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평점 :
예약주문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다 보면 한글에 관한 이야기는 꽤 익숙해집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부터 제자 원리, <훈민정음 해례본>, 사라진 옛글자까지 여러 차례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를 처음 펼쳤을 때는 솔직히 ‘내가 이미 아는 이야기가 꽤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책의 재미는 익숙한 지식을 지금의 한국어와 세계라는 맥락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저자 이현준은 25년간 외국어 교육 사업을 해온 교육사업가입니다. 영어교육회사를 창업한 뒤 여러 외국어 교육 사업을 거쳐 현재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학습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순수한 국어학자의 시선으로 훈민정음을 분석하기보다는, 오랫동안 ‘외국어를 어떻게 배우고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온 사람의 시선으로 한글의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이 점이 책의 성격을 꽤 분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책은 의외로 신라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9세기 바그다드의 이븐 쿠르다지바가 기록한 신라부터 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 문자와 문명의 관계를 지나 훈민정음으로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한글 책인데 왜 여기서 시작하지?’ 싶었는데, 읽다 보면 저자가 한글을 고립된 문자로 설명하기보다 오랜 문명 교류와 문자사의 흐름 속에 놓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역시 훈민정음 자체를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28자였지만 현재 한글 기본 자모는 24자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래아(ㆍ),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이응(ㆁ)이 사라졌습니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에게 이 네 글자의 존재 자체는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묻습니다. 사라진 글자와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현대의 외국어 발음 표기에 다시 활용할 수는 없을까?





특히 저자가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니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에 주목하는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훈민정음은 단순히 우리말을 눈에 보이는 글자로 옮기는 수단만이 아니라 소리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표기하려 했던 체계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훈민정음의 기본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습을 본뜨고, 획을 더해 관련된 소리를 나타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문자를 배우면서 동시에 소리가 만들어지는 원리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라는 점은 지금 보아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어려울 수 있는 문자사와 훈민정음 이야기를 상당히 대중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전공서처럼 세세한 음운론적 논의를 따라가야 하는 책은 아니어서 한글에 관심은 있지만 전문적인 국어학 책은 부담스러운 독자도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신라와 이슬람 세계의 교류부터 세계의 문자, 훈민정음 창제, 해례본의 발견과 오늘날 한국어의 확산까지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 교양서로서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글날마다 듣던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입니다’라는 설명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보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한국어와 외국어, 문자, 역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합니다. 국어국문학을 공부한 저에게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연결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매일 너무 자연스럽게 ‘가나다라’를 쓰고 있어서 오히려 이 문자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고, 무엇까지 표현하려 했는지는 잊기 쉽습니다.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를 읽고 나니 한글은 이미 완성되어 박물관에 놓인 과거의 유산이라기보다, 여전히 질문해볼 거리가 많은 문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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