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장르소설도 아니면서 두근두근 긴장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스토리 텔링.

2년전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어느 순간 그 2년전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에 알게 되는 반전.

 

사신치바를 읽었을 때의 그 한 편의 영화다운,

잘 그려진 한 편의 만화책같은 감성과 재미로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는 나에게 다가왔다.

 

이사카 코타로는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철저한 개인주의 세상속에서  깨어있는 젊은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2년 전의 화자인 고토미와  도르지, 그리고 가와사키

현재의 화자인 시나와 그 옆방에 살고 있는 가와사키

그들은 2년이 지난 현재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다.

2년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일본에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이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시작은 바로 애완동물 살해범.

고토미는 펫샵에서 일하는 직원이고, 그 펫샵에서 구로 시바가 없어지고,

고토미가 애완동물 살해범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 2년 전 스토리의 중심내용이다.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길고양이들을 잡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애완동물 살해범.

 

고토미의 남자친구는 외국인인 부탄사람 도르지.

현재의 화자인 시나와 대학친구들의 대화에 나오는 말에 의하면

외국사람과는 특별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고, 마주치는 것도 불편하고,

괜히 싫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후진국인 동남아시아인을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점점 국제결혼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다.

농촌총각에서 시작한 동남아시아 신부찾기는 어느 덧 도시총각에까지도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다문화가정에서 생긴 2세들이

한국어가 미숙한 엄마에게서 보살핌을 받아 학교공부가 뒤쳐지거나,

학교생활에서 왕따를 당하는 현상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혼혈가수 중 흑인계열의 가수인 인순이와 박일준은 어려서부터 차별을 많이 받았고

힘들었던 생활을 했다고 고백한 반면,

백인계혼혈인 윤수일은 어려서부터 여러움도 없었고, 잘 생겼다고 인기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미국이나 호주등지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나 일본등지에서는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있어왔다.

 

집오리와 들오리에 대한 표현도

집오리는 외국에서 들여온 종,

들오리는 원래 일본에서 살고 있던 종으로 구분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부탄인인 도르지는 집오리,

가와사키나 시나, 고토미등은 들오리가 되겠지~

일반인의 눈으로 보아 집오리와 들오리를 구분할 수도 없으면서

일단 외국에서 들여온 종이라고 하면 다르게 보게 된다.

언뜻 봐서는 일본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도르지,

그의 서툰 일본어 솜씨 때문에 그는 보기에는 들오리이지만 입을 열면 집오리가 된다.

 

이사카 코타로가 깨어 있는 작가라는 점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연,

부탄이 일본보다 더 잘 사는 나라라면,

일본 사람 누구라도 부탄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지 다 알만큼 크고 힘있고, 돈이 있는 나라라면

도르지를 집오리라고 배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도르지가 미국사람이었대도

그의 존댓말밖에 할 줄 모르는 일본어 실력을 무시하면서 비하할 수 있었을까 말이다.

남들에게는 관심없는 척 하면서도

은근히 사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일본세태에 대한 비웃음.

그리고 변태적 살인이나 파괴적 행위들을 비난하는 이야기이다.

 

잔잔한 듯 하면서도 이야기의 진행이 흡입력이 있고,

그러면서도 가슴에 오래 남는 여운이 있는 드라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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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역사 - 진실과 거짓 사이의 끝없는 공방
황밍허 지음, 이철환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착한 사람을 두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과연, 그 착한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을까?

그 착한 사람은 법 앞에 죄없는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요즘처럼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세상에서 아마 그 착한 사람은 법 때문에 눈물 흘릴 일도 있을지 모른다.

 

법정의 역사라는 책.

법에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나,

고등학교 시절 법이 나오는 부분은 정말 싫었던 내가

왜 이 법정의 역사라는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바로 책의 맨 앞에 쓰여 있는

'진실과 거짓사이의 끝없는 공방'이라는 한 줄 때문이었다.

 

TV와 인터넷, 신문지상에 있는 모든 법적공방들을 보라.

어느 누구 하나 내말은 틀렸고 상대방의 말이 옳다는 사람은 없다.

내말이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이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말들을 한다.

 

그들 중 누가 진실이고,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가!!

 

둘 중 한사람은 진실이고 한사람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거라면 그 진실과 거짓을 밝혀낼 자는 누구인가..

 

진실과 거짓사이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법정에서의 시간은 길어지고,

법의 역할은 커질 것이다.

 

세기의 심판이라 불리웠던 O.J심슨의 경우도 그러했을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드림팀이라 불리우는 변호사들을 대동하고

그의 DNA와 일치하는 피묻은 장갑을 증거로 제시한 검사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심슨은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1남 1녀의 아이들의 엄마이자 아내였던 여자를 죽이고,

그 여자를 죽이려할 때 참 운 없게도 그 집에 들렀던,

두 사람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한 남자까지도 죽여버린 살인마가 돈과 힘으로 법정을 이긴 사건이었다.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독배를 마시고 죽어갔다.

그의 재판은 어떠했는가...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인이다.

곳곳에 전범재판에 대한 내용도 나와있는데,

아무래도 중국인이 가지는 일본인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은연중에 배어 있어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심슨의 재판을 맡았던 판사 두 명,

형사재판을 맡았던 사람과 민사재판(민사재판에서 심슨은 살인사건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았다)을 맡았던 사람을 이야기하며

전쟁의 패배를 딛고 일어서 일본인이 미국내에서 얼마만큼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투와 선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주 옛날,

법이 시작되던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법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부터

법이 지향해야 할 부분까지를 담아내고 있으면서

중간중간 법에 대한 특별한 지식없이도 책을 넘길 수 있을만큼의 재미도 같이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법이라는 부분에 관한 전체적이도고 포괄적인 것보다는

중국적인 부분에 치우졌으면서도 전체적인 것으로 포장하려 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고,

앞서 말한바대로 일본인에 대한 중국인으로써의 시각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은 좀 안타까운 점이기도 하다.

 

또한,

진실과 거짓의 끝없는 공방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소크라테스처럼,

결국엔 법을 믿어야 한다는 것,

법이 결국엔 우리를 정의롭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기 보다는

아직도 사람이 사람을 심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가난한 자,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는지에 대해서 더욱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끝없이 진화하는 법의 이론이라는 것이

만민을 위하여 존재한다고는 하나,

그 자루를 쥔 것이 사람이라는 것에 또 하나의 불신을 확고히 하지 않았나 싶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법이 진실을 왜곡하기도 하는 현실...

 

그러니 송사는 아니한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지루한 힘겨루기 속에서 몸도 정신도 피폐해지기 일쑤인 것이다.

 

우리는 정치인이나 법조인에게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내보다 훨씬 더 강도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누구보다 더 진실하고

누구보다 더 정의롭기를 바라는 이유 말이다.

 

법정의 역사가 이 이후에는 끝없는 진실과 거짓사이의 공방이 아니라

법정의 역사는 진실의 승리로 끝이 나기를,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이라면 더 따뜻한 결론이 나기를 바라면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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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 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 수상작

<다빈치>선정 "올해의 책 " 1위

 

순진무구 리얼리티와 위풍당당 판타지를 천연덕스럽게 오가는

지브리 애니메이션풍 초특급 청춘소설 in 도쿄

"망상이라도 좋다!

소리높여 청춘을 구가하자!"

 

만화스러운 스타일의 책.

현실과 판타지를 아니 판타지 속에 현실이 끼어드는 것 같은 느낌의 소설이다.

순정만화스러운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의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이어가기 위하여 끝없이 뒤를 쫓고 쫓으면서 생기는 사건들은

가히 만화적이다.

 

그녀와 우연히 만난 척 한 후

"뭐~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

라고 쿨한 대사를 날리고 또 그렇게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남자..

어찌 보면 참으로 용기없고 우유부단한데도

내가 나이 먹어서 그런가 그런 결단력없음이 귀엽게도 보인다..^^

그렇게 끊이지도 않고 계속되는 우연에도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아~ 선배, 또 만났네요??"

어쩜 무심하기도 하지...ㅋㅋㅋ

 

스토리는 청춘남녀의 사랑만들기?? 정도인데,

정작 나의 눈을 사로잡은 문구는 바로 아래의 것..

 

"출판된 책은 누군가에게 팔림으로써 한 생을 마감했다가

그의 손을 떠나 다음 사람 손으로 건너갈 때 다시 살아나는 거야.

책은 그런 식으로 몇 번이고 다시 소생하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가지.

신은 나쁜 수집가의 손에 갇혀 있던 헌 책을 세상에 풀어줌으로써 다시 생명을 갖게 해주는 거야.

그러니 마음씨 나쁜 수집가들은 마땅히 헌책시장의 신을 두려워해야 해!"

 

나에게로 와 살아났던 책이 그저 생을 마감한채 책장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는 것.

그저 책을 가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책이 나에게 의미가 있었건 그렇지 않건,

재미가 있었건 그렇지 않건,

끝까지 읽었던, 여러번을 읽었건, 혹은 읽다 덮었건간에

그 책들을 그저 소유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어느 날엔가 헌책시장의 신이 나에게로 와

내 책이 갑자기 다 없어져 버리는 건 아닐런지..

 

그래도 어쩌냐, 얘들아...

난 너희들을 풀어 줄 생각이 없단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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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
존 번햄 슈워츠 지음, 김원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람은
폭이 넓든, 좁든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는 일적으로, 감정적으로 얽히고 얽혀
또다른 감정을 재생산한다.

가족은 어떠한가.
사랑하는 남녀의 결합으로
아이가 생기고, 사랑하는 남녀는 부모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부모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는 것은
사람으로써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며,
그 새로운 탄생은 기존의 나를 확 바꿔버릴 수도 있는
대단한 변화가 될 수도 있다.

여기,
두 가족이 혹은 세 그룹이 있다.
한 가족이었으나 이미 해체되어 버려 한 가족과, 홀로 남은 한 사람이 된 두 그룹과,
행복한 한 가정이었으나, 자녀를 사고로 잃고 해체위기에 놓인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힘겨운 한 가족이 있다.

그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전에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

[에단러너와 그레이스러너, 아들 조시와 딸 엠마 가족]

늦은 오후 피크닉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엠마를 위해
길가의 작은 주유소에 정차한 에단의 가족.
길가쪽에 서 있던 조시를 미처 길안쪽으로 데려오지 못하고
워셔액을 살피던 에단은 갑작스럽게 커브 바깥쪽에서 달려오던 차가
조시를 붕 날려 수풀 저쪽에 던져버리고는 그대로 달려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드와이트]
드와이트와 루스와 샘은 한 때 가족이었다.
변호사인 드와이트가 일에 매달려 있는 동안 루스는 노리스와 바람이 났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헤어지자고 말하던 루스에게 화가 나
이전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한 번 더 주먹을 날리는 순간, 그 주먹을 맞은 건
아내 루스가 아니라, 그의 아들 샘이었고,
샘의 여린 턱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렇게 드와이트는 혼자가 되고, 샘과는 각고의 노력끝에 일주일에 한 번
부자지간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신나는 야구관람 후 돌아오던 길에
그 길에서, 내 아들만한 아이를 쳤고, 그 아이는 죽었다.
샘에게 좋은 기억으로만 남고 싶었던 드와이트는
고통과 죄의식속에서 자수의 기회를 미루게 되고...

에단과 드와이트의 시점은 일인칭 시점으로
그레이스의 시점은 삼인칭이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씌여져 있어서
더욱 몰입하기 좋은 이야기 구성이다.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죽음은 가족을 해체로까지 끌고 갈만큼
충격이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만큼의 슬픔이랄까..
그러나 자녀의 죽음 혹은 실종은
가족을 해체로 몰아갈 수 있을만큼의 충격이고, 아픔이다.

더군다나
에단과 그레이스, 엠마는 서로서로
조시의 죽음이 자신에게서 기인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과정 중에서 가족은 모두
타인을 용서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뺑소니를 치고 달아 난 드와이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릴 적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를 피해 힘을 기르고,
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길 바랐던 자신의 경우처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고,
그로 인해 상처를 남겼다는 죄책감 속에서
부자지간을 새로이 형성하고 싶었던 여행길에서
일어난 자동차사고는 피하고 싶은 사실이었고,
그로 인해 번민하고 고통받으며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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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호 방갈로에 도착했다. 온통 흰색으로 색칠한 오두막에서는 예정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뒤에는 호수가 있었다. 갓 돌아온 이 겨울에 호수의 색은 더 검어졌고,
내리는 눈으로 표면에는 잔물결이 일었다.
백조들은 없다. 하얀 보트도 사라졌다. 우리가 예전에 왔던 그 장소가 아니다.
내가 굶주린 사람처럼 달려들던 그 추억이 아니다.
내 아들도, 그의 죽음도, 그 어떤 이유도 없는 그런 곳이다.
오직 알려지지 않은 슬픔과 잊혀진 추억억과 비바람에 닳아버린 표지에 대한 수수께끼뿐.
420p 에단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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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모든 것은 다 과거의 일이다.
분노와 죄의식에 휩싸여 있던 에단의 가족도 겨울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조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와 남편을, 그리고 남아 있는 엠마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착하던 내 아이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 사람도 용서하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에단이 총을 겨누고 드와이트를 데려간 곳은
조시가 가장 좋아했던 추억의 장소였다.

그 추억의 장소에서 과연 에단은 드와이트를 용서했을까, 아니면 단죄하였을까??
샘과 조시는 모두 열살이었다.
내 아이는 아홉살.
내 아이가 샘이라면,
혹은 내 아이가 조시였다면..
난 어떠했을런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졌다.
읽는 내내 드와이트의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가해자라는 입장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이해와
자식을 잃은 그레이스의 마음이 오버랩되어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들의 가장 슬픈 오후는 이제 지나갔다.
그들에게 그 슬픈 오후가 잊혀지길~~
아니,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극복하고 용서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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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연인 올랭피아
데브라 피너맨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 이전의 누드화라는 것은 어느 정도 조작되고 연출된 이상적 누드였던 모양이다.

'올랭피아'라는 작품이 전시되자 평론가들과 시인들은 혹평을 금치 않았는데,

전라의 투명한 몸, 머리에 단 커다란 꽃, 흑인 하녀가 들고 있는 커다란 꽃다발까지 그림 속의 모든 요소들이 이 관능적인 여인이 창녀라는 것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었고, 침대의 이불조차 여성의 질을 상징하듯 구겨져 있었고, 꼬리를 세우고 몸을 웅크린 고양이는 발기한 남성을 상징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뮤즈는 마네의 또다른 유명작인 '풀밭 위의 점심'에도 등장하는 여인으로,

1860년대 마네의 몇몇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작가는 마네의 모델이었던 여인과 거리의 창녀로 출발하여 황제의 총애를 받는 정부의 지위로까지 오른 한 여인을 결합하여 '빅토린 로랑'이라는 주인공을 만들어 19세기 파리 미술계를 놀라게 했던 마네라는 화가와 그의 뮤즈였던 여인과의 사랑, 그리고 당시의 예술가들, 정치가들까지 등장시킨 소설을 탄생시켰다.

 

두 명의 이모에게 키워지다 어린 나이에 버림받은 빅토린 로랑.

그녀가 품은 하나의 이상은 파리를 정복하리라는 것.

그녀가 할 수 있는 정복이라는 것은 바로 자신의 능력으로 남자를 휘어잡는 일이다.

자신에게서 음악소리가 들린다는 에두아르 마네를 만나 그의 모델이 되고 그에게도 감정을 느끼지만,

금전적으로 자신을 부유하고 안정적으로 뒷받침해 줄 필립을 만나면서 마네와도 갈등을 겪게 된다.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웠던 19세기에 프랑스 최고 권력자 중 하나인 필립의 여인이 된 빅토린과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출생의 비밀까지, 빅토린은 혼란과 혼란을 거듭한다.

 

주인공이 마네인만큼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보들레르와 요한 슈트라우스, 드가와 모네, 르느와르, 그리고 나폴레옹 3세와 외제니왕후까지..

그들이 모두 그처럼 알고 지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물론 그들의 관계는 모두 허구이다~)

가끔 전기를 볼 때마다 베토벤의 스승은 하이든과 모짜르트, 베토벤의 제자가 슈베르트와 체르니...

이렇게 위인들이 모두 아는 사이였다는 걸 생각하면 뭐랄까...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하나...

고흐와 고갱은 함께 지낸 적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걸작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 선 사람들,

극한의 것들은 통한다고 한다더니 이 역시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다른 두 책이 연상되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와 '황금 물고기'이다.

'진주 귀고리 소녀'도 '마네의 연인 올랭피아'처럼 그림을 그린 화가와 그의 뮤즈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황금 물고기'의 라일라와 '마네의 연인 올랭피아'의 빅토린 두 사람은 거친 세상 속에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성숙한 여인이 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마네의 작품들 중에는 비평가들의 평론만 있고, 그림은 남아 있지 않은게 있다고 한다.

언젠가 그의 남겨진 그림들이 세상으로 오는 날,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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