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일본도를 들고 피에 물든 붉은 셔츠를 입은 남자는 아내와 어린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앞을 막아 선 신이치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두려움에 딸을 껴안고 달리던 가즈코의 의식도 이내 아득해지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매년 칠석이면 온 가족이 나팔꽃 시장을 둘러 본 후 유서 깊은 장어집으로 향하는 것이 소타 가족의 의식 같은 것이다. 열네 살이 된 소타는 자신에게는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나팔꽃 축제에 따라가고 싶지 않지만 장어를 좋아하기에 억지로 따라 나섰다. 하지만 우연히 축제에서 만나게 된 다카미로 인해 축제는 그야말로 축제가 되고 다카미와 메일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메일을 검열한 아버지는 다카미와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고 다카미마저 소타와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끝낸다.
그리고 현재. 사촌의 자살에 이어 할아버지의 살해까지 끔찍한 일을 연달아 겪고 있던 리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달에 두어번 정도 방문하여 할아버지가 키우고 있는 꽃들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돕고 있었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블로그에는 아직 올리지 말라고 했던 노란꽃이 피었던 화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안 것도 경찰의 조사를 받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마땅한 용의자도 증거도 없는 혼자 사는 노인의 살인사건은 그저 그런 강도의 짓으로 치부되는 듯 했다. 하지만 궁금증이 생긴 리노는 그 노란꽃을 블로그에 올려 아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고 그걸 계기로 소타의 형인 요스케를 만나게 되고, 요스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소타와 연결된다. 소타는 경찰관료인 요스케의 행적을 알아내기 위해서, 리노는 노란꽃의 실체와 할아버지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함께 조사를 시작한다.
에도시대에는 존재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노란 나팔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1962년의 살인사건과 십년 전 소타와 다카미의 어색한 헤어짐, 그리고 현재 리노 사촌의 자살, 할아버지의 살해까지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의 뒤를 좇는 하야세 형사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늘 그렇듯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살인'이라는 무서운 결과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부분들이 끊임없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게 아닌가 싶다.
수영으로 올림픽을 준비하던 리노가 수영을 그만두게 된 사연
원자력이라는 것을 연구한다는 것에 딜레마를 가지게 된 소타
자신의 잘못으로 가정이 깨졌지만 아들을 위해서 사건을 꼭 해결하고 싶은 하야세
누구에게나 능력있는 음악가로 평가받았지만 늘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던 나오토
'가업'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의무를 짊어져야 했던 요스케와 다카미
제법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하나의 귀결점을 향해 달리고 있고,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엔 살인사건의 해결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 각각의 인생에 대한 '정답'까지는 아니어도 '방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노력이 자신 뿐 아니라 그 후대에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각오와 신념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그려낸다는 것 자체가 작가 자신의 도덕관을 나타내는 것일테고, 그런 것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이 좋아하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