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화센터의 소설 강좌에 등록해서 다녔던 적이 있다. 소설을 쓰고 싶은..아니 그저 글을 쓰고 싶은 욕구도 있었지만 그런 강좌에는 자아를 찾는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반반이었던 것 같다. 매일 뻔한 생활이 지겨워 어릴적 꿈을 찾아 글을 쓰기 시작한 주부와 정년퇴직 후 지난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이를 쓰려는 노인. 그리고 취직도 취집도 힘들어 나름 자신있는 글쓰기 재주로 등단이라는 목표를 가진 젊은이들. 사실 문화센터라는게 특히 백화점 문화센터라는데가 절박하게 한길로 글을 쓰려는 사람보다는 여유로운 사람들에게 더 어울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순수한 열정보다는 허영이 살짝 끼어있는 분위기였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뭔가 특별해지는 느낌. 그 자체에 이미 만족하며 서로를 띄워준다고나 할까. 정작 강좌의 내용은 알맹이가 실하지 않고 사교에 중점을 두는것이 실망스러워 얼마 못가 그만두고 말았다. 개나소나 글을 쓰나..라는 회의( 물론 그 개나소나에는 나도 들어있다.)가 들어 오히려 글을 쓰려는 욕구에서 멀어졌다고 할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깊은 곳 한쪽 귀퉁이가 저릿저릿해진다. 동네아줌마들과 김작가의 시끌벅적한 글짓기 교실. 그 교실을 한심해하는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중요한게 뭔지를 알게 되는 그 과정에 나도 같이 녹아들기 때문이다. 어떤 글을 쓰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진짜 중요한 것이라는것. 비록 허영이든 순수한 열정이든 글을 쓰는 것은 각자의 영혼을 부드럽게 또한 뜨겁고 차갑게 어루만지는 행위다. 약간은 삐딱하던 나의 시선이 이 책을 읽으며 교정되는 것을 느낀다. 못생기고 덩치크고 사교적이지도 않은 주인공. 하지만 글을 쓰고 싶어하는 그녀의 바람은 그런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다들 글을 쓰려고 하는걸까. 김작가의 정신병은 왜 걸린걸까..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고쳐진 과정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되새겨보면 순수하면서 정열적인 김작가이기에 스스로 회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딸의 사랑에도 도움을 받았겠지만..무엇보다 그녀에게는 글에 대한 정열이 있었으니 말이다. 한가지 조금 아쉬운 점은 앞부분 중 주인공이 고등학교 선생의 폭행에 대해 코멘트를 할때 상당히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얘기하는 부분이다. 엉뚱하고 도전적인 그녀의 캐릭터에 맞지않다
내 어머니는 손맛이 뛰어나시다. 아버지가 퇴직하셨을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연구중에 음식점이 가장 선두였던 것도 어머니의 손맛을 믿으셨기 때문이지만 누구 고생하다 쓰러지게 할일 있냐는 어머니의 반대때문에 결국 음식과는 무관한 직종으로 창업을 하셨다. 하지만 지금도 밥을 먹다가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그 솜씨가 아까워 음식점을 했어도 성공했을텐데 하고 아쉬워하는 나는 불효자인걸까. 더 아쉬운건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을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줄만 알지 직접 만드는데는 솜씨도 그리고 마음가짐도 턱없이 모자라기에....입맛만 고급이니 나중 어머니가 연로해져 음식을 못 해주실때는 어찌해야 할지 대비해야 할텐데 막막하다. 그런 두려움속에 이책을 보고는 아..맛있는 음식, 요즘 유행하는 휘황 찬란한 퓨전 음식들 말고 어릴적 엄마가 만들어주던 소박하지만 깊은 맛의 음식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는 책이구나..라는 기대에 반가운 맘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펼쳐보면서 힉~하고 긴장하게 된건 글자의 작은 크기와 빽뺵함이다. 구활이라는 이 책의 작가분은 책 안쪽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강직함대로 추억의 음식들을 과장없이 그러나 진한 냄새를 풍기며 서술하고 계시다. 아..왜 작가를 얘기하는데 이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워지는지 모르겠다. 어른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진짜 어른의 느낌 말이다. 속된말로 꼰대가 아닌..힘든 과거를 묵묵히 짊어지고 걸어온 한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과장도 가벼움도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겁지도 않다. 감성과 이성이 잘 어우러져서 읽는 내내 그 진솔함과 위트에 미소와 감동이 계속된다. 그 어려운 시절..뒤돌아서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을 가난의 파편들이 시간을 돌고 돌아 그리운 추억의 향기로 남은것은 그 시절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정직하게 감당해낸 청춘들에 대한 눈물의 댓가가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어려웠던 시절의 눈물과 한숨과 용기와 정..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글자크기와 넘치는 양이 다소 부담스럽다. 조금 힘을 빼는 편집이었으면 더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처음 책의 소개를 보았을때는 가슴이 설레였다. 이시대 멋진 12명의 스타들의 연기를 지도해온 선생이 그들 삶의 진면목을 통해 왜 그들이 톱스타가 될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려준다는 얘기에 기대가 컸다. 외모와 운이 많이 차지할거라는 톱스타에 대한 내 선입관이 달라질 것 같았고 또한 치열하게 노력했을 그들의 성공 비하인드 스토리에 많은 자극도 받을 거 같았다. 무엇보다 톱스타가 되기 위한 노력 속에 배려와 겸손이란 인간미도 가지고 있었기에 그자리에 설수 있었다는 소개에 앞으로 화면으로 만날 그들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까 볼때마다 더욱 흐뭇해지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있었던게 사실이다. 책을 펼치자 수많은 사인지가 나온다. 살짝 첨부되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인지가 주가 되어있는 구성에서 어라라..불안감이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읽다보면서 예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한때 인터넷에 저렴한 금액으로 개인의 책을 만들어주던 사이트가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팀의 누군가가 자신의 책을 만들었다며 여기저기 돌리고 팀원들도 보라며 게시판에 비치해놓았는데 슬쩍 펼쳐보고는 어이없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감동을 위한 일상의 나열이랄까, 아무것도 아닌일에 여러가지 유명한 일화와 감상을 가득 늘어놓고...무엇보다 황당했던 것은 과장과 부장에 대한, 그러니까 윗사람에 대한 찬사. 그냥 지나가는 대화와 행동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자신에게 얼마나 좋은 자극을 주고 있는지 감사하는 얘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일화가 떠오르는것은 왜일까. 12가지로 챕터를 나누는것은 덕목에 따라서가 아니라 얘기할 스타가 12명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씩 대표하는 덕목들은 공감적이지 않다. 정작 스타들의 이야기는 적고 작가의 감상과 잡다한 지식들이 나열된다. 또 좋다고 얘기하는 스타들의 좋은 점이 어떤 면에서는 무례하고 배려없는 자기중심적인 행동이라 느껴져 더욱 이 책에 공감하기 힘들다. 작가가 열정이 많다는 건 잘 느껴지지만 깊이는 아직 얕다. 하지만 작가의 감상과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솜씨는 좋았다. 너무 개인적인 감상에 치우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스타들을 얘기하는 책에 왜 멋진 사진 한장 없냐는 거다.
두더지 지식클럽. 제목 참 특이하다. 문득 카프카의 단편 "굴"을 떠올렸다. 두더지 비슷한 동물이 주인공인 그 소설에서는 즐거워야할 생이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혹여 비슷한 느낌으로 쓴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책 말미에 두더지와의 인터뷰를 보면 저항과 전복의 존재로 상징하는 것이니 잘못 짚기는 했다.하지만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그 느낌이 뭔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여러 모순 속에서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러나 또한 잘못된 시스템 속에 불안해하고 배신당하다 좌초되는 서민들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부터 시작하여 4대강 사업까지..말도 안되는 일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횡행하는 요즘 시대에 이제 도덕도 감각도 마비되어 그게 그거인가 싶어지는 우리에게 작가 이재현은 재미있게, 하지만 깊이있는 비판을 던진다. 좌빠..(사실 나는 좌파가 아닌 좌빠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 스스로 좌빠임을 밝히는 그의 고백답게 그는 다소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시선은 따뜻해서 그런 그의 펜촉이 따갑지만은 않다. 이책은 여러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마리안, 된장녀와 같은 상징성 인물들부터 시마과장, 두더지같은 가상의 캐릭터, 리어왕, 선재동자 등의 고전의 인물들과 벅시, 피카소같은 실제 인물들까지 두루두루 걸쳐 인터뷰를 하고 있다.지상최고의 토크쇼라고 해도 되는게 아닌지.. 물론 이런 가상의 인터뷰는 재미와 더불어 위험을 갖는다. 인터뷰에 있어서 인터뷰이의 자질은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아 인터뷰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보다 인터뷰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확대하게 되니까. 그래서 이렇게 유명한 많은 인물들이 사실은 작가 이재현이 얘기하고 싶은 부분을 보여주는 소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우려를 갖기에는 작가가 가진 소양이 깊고 넓다. 즉 작가가 끌고 가는대로 읽고 나서도 그다지 불쾌함이 남지 않는, 오히려 유쾌함과 새로운 자극이 되는 좋은 인터뷰집이라 하겠다. 하지만 다소 어렵고 꽤 복잡하다. 작가의 지식의 방대함에 감탄하게 되지만 좀더 간추려서 깊게 파보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커피 한잔과 함께 여유를 가지고 다시한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집에있게되니 라디오를 잘 못듣는다. 라디오는 뭐니해도 출 퇴근할때 주로 차안에서 듣게 되는데 젊었을 때에는 연예인들의 이야기나 최신곡이 좋았다면 30대 중반이 되어가면서부터는 시청자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게 되는 변화가 생기는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사는 얘기라고 할까나..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때로는 눈물겹고 때로는 배를 잡고 웃을만큼 황당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라디오 진행자들의 재치있고 구수한 입담과 만나면 그 재미는 배가된다. 그런 추억을 생각하며 이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들의 연애이야기라... 이홍렬씨의 라디오 방송은 들어본적이 없지만 사람 냄새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시청자들이 보내온 부모님들의 사랑이야기를 모아서 낸 책인데 아기자기하다. 짧지만 옛날 못 먹고 힘들었어도 맘만은 뜨거웠던 청춘들의 열정적인 사랑들이 농축되어 들어있다. 한편 한편 읽다보니 뜨거웠던 연애에는 공통점이 있다. 앞뒤 재지 않고 돌격하는 용기라고 할까.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구애하는 용기와 진정성 앞에는 결국 왠만큼 콧대높은 미남 미녀가 다 넘어가더라는 만고불변의 법칙 말이다. 옛날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살기 어렵던 그 시절이 오히려 지금보다 조건을 안 따지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랑을 찾았던 것 같다. 다소 촌스러워도 패기있는 구애와 그것을 귀엽게 받아들이는 순수한 커플들의 사랑이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사랑이야기에 익숙하던 차에 이 책은 화려하지도 포장되지도 않은 이야기인 셈이다. 특히 못먹던 시절이라 그랬겠지만 깐깐한 미남들이 맛있는 밥공세에 넘어가 장가가는 얘기들은 요즘시대의 여성들을 약간은 안타깝게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재미있는 소재들에 비해 문체가 너무 단순하다. 아마도 어르신 독자들을 감안해서 그런 건지...그리고 매 이야기 끝에 달려있는 연애 코치의 한마디는 일부를 빼놓고는 사족같다. 이야기의 여운을 오히려 없앤다고나 할까. 그런 약간의 아쉬움을 빼면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고 나면 나의 부모님께 두 분은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묻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또 다른 이야기를 얻을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