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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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인 velocity는 해석면에 있어 speed라는 또다른 단어의 뜻과 같은 '속도'이지만 속도라는 뜻의 단어로는 조금 낯설다.



 

단위 시간 동안에 이동한 위치 벡터의 변위로서 물체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벡터량이다. 물체의 빠르기를 이동한 방향과 함께 나타낸다는 점에서 속력과 차이가 있다.


[출처] 속도 [速度, velocity ] | 네이버 백과사전

 

물리학적 단어인가 보다. 이 이야기는 적당한 스피드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용한 삶을 살아가는 한 평범한 남자가 사건에 휘말려 극도의 공포감과 함께 단 몇 일의 시간들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흘러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와 더불어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시간은 빛의 속도로 흘러간다.  

 

식물인간이 되어 알 수 없는 단어, 혹은 문장들을 늘어 놓는 결혼하기 직전의 약혼녀를 돌보며 작은 선술집의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 빌리는 퇴근길에 자신의 차 앞유리에 꽂혀 있는 쪽지를 보게 된다.

 

"이 쪽지를 경찰에 가져가지 않아서 그자들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내퍼 군 어딘가에 있는 학교의 사랑스런 금발머리 여인을 살해하겠다. 이걸 경찰에 가져간다면, 여선생 대신 자선 활동을 하는 할망구를 살해할 것이다. 결정할 수 있도록 여섯 시간을 주마. 선택은 네 몫이다."

 

바텐 안 쪽에서 손님들의 말에 특별히 토도 달지 않으며 조용히 듣기만 하는 빌리이다. 쪽지의 내용은 정말 몹쓸 장난이다. 그러나 그저 장난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뭔가 마음에 걸린다. 빌리는 쪽지를 들고 만화가가 되어 싶었고, 재능도 있었지만 현재는 보안관이 되어 있는 래니에게 들고 간다. 래니는 빌리와 함께 선술집에서 일하는 스티브의 못된 장난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음 날 내퍼 군의 금발머리 여선생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고 래니가 빌리를 찾아오고, 빌리는 다시 두번째 쪽지를 받게 된다.

 

"만약 경찰에게 달려가지 않아서 그들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어느 누구하나 서운하게 여기지 않을 미혼 남자를 살해하겠다. 만약 경찰에 신고한다면, 아이 둘이 있는 젊은 엄마를 살해하겠다. 결정할 수 있도록 다섯 시간을 주마. 결정은 네 몫이다."

 

이 끔찍한 장난, 아니 살인예고는 빌리를 알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결코 멈출 수 없는 게임. 범인이 누구든지 간에 정말 끔찍한 장난을 시작했고, 그 장난은 이제 멈출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게다가 아이가 둘이나 있는 젊은 엄마를 살해하는 것을 막겠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면 미혼의 다른 남자가 죽을 판이니 신고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처음 받은 쪽지를 래니가 가지고 가버린 지금 신고를 하지 않은 자신이 용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신고를 망설이고 있는 빌리. 이제 스스로 증거를 찾아 범인의 미친 장난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빌리는 과연 이 미친 게임을 멈출 수 있을까?

 

딘 쿤츠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작가 자신이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가 쓰는 많은 서스펜스, 스릴러, 공포소설에 등장하는 상처받은 주인공들이 작가 자신이 투영되었다는 평을 많이 듣곤 한다. 하지만 작가 자신은 자신의 트라우마는 모두 극복되었다고 말했고, 이제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딘 쿤츠표 캐릭터로 자리잡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인예언자>시리즈에서처럼 초자연현상을 스릴러에 녹여내는 것도 딘 쿤츠의 또다른 스타일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빌리와 래니도 각각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상처를 감추고 조용히 살아하던 한 남자에게 찾아온 살인예고. 살인을 멈출 수 있다는 기대도 없고, 누군가의 삶을 저울질하여 그 누군가의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죄책감과 공포. 두려움과 액션이 빛의 속도로 독자를 휘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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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 전 세계를 감동시킨 아론 랠스톤의 위대한 생존 실화
아론 랠스톤 지음, 이순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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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좀 살만해지고,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지 않게 될 때쯤 사람들은 이제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삶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새마을 운동이 있었을 때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일할 수 있으면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늦은 저녁 한 번 끓인 된장찌개가 두 번, 세 번 끓어 국물이 졸아도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일은 가족의 기쁨으로 대치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일만 하고 살다가 늙어버리는 인생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야말로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가 진리랄까? 다 늙어서 이제부터 인생을 즐기자 한들 늙은이가 뭘 얼마나 즐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행을 가도 젊어 힘이 있을 때, 놀아도 제대로 신나게 놀 수 있을 때 놀자는게 요즘 주의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묶어 주말이 되고, 주말에는 당연히 어디론가 짧은 여행을 가던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주말의 예가 되었다. 세상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라고, 그저 마음 속에만 묻어둔 '꿈'이라는 존재를 그저 꿈으로만 남기지 말라고...

 

여기 한 젊은이가 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인텔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고 있었던 아론 랠스톤. 그는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함께 등산을 하고 자연을 만끽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대자연의 품은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삶의 일부였고, 더 많은 산 정상을 밟아보고 싶다는 계획은 사회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이 시키는 일, 자신이 진정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과감히 엘리트코스라 불리우는 궤도에서 이탈한 그는 스포츠 용품점에서 일하며 대자연의 품속으로 뛰어든다. 2003년 4월, 그는 유타주의 협곡으로 여행을 떠나고 아무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홀로 떠난 그 여행에서 협곡 사이에 돌과 함께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돌은 협곡 틈으로 끼었고, 그 때 자신의 오른팔도 함께 끼어 버렸다. 이제 그는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미국 전역에 보도되어 큰 반향을 이끌어 냈던 이 청년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단순히 사막 한 가운데서 조난당한 한 남자가 자신의 팔을 직접 끊어내고 탈출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이 이야기를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물론 자극적인 그 한 마디, 스스로 자신의 팔을 끊고 사막을 횡단했다는 그 문장은 정말 강렬하기 그지 없다. 나 역시도 책을 읽으며 어떻게 자기 팔을 스스로 끊었을까가 제일 궁금했었으니까.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느낀 것은 이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이 팔을 끊는 방법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라는 옷을 벗어 던질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앞서 읽은 <마흔살의 책읽기>에서도 작가가 말한 것처럼 하고자 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 꿈이라고 마음에 새긴 일을 미루면 한도 없다. 그저 꿈으로 끝날 뿐이다. 또한 사고가 난 뒤 이제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있을까, 나를 구조하러 오려면 얼만큼의 시간이 있으며 그 시간동안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 대수술을 받은 사람들도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을 때 더 쉽게 회복되거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적을 일궈낸다고 한다. 어찌보면 아론 랠스톤도 기적을 일궈낸 사람이다. 로프와 칼, 물 500ml, 딱딱한 빵 두 조각만으로 사막 한 가운데에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로 127시간을 버텨낸다. 굶어죽거나, 팔이 썪어 들어가는 이유로 죽거나 어쨌거나 죽을 거라면 팔을 자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결단력이다.

 

세상은 모든 행동하는 자의 몫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가까이에 행복이 있다한들 다가가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는 사이 내게로 온 행운도 손가락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빠져나가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행동하는 삶, 그리고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삶만이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을 거라는 걸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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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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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물에 빠졌다가 한 남자의 도움으로 뭍으로 올라오게 된 해류. 차가운 강물에 온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던 그 날, 누군가 빠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 온 몸에 강물 냄새를 풍기며 해류를 구해주었던 그 남자. 인적이 드문 강기슭에 해류를 내려놓고 다시 그 차가운 물 속으로 들어갔던 남자. 그 남자의 귀 뒤쪽으로 호 모양의 홈이 붉게 패인 것을, 그 호 모양의 홈이 숨을 쉬듯 살짝 벌어지는 것을 본 해류. 거기에 섬세한 그물 무늬를 가진 비늘처럼 빛나 보였던 살결까지 보았던 해류. 그 남자의 이름은 '곤'이었다.

 

"편하게 해줄게."

곤은 처음부터 곤은 아니었다. 먹고살기 힘든 와중에 아내는 집을 나가고, 입성을 가다듬고 찾아간 사장에게 사정을 늘어놓자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다 옆에 끼고 있는 아이라도 앵벌이로 팔아 먹고 살라는 말에 신경줄이 툭 끊어짐과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일마저 저질러 버렸던 그의 아버지는 절망의 끝에서 아이와 함께 호수에 뛰어든다.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지만 아이는 아가미를 얻게 되고, 그런 아이를 호수에서 건져낸 강하와 강하의 할아버지의 손에 두번째 삶을 의탁하게 된다.

 

역시 어미에게 버려지듯 외할아버지의 손에 맡겨진 강하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비뚤다. 처음으로 갖게 된 동생이면서 친구이기도 한 그 아이에게 곤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역시 강하이다. 그렇지만 강하는 곤을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더구나 처음 아가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머리로 가리게 하면 그뿐이었지만, 조금씩 자라나면서 온 몸에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비늘을 갖게 된 이 물고기도 사람도 아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생물체를 온전히 동생으로, 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가 문득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을 찾아 떠나는 곤이 어느 순간 떠나가 버릴까봐,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자신의 어미처럼 곤도 물을 찾아 떠나가버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강하는 곤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짐짓 거칠게 대하기만 한다.

 

그렇게 숨어살 듯 소리내지 않고 살아가던 강하네 세 식구 앞에 강하의 어머니 이녕이 나타난다. 마약에 찌든 채 십수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이녕은 곤의 비늘을 보고 환각을 경험하게 되고, 식구들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갈등 끝에 곤은 강하의 집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강하의 말에 조용히 강가를 떠돌며 강하의 핸드폰에 자신이 찍은 강의 모습을 전송하는 것으로 자신의 안녕을 알린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가미를 가진 인간, 온 몸에 비늘이 돋아 있는 생명체. 물을 그리워하여 물 속을 한참 헤엄치고 돌아오면 파드득 생생함이 돋는 남자. 그런 남자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아가미를 위한 소설. 그것이 비단 아가미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꿈 혹은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이야기일런지도 모른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것만을 좇아 살아가는 동안 잃어버린 우리의 순수에 대한 이야기일런지도 모른다.

 

너무나 큰 각기 다른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세상에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이 인간의 정상적인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가끔 너무나 고된 현실살이 속에서 숨쉬기가 곤란할만큼 힘든 때, 혹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아가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몽롱하면서도 나른한 느낌 속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야기의 힘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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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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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잃을만큼 큰 사건이 있을때면 항상 가슴을 울리는 주인공들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보다 착했던 딸, 누구보다 가정적이었던 남편, 누구보다 살가웠던 아들. 거기에 있지 않았어도 되었을 사람들, 남을 대신해서 그 자리에 있다 봉변을 당한 사람들 등등. 목숨을 잃었다면 그 누구든 슬픔의 대상이 아니겠는가마는 꼭 그렇게 더 마음을 울리는 주인공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죽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더 미화되기도 하고 포장되기도 할 것이다.

 

2010년 8월 5일. 칠레의 한 광산이 무너졌다. 지하 700m에 33인의 광부가 갇혔고, 그로부터 69일만에 전원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미화되거나 포장될 사이도 없이 세상에 드러났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그런 인간적인 어려움과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구조될 때까지의 시간을 버텨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칠레의 광산에서 사고율은 300%에 달한다고 한다. 300%라니.. 그렇다면 사고가 더 많다는 뜻인데, 그런 위험한 일을 두고 사람들은 돈과 저울질하지만 결국은 돈이 이기게 되고,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광산으로 다시 출근하게 되는 것이다. 칠레의 피네라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지 얼마되지 않아 벌어진 이 심각한 사태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고, 광부들이 살아올 확률 2%에 모든 것을 걸고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매몰광부 33인을 모두 구조해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매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광부들은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구조가 된다면 언제 될 것인지, 과연 구조가 가능하긴 할런지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된다한들 몹시도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그들에게 남은 식량을 조절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적은 인원도 아닌 33명이나 되는 인원이 가장 극한 상황에서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여 실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광산이 매몰되던 날 근무조의 책임자였던 십장 루이스 우르수아는 십장으로서 대우를 해주면서도 동시에 유머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마리오 세풀베다를 리더로 인정하고 식량은 두 사람이 관리하도록 했다. 힘든 광부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하루에 참치 한 숟갈을 먹으며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차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을만큼 넓은 광도덕에 조금씩 이견이 있거나 트러블이 있을 때는 떨어져 있어도 좋을만큼의 공간이 확보될 수 있었고, 구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는 것도 전원구조에 힘을 실어주었다. 누군가는 의사노릇을, 누군가는 함께 기도하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절망 대신 용기를 가지고 하나된 힘으로 모아 서로에게 서로가 힘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삶이 끝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살고 즐기세요. 지금, 바로 이 순간 말입니다.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지 마세요. 우리가 겪은 일에 비하면 여러분의 문제들은 너무나 사소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을 돕는 능력을 키우세요."

-33인의 광부 중 사무엘 아발로스

 

많이 배운 사람들도 아니고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가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물며 하루하루 뼈빠지게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갔던 댓가로 받은 돈을 흥청망청 술과, 여자, 마약으로 날리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하루 한 번, 참치 한 숟가락, 복숭아 캔을 나눠먹으며 69일을 살아냈다. 어차피 죽을 거 그냥 한 번에 다 먹어버리겠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싸우지 않고 모두가 삶에 대한 의지로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실천했다는 것이 그들을 살려낸 기적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에의 공포를 이겨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현재 내가 안고 있는 고민들이나 어려움들은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지나간 일들을 생각할 필요도, 다가오지 않을 일에 대한 괜한 걱정도 덜어버리고 다만 오늘을 충실히 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되 조금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 발 물러서서 오늘의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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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에브리원
다이애나 피터프로인드 지음, 이소은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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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지방의 삼류대학마저 중퇴하고 뉴저지의 지방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베키풀러는 내심 승진을 기대하고 있다. 기상 시간 새벽 1시반. 침대옆 세 대의 TV에서는 각 방송국의 뉴스가 쉴 새없이 흘러나온다. 그녀의 손에서 떠날 날이 없는 블랙베리 폰에서도 하루종일 뉴스 뿐이다. 새벽 1시반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그런 그녀에게 소개팅은 점심도 저녁도 아닌 오후 4시다. 메인 디쉬를 주문하기도 전에 걸려오는 전화들을 답하다 보면 이미 소개팅에 애프터는 물건너 가고. 그나마 승진에의 기대로 달콤함을 맛보던 베키는 승진은커녕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쓸쓸히 짐을 싸들고 나온다.

 

지방 삼류대학 중퇴라는 초라한 스펙이지만 누구보다 뉴스에의 열정만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베키는 딸리는 스펙 탓에 이력서를 넣은 그 어디에서도 회답을 받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 뉴욕의 IBS방송국에서 피디 제의를 받게 되고 부푼 마음으로 출근을 시작하지만, 잘 나가는 방송국에서 그녀를 스카웃 한데는 모종의 음모가 있었다. 그녀의 담담 프로그램인 '데이브레이크'는 시청률 최하위, 방송 기자재는 그녀가 일하던 지방방송국이 오히려 최첨단으로 느껴질 정도, 팀워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위기의 베키, 위기의 데이브레이크. 과연 베키는 그녀 자신의 인생과 데이브레이크를 한번에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전형적인 헐리웃 스타일이다. 반전은 생각했던 대로이고,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의연히, 당당하게 대처하여 직장에서 살아남는 주인공.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마음 맞춰가며 일하는 법, 성공하여 인정받는 법, 게다가 직장 내 최고의 킹카를 남자친구로 만드는 법까지 가르쳐주는 유쾌하면서도 달콤한 이야기이다. 뻔한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워낙에 씩씩하고 긍정적인 베키를 보고 있노라니 나도 함께 밝고 경쾌해져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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