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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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프랑스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프랑스 역사를 다룬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특히 흥미로운 시대였습니다. 왕정과 신분제 사회를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분명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지만, 혁명 이후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과정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조나탕 베르베르의 <단두대와 욕조>는 제목과 소개부터 제 취향을 제대로 건드린 소설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공포정치, 그것도 방데 전쟁과 낭트를 배경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라니 안 읽어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익숙한 프랑스 혁명사를 또 한번 설명하는 소설이 아니라, 그 거대한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는 어두운 부분으로 들어간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작가 조나탕 베르베르는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공학을 공부하다 시나리오 창작으로 방향을 바꾼 작가입니다. 단편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고, 2020년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로 장편소설에 데뷔했습니다. <단두대와 욕조>는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실제 역사와 미스터리·스릴러를 결합하는 것이 특징인데, 시나리오를 공부한 작가라는 이력을 알고 읽어서인지 장면 전환과 사건을 밀어붙이는 방식이 상당히 영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시몽은 전쟁을 마치고 고향 낭트로 돌아왔다가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개인적인 복수와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폭력이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역사책에서는 ‘공포정치’, ‘방데 전쟁’, ‘낭트 학살’ 같은 이름으로 정리되는 사건들이 소설에서는 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책 몇 페이지에 불과한 사건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가족이 사라지고, 하루아침에 체포되고,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죽을 수 있는 현실이었다는 것이 훨씬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시몽이 카리에르의 주변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역사소설보다 첩보 스릴러를 읽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첨부한 부분에서도 시몽은 상대에게 의심받지 않으면서 정보를 얻어야 하고, 한마디를 잘못하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입니다. 램버티와 대화하며 일부러 자신을 과시하기도 하고, 다음 임무를 미리 알려달라고 떠보는 장면에서는 누가 누구를 시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독자는 실제 역사에서 카리에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도, 허구의 인물 시몽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프랑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로서 재미있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인물과 사건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머릿속의 역사 지식과 소설 속 이야기가 계속 겹쳐졌습니다. 저는 역사소설을 읽을 때 이런 순간을 좋아합니다. 완전히 낯선 세계를 배우는 재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내세워 시작된 혁명 속에서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이 발생하고, 어느 순간 사람을 죽이는 일조차 대의를 위한 행동으로 정당화됩니다. 소설 속에서 “전쟁 중에는 도덕이 낄 자리가 없다”는 식의 논리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 섬뜩했습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사람은 자신이 믿는 정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기 쉽고, 그 순간 반대편의 인간은 제거해도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제목인 <단두대와 욕조> 역시 책을 읽을수록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단두대는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를 상징하는 익숙한 이미지지만, 이 소설에서 ‘욕조’는 훨씬 낯설고 그래서 더 불길합니다. 우리가 프랑스 혁명의 폭력이라고 하면 흔히 단두대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 작품은 그 익숙한 이미지 바깥에도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단두대와 욕조>는 프랑스 혁명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역사소설은 좋아하지만 사건 설명이 길어지면 지루하게 느끼는 분,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나 첩보물을 좋아하는 분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반대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시몽의 복수와 잠입이라는 강한 서사가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읽은 뒤 방데 전쟁이나 낭트의 역사에 대해 따로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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