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를 받아
입에서 우물거리는데
마음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내가 널 사용했는데
넌 누구한테 이용당했다고 하느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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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사람들이 보면
없는 사람들의 관점은
세상을 삐뚤어보는 심술에 지나지 않을까?

없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잠시 힘든것 갖고 모든 것을 잃은냥, 자신을 무한동정하는 것은 우습지만
이보다 더 낙오되고 힘든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안타깝다.

밟혔을 때 밟히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올라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밟히는 자의 자리로 내려가 그 편에 영원히 서는 이가 있다.

힘든 일을 통해 자신을 낮추고, 없는 이들과 동일시하고, 결국 없는 자가 될 수 있다면 더더욱 복이다.
구원은 내가 수영을 배워서 수영 못하는 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웅덩이를 매워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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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충 내 병이 나에게 다 드러난 것같다.
오랫동안 지르고 벌이고 다녔더니 다 해벌어져서 잘 보인다.
물론 숨겨진게 더 있겠지만, 일단 드러난건 고쳐야 할텐데...
어디부터 손을 봐야할지 딱히 감이 안잡힌다.

'하바드가 아름답다'는 말이 맴돌아서 일어나 이런저런 검색어를 쳐봤는데 잡히는게 없다.
최고가 아름답다, 재능이 아름답다, 지식이 아름답다.... 아닌척 나를 좀먹어 온 이 황당한 미학.
이게 황당하다는걸 증명해야 하고,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는 명제는
유능한 부모를 갖고 싶은 인간이 만들어낸 생각일 뿐이라는 걸 설명하고 싶고,

부모... 부모 얘기만 나오면 구석에 몰린 쥐처럼 나는 쪼그라든다.
선량한 부모를 미워하는 나에 대한 수치심때문에. 이건....

사랑에 대한 결벽증. 작은거 하나가 아니면 전체가 다  아니라는 억지.
절대선에 대한 동경.

.....

핵심어는 결국 진부하게도 사랑과 권력의 시소질쯤 되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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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이사하기로 하고, 학교도 옮기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그러고보니 지난 20년내내 실패의 연속이다.
매일매일의 실패는 물론이고, 커다란 외적 실패도 몇 차례.
하긴, 그렇다고 20년 전까지는 성공이었냐면 그건 더더욱 아니다.
결론은.... 아-  말을 말자.
열등감도 자격지심도 클대로 커졌지만, 그보다는
뒤늦게 내 유별난 결벽증을 이해했고....
이제야 한 걸음 제대로 내딛을 수 있을 것같다는 혼자만의 믿음에,
이젠 정말이지 아무도 안믿어줄, 작은 불씨같은 믿음에 나를 걸어보려고 한다.
때마침 기다리던 책이 왔다. 주성혜의 "음악학" (2008, 루덴스).


 






음악학자 주성혜의 세 번째 책이다.
처음 책은 "음악읽기 세상읽기" (1996, 중앙일보사), 두 번째는 "음악원 아이들의 한국문화 읽기" (2002, 예솔) 이었는데 두 권 모두 내게는 바이블같은 책이다. 두 번째 책은 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쓴 글 모음이지만 내겐 여전히 주성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같았다. 주성혜 선생님한테선 고등학교때 음악사를 배웠다. 그처럼 쉬운말로 그처럼 명료하게 역사를 설명하는 사람을 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그는 느낌만으로 아는 세계 석학들의 이론을 위험하게 엮서 자기 생각과 뒤섞어 책을 팔거나 그런 식으로 학생을 현혹하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하게 아는 만큼만, 아니 분명하게 아는 것같은 것도 다시 뒤집고 엎고 꼭꼭 씹어서 자기 언어로 말한다. 여하튼 위 세권은 명곡, 작품 자체가 아닌 음악활동의 주체인 사람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라면 한줄씩 밑줄그어 읽어도 좋다. 처음 책이 음악학(작품분석, 해설위주 학문)에서 음악 사회학으로 눈을 돌리자는 내용이라면,  두번째는 음악 사회학에서 음악 인류학, 공연학으로의 촛점 변화, 그리고 오늘 온 새책 (그래도 벌써 작년 10월판이지만)은 탈식민지주의가 그 핵심어다. 6년에 한 번씩 나온 책들 속에서 천천히 진행해가는 변화를 보는 것도 내겐 소중하다.

세권의 책이 나오는동안 나는 줄곧 미국에 있었다. 천천히 피아노를 다시 배웠고 사랑이란걸 이런저런 모습으로 해보고 배우느라 숱한 시간과 돈을 날렸다. 거만하고 촌스런 학풍의 지금 학교엔 연주, 이론, 음악사뿐이고 현대음악도 외면하고 있어서 따근한 음악사회학이나 인류학, 미학쪽으로는 들어볼 일이 없었다. 자주 주성혜 선생님을 기억했다. 80년대 민족·민중음악 운동이 활발할때 선생님은 거기에 빠지지 않았다. 민중이란 말만 들어도 피를 끓이던 젊은 이들과 달리 선생님은 특유의 합리성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뭔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마 데모대를 동경했던 내가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획일적인 율동과 노래를 보고 얼굴이 흑빛이 되어 돌아나왔던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책은 민족주의+자본주의=현대식민지주의를 경고한다. 전통음악을 살려야한자고 다들 말한다.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북치고 장구치고 판소리를 생활화 하는 것이 옳고 그리고 가야하기 때문에? 바이올린 보다 가야금을 더 많이 들고다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것이 정말 옳은가? 순수한 민족주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상술과 거대한 서양학문의 요구로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게 진정 음악이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에 대해 이 책은 조목조목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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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0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31 0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으로 다가가는지 그게 늘 궁금하다.
연습을 할 때마다 가상의 청중을 상상하는데, 서양음악을 처음 들어보는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 혹은 삶에 지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 여하튼 클라식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상상한다. 그들에겐 이 음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부분이 아름답게 들릴까? 이상하게 들릴까? 이 곡에서 내가 무엇을 끄집어내면 그들의 귀에도 아름답고 고된 삶에 위로가 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믿게 될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내게 필요한, 나를 위한 작업이다. 살기싫다.. 를 거의 입에 붙이고 다니니... 유명할 것도 없는 작은 연주회에 고해성사라도 한 것처럼 내 더러움을 내려놓고 온 적이 있다. 혼자만의 캄캄한 공간에 숨죽인 눈물을 쏟고 나와서 나는  연주를 믿게되었다. 사실... 무대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내겐 신성하기까지 하다. 작품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무대만 보면 가슴이 아리니까.... 아마, 무대에선 혼신을 쏟아넣는 순간이 너무 선명하게 포착되기 때문일꺼다. 아.... 여하튼, 삶을 붙잡게하는 아름다움, 그것이 기이함이든 숭고함이든 합리성이든 용기든 충격이든 무엇이든.... 살기 위해선 감동이 필요하다. 감동한다는건,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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