 실험실 밖의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수많은 생명과 생태적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관점이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번역을 맡은 송근아 번역가님은 대학에서 물리학을, 대학원에서 국제영어교육을 공부한 뒤 과학·자연과학 분야의 책을 꾸준히 번역해왔습니다. 덕분에 전문적인 생태학과 진화생물학 이야기가 등장하면서도 대중 과학서답게 비교적 편안하게 읽힙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인간과 꿀잡이새의 관계였습니다. 아프리카의 큰벌꿀길잡이새는 특유의 소리로 인간을 벌집까지 안내하고, 인간은 꿀을 얻은 뒤 밀랍을 새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간 역시 새를 부르는 신호를 사용했고 새들이 지역마다 다른 인간의 신호를 학습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공생’보다 훨씬 적극적인 관계였습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종이 일종의 의사소통 체계를 만들어낸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산업화된 방식으로 당을 얻기 시작하면서 이런 관계가 약해졌다는 이야기는 씁쓸합니다. 기술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존재했던 생태적 관계 하나를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부분은 인간이 만들어낸 ‘효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버-보슈법을 통한 질소비료 생산은 엄청난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오늘날의 인구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도하게 투입된 영양분이 하천과 바다로 흘러가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 책이 단순히 “자연은 착하고 기술은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인간의 기술 역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문제는 하나의 기술과 몇몇 생물종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진 생태계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생태계에서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도 결국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남겨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닭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진화생물학에서 적응도는 흔히 얼마나 성공적으로 후손을 남기는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기준만 적용한다면 인간에 의해 엄청난 개체 수로 번식한 가축은 대단히 ‘성공한’ 종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산업용 닭을 보며 우리는 그것을 행복한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개체 수와 생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생명의 삶을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습니다.
<공생의 언어>를 읽고 나니 ‘자연을 보호한다’는 표현 자체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인간이 자연 바깥에 서서 자연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간 역시 미생물과 식물, 동물과 끊임없이 물질과 신호를 주고받는 생태계 내부의 한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는 분은 물론, 진화생물학이나 생태학에 관심 있는 독자,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를 단순한 캠페인 구호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