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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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다 보면 한글에 관한 이야기는 꽤 익숙해집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부터 제자 원리, <훈민정음 해례본>, 사라진 옛글자까지 여러 차례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를 처음 펼쳤을 때는 솔직히 ‘내가 이미 아는 이야기가 꽤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책의 재미는 익숙한 지식을 지금의 한국어와 세계라는 맥락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저자 이현준은 25년간 외국어 교육 사업을 해온 교육사업가입니다. 영어교육회사를 창업한 뒤 여러 외국어 교육 사업을 거쳐 현재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학습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순수한 국어학자의 시선으로 훈민정음을 분석하기보다는, 오랫동안 ‘외국어를 어떻게 배우고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온 사람의 시선으로 한글의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이 점이 책의 성격을 꽤 분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책은 의외로 신라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9세기 바그다드의 이븐 쿠르다지바가 기록한 신라부터 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 문자와 문명의 관계를 지나 훈민정음으로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한글 책인데 왜 여기서 시작하지?’ 싶었는데, 읽다 보면 저자가 한글을 고립된 문자로 설명하기보다 오랜 문명 교류와 문자사의 흐름 속에 놓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역시 훈민정음 자체를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28자였지만 현재 한글 기본 자모는 24자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래아(ㆍ),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이응(ㆁ)이 사라졌습니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에게 이 네 글자의 존재 자체는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묻습니다. 사라진 글자와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현대의 외국어 발음 표기에 다시 활용할 수는 없을까?





특히 저자가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니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에 주목하는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훈민정음은 단순히 우리말을 눈에 보이는 글자로 옮기는 수단만이 아니라 소리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표기하려 했던 체계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훈민정음의 기본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습을 본뜨고, 획을 더해 관련된 소리를 나타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문자를 배우면서 동시에 소리가 만들어지는 원리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라는 점은 지금 보아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어려울 수 있는 문자사와 훈민정음 이야기를 상당히 대중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전공서처럼 세세한 음운론적 논의를 따라가야 하는 책은 아니어서 한글에 관심은 있지만 전문적인 국어학 책은 부담스러운 독자도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신라와 이슬람 세계의 교류부터 세계의 문자, 훈민정음 창제, 해례본의 발견과 오늘날 한국어의 확산까지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 교양서로서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글날마다 듣던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입니다’라는 설명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보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한국어와 외국어, 문자, 역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합니다. 국어국문학을 공부한 저에게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연결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매일 너무 자연스럽게 ‘가나다라’를 쓰고 있어서 오히려 이 문자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고, 무엇까지 표현하려 했는지는 잊기 쉽습니다.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를 읽고 나니 한글은 이미 완성되어 박물관에 놓인 과거의 유산이라기보다, 여전히 질문해볼 거리가 많은 문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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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초인 수업 - 당신 안의 초인을 깨워줄 차라투스트라의 질문들
강용수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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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니체를 좋아해서 그의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접하는 니체 해설서가 아니라 실제 번역본으로 읽어왔기 때문에, 이번 <니체 초인 수업>도 단순히 ‘니체가 이런 말을 했다’는 식의 자기계발형 해설서라면 크게 끌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에 ‘수업’이라는 말이 붙어 있지만, 제가 읽기에는 니체의 말을 현대인의 성공이나 자기계발 공식으로 단순하게 바꾸기보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중심으로 초인이라는 개념을 다시 풀어내는 책입니다. 특히 ‘초인=남보다 강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깨뜨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인간으로 설명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저자 강용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이자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니체 철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왔으며, 박사논문 「니체의 문화철학」이 국제 니체 연구 학술지 <니체 스튜디엔>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비롯해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관한 여러 책을 써왔고, 니체의 <유고>도 번역했습니다. 대중적인 문장으로 철학을 풀어내면서도 원전 연구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강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음이 넓고 오심이 된다고 해서, 존재의 의미를 저절로 깨닫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결국 실수를 하거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속으로 계속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니체의 자기극복은 흔히 생각하는 ‘더 나은 내가 되자’와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유능해지고, 더 성공하고, 더 강해지는 것이 자기극복이라면 결국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부족한 존재로 취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극복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다른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부분까지 포함한 자기 자신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그림자를 보지 않아도 살아지긴 한다. 다만 그것 역시 부리워할 자리엔 흘리고 싶은 허무가 찾아온다”는 취지의 부분도 오래 남았습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한다고 당장 인생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얼마든지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좋았던 것은 긍정을 무조건적인 낙관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니체의 긍정을 “거센 파도가 모든 것을 휩쓸어버린 삶의 고통과 허무가 영원히 되풀이된다 해도” 다시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의 태도에 비유합니다.


저는 이 대목이 니체의 운명애를 꽤 직관적으로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믿는 것이 긍정은 아닙니다. 다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만들어보는 것. 결과가 영원히 남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삶 자체를 무가치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 오히려 그런 태도가 니체가 말하는 긍정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니체 초인 수업>은 니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초인’, ‘영원회귀’, ‘운명애’, ‘힘에의 의지’ 같은 핵심 개념으로 들어가는 비교적 편안한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저처럼 이미 니체의 번역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원전을 대체하는 책이라기보다, 자신이 읽었던 니체를 다시 정리하고 현재의 삶에 대입해보는 보조 독서로 읽기 좋습니다. 특히 요즘 말하는 ‘성장’과 ‘자기계발’에 조금 지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매일 어제보다 1퍼센트씩 성장해서 마침내 완벽해지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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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오디세이 -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원작 대서사!!
호메로스 원작, 손길영 편저 / 스타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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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오디세이>는 저에게 처음 만나는 고전은 아닙니다. 약 10년 전에 이미 한 번 읽었던 작품입니다. 당시에도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솔직히 10년이 지나 다시 이렇게 주목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영화화 소식과 함께 대중적인 관심까지 크게 높아질 줄이야. 10년 전에 읽어둔 독자로서는 약간의 뿌듯함도 생깁니다. ‘나는 진작 읽었는데?’ 하는 쓸데없는 고전 선점자의 마음이랄까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10년간의 방랑을 다룬 서사시입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단순한 ‘영웅의 모험담’이라고 하기에는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뿐 아니라 고향에 남겨진 아들 텔레마코스와 아내 페넬로페의 이야기, 신들의 개입,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까지 겹쳐집니다. 무엇보다 약 3천 년 전의 작품이니 현대 독자에게 낯선 신과 인물, 지명이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은 분명한데 원전으로 들어가려 하면 입구에서부터 이름표 확인 작업이 시작되는 고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초역 오디세이>에서 가장 크게 느낀 장점은 이야기의 재미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읽는데도 술술 넘어갔습니다. 칼립소의 섬에서 빠져나오는 오디세우스, 파이아케스에서 만나는 나우시카, 폴리페모스의 동굴, 키르케와 세이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같은 유명한 에피소드들이 빠른 호흡으로 이어집니다. 원전을 읽으며 이야기의 구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보다는 ‘이 장면을 이렇게 쉽게 풀어냈구나’ 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아테나는 텔레마코스에게 무조건적인 용맹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젊은이가 위험 앞에서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충고하고, 필요할 때는 지혜와 냉정한 판단을 먼저 요구합니다. 오디세우스 역시 귀향했다고 곧바로 왕궁으로 뛰어들어 구혼자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변장한 채 자신의 왕궁으로 들어가 상황을 살피고, 누구를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면서 때를 기다립니다.


이런 장면들은 10년 전보다 지금 읽을 때 오히려 더 재미있었습니다. 어릴 때 영웅 이야기를 읽으면 대단한 힘이나 용기에 먼저 눈길이 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언제 움직이고 언제 참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도 힘이라는 사실이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읽으며 새삼 느낀 것은 <오디세이아>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외눈박이 거인이 사람을 잡아먹고, 마녀가 사람을 돼지로 만들고, 세이렌이 노래로 사람을 죽음으로 유혹하고, 괴물이 기다리는 해협을 통과하고, 죽은 자들의 세계까지 다녀옵니다. 겨우 고향에 돌아왔더니 자기 집에는 백여 명의 구혼자가 눌러앉아 있습니다. 





다만 <초역 오디세이>는 제목 그대로 ‘초역’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 편이 좋겠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읽었던 <오디세이아>와 이번 책의 독서 경험은 꽤 달랐습니다. 원전의 문학적 표현과 서사시 특유의 호흡을 충분히 맛보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방대한 이야기를 현대 독자가 빠르게 따라가면서 전체 구조와 주요 에피소드, 인물의 선택을 이해하도록 문턱을 낮춘 책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이 책을 <오디세이아>에 처음 들어가는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고전은 읽고 싶지만 두꺼운 원전부터 시작하기 부담스러운 분,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이름 때문에 몇 번이나 포기했던 분, 오디세우스와 세이렌·키르케·폴리페모스 정도는 알고 있지만 전체 이야기는 모르는 분에게 특히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영화 때문에 오디세우스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분이 먼저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반대로 저처럼 이미 <오디세이아>를 읽은 사람에게도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의 기억을 빠르게 되살릴 수 있고, 예전에는 모험 자체에 집중해서 지나쳤던 인물의 판단이나 선택을 다시 보게 됩니다. 저 역시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서 같은 이야기가 전과 조금 다르게 들어왔습니다.


#초역오디세이 #호메로스 #손길영 #스타북스 #체크카페 #체크카페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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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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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프랑스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프랑스 역사를 다룬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특히 흥미로운 시대였습니다. 왕정과 신분제 사회를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분명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지만, 혁명 이후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과정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조나탕 베르베르의 <단두대와 욕조>는 제목과 소개부터 제 취향을 제대로 건드린 소설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공포정치, 그것도 방데 전쟁과 낭트를 배경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라니 안 읽어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익숙한 프랑스 혁명사를 또 한번 설명하는 소설이 아니라, 그 거대한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는 어두운 부분으로 들어간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작가 조나탕 베르베르는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공학을 공부하다 시나리오 창작으로 방향을 바꾼 작가입니다. 단편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고, 2020년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로 장편소설에 데뷔했습니다. <단두대와 욕조>는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실제 역사와 미스터리·스릴러를 결합하는 것이 특징인데, 시나리오를 공부한 작가라는 이력을 알고 읽어서인지 장면 전환과 사건을 밀어붙이는 방식이 상당히 영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시몽은 전쟁을 마치고 고향 낭트로 돌아왔다가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개인적인 복수와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폭력이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역사책에서는 ‘공포정치’, ‘방데 전쟁’, ‘낭트 학살’ 같은 이름으로 정리되는 사건들이 소설에서는 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책 몇 페이지에 불과한 사건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가족이 사라지고, 하루아침에 체포되고,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죽을 수 있는 현실이었다는 것이 훨씬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시몽이 카리에르의 주변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역사소설보다 첩보 스릴러를 읽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첨부한 부분에서도 시몽은 상대에게 의심받지 않으면서 정보를 얻어야 하고, 한마디를 잘못하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입니다. 램버티와 대화하며 일부러 자신을 과시하기도 하고, 다음 임무를 미리 알려달라고 떠보는 장면에서는 누가 누구를 시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독자는 실제 역사에서 카리에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도, 허구의 인물 시몽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프랑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로서 재미있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인물과 사건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머릿속의 역사 지식과 소설 속 이야기가 계속 겹쳐졌습니다. 저는 역사소설을 읽을 때 이런 순간을 좋아합니다. 완전히 낯선 세계를 배우는 재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내세워 시작된 혁명 속에서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이 발생하고, 어느 순간 사람을 죽이는 일조차 대의를 위한 행동으로 정당화됩니다. 소설 속에서 “전쟁 중에는 도덕이 낄 자리가 없다”는 식의 논리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 섬뜩했습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사람은 자신이 믿는 정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기 쉽고, 그 순간 반대편의 인간은 제거해도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제목인 <단두대와 욕조> 역시 책을 읽을수록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단두대는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를 상징하는 익숙한 이미지지만, 이 소설에서 ‘욕조’는 훨씬 낯설고 그래서 더 불길합니다. 우리가 프랑스 혁명의 폭력이라고 하면 흔히 단두대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 작품은 그 익숙한 이미지 바깥에도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단두대와 욕조>는 프랑스 혁명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역사소설은 좋아하지만 사건 설명이 길어지면 지루하게 느끼는 분,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나 첩보물을 좋아하는 분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반대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시몽의 복수와 잠입이라는 강한 서사가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읽은 뒤 방데 전쟁이나 낭트의 역사에 대해 따로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단두대와욕조 #조나탕베르베르 #열린책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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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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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이라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음에도 체류 시간이 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몇 년 뒤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야 자신에게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했는지 알게 됩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와 나난 작가의 그림이 함께 담긴 <오래 머무는 마음>은 바로 그런 것들을 천천히 돌아보게 하는 시화집입니다. 화려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꽃 한 송이, 계절의 변화, 사랑했던 사람, 헤어진 뒤의 빈자리처럼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순간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페이지에서 한동안 머물러 읽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님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며 등단한 뒤 50년 넘게 시를 써온 분입니다. 43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으며, 우리에게는 특히 짧고 평이한 언어로 풀꽃과 사람, 사랑과 삶을 이야기하는 ‘풀꽃 시인’으로 익숙합니다. 이번 책에는 윈도페인팅 아티스트 나난 작가님의 그림이 함께합니다. 나난 작가님은 꽃과 나무, 계절과 빛을 다채로운 색채로 표현해 온 작가입니다. 실제 책을 펼쳐보면 두 사람의 작업이 꽤 잘 어울립니다. 나태주 작가님의 시가 일부러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듯, 나난 작가님의 그림 역시 시의 의미를 거창하게 해석하기보다 곁에 꽃과 색채를 놓아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책 자체가 하나의 작은 전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특히 오래 바라본 작품 가운데 하나는 「드라이플라워」였습니다. 한때 아름답다고 말했던 꽃이 어느 순간 물 없는 항아리 속에서 말라 있고, 환희와 만남의 장소였던 공간도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감정을 품은 장소가 됩니다. 꽃은 같은 꽃이고 장소도 같은 장소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달라진 것입니다.  


「삶」과 「네가 너무나 예쁘므로」에서는 나태주 작가님의 시에서 자주 느껴지는 삶과 사랑의 감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을 잠시 다녀가는 것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짧은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행복했지만 동시에 그 사랑 때문에 아팠다는 마음이 함께 존재합니다. 꽃과 분홍색 표지 때문에 처음에는 따뜻하고 밝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쪽에는 이별과 그리움, 외로움과 후회도 꽤 많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사랑은 기쁨과 고통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서 가져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믿어야 한다」는 이 책의 다른 한쪽을 보여주는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봄이 오면 들판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새싹이 돋는다고 말하며 결국 희망과 사랑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조건 괜찮아질 것이라는 낙관보다는, 시들고 다시 피어나는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인간의 마음 역시 다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보자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난 작가님의 꽃 그림이 이 메시지와 만나면서 말로만 읽을 때보다 한층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은 한두 편씩 천천히 읽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요즘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분, 사랑과 이별을 지나온 분, 꽃과 계절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자신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겹쳐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를 평소 많이 읽지 않는 분에게 선물하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특별한 순간만이 인생에 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평범했던 산책, 무심코 바라본 꽃, 좋아했던 사람과 나눈 짧은 시간처럼 당시에는 몰랐던 것들이 훗날 가장 오래 남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제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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