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버
하라다 마하 지음, 강영혜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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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화가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아를의 침실>처럼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 많고, 자신의 귀를 자른 일화나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다가 생전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미술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고흐의 대표작과 생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고흐의 이미지는 상당히 강렬한 몇 가지 장면으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광기 어린 천재, 잘린 귀, 고갱과의 갈등,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밀밭에서 스스로 총을 쏘아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화가. 워낙 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 작품만큼이나 그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소비되어 온 것 같습니다.





하라다 마하의 <리볼버>는 제목부터 상당히 강렬합니다. ‘리볼버’. 고흐가 죽음에 이르게 된 총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2019년 파리 경매에 고흐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녹슨 권총이 등장했고, 작가는 여기에서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총에 우리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면?’이라는 상상이 미술사와 미스터리를 연결합니다.


작가 하라다 마하의 이력도 이 소설과 무척 잘 어울립니다. 일본문학뿐 아니라 미술사를 공부했고, 모리미술관 설립준비실과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일했던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볼버>를 읽다 보면 단순히 유명 화가를 소재로 가져온 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미술계의 내부를 아는 사람이 그림과 미술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사에 역시 미술사를 공부하고 파리의 경매회사에서 일하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이 찾아와 오래된 리볼버 한 자루를 내놓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것이 고흐의 죽음과 관련된 총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고흐는 정말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을까? 저는 이 설정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죽음을 무조건 뒤집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도 빈틈이 있을 수 있다는 데서 미스터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에는 리볼버를 둘러싼 사람들을 만나고 질문을 던지면서 조금씩 이야기에 접근합니다. 경매회사, 큐레이터, 작품을 소유한 사람과 그것을 추적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실제 미술계에서 작품의 출처와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미술사를 볼 때 흥미로운 지점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림은 미술관 벽에 걸리는 순간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그린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인간관계가 있었으며, 작품은 이후 누군가에게 팔리고 소장되고 때로는 사라졌다가 다시 발견됩니다. 결국 작품 한 점 뒤에는 생각보다 긴 인간의 이야기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리볼버>를 읽으며 오히려 고흐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별이 빛나는 밤>이나 <해바라기>도 그의 삶과 인간관계를 조금 더 알고 난 뒤 보면 전과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특히 고갱과 고흐의 관계처럼 미술사 책에서는 몇 문장으로 지나쳤던 이야기가 소설을 통해 구체적인 인간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경험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연도와 화파, 작품명을 외우는 것만이 미술사를 알아가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고, 한 점의 그림이 만들어진 장소를 상상하고, 기록되지 않은 시간에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미술을 가까이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고흐를 죽인 총의 정체’ 하나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너무 유명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 화가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취향과 딱맞는 흥미로운 소설 덕분에 주말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 작가의 신작이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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