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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이라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음에도 체류 시간이 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몇 년 뒤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야 자신에게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했는지 알게 됩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와 나난 작가의 그림이 함께 담긴 <오래 머무는 마음>은 바로 그런 것들을 천천히 돌아보게 하는 시화집입니다. 화려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꽃 한 송이, 계절의 변화, 사랑했던 사람, 헤어진 뒤의 빈자리처럼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순간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페이지에서 한동안 머물러 읽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님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며 등단한 뒤 50년 넘게 시를 써온 분입니다. 43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으며, 우리에게는 특히 짧고 평이한 언어로 풀꽃과 사람, 사랑과 삶을 이야기하는 ‘풀꽃 시인’으로 익숙합니다. 이번 책에는 윈도페인팅 아티스트 나난 작가님의 그림이 함께합니다. 나난 작가님은 꽃과 나무, 계절과 빛을 다채로운 색채로 표현해 온 작가입니다. 실제 책을 펼쳐보면 두 사람의 작업이 꽤 잘 어울립니다. 나태주 작가님의 시가 일부러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듯, 나난 작가님의 그림 역시 시의 의미를 거창하게 해석하기보다 곁에 꽃과 색채를 놓아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책 자체가 하나의 작은 전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특히 오래 바라본 작품 가운데 하나는 「드라이플라워」였습니다. 한때 아름답다고 말했던 꽃이 어느 순간 물 없는 항아리 속에서 말라 있고, 환희와 만남의 장소였던 공간도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감정을 품은 장소가 됩니다. 꽃은 같은 꽃이고 장소도 같은 장소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달라진 것입니다.
「삶」과 「네가 너무나 예쁘므로」에서는 나태주 작가님의 시에서 자주 느껴지는 삶과 사랑의 감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을 잠시 다녀가는 것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짧은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행복했지만 동시에 그 사랑 때문에 아팠다는 마음이 함께 존재합니다. 꽃과 분홍색 표지 때문에 처음에는 따뜻하고 밝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쪽에는 이별과 그리움, 외로움과 후회도 꽤 많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사랑은 기쁨과 고통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서 가져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믿어야 한다」는 이 책의 다른 한쪽을 보여주는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봄이 오면 들판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새싹이 돋는다고 말하며 결국 희망과 사랑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조건 괜찮아질 것이라는 낙관보다는, 시들고 다시 피어나는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인간의 마음 역시 다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보자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난 작가님의 꽃 그림이 이 메시지와 만나면서 말로만 읽을 때보다 한층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은 한두 편씩 천천히 읽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요즘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분, 사랑과 이별을 지나온 분, 꽃과 계절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자신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겹쳐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를 평소 많이 읽지 않는 분에게 선물하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특별한 순간만이 인생에 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평범했던 산책, 무심코 바라본 꽃, 좋아했던 사람과 나눈 짧은 시간처럼 당시에는 몰랐던 것들이 훗날 가장 오래 남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제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